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69
369화
“그 놈이라면, 칠 대를 말하는 것이냐?”
천마의 물음.
하지만 이에 대답하지 않은 채 사무현이 눈을 감는다.
‘……보인다.’
마지막으로 위혜보가 보여 주었던 아름다운 일도가.
이 세상의 누구도 볼 수 없는, 오직 사무현만이 볼 수 있는 최고의 일도가.
언뜻 평범해 보이는 한 번의 내리그음에는, 끝 모를 깊이와 예리함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무게감도 함께 느껴진다.
아니, 엄밀히 말해 그런 단순한 단어들로 표현할 수 없는 조화(造化)가 느껴진다.
완성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더 없이 완벽한 일도.
‘내가 할 수 있을까?’
위혜보는 천재다.
그에 반해 그는 천재도, 남다른 재능이 있는 이도 아니다.
무신이나 천무신녀 같은 천재에게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평범한 무인.
그는 그저 위혜보라는 희대의 천재를 만나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운 좋은 이에 불과할 뿐이다.
그 사실은 너무도, 뼈저릴 정도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스윽.
감았던 눈을 뜨자, 그의 옆에서 오만한 미소를 머금은 채 사무현과 같은 동작으로 도를 쥔 위혜보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단순히 사무현이 떠올린 허상.
실제로 이곳에 위혜보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천마도법의 초식은 각자 다른 이치를 담고 있다.’
허상을 보는 순간에도 그의 귓가로 위혜보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래, 녀석은 그렇게 말했다.
도(刀)를 처음 쥐었을 때에는 육체의 힘을 담아낸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는 기(氣)를, 의(意)를 담아 내며 그렇게 심도합일(心刀合一)에 이르러 강(綱)을 담아 낸다.
그리고 담아낸 이 모든 힘들은 형(形)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담아 낸다.
화산이 화려하게 개화하는 매화를 담아낸 것처럼, 무당은 부드러운 물의 흐름을, 황보세가는 뇌(雷)의 파괴력을, 소림은 거암의 무거움을…….
‘너는 무엇을 담아 내고자 했을까?’
허상을 바라보고 있는 사무현의 눈에 이윽고 보이기 시작한다.
그의, 위혜보의 도가 무엇을 담아 내고 있는지.
‘그래, 내게는 보인다.”
천마가…… 아니.
“……위혜보의 도(刀)가.”
앞뒤를 잘라먹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사무현을 보며 천마의 눈이 가늘어진다.
아까부터 무슨 생각으로 떠드는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묘한 기시감과 위화감이 그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
놈이 다음 일도를 휘두르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그 순간 사무현의 입가에 새하얀 어금니가 드러난다.
어느새 사무현의 몸 주위를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바람.
그리고 그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오른팔을 타고 올라가,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세워진 도에 베여 양 갈래로 갈라진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천마의 얼굴이 처음으로 불신과 경악으로 물들었다.
“설마 네놈……!”
“천마도법 십삼 초식.”
“……!”
“자연도(自然刀).”
선언이라도 하듯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읊은 사무현이, 그대로 천마를 향해 도를 내리긋는다.
무엇하나 거스르지 않으면서 무엇 하나 흘리지 않은 일도가.
무(武)의 이치가 아닌 자연의 이치를 감은 일도가.
그래, 위혜보가 결국 도에 담아 내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도를 펼치고 싶었던 위혜보가, 고작 수많은 자연의 모습 중 하나만을 도에 담아 내고자 했을 리 없다.
그가 담아 내고자 했던 것은 순수한 자연 그 자체.
세상의 모든 이를 자신의 아래로 보던 오만함으로, 자연이라는 세상의 이치를 자신의 도에 담아 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사무현의 도가 자연을 담아 낸 순간 그의 몸이 섬광으로 번쩍인다.
그리고 그 빛이 도의 휘둘러짐과 함께 천마에게로 날아간다.
자연이, 천마에게로 날아간다.
***
“저건……!”
사무현이 만들어 낸 찬란한 빛을 바라보며 단월혁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진다.
‘자연검(自然劍)을……!’
아니, 저 경우라면 자연도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가 말년에서야 바라볼 수 있게 된 경지의 무공.
갈 수 있는 길을 깨달았음에도 스스로 걷지 않았던 그 경지는, 바로 전설 속의 경지라고 불리는 생사경의 무공이다.
초대 천마신교를 이룩한 천마나 장삼봉(張三丰), 달마(達磨) 정도가 개척했을 것이라 추측되는 경지.
‘하지만 놈의 육신도 생사경은 아니다.’
생사경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 번째 환골탈태를 넘어야 한다.
이는, 인간을 넘어 반선(半仙)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는 발걸음.
이 경지에 들어선 이는 더 이상 인간으로 볼 수 없다.
그들의 손짓 발짓에 담아 내는 것은 그야말로 자연.
무의 이치가 아닌 세상의 이치이니까.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나 허락된 무공을 현경의 몸으로 펼친다는 것은, 스스로의 그릇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을 담아 낸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그 결과는…….
‘……각오한 것이냐.’
저 한 합으로 목숨을 버릴 각오를.
고통스러운 듯 입술을 깨무는 단월혁과는 달리,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빛을 바라보는 천마의 입가에는 환희에 찬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하……! 믿을 수 없구나!”
스스스스.
쐐애애애액!
천마의 우수에 순식간에 다섯 개의 마창이 만들어진다.
그러고는 그 마창은 사무현이 던진 자연을 향해, 빛을 향해 손살 같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다섯 자루의 마창 모두, 찬란한 자연과 마주한 순간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
“과연, 진짜로구나……!”
무엇이 그리 기쁜지 즐거워 어쩔 줄 모르는 미소를 머금은 천마가, 자신의 우수에 검은 마기를 담아 낸다.
지금까지의 그가 전개했던 마기와는 무언가 다른,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꿈틀거리는 듯한 기괴한 검은 마기.
잠시 후 그 검은 마기가 스스로 소용돌이 형태로 화(化)하더니 이내 사람의 머리만 한 크기로 팽창한다.
드드드드드.
마기의 소용돌이가 커짐에 따라 인근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는 강한 인력을 만들어 낸다.
대지가 갈라져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검은 마기에 흡수되듯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린다.
이 힘의 형태는 공허(空虛).
자연과는 반대로 세상의 모든 것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힘이다.
“받아 보거라.”
희열에 찬 음성으로 중얼거린 천마가 검은 마기의 소용돌이를, 공허를 앞으로 내던진다.
그리고 잠시 후, 사무현의 자연과 천마의 공허가 맞부딪친다.
스르르륵.
천마의 어둠이 사무현의 빛을 집어삼켰다.
그 과정에서 힘과 힘이 맞부딪치며 만들어지는 굉음이나 충격파는 없었다.
그리고…….
스스스스스스스.
어둠의 일부가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밝은 빛이 모습을 드러낸다.
두 힘이 서로를 집어삼킬 듯 뒤섞이기 시작하자 이내 주위에 심상치 않은 기파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단월혁이 있는 대로 내력을 끌어 올리며 소리친다.
“모두 전력으로 충격에 대응해라! 어서!”
다급함이 느껴지는 단월혁의 음성에 황급히 정신을 차린 모두가 모든 내력을 끄집어 올린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마기의 소용돌이 곳곳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두 기운이 융합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파앙.
콰과과과과과과과광!
콰과과과광!
콰과광 콰광 콰과과광!
눈앞에서 뇌전과도 같은 것이 번쩍이며 강한 바람이 한번 이는가 싶더니, 곧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며 인근의 대지를 산산이 파괴하기 시작한다.
“크윽……!”
“읍……!”
전장에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단아란과 단월혁이 침음성을 흘리며 검막을 펼친다.
연화도, 무천검제도, 무림을 대표하는 모든 화경급 고수들이 전력으로 기의 막을 만들어 내며 모두를 보호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파에 의해 진형이 무너지고 수천에 달하는 무사들이 허공을 난다.
콰과과과과과과.
“크으으읍……!”
자연재해를 방불케 하는 폭발.
빛과 어둠.
자연과 공허.
서로 상반된 것을 담아낸 두 기운이 맹렬히 힘을 겨룬다.
하지만, 그 싸움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허공에서 서로를 집어삼키려던 두 힘이,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완벽하게 서로를 상쇄하며 사라진다.
그리고…….
촤아아아악!
후두두둑.
자연을 내던진 사무현의 오른팔이 갈기 발기 찢어지더니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쿨럭! 우웩!”
후두둑.
몸 안까지 엉망이 되었는지 검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 내는 사무현.
곧이어 더 이상 쓸 수 없어진 오른손에서 천마도가 떨어져 바닥을 나뒹군다.
챙그랑.
‘그래도…… 다행히 죽진 않았네.’
현경의 몸으로 쓰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무공이었다.
실제로 천마는 지금의 일도를 펼친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너는 본좌와는 달리 죽지는 않을 거다. 네 육신은 금강불괴가 아니냐?’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죽지는 않을 것이라 사무현을 안심(?)시키던 천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빌어먹을 놈.
아무튼 놈의 말은 맞았다.
생사경의 육신에 준하지는 못하지만, 워낙에 튼튼한 그릇이라 한번 과한 힘을 담은 정도로 박살이 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면…… 녀석은?’
잠시 후 사무현이 고개를 들자, 믿을 수 없다는 듯 스스로의 몸을 내려다보는 천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촤아아아악.
공허를 내던진 천마의 우수가 사무현과 마찬가지로 갈기갈기 찢어지며 붉은 피가 뿜어져 나온다.
주르륵.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검붉은 피.
십삼 초식으로 놈을 쓰러뜨리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와 마찬가지로 전투 불가에 가까운 타격을 입힌 것은 분명한 모양이다.
“……좋네.”
그래,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적어도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동등한 상태로 녀석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으니까.
“자…… 그러면 이제…….”
스윽.
유일하게 멀쩡한 왼손으로 천마도를 집어 드는 사무현.
이 단순한 동작을 취하는 데도 온몸이 부서질 듯한 통증이 밀려온다.
몸 안의 혈맥도 육체 못지않게 망가져 버렸는지, 내력조차 제대로 끌어 올릴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자, 시작해 보자.”
왼손으로 집어 든 천마도의 도 끝을 천마에게 겨눈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상태이지만 사무현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머금어져 있다.
그리고, 그런 사무현을 바라보는 천마의 눈이 분노와 불신으로 흔들리고 있다.
“아직……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냐?”
“큭…… 왜, 너는 못 움직이겠냐?”
“…….”
“고작 이 정도로 엄살 부리지 마라.”
스윽.
“진흙탕 싸움 시작이니까.”
“감히……!”
엄살을 부리지 말라는 사무현의 말에 분노했는지 천마를 중심으로 거친 기파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만들어진 마기의 갑주가 천마의 몸을 감싸 안는다.
스르륵.
“……이런 미친.”
조금 전 그런 무공을 사용하고도 내력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당황한 사무현이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는 그 순간.
“……쿨럭!”
후두둑.
스스스스.
천마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토해져 나오는가 싶더니 그를 감싸 안고 있던 마기의 갑주가 허물어진다.
그 역시 이전과 같은 무공을 사용할 수 없다는 증거!
이를 확인한 사무현이 자리를 박차고 도약해 천마를 향해 날아든다.
스륵.
좌수에 쥐어진 사무현의 도가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이에 입술을 꽉 깨문 천마가 멀쩡한 좌수에 마기를 끌어 올리며 사무현을 향해 휘두른다.
쩌저저정!
콰과과과과.
“이……!”
은은한 도기를 머금은 천마도를 좌수로 가로막은 천마가 입술을 꽉 깨문다.
그리고 곧이어, 천마가 거칠게 좌수를 휘둘러 사무현의 몸을 뒤쪽으로 밀쳐내려 한다.
하지만…….
스윽.
천마의 움직임을 읽어 낸 사무현이 부드럽게 몸을 회전시키며 그의 좌수를 오히려 허공으로 흘려낸다.
그리고 바닥에 안착함과 동시에 그의 품 안으로 일도를 휘두른다.
촤악!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간 천마도의 도신이 천마의 무복 앞섶을 잘라 내며 허공을 가른다.
한순간 정말로 베였을지도 모른다는 오싹함을 느낀 천마가 사무현의 안면으로 일각을 내뻗는다.
쩌저저정!
촤지이이익.
아슬아슬한 순간 도면으로 천마의 일각을 받아 낸 사무현의 신형이 뒤쪽으로 밀려난다.
그리고…….
“……쿨럭!”
후두둑.
사무현의 입에서 또다시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온다.
같은 부상이라 해도, 끌어 올릴 수 있는 내력의 크기는 천마 쪽이 우월하다는 증거.
하지만, 입가의 피를 뱉어 내고 고개를 든 사무현의 얼굴에는 분명한 미소가 번져 있다.
“……아깝네.”
“……!”
“벨 수 있었는데.”
그 순간,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섬뜩함에 천마의 등골에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더불어, 그의 이마에서 한 방울 땀이 흘러내린다.
‘내가…… 긴장을 하고 있다고?’
아무리 마기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라고는 하지만, 그보다도 상태가 좋지 않은 애송이 따위에게?
까드득.
‘인정할 수 없다!’
그 상대가 저 애송이건 저 애송이의 뒤에 있는 칠 대건, 생사경을 밟아 보지도 않은 애송이들에게 자신이 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벅.
무언가를 마음먹었는지 천마가 도리어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딘다.
그리고 좌수에 짙은 수강을 끌어올리며 사무현을 향해 소리친다.
“이놈! 오거라!”
“……!”
“네놈이 칠 대의 도를 증명하고 싶다면, 어디 본좌의 목을 베어 보거라!”
“……당연한 소리를.”
히죽 웃으며 다시 한번 천마도의 도 끝을 천마에게 겨누는 사무현.
가볍게 쥐어진 좌수도와 자신만만하게 머금어진 사무현의 미소에 초대의 눈이 가늘어진다.
저 모습은 어느 모로 보나, 일전에 저 애송이의 몸을 빼앗았던 칠 대의 모습이 아닌가?
“간다!”
파밧!
자리를 박차고 천마에게 도약하는 사무현.
그런 그의 뒤로, 어느덧 길었던 밤의 끝을 알리는 듯한 일출(日出)이 떠오르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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