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7
037화
부웅.
“……어?”
……바람?
사내의 일 검과 함께 부드러운 바람 같은 것이 몸을 스치더니, 갑자기 움직일 수 없던 몸에 힘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럴 수가……. 고작 검풍(劍風)만으로 금강불괴의 육체에 점혈을 가할 수 있다고?”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아무튼 저 오만방자한 녀석이 저렇게까지 감탄을 흘리는 걸 보면, 아무래도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더욱 괴물에 가까운 인간인 모양이다.
하기야, 그러니 그 화상장로를 벌레 때려잡듯 압살해 버렸겠지.
‘아무튼 어찌어찌…… 살긴 살았네.’
우여곡절이 많기는 했지만, 살았으면 된 거지. 살았으면.
그렇게 사무현이 안도감 어린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때,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사내가 마지못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일단은 살려 두겠으나, 개방을 통해 너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것이다.”
“……예?”
“만일 네가 한 말에 조금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그대로 목숨을 끊어 놓을 것이니 그리 알아라.”
그러고는 더 이상 미련은 없다는 듯 사내가 등을 돌려 버리자, 내심 쾌재를 지른 사무현이 그들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포권을 해 보였다.
“감사합니다, 대협! 제 말에 조금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언제든지 목을 바칠 것입니다!”
낄낄, 아암. 얼마든지 바치고 말고.
어차피 그 소식을 접할 때 즈음이면 난 여기에 없을 테니까.
그렇게 싱글벙글한 미소를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때, 그의 귓가로 서늘한 사내의 음성이 이어진다.
“혹여나 노파심에 말해 두겠다만, 만에 하나라도 내 눈을 속이고 이곳을 벗어난다면 너는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대협,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다.”
“…….”
“네놈의 말을 확인은 해야 할 것 같으니 당장 죽이지는 않겠지만, 너에 대한 신뢰가 생긴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니 너는, 너를 놓아주어도 된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내 감시하에 이곳에서 지내게 될 것이다.”
……세상에.
지금 저 괴물 새끼가 뭐라고 하는 거지?
죽을 똥을 싸 가며 겨우겨우 마교를 탈출했더니, 뭐?
여기서 감시하에 지내라고?
“아니, 대협, 그건 좀 아닌 것 같은…….”
“그럼 그냥 죽겠느냐?”
“…….”
“……선택하거라.”
그러고는 사무현의 대답 여하에 따라 언제든 목을 벨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 사내가 들고 있던 검을 슬쩍 고쳐 쥔다.
거참, 무슨 마교 출신도 아니고 인간이 참 살벌하기 그지없네.
그런다고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할 것 같아?
“……이 숲에서만 지내면 되는 건가요?”
“…….”
“식사는 어떻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합리적인 선택을 한 사무현의 모습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가만히 그를 바라보는 사내.
더불어 그의 옆에 선 여인 또한, 안쓰럽다는 듯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천마 너는 왜 그쪽에 서 있냐?’
그것도 한심하다는 듯 혀까지 끌끌 차 가면서.
……너는 일로 와야지.
‘그래……. 그래도 산 게 어디냐?’
한순간의 비굴함이 영원한 안식 보다는 낫다.
암, 그렇고말고.
사무현의 슬픈 미소에 하늘조차 슬펐는지, 하늘을 우러러보는 그의 얼굴로 후두둑 빗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쏴아아아아!
우르르릉, 쾅!
“야, 왼쪽 구석 천장에서 비 샌다.”
“이런 제엔자앙! 어디! 여기?”
“거기 말고, 어어, 거기 거기.”
수풀을 그득 덮어 만든 지붕 위로 얄밉게 얼굴만 쏙 튀어나와서, 천장을 보수하는 사무현에게 잔주문을 넣는 칠 대 천마.
솔직히 저놈이 있어서 편하게 작업하는 것이긴 한데, 뭔가 엄청 약오르는 기분을 지워 낼 수가 없다.
“이런 젠장! 왜 넌 쉬고 나만 일하냐고!”
“뭘 묻고 그러느냐? 네놈만 육체가 있으니 네놈만 일을 할 수밖에.”
“제엔장! 누가 그걸 몰라서 묻냐!”
“그럼 왜 묻는 것이냐? 본좌도 이렇게 최선을 다해 너를 도와주고 있지 않느냐?”
“그래! 그것참 고오맙다, 이 새끼……!”
“어어? 야야! 머리 위! 위!”
“머리가 무슨…… 으아억!”
우지끈! 쿠구구구궁.
……세상에.
잠깐 방심한 틈에,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한 거목 하나가 완성 직전인 집을 처참하게 짓뭉개 버리고 말았다.
“으아아! 하늘이시여! 차라리 날 죽이소서!”
쿠르르르릉.
쾅! 쾅!
“……아니, 취소. 죽이지는 맙시다.”
어우, 씨…… 말 끝나기 무섭게 벼락이 번쩍이고 그러냐.
하여튼 이럴 때는 기도 한번 더럽게 잘 들어주시네.
“……씨팔, 어떻게 만든 집인데.”
나무 한 방에 박살이 나 버리냐, 박살이…….
절망하는 사무현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어느새 그의 옆에 나타난 천마가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네 머리로 안 떨어진 게 어디냐? 금강불괴라도 저런 거에 맞았으면 아마…….”
“……그만. 거기까지만 해라.”
더 말하지 마.
이 빌어먹을 상황을 다행이라고 여기게 되잖아…….
……빌어먹을 거.
“흐음……. 아무래도 집을 다시 짓기는 너무 늦은 것 같은데, 그냥 포기하고 비를 피할 곳이나 찾아보는 게 어떠냐?”
“……그것도 이미 늦었다. 한참이나.”
이미 속옷까지 다 젖어서 여기가 물속인지 숲속인지 모를 지경인데, 비를 피하는 게 의미가 있겠냐?
“제엔자앙……. 저걸 만드느라 하루종일 개고생했는데.”
비바람을 맞아 가며 나무 베어 나르고, 기둥 세우고, 벽 세우고, 잔가지랑 수풀 끌어모아 지붕 만들고…….
그러는 내내 천마 새끼는 드러누워 쉬고 있고.
몇 시진 동안 고생고생을 한 끝에 만들어진 결과물이 이 꼴이라니.
“그 괴물 새끼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어?”
“감시를 할 거면 적어도 지낼 만한 집이라도 한 채 주면서 하든지. 다짜고짜 이 숲에서 지내라고? 말이면 단 줄 아나, 이 악독한…….”
“야야! 뒤, 뒤…….”
“기껏 살려 주었더니, 생각보다 불만이 많은 모양이로구나.”
……어?
뒤쪽에서 들려오는 서늘한 음성에, 사무현의 등을 타고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젠장, 비까지 내리는 이 상황에 저 인간이 왜 여기에 왔대?
운이 없으려면 이렇게 지지리도 없구나. 지지리도…….
그렇게 속으로 눈물을 삼켜 낸 사무현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돌아선다.
“……언제 오셨습니까? 하하.”
“…….”
“인기척이라도…… 내시지…….”
그랬으면 욕은 안 했지.
……대놓고는.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서 지워 내며 사무현이 고개를 내리깔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뜬 후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해, 한 가지 말을 하러 왔다.”
“예?”
“기회가 된다면 사람을 통해 네 정보를 알아보기는 하겠다만, 설령 네가 말한 것과 정보가 일치한다고 한들, 난 너를 놓아줄 마음이 없다.”
세상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애초에 놓아줄 마음이 없으면 왜 여기에 감금하지? 대체 왜?
“아니…… 대체 왜…….”
“너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
“설령 네 근본이 중원에 있다고 한들 너의 그 무공은 반드시 마교에서 익힌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네 심법만을 근거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면 대체 무얼…….”
“너의 그 육체.”
“…….”
“네 나이에 그만한 외공을 익히는 것은 중원이 가진 방대한 무학으로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 모든 외공에 필수적인, 시간이라는 섭리를 깨뜨리고 단기간에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천마신공의 흑미륵마공(黑彌勒魔攻)이라면 또 모를까.”
……흑미륵마공?
그건 또 대체 뭐 하는 무공이야?
평소라면 어떻게든 그의 말에 반박을 했겠지만, 다른 의미로 정곡이 찔린 나머지 반박을 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거나 그의 확언대로, 이 금강불괴의 육체는 마교에서 만들어진 것이니까.
“답이 없는 것을 보니, 인정하는 부분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
“……적어도 너에 대한 정체가 확실해질 때까지는, 이곳에서 네가 무엇을 하건 자유다. 단, 내 허락 없이 이곳을 벗어난다면 그때에는 네가 어디에 있건, 그 누가 너를 보호하던 그에 상관없이 네 목을 취할 것이니 명심하거라.”
스윽.
저벅저벅.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 멀어지는 사내.
그런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사무현이, 돌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두 눈을 도전적으로 부릅뜨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럼…… 난 죽었다 깨어나도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말입니까?”
“……있다.”
“그게 어떤…….”
“나를 꺾어라.”
“…….”
“무림은 힘이 곧 법이고, 정의가 되는 곳이다. 네가 이곳을 나가고 싶다면 나를 쓰러뜨리면 그뿐이다.”
“…….”
“그런 것이 아니라면, 빠져나가는 것은 꿈도 꾸지 말도록.”
그 말과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빗속에서 홀연히 모습을 감추어 버리는 사내.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자리를 가만히 응시하며, 사무현은 부서질 듯 힘껏 두 주먹을 움켜쥐고 서 있었다.
***
십만대산에 위치한 천마신교의 요새.
이제 막 동이 터 오는 이 시각, 신마전(神魔戰)에는 천마신교 내에서도 쟁쟁하다 할 만한 무인들이 빠짐없이 모여 있었다.
태상장로를 포함한 장로 전원과, 그 장로들이 이끄는 휘하 고수들.
그리고 장로들을 제외하면 교내 최고수들이 모여 있다는 호법원의 고수들과, 현 천마신교의 주요 무력단체인 만악대(萬惡隊), 천귀대(千鬼隊), 사천대(死天隊), 추마대(追魔隊)의 핵심 고수들.
그리고 공식적으로 그 활동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천마신교의 보이지 않는 칼날이라 불리는 살수부대의 수장들까지.
이들 모두가 이 신마전에 모인 이유는, 앞으로 천마신교를 이끌게 될 진정한 천마가 정해지는 순간을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슬슬 시작해 볼까,”
어느덧 신마전 내부가 고수들로 가득 차자, 천천히 고개를 한번 끄덕인 초대 천마가 그의 앞에 마주한 십삼 대 천마를 응시했다.
지름이 이십여 장에 이르는 정사각형의 비무대 위에는, 오직 초대 천마와 십삼 대 천마 단둘뿐.
뒷짐을 지고 서서 덤덤한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하던 이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향해 기세를 내뿜기 시작한다.
콰과과과.
쿠구구.
십삼 대 천마에게서는 반투명한 기운이, 초대 천마에게서는 칠흑과도 같은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서로를 향해 거칠게 쇄도한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사람이 뿜어낸 기세가 비무대의 정중앙에서 충돌했다.
그런데…….
스르륵.
“……음?”
“저건……?”
분명 서로가 내뿜은 기세의 힘과 크기는 비슷했건만, 십삼 대 천마의 기세가 초대 천마의 기세에 잠식되기 시작한다.
마치 물에 먹을 떨어뜨린 것처럼, 비무대 위는 순식간에 초대 천마가 흩뿌린 검은 기세로 가득 찼다.
그러자 십삼 대 천마가 눈썹을 한번 꿈틀하더니, 그대로 한쪽 발을 들어 비무대 위를 내리찍었다.
쾅!
콰구구!
십삼 대 천마의 진각과 함께, 그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십여 갈래의 기파(氣波)가 비무대 위를 지배하는 검은 마기를 흩어 놓았다.
그와 동시에, 어느새 뒷짐을 푼 십삼 대 천마가 십여 갈래의 검붉은 강기를 전개해 초대 천마를 향해 흩뿌린다.
쐐애액!
스윽.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붉은 강기의 다발을 향해 무심하게 오른손을 내뻗는 초대 천마.
그러자 그의 앞으로 커다란 검은 장벽이 만들어져 십삼 대 천마가 전개한 강기의 다발을 받아 냈다.
쿠구구구.
“강벽(罡壁)?”
강기로 벽을 세우는 지고한 경지.
물론 과거의 십삼 대 천마 또한 마음만 먹으면 강벽 정도는 구사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하지만, 아직 전성기 시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금의 힘으로는 감히 구사할 엄두가 나지 않는 무공이다.
그런 무공을 마치 숨 쉬듯이 가볍게 전개하는 초대 천마의 모습에, 오싹한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낀 십삼 대 천마가 조용히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과연, 초대라는 이름값은 하시는군.”
본래라면 근접 공방을 주고받으며 상대의 기량을 조금 더 가늠해 보려 했다.
하지만 기세와 강기를 다루는 수준만 두고 보아도 이미 그들 사이에는 현격한 격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것은 초대 천마가 조금 더 먼저 내력을 쌓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마기를 저렇게까지 손쉽게 다룰 수 있다면…….’
비슷한 크기의 힘이라도, 얼마나 그 힘을 자유롭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위력은 천차만별로 갈린다.
결국, 이대로 뻔한 공방을 주고받아 봐야 승산은 멀어질 뿐이라는 의미.
“……괜한 잔재주를 부릴 필요는 없겠군.”
그렇게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린 십삼 대 천마의 주위로, 돌연 심상치 않은 기의 파동이 만들어졌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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