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72
372화
욱신 욱신.
‘……아프다.’
그냥 아픈 것도 아니고 더럽게…… 아니,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프다.
언제가 마지막이었더라?
이렇게 끔찍하게 아팠던 기억이.
온몸의 뼈가 부러져 제멋대로 몸속을 헤집고 다니는 듯하고, 수만 마리의 개미가 몸속 곳곳을 물어뜯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뜨거워.’
몸속에 불길이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다.
아니, 몸이 불타는 것 같다.
목이 탄다.
제발…… 누가…… 이 더위 속에서 나를…….
어…… 누구지?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다.
정말로 귀에 익은 목소리인데 마치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반가움과 그리움이 뒤섞인 감정들이 복잡하게 맴돌 뿐.
‘이…… 목소리는…….’
‘…….’
“……!”
그 순간, 자신을 부르는 이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린 사무현이 번쩍 눈을 떴다.
“위혜……!”
……어?
눈을 뜬 순간 사무현의 시야에 들어온 낯익은 새하얀 천장.
생각지도 못한 상황 변화에 당황한 사무현이 천천히 두 눈을 끔뻑이며 주위를 둘러본다.
“여…… 기는…….”
“혀, 형님. 정신이 드십니까?”
눈을 뜬 사무현의 모습에 놀랐는지, 그의 침소 옆에 앉아 있던 막휘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벌떡 일어나 묻는다.
며칠 밤이라도 지새웠는지 홀쭉해진 뺨과 퀭하게 꺼진 눈자위.
한눈에 봐도 ‘나 산적이오.’라고 말하는 듯하던 이전의 모습은 감히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핼쑥해진 모습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무현이 할 말을 떠올리고 있던 그때.
“바, 방주! 몸은 좀 어떠냐?”
막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무현을 지켜보고 있는 창백한 안색의 깡마른 사내.
살아있는 시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그가 살암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사무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늬들 꼴이…….”
“깨…… 깨어나셨습니다! 형님이 깨어나셨습니다!”
그제야 사무현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자각했는지 곧바로 문 쪽을 향해 소리치는 막휘.
그러자 굳게 닫쳐 있던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줄기 바람과 같이 두 사람의 신형이 뛰어 들어온다.
타닷.
탓.
“괜찮은 거냐?”
“아미타불, 괜찮소이까? 시주.”
조금 전 막휘와 살암이 물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이 쏟아진다.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진 이들 역시, 막휘와 살암에 비해 조금 낫다 뿐이지 초췌하고 야윈 것은 마찬가지였다.
신불과 단아란.
생각지도 못했던 그들의 등장에 사무현이 두 눈을 끔뻑인다.
“아니…… 두 분은 왜 여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이오? 시주.”
온몸에서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신불이 묻자, 사무현이 슬쩍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한잔하면 기억이 날 것 같기도…….”
“아미타불, 그렇다면 당장…….”
“거기까지. 그 이상 하면 강제로 끌고 나갈 테니 적당히 해요.”
단아란이 쌍심지를 켜며 스산하게 말하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한 신불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꺼내려던 술병을 허리춤에 매달았다.
“허허, 농이외다. 막 깨어난 환자에게 어찌 술을 권할 수 있겠소?”
“온몸에 금침을 박아 넣고도 술병은 못 놓던 분이…… 뭐, 아무튼.”
신불을 가볍게 흘겨보며 투덜거리던 단아란이 이내 사무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기억은 다 나는 거야?”
“기억이요?”
단아란의 물음에 잠시 미간을 찡그리던 사무현이 이내 마지막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눈을 감는다.
‘그래…… 분명 난 막휘를 구하러 죽산으로 갔었지. 거기서 십삼 대 천마와 싸웠는데…….’
어쩐지 머리가 무겁고 생각을 이어 가는 것이 힘들었지만, 차근차근 최근의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하니 무언가 뒤죽박죽 엉켜 있던 것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초대천마랑 싸운 기억이…….’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가던 사무현이, 불현듯 두 눈을 치켜뜨며 단아란을 응시한다.
“여기…… 극락인가요?”
“…….”
“아니지, 저 두 분이 같이 왔으면 역시 지옥…….”
“오호라, 지오옥?”
사무현의 말에 희번덕이는 미소를 머금은 단아란이 두 주먹을 움켜쥔다.
“그래, 깨어난 김에 여기가 지옥인지, 현실인지 한번…….”
“그만하거라, 아란아.”
저벅 저벅.
문 쪽에서 들려오는 특유의 무심한 음성.
무신 단월혁의 음성에 이어 가벼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여인의 음성이 들려온다.
“와, 사 공자. 깨어났네요?”
“선자님!”
연화의 목소리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사무현이 꼼작도 못하는 상태에서 고개를 들었다.
단월혁과 함께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걸어오는 그녀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사기그릇 하나와 수저가 들려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냄새예요?”
“야채죽이에요. 인기척이 들리기에 혹시나 했는데, 이제 정신이 들었나 보네요?”
빙긋 웃으며 사무현에게 다가온 연화가 죽 그릇을 침소 옆 협탁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몸은 좀 어때요? 어디 특별히 아픈 곳은 없어요?”
“예, 특별히 아픈 곳은 없어요. 워낙에 전체적으로 아파서.”
“깨어났을 때 아픈 건 좋은 거예요. 적어도 감각을 잃을 만큼 다친 곳은 없다는 뜻이니까요.”
“아, 그런 건가요?”
“그럼요, 이제 천천히 회복할 일만 남았네요. 다행이에요.”
연화의 말에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사무현.
그런 그의 모습에 함께 씩 웃어 보인 연화가 막휘와 살암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두 사람이 걱정 많이 했어요. 사공자가 의식을 잃은 뒤부터 밤낮으로 옆에 붙어서는, 사 공자가 눈을 뜰 때까지 이곳을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더라고요.”
“제가…… 의식을 잃은 지 오래되었나요?”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지요. 벌써 한 달 가까이 쓰러져 있었으니까요.”
“하, 한 달이요?”
연화의 말에 사무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한 달이라니?
천마와의 싸움 이후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말인가?
“그럼 그동안 음식은…….”
“미음이랑 죽이요. 다행히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잘 받아먹던데요?”
“하…….”
연화의 말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두 눈을 끔뻑이는 사무현.
한 달이나 쓰러져 있던 자신도 자신이지만, 그 기간 동안 밤낮 없이 자신을 지키겠다며 버텼을 녀석들을 생각하니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괜스레 미안함과 고마움이 솟아오른다.
그런데…….
“……막휘는 그렇다 치고, 살암 너는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랬냐?”
“……나라고 걱정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사무현의 물음에 괜스레 민망했는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대꾸하는 살암.
그 모습에 위혜보의 모습이 스치듯 떠오르자 사무현의 얼굴에 짧은 괴로움이 어린다.
그 기색을 읽어 냈는지 가볍게 손뼉을 친 단아란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짝.
“자, 아무튼 깨어난 건 봤으니까 됐네. 이 녀석 푹 쉬게, 저희도 나가 있을까요? 오라버니.”
“그러는 편이 좋겠구나.”
단아란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인 단월혁이 잠시 사무현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운기행공은 피하고 한동안 육체의 회복에만 전념하도록 해라. 그 상태로 어설프게 기를 운용하려다 영영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몸이 될지 모르니.”
“……예, 그러죠, 뭐.”
“쉬거라.”
퉁명스러운 사무현의 대답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돌린 단월혁이 그의 처소를 빠져나간다.
이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단월혁의 뒤를 바라보던 연화가 이내 그의 뒤를 따랐고, 단아란은 살짝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사무현을 돌아본다.
“크흠…… 야.”
“예?”
“……고맙다.”
“……에?”
“나나 오라버니 대신 중원을 지켜 줘서.”
생각지도 못한 단아란의 한 마디에 사무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고는 멋쩍었는지 뒷머리를 벅벅 긁은 그녀가 빙글 몸을 돌리며 말을 잇는다.
“나중에 다 나으면, 나랑 다시 한번 붙어 보자.”
저벅 저벅.
“……아.”
너무 충격적인 말을 들었더니 사고가 정지된 사무현.
어느새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살암이 그런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반응할 것 없다. 천무신녀 님뿐만 아니라, 중원에 있는 모든 무림인들이 너에게 가지고 있는 생각일 테니까. 나나, 우리 천신련도들을 모두 포함해서 말이지.”
“…….”
“아무튼…… 깨어나서 다행이다. 이제 나도 눈을 좀 붙이러 가 보도록 하지.”
저벅저벅.
그렇게 살암도 처소를 벗어나자, 홀로 남아 쭈뼛거리고 있는 막휘에게 사무현의 시선이 향한다.
“……막휘야.”
“예, 형님.”
“그…… 천마 말인데.”
“아…… 예.”
사무현이 꺼낸 천마라는 이름에 막휘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아무리 죽었다고는 하지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존재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막휘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무현이 새삼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죽었냐?”
“……예?”
“…….”
“아…… 물론입니다. 형님께서 목을 베어 버리시지 않았습니까?”
“진짜 죽은 게 맞는다는 거지?”
사무현이 어찌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익히 짐작할 수 있었기에 막휘의 입가에 쓴웃음이 머금어진다.
“제 아무리 괴물 같은 자라도 목이 잘리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하아…… 그렇지. 그러고도 살면 사람 새끼가 아니지.”
그제야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베개에 머리를 누이며 천장을 올려다보는 사무현.
이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이 손으로 그 천마를 죽였다니.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주저앉아 버리게 만들었던 절망적인 괴물을.
“지금 중원은 형님의 이야기로 난리입니다.”
사무현의 눈치를 흘깃 살피며 막휘가 말을 꺼냈다.
“중원 무림이 천신련주라는 사파의 천재 고수에게 구원받았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천신련도들이 앞을 다퉈서 소문을 내고 있는데, 무림맹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뭐야, 누가 그런 헛소문을 내래?”
“예? 헛소문이요?”
사무현의 물음에 막휘의 눈이 커다래진다.
“형님이 천마를 베셨잖습니까?”
“그래, 그랬지. 그런데 그게 어디 나 혼자 한 거냐?”
“아…….”
“신불 스님께서 오지 않으셨으면 난 소교주와의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을 거다. 스승님과 고문님이 천마의 힘을 그만큼 빼놓지 않았다면 아마 상대도 되지 못했을 테고. 난 그냥 운 좋게 마지막에 놈의 목을 베는 역할을 한 것에 불과해.”
독백이라도 하는 듯 말을 이어 가는 사무현.
그 음성에 실린 진심을 느낄 수 있었기에 막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셔도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뭐…… 이미 퍼진 소문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신경 쓸 일은 아닌데, 이제부터 애들 입단속이나 잘 시키라고.”
“예, 형님.”
“그래, 너도 나가 봐라.”
급격하게 몰려오는 허기와 피로감에 사무현이 손짓을 하자, 말없이 몸을 일으킨 막휘가 천천히 문 쪽으로 몇 걸음 옮기더니 사무현을 향해 돌아선다.
그리고…….
스윽.
돌연 사무현을 향해 깊게 허리를 숙인 막휘가 그대로 포권을 해 보이며 예를 갖춘다.
“야, 너 뭐 하…….”
“감사합니다, 형님.”
“…….”
“새로운 녹림왕이자 한 명의 사천방도로서, 녹림과 중원을 구해 주신 형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합니다.”
스윽.
“하면, 속히 쾌차하십시오.”
인사를 마친 막휘가 이내 씩 웃어 보이고는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후 그가 나가고 나자,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던 사무현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한숨을 내쉰다.
“……감사는 무슨.”
하루아침에 마교와의 전쟁으로 아버지를 비롯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형제들을 잃어버린 막휘다.
사천방을 이끌고 있는 사무현에게 있어 지금 막휘의 심정과 상황이 어떨지 익히 짐작할 만하다.
‘……머지않아 작별 인사를 해야 되겠네.’
이제부터 막휘는 녹림왕으로서 녹림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죽은 아버지와 형제들을 대신해서.
아마 이제부터 그는 사천방도가 아닌 녹림왕으로서 살아가야만 할 것이고, 사무현이 의식을 찾았으니 머지않아 이곳을 떠나야 할 것이다.
‘아마 살암도 마찬가지겠고.’
이제 정말로 하나둘씩 이별이다.
그것을 떠올리자 순식간에 모든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낀 사무현이 그대로 눈을 감는다.
조금 전까지 지독하게 그를 괴롭히던 허기는 완전히 잊어버린 채, 협탁에 놓인 죽 그릇은 천천히 식어 가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