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9
039화
“……뭐라?”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한 사내의 반문에, 사무현이 언제 그랬냐는 듯 새삼 경건한 얼굴로 그를 향해 말을 이었다.
“청을 들어주시어 감사합니다!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이 아닌, 실력을 겨루는 비무! 대협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을 토대로 내린 결론이, 이것 이외에 달리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뻔뻔하기가 도를 넘어선 놈이로구나.”
“예, 그런 말 많이 들었사옵니다.”
“…….”
“하면 청을 들어주시겠다 하셨으니, 승낙하신 것으로 알고 선공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하.”
의표를 찔렸다.
상대의 행동을 제약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자신의 경고와 약속들을, 설마 저런 식으로 조합해서 결론을 내 버리다니.
‘딱히…… 틀린 말이 없기는 하다만.’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결국은 궤변이다.
자신의 목숨을 보장받는 선 내에서 이 숲을 나가기 위한 잔꾀.
그리고 어쩌면, 어젯밤의 일로 생긴 자신을 향한 적대감도 한몫했을지 모른다.
다만 이 경우처럼, 상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어설픈 잔꾀를 부린 것은 꽤나 크나큰 실책이다.
“비무라……. 꽤나 재미있는 생각을 해냈구나.”
그러고는 알 수 없는 한기가 느껴지는 미소를 입가에 머금어 보이는 사내.
그러더니 돌연 자신의 검을 허리의 검집에 도로 꽂아 넣었다.
“……오거라.”
“예, 예?”
한쪽 손을 몸의 중심부 앞쪽으로 내뻗은 사내가 그를 향해 손끝을 까닥이자, 사무현이 두 눈을 끔뻑이며 반문한다.
“……맨손으로 하실 겁니까?”
“그래.”
“저는 도를 쓸 건데요?”
“상관없으니 좋을 대로 하거라.”
“오호, 그렇다는 말이죠?”
크으……. 이 무슨 자비라는 말인가?
그의 한마디에, 칠 대 천마와 사무현 사이에 회심의 눈빛이 오고간다.
바로 전날 밤, 괴물 새끼가 다녀간 후 사무현과 천마는 긴 회담을 가졌다.
‘역시 답은 비무밖에 없다. 놈은 너를 죽일 수 없지만, 너는 여차하면 놈에게 살초를 쓸 수 있지 않느냐?’
‘그래 봐야 스치기나 하겠냐? 과거의 너와 비견될 정도의 고수라며.’
맞아도 맞아도 다치지 않는 무의식의 공간에서도, 아직까지 천마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하는 사무현이다.
그런데 그런 놈과 맞먹는 괴물을 무의식의 공간도 아닌 현실에서 상대하라고?
……아무리 목숨은 보장받는다고 해도, 그 끝이 어찌 될지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쫄 것 없다. 네놈이 내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너와 나의 눈높이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게 뭐? 그놈하고 붙으면 그 문제가 해결되냐?’
‘쯧쯧. 네 옆에는 본좌가 있지 아니하냐?’
‘……어?’
‘생각해 보아라. 놈은 널 죽이지 않도록 힘을 억제해야 하는 상황. 그에 반해 이쪽은, 금강불괴의 육체에 여차하면 살초도 섞어 쓸 수 있다. 어쨌거나 하수가 고수에게 손속의 제한을 둘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계속해 봐.’
‘아무리 놈이라도 그런 제약 속에서 널 상대하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을 거다. 한데 만약 거기서 본좌가 너를 돕는다면?’
‘……마교 놈들이랑 싸울 때처럼 말이지?’
‘그래, 바로 그것이다.’
‘흐음…….’
‘이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싸움이다. 딱 한 번…… 딱 한 번만 놈에게 일격을 날릴 수 있다면, 넌 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
음…….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새끼 정말 은근히 말 잘한다.
사람 죽이는 데 한평생을 쓰지 않았으면, 반드시 장사치나 사기꾼이 되어 이름을 날렸을 놈이다.
‘자, 결정해 보아라. 하겠느냐?’
‘……어떻게.’
‘음?’
‘……이걸 어떻게 안 해? 이 천재 새끼야.’
못 먹어도 가 봐야지, 이런 건.
“……들어오지 않고 뭘 하느냐?”
잠시 상념에 잠겨 있던 사무현의 귓가로 들려온 사내의 음성.
이에 기다렸다는 듯 사무현의 옆에 선 천마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오만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는다.
“오랜만에 맞수라……. 이거 꽤나, 재미있는 승부가 되겠구나.”
“…….”
“……시작하자. 앞으로 돌진하며 일 초식과 삼 초식.”
“좋아……. 그럼 갑니다! 으라앗!”
파밧!
천마의 외침과 함께, 그대로 바닥을 박차고 뛰어가 사내를 향해 돌진하는 사무현.
이에 무심하게 그를 응시하던 사내가 슬쩍 몸을 돌려 사무현의 일 도를 피해 냈다.
부웅.
파밧!
사내가 도를 피하기 무섭게, 미리 준비하고 있던 사무현의 연환초식이 사내의 왼쪽 옆구리를 파고든다.
이에 사내가 수강을 끌어올려 사무현의 도를 받아 내자, 천마의 다음 초식이 줄줄이 이어진다.
“거리를 늦추지 말고 오 초식! 막으면 일 초식, 피하면 붙으며 사 초식!”
쾅! 콰광!
사내의 움직임에 맞서 사무현이 계속해서 도초를 전개해 나가던 그 순간, 사내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사무현의 도초 사이로 불쑥 그의 손이 파고들었다.
“속임수다! 물러나지 말고 그대로 하단을……!”
쾅!
“……음?”
천마의 말만 믿고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려는 그때, 돌연 사무현의 안면부로 어마어마한 충격이 날아든다.
눈앞의 풍경이 수차례 빙빙 돌고, 그의 몸이 맨바닥을 나뒹굴고 나서야 사무현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깨달았다.
“……아, 내 코.”
“아니, 저기서 저런 식으로 나온다고?”
이 상황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사내와 사무현을 번갈아 바라보는 천마.
……이 새끼야, 자신 있다며.
“끄으으…….”
아직도 세상이 빙빙 도는 것만 같은 충격이지만, 어찌어찌 일어날 수는 있다.
……이번에는 그냥 실수였겠지?
확실히 결정타를 먹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상대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는 느낌이었으니까.
“후우……. 계속해.”
“어…… 아, 알겠다.”
……뭐지? 저 떨떠름한 반응은.
뭔가 못 미더운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어차피 지금 당장은 천마밖에 믿을 구석도 없다.
“자…… 아무래도 놈이, 생각보다 체술에 능한 것 같다. 이렇게 된 거, 우선 방어하는 척 반격을 모색한다.”
어느새 침착함을 되찾고 사무현에게 조언을 시작하는 천마.
한편 다시 일어선 사무현의 의지가 놀라웠는지, 사내가 두 눈썹을 추켜 올리며 입을 연다.
“계속할 수 있겠느냐?”
“다, 당연한 말씀을.”
“……그래? 내가 너를 너무 얕잡아 본 모양이구나.”
거…… 불길하게 웃지 좀 말지.
어떻게 사람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오한이 드냐, 오한이.
한쪽 입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가며 앞으로 한 발을 내딛는 모양새가, ‘잘 버티네? 그럼 오늘 한번 죽어 봐라.’라는 말을 전하고 있는 듯하다.
‘……뭔가 좀 단단히 잘못 걸린 기분이긴 한데.’
……기분 탓일 거다.
이쪽은…… 천마가 있으니까!
“중단 방어 자세를 취해라! 집중해라!”
“음!”
파밧!
“온다! 이번에는 머리 쪽이다!”
머리 쪽이라고?
분명 대놓고 복부 쪽으로 발을 내지르고 있는데, 진짜 머리 쪽?
……맞아?
“상체를 뒤로 젖히며, 이 초식으로 반격……!”
뻐어억!
“……어?”
……야 이 새끼야, 상체라며.
천마의 조언대로 상체를 뒤로 젖히는 순간, 사내의 다리가 기괴한 곡선을 그리더니 사무현의 대퇴부를 후려친다.
이에 균형을 잃은 사무현이 휘청거리자, 그의 안면으로 무자비한 사내의 주먹이 날아든다.
쾅! 쾅! 쾅!
……아 씨, 잠깐만.
뼈 잘못 맞은 것 같은…….
퍼벅! 퍽 퍽 퍽!
쾅!
휘리릭.
쿠당탕탕.
“……크헉!”
……와, 진짜 더럽게 아프다.
나 금강불괴 아니었나?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픈 거지?
검기나 뭐 이런 걸로 맞았을 때도 이 정도로 아프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끄으으으…….”
“오호……. 아직도 일어날 수 있겠느냐?”
“다…… 당연한…… 말씀을…….”
……이 천마 새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당장 해명을 해야 할 거다.
어금니를 부득부득 갈며 힘겹게 몸을 일으킨 사무현이, 그의 옆에 있는 천마에게 고개를 돌리…… 응?
아니, 이 새끼 이거 어디 갔어?
“야, 여기다.”
……어?
어느새 그와 제법 멀찍이 떨어진 바위에 걸터앉아, 사무현에게 한쪽 손을 흔들어 보이는 천마의 모습.
그런 그의 모습을 사무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자, 무언가 해탈한 듯한 미소를 머금은 천마의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본좌가 좀 잘못 생각을 한 것 같다.”
“…….”
“저건 안 되겠네, 훈수 정도로는 못 이겨.”
“…….”
“……힘내라.”
허허…… 허허허…… 허허허허허.
아아, 내가 실로 어리석었구나.
저 빌어먹을 새끼의 호언장담을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게 몇 번인데, 왜 나라는 인간은 아직까지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가.
‘……인간은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구나.’
크으, 인생의 진리를 이렇게 한순간에 깨달아 버리다니.
하지만, 대부분 그렇듯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바로 지금처럼…….
“생각보다 끈기가 제법이구나. 하면 나도, 보다 진지하게 상대해 주도록 하지.”
“……굳이요?”
아니, 지금도 충분히 빡센데?
절망과 경악이 어려 가는 사무현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내가 냉소를 머금은 얼굴로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염려 마라.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무이니 목숨만큼은 보존토록 해 줄 것이다.”
아하…… 목숨만큼은…….
허허, 그래서 검을 안 쓰기로 했구나?
목숨만 붙여 놓으려면 오히려 그편이 더 편하니까. 응?
“힘내라! 죽지는 않을 테니, 너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다!”
어느새 제대로 응원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양손까지 들어 올리며 제대로 힘을 전해 주는 천마.
저 모습을 보니, 없던 힘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다.
“후우우……. 좋아, 어디 한번 해 보자! 으라아아!”
그래, 이제 다 모르겠다.
천마고 괴물 새끼고! 다 뭣까라 그래!
그렇게 용감무쌍하게 사내에게 내달린 사무현이, 천마도를 머리 위로 치켜들며 힘차게 천마도법의 일 초식을 전개한다.
“으라아아!”
기합인지 절규인지 모를 사무현의 외침과 함께, 사내의 두 눈에 날카로운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파앗!
***
“더 덤비지 않을 테냐?”
“…….”
“아무래도 이제 끝난 모양이로구나.”
“…….”
“……죽은 것이냐?”
반신반의하며, 쓰러진 사무현의 상태를 살피는 사내.
음……. 얼굴이 거의 곤죽이 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지경이긴 하지만 다행히 숨은 쉬고 있다.
아마도 극한까지 내몰린 상황 끝에 잠시 의식을 잃고 만 모양이다.
‘……여러모로 대단한 놈이군.’
말이 쉽지, 육체의 고통을 무시한 채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내던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여야 하는 상황을 수도 없이 겪어 보았을 것이다.
특히나,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는 와중에도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날아드는 도초는 꽤나 깔끔하다 칭할 만했다.
‘더욱이…… 비무가 시작된 후 초반의 움직임들은…….’
단순한 우연이었겠지만 사무현이라는 녀석은 자신이 내포한 노림수를 거의 정확하게 짚어 냈다.
녀석의 수준에서 그의 움직임을 꿰뚫어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테니, 이는 순전한 본능적인 전투감각이라고 봐야 옳다.
사실 이것은 사무현을 도운 칠 대 천마의 눈썰미였지만, 이것을 모르는 사내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이 녀석이, 자신의 도초를 뒷받침해 줄 만한 움직임과 판단력을 갖추게 된다면…….’
금강불괴의 육체에 천부적인 전투 감각까지 더해져 순식간에 상당한 경지까지 오르게 될 것이다.
“……재미있는 놈이군.”
결국,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한마디를 내뱉고 마는 사내.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여흥에 불과하다.
정체도, 목적도 모르는 녀석을 순순히 풀어줄 만큼 사내는 무딘 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내는 쓰러진 사무현으로부터 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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