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43
043화
스스스.
십만대산의 이름 모를 숲속.
시린 겨울이 지나고, 곳곳에서 푸른빛의 새싹들이 돋아나는 계절.
싱그러운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는 이 숲속에서, 흑발의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한 사내가 자신의 상체만큼이나 커다란 태도를 손에 들고 눈앞의 거목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윽.
오랜 시간 거목을 바라만 보고 있던 사내가 천천히 태도를 머리 위로 치켜든다.
그러고는 또다시 정(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무심한 사내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감정의 흐름도 읽기가 어렵다.
그렇게 한참.
침묵 속에서 거목을 응시하던 사내의 눈에, 이윽고 날카로운 빛이 번뜩인다.
부웅.
쾌속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일 도가 사내의 손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그 궤적을 타고 퍼져 나간 도풍(刀風)이 부드럽게 거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스스스.
쿠구궁.
사내가 허공을 그린 궤적대로 잘려 나간 거목이 맨바닥을 나뒹군다.
그렇게 잘려 나간 단면적은, 나뭇결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깔끔하다.
그렇게 쓰러진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사내가, 거목을 향해 몇 번 더 도를 휘둘렀다.
휙, 휙.
후두두둑.
나무의 잔가지가 모조리 잘려 나가고 하나의 커다란 통나무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곳에 몇 번의 도풍이 더 날아들자, 하나였던 통나무가 균등하게 잘린 네 덩이의 통나무로 나뉘었다.
“……됐네.”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든다는 듯, 태도를 어깨에 얹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내.
그런 그의 등 뒤에서 자조 섞인 천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하아……. 실로 슬픈 일이구나. 본좌의 천마도법이 고작 나무 베는 도법으로 전락해 버리다니.”
“……고만해라, 내가 더 심란하니까.”
“천마도 또한, 자신이 나무나 베는 도끼 신세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땅 파는 삽으로 쓰라던 인간은 어디 살던 누구였더라?”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천마를 돌아보며 묻는 사내. 사무현의 모습에, 순간 대꾸할 말을 잃었는지 천마가 어깨를 으쓱하며 그의 시선을 회피했다.
“뭐…… 날붙이의 숙명은 대개 거기서 거기인 법이지.”
“…….”
“뭐 하느냐? 괴물 새끼가 기다릴 텐데, 어서 가서 장작을 가져다 바쳐야지.”
여느 때처럼 뻔뻔하게 화제를 돌려 버리는 천마의 모습에, 일그러진 미소를 머금은 사무현이 천마도를 등에 메고는 잘려 나간 통나무 조각들을 어깨에 둘러멨다.
“야, 천마, 착각하지마라.”
“음?”
“이 중 반은 내 거니까.”
“…….”
“……크흠.”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결국 헛기침을 한 번 하며 자리를 뜨는 사무현.
그런 그의 뒷모습을, 천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지켜보고 서 있었다.
***
“장작 가져왔습니다!”
민둥산 언덕 끝에 보이는 작은 집 한 채를 향해, 우렁차게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는 사무현.
그 순간, 사무현의 뒤쪽에서 이제는 꽤나 익숙한 괴물(?)의 음성이 들려온다.
“시끄럽게 목소리 높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을 하지 않았더냐?”
“아이쿠, 언제부터 거기 계셨습니까? 거기 계신 줄 알았으면 이렇게 크게 부르지 않았을 텐데.”
“…….”
“흠흠, 아무튼 여기까지 왔으니 장작이나 올려 두고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양 어깨에 통나무를 이고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걸어가는 사무현.
이에 미간을 찌푸린 사내가 막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순간, 집 문이 열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중년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오셨네요?”
“그럼요, 해도 빨라졌는데 당연히 일찍일찍 움직여야죠.”
“장작 내려놓고 들어오세요. 마침 식사 준비 중이었는데 같이 드시고 가세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흠흠…… 그런데 누구 눈치가 보여서…….”
“호호, 뒷말 안 나오게 제가 잘 말해 둘게요. 염려 말고 들어오세요.”
“헤헤. 예, 그럼.”
그렇게 보란 듯이 씩 웃어 보인 사무현이, 뒤쪽에서 그를 바라보고 서 있는 사내에게 슬쩍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연다.
“안 오십니까? 그 나이되고 아침 안 챙기시면 뼈 삭으시는데.”
“…….”
“……싫음 마시고.”
저벅저벅.
크으……. 등 뒤에서부터 저릿저릿하게 느껴지는 위압감.
하지만, 아무리 죽일 듯이 노려본들 어쩌겠는가?
저 괴물 새끼가 유일하게 쩔쩔매는 존재가 바로 저 선자(仙子)님인 것을.
‘삼 년이 지나도 믿기지 않는 사실이긴 하지만.’
삼 년.
밤에는 천마와, 낮에는 괴물 새끼와 수련을 이어 가며 사무현이 보낸 시간이다.
그동안 사무현의 키는 한 뼘 정도가 더 자랐고, 몸에는 거친 수련의 결과인 탄탄한 근육들과 흉터들이 만들어졌다.
마교 놈들에게 처음 잡혀갔을 때의 나이가 열다섯이었으니, 어느새 그의 나이도 약관을 넘은 셈이다.
‘……그런데도 아직 저 괴물 새끼에게 붙잡혀 있는 꼴이라니.’
하지만 처음에 비하면 사무현의 삶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일 년쯤 전부터, 지긋지긋한 숲을 벗어나 간간이 이 ‘괴물’의 거처까지 오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선자님의 심부름’ 이라는 정당한 이유가 붙어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기는 했지만.
‘신기한 일이지……. 괴물 옆에 보살이라니.’
대체 어떻게 길들인 것인지, 보살과도 같은 선자님의 부탁 한마디를 괴물은 차마 이겨 내지 못했다.
이는 인간의 감정 따위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놈일 것이라 생각했던 사무현의 예상이 빗나가는 순간이긴 했지만, 동시에 거의 포기해 버릴 뻔했던 ‘탈출’에도 한 가닥 희망이 생겨난 순간이기도 했다.
‘선자님의 신뢰만 받아 내면, 괴물 놈으로부터의 탈출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지난 일 년 동안, 사무현은 충실하리만큼 선자님의 잔심부름을 처리해 왔다.
장작을 구해 오고, 약초를 캐 오고, 열매를 따다 바치고, 때로는 사냥을 해 자발적으로 가죽을 바치기도 했다.
그런 사무현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이렇게 심부름을 마칠 때마다 식사까지 함께하는 관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제 딱…… 한 번만, 이 근방을 벗어나는 심부름을 시켜 주시면 되는데.’
저 괴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저 괴물의 감각은 일반적인 인간의 상식을 훨씬 초월한다는 것.
함께 수련을 하던 도중, 고원 근처에서 마교도 몇 놈이 얼씬거린다며 자리를 뜨던 모습에 사무현은 확신했다.
이번에는 아무리 깊이 땅을 파더라도 저 괴물 놈의 감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결국 남은 방법은?
어디까지나 정당한 이유를 근거로 이 십만대산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살 길은 선자님뿐이다.’
그렇게 자신의 구원자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방도를 떠올리며, 장작을 내려놓고 안채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무현이었다.
***
“……그새 녀석과 많이 가까워졌더구나.”
“그래 보여요? 음……. 그러고 보니 처음보다는 많이 편해지긴 했네요.”
사내의 말에 대답하며 식사를 마친 식기들을 닦는 여인.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사내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생각이라니요? 그냥 심부름을 종종 시키면서, 가끔 식사나 같이 하려는 것뿐인데요.”
“부탁할 것이라면 내게 하면 되고, 식사는 굳이 같이 할 필요가…….”
“당신 제자잖아요.”
언뜻 기습과도 같은 여인의 한마디에, 사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두 눈썹을 추켜올린다.
“……제자라고 했느냐?”
“아니에요? 삼 년이나 그렇게 공들여 가르쳐 놓고…….”
“단순히 화기의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뿐이다. 사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내 대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마침 나타난 적합한 녀석을 통해 전승시키는 것뿐이지.”
“그러면 제자 맞네요. 당신한테 무공을 배우고 있으니까.”
“단순한 가르침일 뿐이다. 내게 무공을 배운 이로 따지자면 녀석 외에도 이미 여럿이나 있었다. 알고 있지 않느냐?”
“그래도 이렇게 말년에 가르친 사람은 없었잖아요. 당신의 무공에 대해 이렇게 깊게 가르친 사람도 없었고.”
“체술은 아미에, 검술은 동생에게 전수했다. 네 말대로라면 둘 다 내 제자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
“에이, 그래도 이번에는 경우가 좀 다르지요. 매번 비무랍시고 사람을 초주검이 될 때까지 두들겨 패는데, 당신이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누굴 가르치는 건 본 적 없다구요.”
“……워낙에 별종인 녀석이니, 녀석에 맞는 방법을 쓰고 있는 것뿐이다.”
딱 잘라 상황을 부정하는 사내의 대답에, 어쩐지 묘한 눈웃음을 머금던 여인이 이내 화제를 돌린다.
“아 참, 그러고 보니 황노가 올 때가 다 되어 가지요?”
“그래, 사흘 뒤다.”
“흐음……. 잘됐네요. 그러면, 당신 제자에게 부탁할 게 있으니 내일 좀 찾아오라고 전해 줄래요?”
“무엇을 부탁하려는 것이냐?”
“오랜만에 황노와 식사나 함께하게, 찬거리를 좀 부탁하려고요.”
“찬거리라면 그냥 내가…….”
“당신한테는 부탁할게 따로 있어요. 그러니까, 내일 찾아오라고 전해주세요.”
“……알겠다, 그러도록 하지.”
“고마워요.”
대답과 함께, 여인의 입가에 번지는 묘한 미소.
하지만 대답과 함께 문밖으로 몸을 돌린 까닭에, 사내는 그녀의 그 미소를 확인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
쩌정!
지이이익.
“크읍……!”
자신을 향해 날아든 한 줄기의 푸른 강기에 사무현이 석 장 가까이 뒤쪽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이내 강기를 떨쳐낸 사무현이, 정면의 사내에게 수직으로 일 도를 그어낸다.
부웅.
콰과과과!
사무현의 일 도와 함께 대지를 가르며 날아드는 십여 줄기의 도풍.
이에 사내가 무심한 손짓으로 도풍을 상쇄시키자, 그 틈을 비집고 접근한 사무현이 본격적으로 근거리에서 천마도법을 펼치기 시작한다.
“하앗!”
쾅! 콰광! 쩌정!
지난 삼 년의 시간 동안, 천마도법의 십사 초식 중 열세 초식을 손에 익힌 사무현이다.
십 초식 이후의 초식들은 아직 제대로 된 위력을 끌어내지 못하지만, 앞의 열 초식을 제대로 쓸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과거의 사무현과는 비교하는 것조차 우스울 정도다.
콰과광!
꽤나 거친 폭음이 울려 퍼지며, 수강으로 사무현의 도를 받아 낸 사내의 눈이 가늘어진다.
사무현의 도신에 선명하게 어려 있는 붉은 화기.
여기에 천마도법의 묘리까지 실리니, 제아무리 공력의 차이가 현격하다고 한들 가벼이 받아 낼 만한 위력이 아니다.
그리고 그 순간…….
“……어?”
콰광!
돌연 사내의 수강을 타고 올라온 붉은 화기에 대치 중이던 사무현의 몸이 허공으로 튕겨져 날아간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사내가 전개한 십여 갈래의 붉은 강기가 섬광같이 쇄도했다.
……어라?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나랑 비무할 때 이런 식의 공격은 안 한다고…….
“아니, 이건 말이 다르……!”
콰과광!
억울함과 한이 섞인 괴성(?)과 함께, 사무현의 신형이 폭발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그의 신형이 숲속으로 추락하는 것을 지켜보며, 사내의 입가에 묘한 쓴웃음이 머금어진다.
‘……실수했군.’
아직 그의 눈에 차지 않는 체술이나 화기의 운용과는 달리, 녀석의 도초는 절정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겁고 날카롭다.
이것은 분명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한데…….
‘한순간이지만…… 몰입해 버렸군.’
비무를 빙자한 폭행이라고 사무현은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내는 언제나 사무현과의 비무가 가르침을 위한 것임을 망각한 적이 없다.
다소 거칠게 몰아붙여 초주검이 될 때까지 비무를 이끈다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녀석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하지만, 지금 마지막 순간 사무현이 휘두른 도격의 위력은 사내의 계산을 분명하게 벗어나 있었다.
‘언젠가는…… 녀석을 상대로도 검을 쥐어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군.’
물론, 아직은 먼 이야기일 것이다.
아직은 말이다.
***
“끄으으……. 치사한 괴물 새끼. 수강까지만 쓰기로 해 놓고 화기를 써? 그것도 강기에 섞어서?”
“뭐……. 좀 심하기는 했지.”
“좀 심한 정도냐? 빌어먹을, 내가 금강불괴가 아니었으면 분명 죽었을 거야. 호신기를 끌어올리지 않았으면 팔다리 하나씩은 떨어져 나갔을 거고.”
상처가 난 곳곳에 약초 잎을 붙이며 씩씩거리는 사무현.
하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는 천마의 입가에는 어쩐지 흡족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다.
“내가 진짜 언젠가 그 괴물 새끼 모가지를…… 뭐야? 왜 그렇게 웃고 있냐?”
“재미있지 않느냐?”
“음?”
“처음 녀석은, 너를 상대로 할 때 수강이나 권강은 사용하지도 않았었다. 한데 오늘은 꽤나 상당한 수준까지 강기를 운용하지 않았느냐?”
“그래, 그게 뭐?”
“네 성장속도가 녀석의 예상을 뛰어넘은 거다. 한 순간 상대가 너라는 것을 잊을 만큼.”
천마의 말에,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는 사무현.
그러고는 곧 무언가 희망적인 눈빛을 빛내며 슬쩍 천마를 올려다본다.
“그러면…… 탈출도 이제 머지않은……?”
“풋.”
“…….”
“……아, 미안하다. 여자랑 눈 한 번 마주쳤다고 손주까지 생각하는 얼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개새끼, 요즘 들어 뼈도 아주 기술적으로 때리네.
“됐다, 이러다 그 괴물 새끼가 늙어 뒈지는 걸 기다리는 게 더 빠르겠네.”
그렇게 구시렁거린 사무현이 범 가죽으로 만든 이불을 덮으며 이내 잠자리에 몸을 뉘였다.
“음? 벌써 자려는 것이냐?”
“엉, 선자님이 내일 오라고 하셨으니까 일찍 일어나야지.”
“…….”
“이공간에서 보자고.”
음……. 저놈이 그 괴물한테도 저렇게 말을 잘 들었으면, 어쩌면 진작에 빠져나갈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머릿속에 떠오른 이 생각을 차마 전하지는 못한 채, 천마는 그대로 어둠 속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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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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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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