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46
046화
악양(益陽).
호남과 호북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동정호(洞庭湖)를 낀 아름다운 경치로도 유명한 지역.
그리고 더불어, 중원 무림의 힘이라고 불리는 무림맹의 본부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평소에도 수많은 무림인들의 발길이 오가는 악양이었지만, 근래 들어 유독 더 많은 수의 무림인들이 악양에 발걸음을 들이밀었다.
심지어 그들의 대부분은, 중원 각지에서 막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고 있는 정사(正邪) 무림의 후기지수들.
이들이 모두 악양에 모이고 있다는 것은 삼 년에 한 번 있는 무림맹 연무학관의 입관일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많은 무림인들의 모임은, 평화롭던 악양을 꽤나 시끌시끌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
저벅저벅.
우뚝.
“……다 왔다.”
피골이 상접해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이는 얼굴과 두 눈 아래에 그득 내려앉은 검은 기운.
뽀얀 먼지가 덕지덕지 들러붙은 검은 무복은 이미 잿빛이 된 지 오래였고,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지 사내의 몸 주위로 연신 파리가 날아다녔다.
“씨이팔……. 드디어 도착했다고.”
저 멀리 웅장한 무림맹의 건물을 바라보며 격한 감정의 동요가 찾아왔는지, 그대로 서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내.
그런 그의 귓가로 황당함이 가득한 천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야, 너 우냐?”
“어…… 운다.”
……네가 이 상황이 돼 봐라.
혹시나 괴물 새끼가 쫓아올까 봐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운기행공과 경공술만을 반복하며 십 일 밤낮을 죽어라 달리고 또 달렸다.
장담컨대 그 어떤 명마를 탔다고 해도, 사내. 사무현의 이동속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신강에서 호남까지 발로 뛰어 열흘이라니. 제엔장, 나 정도의 속도로 중원을 질주한 인간은 단언컨대 전무후무(前無後無)할 거야.”
“……그래. 고생한 건 알겠는데, 좀 움직이는 것이 어떻겠냐?”
“응?”
천마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사무현.
어느새 주위를 지나다니는 모두가 힐긋거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무현이, 한 손으로 슥슥 눈물을 닦아 내고는……. 아 씨, 땟자국 봐. 진짜 드럽긴 드럽네.
……아무튼.
“크흠……. 일단 뭐라도 좀 먹고 생각할까?”
“그보다는 씻고 의복부터 사는 것이 어떠냐?”
“그런 건 먹고 해도 돼. 어디 보자…….”
그렇게 식당가를 찾던 사무현의 눈에, 낙원객잔(樂原客棧)이라는 현판을 내건 건물이 들어왔다.
“좋네. 저기로 가면 되겠다.”
사무현이 낙원객잔으로 발걸음을 떼어 내려는데, 난데없이 객잔의 문이 열리더니 거구의 사내 하나가 밖으로 튕겨져 나와 맨바닥을 나뒹굴었다.
우당탕탕.
풀썩.
“뭐지, 저거?”
“뭐, 안에서 작은 드잡이질이라도 있었나 보지. 무림에선 흔한 일이 아니냐?”
“……작은 드잡이질이 아닌 것 같은데?”
거의 석 장 가까이 나가떨어져 의식을 잃고 뻗어 있는 것을 보면, 얻어맞아도 단단히 얻어맞은 모양이다.
쯧쯧, 야만적인 놈들 같으니.
신성한 음식을 앞에 두고 싸움질을 해?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인 사무현이 낙원객잔 근처로 다가가자, 쓰러진 사내의 곁에 짐꾸러미 하나를 조심스레 가져다 놓는 점소이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요.”
“예? 저를 부르셨습니까?”
“예. 식사 되나요?”
사무현의 질문이 예상외였는지, 점소이의 눈에 의외라는 기색이 스친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본분을 떠올렸는지, 어느새 영업용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점소이가 그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물론입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안에 싸움 난 거 아니에요?”
“어…… 작은 실랑이였습니다. 잘 마무리되었으니, 염려 마시고 안으로 드시지요.”
……이봐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왜 불안한 눈으로 쓰러진 사람 쪽을 훑어보지?
어쩐지 영 못 미덥긴 하지만, 사실 객잔 입구까지 흘러나오는 갖가지 양념 냄새들을 이겨 내기엔 사무현은 너무도 굶주려 있었다.
그렇게 노련한(?) 점소이의 뒤를 따라, 사무현은 객잔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
“……어떻게 보셨습니까, 우형(牛兄)?”
“방금 전 거철부(巨鐵斧)를 일 권(一拳)에 날려 버린 저자가 얼마 전 의창(宜昌)에서 섬강귀(殲鋼鬼)를 쓰러뜨렸다는 패력권(覇力拳)입니다.”
“섬강귀를 쓰러뜨렸다고? 저자가?”
“예. 그전까지의 행적은 알 수 없지만, 그 일로 의창에서 돌연 유명세를 탄 사도 고수입니다. 패력권이라는 별호도 그때 얻었다고 하지요.”
객잔의 한쪽에 자리한 세 명의 사내들이, 정중앙의 탁자에 떡하니 홀로 자리한 거구의 사내를 바라보며 낮은 음성으로 숙덕인다.
그런 그들의 음성이 들렸는지, 덩치에 안 맞는 섬세한 젓가락질로 동파육을 집어 먹던 사내 패력권이 미간을 찌푸리며 술병을 집어 들었다.
“……쯧, 모기 새끼들 앵앵거리는 소리에 식사도 제대로 못 하겠군. 다 쳐죽일 수도 없고.”
“뭐, 뭐라? 모기?”
보란 듯이 목소리를 높이며 술을 따르는 패력권의 행동에, 한쪽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사내 중 하나가 발끈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보시오! 혹시 지금 그 모기가 우리를 말하는 것이오?”
“끌끌, 모기 새끼들이면 모기답게 잠자코 숨어 있을 일이지. 들킨 주제에 겁도 없이 나서는군. 역시 다 쳐죽이는 수밖에 없나?”
그렇게 이죽거리며 술잔을 기울이는 패력권을 향해, 세 명의 사내가 어금니를 꽉 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중 가장 절제된 기도를 풍기는 이가 사내에게 다가가, 최대한 감정을 누른 듯한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우리는 부남삼혈(阜南三血)이라 불리는 이들이오. 이쪽과 서로 척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지금 하신 말씀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소만.”
“크으……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고작 모기 새끼들과 척지는 것이 두려웠다면 애초에 그런 말을 꺼냈을 리가 있나.”
대놓고 자신들을 조롱하는 패력권의 말에, 부남삼혈이라 자신들을 소개한 사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당장이라도 싸움을 준비하려는 듯 각자의 무기에 손을 올리는 그들을 곁눈질로 바라보던 패력권이, 빈 술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거구의 몸을 일으킨다.
스윽.
뚜둑, 뚜둑.
“지금이라도 꼬리를 말고 달아날 테면 달아나라. 하면 구태여 쫓지는 않을 테니.”
“으드득……! 모두 쳐……!”
“잠깐.”
금방이라도 칼부림이 시작될 것만 같은 그 순간, 은은한 내력이 느껴지는 음성이 객잔 안에 울려 퍼졌다.
“……음?”
음성에 실려 있는 내력의 수위를 읽었는지, 순간 두 눈을 가늘게 뜬 패력권이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객잔의 가장 구석진 한쪽 자리에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흑의 무복의 사내.
호리호리한 체형에 여기저기 값비싼 장신구를 달고 있는 그는 언뜻 보아도 귀공자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양옆에는, 수하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가 경계하듯 패력권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후우……. 소란을 피울 것이라면 나가서 일을 보는 것이 어떤가? 조용히 한잔하러 왔는데, 아까부터 영 방해가 되는군.”
술잔을 내려놓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경고하는 사내의 음성에, 패력권의 미간이 일순 꿈틀한다.
“……방해?”
그렇게 객잔 내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만들어지려 하자 조마조마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던 점소이가 조심스레 운을 떼어본다.
“저…… 하, 하오시면…….”
쾅!
점소이가 말을 떼기 무섭게 패력권의 주먹이 섬광같이 휘둘러져 그의 앞에 서 있던 부남삼혈 중 하나의 머리를 찍어 누른다.
그 순간 코와 잎에서 붉은 핏물을 뿜어낸 사내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늘어졌다.
털썩.
“히…… 히익!”
단 일격.
조금 전에도, 이번에도.
그는 단 일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다.
다행히 팔과 다리에서 미세한 경련이 이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도 살기는 산 것 같지만…….
“자, 이래도 방해인가?”
패력권이 두 눈을 희번덕이며 흑의사내에게 묻자, 자신의 동료가 기습에 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부남삼혈이 각자의 무기를 뽑아 들며 패력권에게 달려들었다.
“이놈!”
“감히 대형을!”
“쯧, 귀찮은 것들.”
저들을 향해 짧게 혀를 찬 패력권이, 민첩하게 몸을 움직여 가장 먼저 달려드는 사내의 복부에 거권(巨拳)을 꽂아 넣었다.
쿵!
“……크헙!”
쾅!
복부에 일 권을 허용하고 입을 떡하니 벌린 사내의 머리 위로, 조금 전 그의 동료가 당한 것과 같은 종류의 주먹이 머리 위를 내려친다.
마찬가지로 코와 입에서 피를 뿜어내며 바닥에 엎어지는 사내의 뒤로, 부남삼혈 중 마지막 남은 이가 쾌도를 휘둘러 사내의 목을 노렸다.
하지만…….
부웅!
카강!
“아니? 외, 외공?”
“큭, 간지럽구나.”
덥석.
자신의 목선에 날아든 일도에 도리어 비웃음을 흘리며, 패력권이 그대로 도를 쥔 상대의 손목을 움켜쥔다.
이에 경악한 사내가 다급히 반대편 손을 뻗어 패력권의 안면을 노렸지만, 그보다 패력권의 주먹이 더 빨랐다.
쾅!
“……!”
“쯧쯧, 웃기지도 않는 수준이군.”
자신의 손에 붙잡혀 축 늘어져 버린 사내의 몸뚱이를 들고 있던 패력권이, 그대로 잡고 있던 사내를 그의 뒤쪽으로 내던진다.
휘리리릭.
콰장창.
뒤쪽에서 들려온 요란한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패력권이 양 목을 좌우로 꺾으며 조금 전 자신에게 말을 꺼낸 흑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방해는커녕 소란스러운 것들을 손수 치워 주었는데, 감사의 인사라도 하는 것이 어떤가?”
“흐음…….”
자신을 향한 상대의 적의를 느꼈는지, 흑의 사내가 묘한 미소를 머금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내 말이 우습게 들렸던 모양이군.”
“음?”
“나는 분명 그대에게…… 밖으로 나가라는 ‘명’을 내린 것으로 기억하는데 말이야.”
“킥…… 명?”
사내의 말에 피식 실소를 흘린 패력권이 곧이어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며 말을 잇는다.
“아무래도 오늘 내가 시체를 하나 만들 모양이군.”
“……그 말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천한 것이.”
서로를 향한 따끔따끔한 살기가 객잔 내에 번지는 일촉즉발의 상황.
금방이라도 출수를 하기 위해 사내가 허리에 찬 검에 손을 올리는 그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객잔 내 모든 이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휘리릭.
콰장창창.
“……어?”
“……아?”
난데없이 패력권의 뒤통수로 날아들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지는 술병의 잔해.
빈 술병도 아니었는지, 헝클어진 머리와 무복 상의에서 굵은 술 방울이 떨어진다.
투둑, 툭.
빠드드득.
조용한 객잔 내에 가득 울려 퍼지는 어금니 갈리는 소리.
살기등등한 눈빛을 만면에 띄운 패력권이, 자신의 뒤쪽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감히…… 어떤 잡것의 짓…….”
“내가 그랬다, 이 개같은 새끼야.”
패력권 못지않은 분노가 느껴지는 음성에, 모두의 시선이 술병을 집어 던진 사내에게로 향한다.
등 뒤에 사선으로 매어진 태도(太刀).
뽀얀 먼지가 내려앉아 잿빛이 되어 버린 흑의 무복.
얼마나 굶은 것인지 피골이 상접한 흑발의 사내가, 두 눈에 핏대를 세우고 패력권을 노려보고 있었다.
“뒈지기 싫으면 당장 내 밥 물어내라, 이 되먹지 못한 씨팔 새끼야.”
***
사무현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맹렬하게.
‘감히 내 식사를 방해해?’
열흘이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지 열흘.
쫓기는 와중에 사냥 따위는 할 엄두가 나지 않으니, 풀뿌리를 뜯어 먹고 강물을 마시면서 밤낮없이 내달리기만 했다.
그 와중에 섭취한 고기 종류라고 한다면 사흘 전에 먹은 반쯤 덜 익은 뱀 한 마리 정도?
그 고생 끝에 겨우 제대로 된 식사를 시작하려는데, 저 되먹지 못한 새끼가 집어 던진 떨거지 하나가 보기 좋게 그의 요리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그것도, 그가 막 젓가락을 집어 드는 그 순간에!
‘한 입만 먹고 떨어졌어도 이렇게 억울하진 않아!’
이가 부득부득 갈리고, 두 눈이 돌아 버릴 지경이다.
한편 자신을 향한 사무현의 영문 모를 적대감에 당황했는지, 잠시 침묵을 지키던 패력권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두 주먹을 쥐었다 폈다.
뚜둑, 뚜둑.
“……미쳤나 보군. 지금 고작 식사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목숨을 건 건가?”
“미친 건 너지, 이 벌레 같은 새끼야. 감히 누구 식사를 방해해? 쳐 뒈지고 싶어서?”
“하!”
바로 조금 전에도 두 번이나 욕을 먹었는데, 입을 열 때마다 아주 찰진 욕들이 연달아 날아든다.
생전 처음 겪어 보는 이 상황에 헛웃음이 나오는 것도 잠시.
더 이상 말을 섞을 마음이 사라졌는지, 대놓고 살기를 머금은 패력권이 사무현을 향해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오냐. 소원이라면 당장에 죽여 주마.”
“얼씨구? 뭐 뀐 놈이 성낸다더니, 누가 누굴 죽여?”
사내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흘리는 사무현.
그러고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더니, 섬광같이 사내의 코앞까지 접근해 오른쪽 주먹을 등 뒤로 당긴다.
‘……빠르다!’
생각지도 못한 사무현의 움직임에 놀랐는지, 패력권의 두 눈에 놀란 듯한 기색이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자신감의 원천이 스스로의 실력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대로 사무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꽂아…….
부웅.
“음?”
상대의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것을 확신한 주먹.
그러나 그 순간, 조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사무현의 안면이 사라지며 그의 주먹은 그대로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아니, 이게 무슨……?’
그리고 잠시 후, 활처럼 유연하게 상체를 뒤로 젖힌 사무현이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머금으며 사내의 시야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넌 이제 뒈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파악하지도 못한 그 짧은 찰나, 안면을 둔기로 얻어맞은 듯한 묵직한 충격과 함께 패력권의 눈앞에 반짝이는 별들이 스쳐 갔다.
쾅!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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