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5
005화
“어렸을 때 내가 기억하던 집 서고랑 별반 다를 바도 없네. 고작 이만한 서고를 가지고 그렇게 자랑스레 떠든 거야?”
“허튼소리 마라! 이곳은 천 년의 역사 동안 단 한 차례의 침입도 허용한 적이 없는 천마신교의…….”
“누가 역사 가지고 뭐라고 했냐? 규모가지고 뭐라고 했지. 그리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뭐라고?”
“지금 이 천마고도 네가 죽고 나서 다시 지어졌다며? 그사이 침략당해 털려서 별 수 없이 다시 지은 거 아니냐고.”
“어…… 음…….”
사무현의 예기치 못한 지적에 당황했는지, 잠시 동안 허공을 응시하는 천마.
그런 그의 모습에 사무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 다급히 정신을 수습한 천마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꺼냈다.
“크흐음……. 뭐, 네 말대로 습격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본좌가 살아생전에도 천마고의 비급고에는 그리 많은 양의 비급이 보관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 보잘것없는 거 맞네.”
“비급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무현의 심드렁한 대답에 발끈했는지, 천마가 씩씩거리며 말을 잇는다.
“천마고는 평무사들도 허가만 받으면 출입이 가능한 일반 비급고와는 엄연히 격이 다른 곳이다. 오직 천마에게 허가를 받은 이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 그런 곳에, 공간만 차지하는 잡다한 비급들을 쓸데없이 쌓아 둘 것 같으냐?”
“그럼, 여기 있는 비급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것들뿐이다?”
“가히 무림의 일절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들뿐이지. ……적어도 본좌가 있었을 때까지는 그랬다.”
……결국은 ‘나 때는’이네.
하지만, 저 자부심이 넘치는 태도가 단순한 허세처럼 비추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는 말이지?’
그 말인즉, 이곳에 있는 것들 중 뭘 골라 익혀도 어지간한 것들은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해질 수 있다는 뜻.
이에 회심의 미소를 머금은 사무현이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책장으로 다가서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천마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왜, 탈출을 위해 쓸 만한 무공이라도 익혀 보려느냐?”
“……어?”
……생각보다 예리하네?
“아, 하하. 탈출? 그건 또 무슨…… 재미있는 소리를 다 하네.”
어색하게 웃으며 한쪽 손을 휘저어 보였지만, 이마에서부터 또르르 흘러 내려오는 한 줄기 땀방울이 사무현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입가에 즐거운 듯한 미소를 머금은 천마가 한쪽 벽에 등을 기대어 서며 말을 잇는다.
“그리 놀랄 것 없다. 내가 네 탈출을 돕지 않겠다고 하여, 네가 무공을 익히는 것을 방해할 마음은 없으니까. 다만…….”
“……다만?”
“어차피 이곳 천마신교에서 살아남으려면, 보다 강한 힘을 가지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니 괜한 어설픈 무공 따위보다, 제대로 된 천마의 무공을 익혀 보는 것이 어떠냐?”
……이건 또 무슨 소리라는 말인가?
제대로 된 천마의 무공?
“본좌가 익힌 천마신공은 천마신교 대대로 천마라는 칭호를 부여받을 이들에게만 전해지는 최강의 무공이다. 네놈 같은 애송이에게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기연을 얻는 셈이 될 터.”
사무현이 결코 거절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는 듯,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어 보이는 천마.
그런 그를 향해, 사무현이 감격에 겨운 음성으로 그를 부른다.
“야……. 천마.”
“하하, 그리 감격을 했느냐?”
“……되도 않는 개소리 말고, 도와줄 거면 탈출이나 도와줘, 인마.”
“뭐, 뭐라? 개소리?”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천마가 말까지 더듬으며 입을 떡 하니 벌리자, 어느새 심드렁한 얼굴의 사무현이 한쪽 손을 휘저으며 그로부터 등을 돌린다.
“천마신공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내가 대체 무공을 왜 익히려고 하는데? 중원 나가서 나 마교도 라고 인증하고 다닐 일 있냐?”
“이, 이 미련한……! 천하제일의, 능히 천하를 뒤집어 버릴 수 있는 무공을 익힐 기회를 마다하겠다고?”
“거 참, 똑같은 말 반복하게 하네? 천하를 뒤집는 건 너희 마교도 놈들의 희망 사항이고, 난 그런 데 관심 없어.”
“이…… 이…….”
“그리고, 생각해 보니 웃기네? 그런 대단하신 무공을 보유하신 분들이, 여태껏 중원 정벌 하나 못 하고 십만대산에서 찌그러져 지내는 게 말이 돼? 하여튼 어딜 가나 허세가 문제야, 허세가. 쯧쯧…….”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가며 비급들을 살피는 사무현의 모습에, 발끈한 천마가 목소리를 높였다.
“허, 허세가 아니다! 천마신공이라 하면 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천하제일로 손꼽히는…….”
“그러니까 증거를 가져오시라고! 증거 있어? 중원 정벌에 성공하신 적이 있으시냐고.”
아니……. 정말 아닌데…….
천마신공이라고 하면, 언제나 천하제일의 무공으로 거론되는 무공이 맞는데…….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내뱉고 싶어도, 사무현의 논리에 반박하기는 궁색하다.
그 말대로, 그는 물론 그의 후대 천마까지도 중원 정벌에 실패한 것은 사실인 모양이니까.
그럼에도 다급히 변명할 말들을 떠올리던 순간,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천마가 손바닥을 탁 치며 말을 꺼냈다.
“이, 있다! 천마신교가 중원 정벌에 성공한 역사가 분명 존재했었다!”
“쯧쯧, 지기 싫으니까 거짓말도 막 하는 거 보게? 그러고도 네가 천마…….”
“초대 천마!”
“……음?”
“천마신교를 세우고 천마신공을 만든 장본인. 그는 스스로 세상을 등지기까지 단 한 번의 패배도 경험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의 중원 역시, 그의 발아래에 엎드려 그의 천수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만 했지. 그것만으로도 천마신공의 우월함은 처음부터 증명된 것과 다름이 없지 않겠느냐?”
사무현의 말에 반박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는지, 어디 한번 반박해 보라는 듯 뿌듯하게 미소 짓는 천마.
그런데 그런 천마를 돌아보는 사무현의 눈빛에, 어째 좀 안쓰러운 기색이 드리워져 있다.
“……그래, 그럼 천마신공이 천하제일의 무공이라 치자. 그런데 말이야…….”
“음?”
“그러면 그런 대단한 무공을 익히고도 중원을 정복 못 한 너는 대체 뭐가 되는 거냐?”
“……음?”
……그게 말이 그렇게 되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는지, 딱딱하게 굳어져 멍하니 서 있는 천마의 모습.
이에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은 사무현이, 다시금 책장에 꽂힌 비급서들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저런 놈한테 중원 무림이 정벌당할 뻔했다고?’
진짜?
그 정도면 사실, 중원 무림의 무공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중원이 잘못했네.’
그렇게 대충 생각을 정리한 사무현이 비급서가 꽂힌 책장으로 다가가자, 멍하니 굳어 있던 천마가 다급히 그에게 다가와 그 앞을 가로막는다.
“자, 잠깐!”
“아, 진짜. 또 뭔데?”
“그…… 처, 천마신공이 아니면 대체 무슨 무공을 익히려는 것이냐?”
“글쎄……? 천마신공하고 정반대되는 그런 무공?”
“이, 이런 멍청한……! 벌써 잊었느냐? 이곳은 천마신교다! 정도의 무공을 익힌 자에게서 나오는 특유의 지독한 기운을, 본 교의 무인들이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느냐?”
……특유의 지독한 기운?
그건 너희 마교도들 특징 아니었냐?
뭐, 아무튼.
“……확실히 그건 좀 문제가 있을 수 있겠네. 좋은 지적이야.”
“하하, 이제 알겠느냐? 어차피 정도의 무공을 익힐 수는 없으니, 그냥 본 교의 천마신공을…….”
“정도무공만 안 익히면 되는 거지?”
“……뭐라고 했느냐?”
“네 말대로라면, 정도무공만 아니면 뭐든 익혀도 되는 거 아니냐고. 꼭 천마신공을 익혀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어…… 글쎄…… 그거야 뭐…….”
사무현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눈에 띄게 당황하는 천마.
역시, 아직 털어놓지 않은 무언가가 더 있는 모양이다.
저놈을 믿을 수 없는 이런 상황에, 놈의 꿍꿍이대로 말려 줄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저 녀석의 말대로 천마로 위장하고 있는 이 상황에, 정도의 무공이라는 것을 익히는 것도 위험천만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정도 무공은 이곳에서 위험하고, 마공은 중원에서 위험하고……. 그럼 양쪽 모두에 속하지 않는 무공을 익히는 수밖에 없겠네.”
“뭐, 뭐라고?”
“왜? 그런 거 있을 거 아니야? 무림에는 정도와 마도에 속하지 않은 사파라는 것들도 존재한다며?”
“…….”
“아니야?”
“어…… 음…….”
……됐다. 저놈의 저 반응만으로도, 어떤 것을 익히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 좋은 것일지는 명확해졌다.
“좋아, 그럼 사파 무공으로 결정하지.”
“자, 잠깐! 사파 무공 중에는 쓸만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이 공력을 빨리 키우는 것에만 최적화되어 있을 뿐…….”
“그럼 어쩌라고? 마공도 안 돼, 정공도 안 돼. 결국 답은 사파밖에 없다, 이게 내 결론이다.”
“결론이 왜 그렇게 나는 것이냐!”
평소답지 않게 발악하는 천마의 모습에 낄낄 웃음을 흘리며, 사무현은 사(邪)라는 작은 팻말이 붙은 책장 앞에 섰다.
그곳에는 각법(脚法), 권법(拳法), 심법(心法), 도법(刀法), 검법(劍法), 보법(步法), 외공(外攻)…… 아무튼 다양한 종류의 비급서들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다.
뭐가 뭔지 모르겠는 관계로 그냥 아무거나 하나 집어 들어, 그 안을 펼쳐 보는데…….
“……음?”
어라?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한 사무현이, 들고 있던 비급서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그 옆에 놓인 새로운 비급서를 꺼내 펼쳐든다.
‘……아하.’
그렇지. 내가 이 부분을 생각 못 했네.
나, 무공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뭐 죄다 이렇게 알아먹지도 못할 말들로 쓰여 있어?
그러던 중 문득, 오래전 떠돌이 생활을 할 때에 만났던 거지들 왕초 구적(具賊)의 음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뭐? 무공을 배우고 싶다고? 이게 거지들 무공이라고 아무나 막 배우는 줄 아나……. 정 배우고 싶으면 개방에 들어오든가 날 사부로 모시든가 해야지. 뭐? 마을에 파는 무공 비급서? 하하, 이 세상 물정 모르는 놈아. 무림에 괜히 사제 관계가 있고, 또 문파들이 있는 줄 아냐? 무(武) 자도 모르는 녀석이 비급만으로 무공을 익혀? 허튼 노력 할 시간에, 차라리 이 거지님한테 구배지례라도 올리…… 어어? 야, 너 지금 어디 가냐? 거지 무공 무시하냐? 얀마!’
그래, 기억났다.
제대로 된 스승 없이는, 비급서만 가지고는 무공을 배우지 못한다고 했던 구적의 이야기.
물론 그도 대단한 수준의 고수는 아니었겠지만, 어쨌거나 개방이라는 집단에 속한 무림인이다.
물론 그래 봐야 거지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런 그가 그렇게 자신 있게 말했다면, 확실히 나 같은 게 이런 비급서를 보고 혼자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쩌지?’
천마신공 같은 건 안 배우겠다고 큰소리 땅땅 치고 돌아섰는데, 바로 저 녀석의 도움이 필요해질 순간이 올 줄이야.
이제 와서 저 녀석에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심하고 있는 그때, 어쩐지 걱정스러운 천마의 음성이 사무현의 귓가에 들려왔다.
“이런 이런…… 그리 자신 있게 떠들더니, 설마 비급을 볼 줄도 모르는 것이냐?”
……눈치 하나는 귀신답네, 망할 새끼.
“…….”
“흐음……. 좋구나, 좋아. 어디 한번, 마음껏 노력해 보거라. 본좌의 도움을 무시한 네가, 홀로 얼마나 대단한 성취를 보이는지 지켜보는 보람이 있겠구나.”
빈정거리는 미소를 만면에 띠고, 보란 듯이 사무현을 도발하는 천마.
이에 긴 한숨을 내쉰 사무현이 한 손에 들려 있던 비급서를 제자리에 꽂아 넣으며 천마를 돌아보았다.
“야, 천마.”
“음?”
“내가 사파의 무공을 익히겠다고 했지, 언제 혼자 무공을 익힌다고 했냐?”
“…….”
“도와줘라.”
“…….”
“……도와주세요.”
부탁한다, 빌어먹을 천마 새끼야.
……제발.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