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51
051화
‘날…… 보고 있는 거 맞지?’
이상하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인인데, 어딘지 모르게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담긴 호기심과 호승심은 마치 그라는 존재를 미리 알고 있던 이처럼 보였다.
‘근데 난 본 적이 없는데?’
얼굴이나 눈빛이 낯이 익은 듯 느껴지는 것은 아마 기분 탓일 것이다.
아니면 떠돌이 시절에 스쳐 가듯이 얼굴을 본 정도겠지.
아무튼…….
‘……겁나 셀 것 같은데.’
이제는 직접 부딪쳐 보지 않아도 안다.
칠 대 천마나 초대 천마, 그리고 삼 년간 그를 붙잡고 있었던 괴물까지.
하나같이 상식을 뛰어넘게 강한 녀석들은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자신 위에 설 수는 없다는 광오한 확신이,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저 눈빛 안에 너무도 자연스레 깔려있다.
어설픈 치기나 자만심 따위와는 분명히 다르다.
‘시선을…… 떼어 내야 하는데…….’
저만한 고수와 마주하고 있는 이 상황은 사무현에게 썩 달가운 일이 아니다.
이제 저런 괴물들과 엮이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으니까.
더군다나 그가 이곳 연무학관에 들어온 이유는 그 괴물로부터 몸을 숨기기 위함인데, 저만한 인물과 잘못 엮인다면 그 의도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사무현은 그녀로부터 눈을 떼어 낼 수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맹수가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그녀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이 마치 목숨을 건 행동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나 그녀와 대치하고 있었을까?
등 뒤로 식은땀까지 흐르는 사무현을 구해 낸 것은, 다름 아닌 단상 위에 있던 무혈검 호령이었다.
“조금 늦으셨지만 어려운 발걸음을 해 주셨군요. 현재 연무학관의 고문으로 계신, 천무신녀 단아란 여협이십니다!”
“뭐…… 뭐라고?”
“처, 천무신녀?”
무혈검 호령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경악 어린 술렁임에 이은 침묵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침묵에 이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관내에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천무신녀다!”
“중원제일검이다!”
“……아우, 시끄러워.”
자신을 중심으로 한 환호성에 정신이 들었는지, 사무현에게 시선을 떼어 낸 그녀가 슬며시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아니, 대선배님이 앞에 계시는데 뭐 이렇게 시끄러워? 새파랗게 어린것들이.”
“고, 고문님, 우선 뒤쪽으로 가 주시지요.”
“알았으니까, 쟤들 좀 조용히 시켜.”
“예, 알겠습니다. 아무렴요.”
그렇게 단상 뒤쪽에 서 있는 이들에게로 합류하기 위해 몸을 돌리면서도, 못내 묘한 아쉬움이 남는지 한 번 더 사무현을 돌아보는 단아란.
바짝 얼어 있는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미련 없이 고개를 돌리며 단상 뒤로 발걸음을 옮겼다.
***
“……괴물이네.”
“……저것도 괴물이군.”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사무현과 천마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튀어나온 경악성.
한편 사무현의 음성을 들은 막휘가 의아한 듯 그와 단상 쪽을 번갈아보며 입을 연다.
“지금…… 천무신녀가 형님을 본 것 같지 않습니까? 그것도 꽤 오랫동안…….”
……그걸 정녕 몰라서 확인하고 있다니.
네 눈썰미에 탄식이 나올 정도구나.
“후우……. 됐고, 저 괴물 같은 여자가…… 그…… 천무신녀라고?”
“……설마 천무신녀에 대해서도 들어 보지 못하신 겁니까?”
“알면 물어보겠냐?”
“진심이십니까? 아니, 진짜 무슨 세외 촌구석에라도 틀어박혀 살다 오셨…… 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따지고 드는 막휘의 뒤통수를 후려친 사무현이 이마에 흘러내리던 식은땀을 닦아냈다.
“장난칠 기분 아니니까 빨리 얘기해라. 저 여자는 뭐 하는 여잔데?”
“저도 믿기 힘드니까 이러는 거잖습니까? 어떻게 공공연한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을 모르실 수 있습니까?”
“……천하제일인이라고? 저 여자가?”
“그럼요. 삼존(三尊), 사무제(四武帝)도 잘못 걸리면 얻어맞는다는 소문이 공공연한걸요.”
……세상에.
저 빌어먹을 눈빛부터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의 거물이었어?
새삼스레 놀란 사무현이 혀를 내두르고 있는 그때, 옆에서 참지 못한 천마의 실소가 터져 나왔다.
“……큭.”
“……뭐야?”
“예? 뭐가 말씀이십니까?”
“아니, 너 말고.”
“……예?”
사무현의 말에 막휘가 두 눈을 끔뻑이는 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천마가 입을 열었다.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구나.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라니…… 무림에 속한 모두와 맞붙어 본 것도 아니면서, 어찌 감히 그런 단어를 입에 담는다는 말이냐?”
“그런가? 추측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
“과거의 본좌 또한, 일대일 대결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으나 천하제일인이라는 단어를 스스로 입에 담지 않았다. 하물며 우리는 저것에 못지않은 기도를 지닌 이들을 벌써 셋이나 알고 있지 않느냐?”
……셋이라.
아마도 둘은 천마신교에서 보았던 초대 천마와 십삼 대 천마를 일컫는 것이겠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그 괴물 새끼일 테고.’
두 천마의 존재는 분명 중원에서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자신들만의 기괴한 방식으로 새로운 육체에 되살린 망령들 이니까.
하지만 그 괴물 새끼는……?
‘……너무 오래된 인물이거나, 중원에 그 이름을 알리지 못한 인물인걸까?’
설마 말로만 듣던 은거기인?
사무현이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어느덧 단상 위에서는 사도관주와 정도관주의 인사가 끝나 가고 있었다.
“자, 이제 연무학관주님께서 인사 말씀과 함께 연무학관의 규범에 대해 짧게 설명해 주시도록 하겠습니다.”
“흠…….”
무혈검이 슬쩍 자리를 비켜서자, 사도관주와 정도관주의 앞으로 나온 연무학관주가 모두를 향해 짧게 포권을 해 보였다.
“앞으로 중원무림을 이끌어 나가게 될 후기지수들을 이 자리를 통해 만나게 되어 반갑소. 본인은 현 연무학관의 관주를 맡고 있는 황보웅(皇甫熊)이라 하오.”
“와아!”
“권존(拳尊)이시다!”
연무학관의 관주, 권존 황보웅.
중원 무림을 대표하는 일곱 고수들 중 하나이며 그중에서도 권(拳)에 있어서만큼은 정점이라 일컬어지는 존재.
흔히 소문이나 전설을 통해서나 접할 법한 인물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니, 정. 사를 통틀어 모든 고수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저 모든 것은 천무신녀 단아란을 제외해야 하는 순위이기는 했지만.
“흠흠.”
모두의 환호성에 권존이 슬쩍 오른손을 들자, 관내에 가득 찼던 환호성이 다소나마 잠잠해진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앞으로 여기 있는 모두는 육 년간 연무학관에서 상주하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동안은 각 관의 관주들의 지도하에 생활하게 될 텐데, 관마다 적용되는 규율들이 다소 상이할 것이오.”
‘……오호.’
사도관은 사파, 정도관은 정파이니 각자의 개성을 이해해 주겠다는 취지인가?
언뜻 좋은 취지 같기는 한데, 서로 상극인 저들의 개성을 모두 인정해 줘 버리면 마찰의 여지는 피할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한 가지, 어느 관이건 동일하게 적용되는 규율이 있소. 관도 간에 고의적 살인을 엄금한다는 것이 바로 그 내용이오. 모두가 이 부분들만 준수해 주신다면, 본인도 연무학관의 관주로서 여기 있는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을 약속드리겠소. 하면, 모두 즐거운 연무학관 생활을 즐기기 바라겠소.”
그렇게 권존이 인사를 마치자, 무혈검이 단아란 고문에게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
“어, 비켜.”
아니, 이 인간이…… 입모양으로만 조용히 물어보려 했더니 육성으로 대꾸를 하네.
하지만 압도적인 짬과 힘 앞에 불만을 제기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기에, 무혈검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
“모두 만나서 반갑다. 연무학관의 고문, 단아란이다.”
“와아아아!”
“천무신녀다!”
“천하제일인이……!”
쿵!
“조용!”
“……!”
가볍게 바닥을 짓밟으며 내지른 그녀의 일성에, 한순간 관내에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내가 말할 때 시끄러운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천하제일인이니 뭐니 하는 허튼 소리로 불리는 건 더더욱 싫어하고.”
“…….”
“이 두 가지만 명심한다면 앞으로 종종 있을 나와의 수업이 마냥 지옥같이 느껴지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조금 전에 말한 둘 중 하나라도 어긴다면 내 수업 내내 지옥을 맛보게 해 주겠다고 이 자리에서 약속하지.”
“…….”
“……육 년간 즐거운 시간 보내자, 이상.”
어…… 기분 탓인가?
저 마지막 말을 하는 순간, 천무신녀 단아란의 시선이 돌연 이쪽을 향한 느낌이…….
“……형님, 어쩐지 천무신녀가 또 이쪽을 본 것 같은…….”
“다물어.”
“예?”
“……알고 있으니까 다물으라고.”
“……옙.”
사무현의 경고에, 무어라 항변을 해 보려던 막휘가 이내 슬며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는 사무현의 얼굴에 가득 담긴,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분노와 애환 때문이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
왜 하필 나지?
대체 왜에?
‘다른 놈들이랑 즐겁게 보내도 되잖아!’
천하제일인 소리나 듣고 다니는 괴물 같은 인간이, 딱 봐도 정상인의 범주에선 한참이나 벗어난 것 같은 저런 인간이! 왜 하필 이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나한테 들러붙는 거지?
‘전생에 내가 진짜 엄청난 죄를 지었나?’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삶이 재수가 없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남들은 한평생에 한 번도 겪기 힘든 일들이 어떻게 이렇게 연달아 날아들 수 있다는 말인가?
“……염병할 하늘.”
눈물을 집어삼키며 흘러나온 사무현의 욕지거리와 함께, 연무학관의 신입관도 입관식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
“혈무관(血武館)이다.”
제법 고풍스러운 느낌을 물씬 풍기는 건물 앞에 사도관의 신입관도들을 세워 놓고, 사도관주 적패(赤覇)가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졸업까지, 너희 오십일 기 사도관 기수가 머물 건물이다. 사도관도로서 지켜야 할 규율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해 줄 테니 잊지 말고 기억하도록.”
“……”
“첫째, 사도관에서의 서열은 오직 힘으로 결정된다. 둘째, 사도관 내에서 지킬 사소한 규율들은 각 기수의 ‘대표’가 정하는 것으로 일임한다. 셋째, 각 기수의 대표를 뽑는 것은 사도관의 전통 방식에 따른다.”
‘……엥?’
사도관주의 말에 사무현이 고개를 반쯤 꺾으며 천마를 응시했다.
지금 말한 규율들은, 어딘지 모르게 저 마교 놈들의 방식을 상당 부분 닮아 있지 않은가?
천마라는 대표를 뽑아서 그놈 마음대로 해 버리는…….
그런 사무현의 시선을 느꼈는지, 천마가 씩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파와 천마신교는 기본적으로 닮아 있다. 명예니 정도니 하는 잡스러운 것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그런 것들을 통제하는 방법은 오직 힘뿐이지.”
음……. 전부터 몇 번인가 해 오던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다시 한번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무공 조금 강한 것만 빼면, 이것들과 시정잡배가 대체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오늘 유시에, 사도관의 전통에 따라 대표를 정할 것이다. 각자의 방식대로 잘 정비하고 있도록.”
그 말을 끝으로 사도관을 떠나 버리는 사도관주.
어어? 그런데 저러고 그냥 가도 되는 건가?
……방 배정은?
“안 들어가십니까, 형님?”
“……어?”
“들어가시지요. 늦으면 괜히 귀찮은 일을 자초해야 할지도 모르잖습니까?”
“……귀찮은 일?”
이건 또 무슨 소리?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무현이 주위를 둘러보자, 약속이라도 한 듯 우르르 관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들이 사무현의 눈에 들어왔다.
‘사파는 사파만의 방 정하는 방식이라도 있는 건가?’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하며, 막휘를 따라 사도관 안으로 들어선 사무현.
그리고 관 안에 들어서자, 예상외로 평화롭게 각자가 원하는 방에 들어가 자신의 짐을 푸는 이들이 사무현의 눈에 들어온다.
‘그냥 선착순이었어?’
아하, 그래서 일찍 들어가자고 했나 보구만?
“형님은 어느 쪽 방이 마음에 드십니까?”
“글쎄? 아래층보다는 위층이 나을 것 같기는 한데…… 벌써 방이 다 찬 것 같은데?”
“그렇습니까? 일단 올라가 보시지요.”
그러고는 성큼성큼 계단을 밟아 위층으로 올라가는 막휘.
그런 놈의 뒤를 따라 사무현도 함께 위층에 올라서자, 예상대로 이 층의 방은 이미 각자의 짐을 풀고 있는 이들로 가득했다.
“에이, 안 되겠는데? 그냥 아래로 내려…….”
성큼성큼.
“어어? 야, 어디 가냐?”
사무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계단에서 두 번째에 위치한 방으로 돌연 쑥 들어가 버리는 막휘.
그러고는 잠시 후…….
퍽! 퍽! 쾅!
……제법 둔탁한 타격음 몇 번이 들리는가 싶더니, 문 밖으로 적색 무복을 입은 한 사내의 신형이 튕겨져 나왔다.
쿠당탕탕.
“방을 준비했습니다. 들어오시죠, 형님.”
……세상에.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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