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52
052화
“왜 그러십니까? 방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멍하니 문 앞의 복도에 서 있는 사무현을 향해 막휘가 의아한 듯 물었다.
이에 사무현이 천천히 쓰러진 적의 무복의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냐?”
“예? 무슨 짓이냐니요?”
“아니, 이 사람이 먼저 방을 잡았잖아.”
“그렇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좋게 말로 했습니다.”
“……말로? 뭐라고?”
“나가라고요.”
“…….”
“……왜 그러십니까?”
한 손으로 뒷목을 움켜쥔 채 천천히 심호흡을 하는 사무현의 모습.
이에 막휘가 그에게 다가오려 하자, 한 손을 뻗으며 사무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까이 오지 마. 지금 문화충격 받았어.”
“……예?”
“일단 이 사람 깨워서, 얼른 방에…….”
스윽.
“……쿨럭! 쿨럭!”
아, 벌써 일어나셨네.
“어…… 괜찮으신…….”
다급히 그를 부축하기 위해 사무현이 손을 내밀려는 그때, 제 스스로 몸을 일으킨 적의 사내가 팅팅 부어 가는 안면을 매만지며 막휘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편히 사용하십쇼.”
“내가 아니라 이분께서 쓰실 방이다.”
“아, 그렇습니까? 편히 사용하십쇼, 저는 이만…….”
“……예?”
“어우……. 돌아가신 아버님을 뵐 뻔했네.”
어안이 벙벙한 사무현을 뒤로한 채 미련 없이 계단을 내려가는 적의 사내.
그 순간, 사무현의 귓가로 걱정스러운 듯한 막휘의 음성이 들려온다.
“방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뭐, 뭐?”
“다른 방으로 잡을까요? 말씀을 하시면 얼마든지…….”
그렇게 두 소매를 걷어붙이며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는 막휘.
이에 사무현도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자, 조금 전 막휘와 마찬가지로 방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영역을 가지기 위한 소소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퍽! 쾅!
“아악! 내 어금니!”
짝! 짝! 짝!
“아악! 싸대기 좀 그만 때려, 이 미친년아!”
“발로 싸대기를 치고 그딴 소리를 해? 이 죽일 년이!”
음……. 여기가 바로 지옥인가?
살다 살다 산 눈으로 생지옥을 다 보는 순간이 올 줄이야.
아주 그냥 남녀 할 것 없이 주먹다짐을 하고 있는 모양새가, 개판도 이런 개판이 따로 없다.
마교 애들은 진짜 훈련 잘된 애들이었구나.
“왜 그러십니까, 형님? 다른 방을 잡을까요?”
“……아니, 됐다.”
……이제 그냥 모든 게 다 귀찮아졌다.
그냥 거기가 내 방인 거로 하자.
그렇게 한숨을 팍팍 쉬며 막휘가 맡아 놓은 방으로 들어서자, 생각보다 널찍하고 쾌적한 공간이 사무현의 눈에 들어왔다.
‘……마음에는 드네.’
창문도 널찍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깔끔한 것이…….
“꺅! 이 미친년이 어디서 머리를 잡아!”
챙!
“어쭈? 무기를 뽑아?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렷다!”
……저쪽은 신경 쓰지 말자.
좋은 것만 보자, 좋은 것만.
그렇게 마음의 평화를 위해 눈과 귀를 닫고 창밖을 바라보는 그때, 사무현의 뒤쪽에서 거친 사내의 음성이 들려온다.
“어이, 이봐!”
설마 나 부르나……?
에이, 신경 쓰지 말자.
알아서 지나가겠지.
“이놈!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그냥 좀 지나가 주지, 망할 놈.
구태여 이 난장판에 끼게 만드네.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쉰 사무현이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안면 여기저기에 굵직한 흉터들이 나 있는 대머리 사내 하나가 사무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회창(會昌)의 야차(夜叉) 손익패(孫翼敗)다. 네놈이 산골짜기 촌구석에서 오지 않았다면 한 번쯤은 들어 보았겠지?”
“……산골짜기에서 온 거 맞는데.”
그 산이 십만대산이라서 그렇지.
“흐흐, 그래? 산골 무지렁이라 이 몸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는 모양이구나. 하면 특별히 기회를 주지. 지금 당장 얌전히 이 방에서 나가거라. 그러면 굳이 피를 볼 일은 없을 것이니.”
“……여긴 내 방인데?”
물론 조금 전까지는 내 방이 아니긴 했지만.
“내가 이 방에 들어온 이상 이곳은 내 방이다. 지금의 네 선택은 두 가지. 이 야차 손익패를 누르거나, 짐까지 내려놓고 조용히 몸만 나가거나.”
“…….”
“자, 어찌할 테냐!”
……이건 그냥 대놓고 협박이네.
방만 내놓으라는 게 아니라 짐까지 내놓으라는 걸 보면, 무인이 아니라 그냥 산도적 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 정도면 사파가 아니라 시정잡배 맞는 것 같은데?
‘……어딜 가건, 그곳의 법을 따르는 게 맞는거겠지.’
여기서는 힘이 곧 법이라는데 어쩌겠는가?
앞으로 육 년은 여기서 몸 담아야 하는데, ‘저것들의 법’에 따라주는 수밖에.
그렇게 천천히 두 주먹을 쥐었다 편 사무현이 손익패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입을 연다.
“……너, 익패라고 했냐?”
“이, 이놈이? 감히 어디서 이 몸의 존함을 함부로…….”
“그래, 익패야. 네가 나한테 기회를 한 번 줬으니 나도 너한테 기회를 한 번 줄게. 지금 당장 그대로 곱게 나가, 뒈지기 싫으면.”
“……큭, 아무래도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릴 놈인 모양이군.”
그렇게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삐딱한 미소를 하고는, 성큼성큼 사무현에게 다가오는 회창의 야차 손익패.
이윽고 그와 석 장 정도의 거리에 돌입하는 그 순간, 돌연 바닥을 박찬 손익패가 큰 동작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사무현에게 달려들었다.
“놈! 날 너무 원망……!”
쾅!
무언가 터져나가는 듯한 우렁찬 타격음과 함께, 섬광같이 날아든 사무현의 주먹이 손익패의 안면에 정면으로 틀어박혔다.
그리고…….
휘리리리릭.
쿵.
우지끈.
콰르르르.
손익패의 신형이 그대로 허공을 날아 복도의 난간에 처박히는가 싶더니,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목재 난간이 부서지면서 혼절한 손익패가 그대로 아래층으로 떨어져 버렸다.
쯧, 그러니까 왜 사람 말을 안 들어?
뒈질라고.
쿵.
“으헉! 이거 뭐야!”
“죽은 거 아니냐?”
“수, 숨은 쉬는 거 같은데?”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
그 소리를 무시한 채 창밖을 바라보는 사무현의 귓가로, 감탄 섞인 천마의 중얼거림이 들려온다.
“……이야, 저걸 사네.”
***
약 백여 명의 신입 관도가 들어온 사도관의 방 배정은, 신시가 다 되어서야 그럭저럭 끝이 났다.
이 층에 위치한 방과 아래층의 방은, 마치 서로 간의 서열을 나누어 버린 듯 보였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면…….
“……신기하네.”
“무엇이 말이냐?”
“아니, 무공 수위가 그리 높지 않은데도 위층을 차지한 놈들이 여럿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뭐 이상할 일이겠느냐? 사파에서 말하는 ‘힘’이 꼭 개인에 한한 것이 아니거늘.”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사파는 강자만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정작 사파에 속한 무인의 수는 정파보다 적지 않지. 그러면 강하지 못한 남은 이들은 어찌 살아남는다 생각하느냐?”
천마의 질문에, 사무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입을 연다.
“설마…… 연합?”
“그것 또한 방법 중 하나지. 혹은, 어떤 특별한 강자에게 빌붙는 것 또한 방법이고.”
“강자에게 빌붙어?”
“그래. 그 대표인지 뭔지가 정해진 이후라면 모를까, 누가 이들을 이끌지 모르는 이 시점에서는 이름난 강자와 손을 잡는 것이 저들의 생존 방식이다. 그리고 그 강자 또한, 자신의 추종자가 늘어나면 그만큼 이점이 많아지니 그들을 마다할 리 만무하지. 사파는 오직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강자를 중심으로 한 작은 연합체들이 수도 없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각자의 이익을 위해 끊임없는 싸움이 벌어지지.”
천마의 설명에 그제야 위층에서 본 이들을 떠올리는 사무현.
마치 처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제법 기도가 출중한 자들을 중심으로 여러 집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유독 눈에 들어왔던 이들이…….
‘……객잔에서 봤던 검은 무복.’
그 당시에는 막휘에 대한 분노로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여기에 모인 사파 놈들 중에 가장 기도가 출중했던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의 양옆을 보좌하듯 함께하는 한 쌍의 남녀.
이들의 무위 또한, 나름대로 이 중 강하다고 평가받는 막휘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았다.
‘그럼 현재로썬 그놈들이 가장 강한 연합체인 건가?’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상념에 잠겨 있는 그때, 굳게 닫혀 있던 그의 방문 앞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흠흠, 형님. 안에 계십니까?”
“어, 무슨 일이냐?”
“혈무관에서 누가 찾아왔습니다. 대표 선발전이 있으니 모두 관 앞에 집합하라고…….”
“아직 유시까지는 좀 남았는데?”
“좀 일찍 시작한다고 합니다. 맨몸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맨몸으로?”
무기를 두고 오라고?
대표를 정한다길래 싸움박질을 시킬 줄 알았는데, 이건 또 조금 뜬금없네.
“……뭘 하려는 거지?”
“글쎄……? 우선 가 봐야 알지 않겠느냐?”
천마도 짐작이 안 간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이제는 제 몸처럼 느껴지는 천마도를 내려놓으며 사무현이 몸을 일으켰다.
‘……막상 이거 없이 움직이려니 이상하네.’
잠을 잘 때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천마의 잔소리에, 더럽게 무겁고 불편해도 습관처럼 몸에 지니고 다녔던 천마도다.
그런 것을 내려놓으면 분명 편안함을 느껴야 할 텐데, 도리어 무언가 빠진 듯한 허전함이 느껴지다니…….
‘불편함이 학습됐네, 망할.’
그렇게 내심 쓴웃음을 머금으며 방문을 나서자, 막휘 옆에 예상치 못한 또 한 명의 사내가 사무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
“안녕하십니까, 형님! 회창의 야차, 손익패입니다!”
어…… 그래…… 그런데 네가 왜 거기서 나오냐?
“조금 전에는 제가 크게 결례를 범했습니다! 그 이름도 쟁쟁한 패력권 형님을 쓰러뜨리신 분을 몰라 뵙다니, 용서해 주십쇼!”
“아니 뭐…… 용서할게 있나.”
……내가 팼는데.
너 죽을 뻔했는데.
“그럼, 용서해주시는 겁니까?”
“어…… 굳이 할 게 있으면 그렇다고 치자.”
“감사합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형님!”
……뭐? 잘 부탁? 형님?
아니, 얘들은 왜 툭하면 얘기가 그리로 가?
“내가 왜 네 형님…….”
“하하, 형님. 듬직한 아우가 하나 느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아니, 쟤가 왜…….”
사무현의 반발에, 다급히 전음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해 오는 막휘.
이에 사무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응시하자, 막휘가 어색한 미소를 머금으며 전음을 이어간다.
……끄응.
또 이렇게 말하니까 마음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법이니 규범이니 하는 상식도 없는 이런 곳에서 앞으로 몇 년은 지내야 할 텐데, 그 모든 것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 대표라는 권력은 실로 매력적이기 그지없으니까.
‘대표…… 그런 거 내 체질은 아닌데.’
괜히 귀찮기만 하지.
무슨 일 생기면 책임만 져야 하고…….
……어?
그런데 가만, 꼭 내가 대표를 해야 할 필요는 없잖아?
내가 원하는 건 대표가 아니라 권력이니까.
“……왜 갑자기 실실 웃고 있는 거냐?”
아, 내가 웃고 있었나?
흠흠…… 표정관리 하자, 표정관리.
“……일단 가자.”
“예, 형님.”
그렇게 각자 자신들만의 계획을 머릿속에 지닌 채 신입 관도들 사이에 생겨난 수많은 세력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
“만나서 반갑다. 너희들의 선배이자, 사도관의 오십 기 대표 적월(赤月)이다.”
혈무관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청의무복을 입은 사내가 내뱉은 첫 인사였다.
“……적월?”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막휘.
그런 그의 반응에, 잠시 후 서늘한 냉소를 머금은 사내가 오만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연무학관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세인들에게 하남혈귀(河南血鬼)라는 명호로 불리곤 했지.”
“허억……!”
“하, 하남혈귀?”
“무당의 도월검(道越劍)과의 승부에서 승리했다는……!”
나름대로 유명한 인물이었는지,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하는 신입 관도들.
그런 그들의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던 적월이, 이내 냉랭하게 등을 돌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지금부터 사도관의 전통에 따른 대표를 선발하기 위해, 너희를 사명관(史明館)으로 안내할 것이다. 뒤처지지 말고 따라오도록.”
그 말과 함께 하남혈귀의 뒤를 따라 움직이는 신입 관도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이윽고 그가 안내한 곳은,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낡은 건물이었다.
“이곳이 사명관이다.”
“……와우.”
본의 아닌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아닌 게 아니라, 사명관(史明館)이라는 글자가 적힌 현판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그 색이 바랬고, 활짝 열린 입구의 한쪽 귀퉁이에는 거미줄이 쳐 있었다.
아니, 세상에 이런 곳에서 전통인지 뭔지를 진행한다고?
“……무림맹이 생각보다 가난한 건가?”
“그냥 구식 건물 같습니다. 다른 건물들은 하나같이 멀쩡해 보이지 않습니까?”
“……어, 알겠는데 좀 떨어져.”
“흠흠, 예, 형님.”
언제부터 가까웠다고, 넉살 좋게 들러붙는 손익패의 모습에 사무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비를 걸다 처맞은 놈이 이렇게 살갑게 접근하다니.
일단 대표 선발전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받아 주기는 했다만, 영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렇게 낡은 사명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어두운 통로를 지나 그들 모두를 수용할 수 있는 제법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음?”
공간 안에 들어서며 사무현이 두 눈을 가늘게 뜨자, 손익패가 의아한 듯 사무현을 돌아보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아니, 뭐 환영식이라도 준비했나? 왜들 이렇게 잔뜩 있어?”
“예? 그게 무슨…….”
“……모두 빠짐없이 모였나?”
손익패가 질문을 던지려는 순간, 발걸음을 멈춘 적월의 물음에 신입 관도들 몇몇이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것 같습니다만…….”
“……그래? 문을 닫아라!”
쿵!
적월의 외침과 함께 밖에서부터 닫히는 사명관의 문.
그와 함께, 그들과 다소 떨어져 있던 적월이 한쪽 손을 치켜든다.
“쳐라.”
“타하앗!”
적월의 한마디와 함께, 곳곳에 숨어있던 수십에 달하는 검은 인형이 뛰쳐나와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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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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