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58
058화
“대체 어찌 저런……?”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경악으로 물든 살암이 가늘게 몸을 떤다.
‘내가중수법을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의 외공이라고?’
내가중수법이 외공을 무조건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이 불을 제압한다고는 하나, 그 불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크다면 도리어 물이 증발되어 버리고 마는 법.
불리한 상성도 성취에 따라 언제든 결과를 뒤바뀔 수 있다.
하지만…….
‘……저만한 나이에 그만한 수준의 외공을 익히는 것은 불가능할 텐데?’
음지에 오가는 수많은 정보들을 통해, 괴인(怪人)이라고 일컬어도 좋은 무인들과 무공들을 수도 없이 들어온 살암이다.
그중에는 세간에 잘 떠돌지 않는 희귀한 외공도 많이 있었지만, 그중 무엇 하나도 저만한 경지까지 단기간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
‘마교의 흑미륵마공뿐인데…….’
하지만 살암은 이내 이 생각을 부정했다.
연무학관에 들어올 수 있는 이는, 연무학관에서 보낸 초청장을 받은 신분이 보장된 이들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흑미륵마공은 마교 내에서도 익힐 수 있는 인간이 없다고 판단되어 결국 폐기 처리되어 버린 무공이 아닌가?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살암의 귓가로, 느닷없이 빈정거리는 듯한 막휘의 음성이 들려온다.
“기권을 추천한다는 게 어디의 누구였더라?”
“……!”
“낄낄, 너무 그렇게 풀이 죽을 것 없네.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니. 아암.”
자신을 향한 막휘의 비웃음에 한순간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는 살암.
언뜻 섬뜩하기까지 한 그의 눈빛을 보란 듯이 피해 버리며 막휘가 홀로 흡족한 미소를 머금는다.
‘이해할 수가 없겠지.’
아마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믿고 있던 수하가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나가떨어져 버리니, 이제야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일 뿐.
‘내가 형님으로 모시겠다는 말을 괜히 내뱉은 것이 아니지.’
태어난 순간부터 사파의 가장 큰 집단 중 하나를 다스리게 될 운명을 타고난 이가 바로 막휘다.
녹림칠십이채를 다스리는 왕좌(王座)에 앉은 이가 그의 아버지이며, 그의 형제들 역시 사파 중에는 괴물이라 일컬어도 될 만큼 쟁쟁한 실력을 가진 이들뿐.
그런 그가, 그저 한 끼 식사를 베푸는 배포에 감읍해 그를 형님으로 모시려 했겠는가?
‘……잘한 짓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를 아우로 둔다는 것은, 미래에 녹림칠십이채를 자신의 아래에 둔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것이 훗날 녹림칠십이채를 말아먹는 선택이 될지, 혹은 그들을 더욱 부흥하게 만들 선택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저런 인간이라면 한 번쯤 고개를 숙여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의 아버지가 언제나 말했으니까.
‘천하제일이라는 이름에 도전할 수 있는 인간들은 오직 괴물들뿐이다. 그들은 네가 생각하는 상식이나 규격이라는 것을 아득히 넘어선 이들로, 천재니 기재니 하는 것들마저도 범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인간은 사람이 만들려 한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혹여라도 그런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우(愚)를 결코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말로만 듣던, 상식과 규격이라는 것을 넘어선 인간.
저 인간이 정말로 그만한 거물이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번 사도관의 신입 관도 중에서는 저 괴물을 당할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가공할 ‘무력’을 제외한다면 믿음직스러운 구석이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툭 툭.
“저, 이제 그냥 들어가면 되나요?”
그래, 저렇게 기절해 버린 상대의 머리를 발로 툭툭치는 모습이라든지…….
그런 사무현의 행동에 당황했는지, 사도관주마저 말까지 더듬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이쪽에 번호패를 놓고 들어가면 된다.”
“아하, 번호패를…… 그건 왜요?”
무심코 번호패를 내려던 그 순간, 무언가 의아했는지 두 눈을 크게뜨며 묻는 사무현.
이에 사도관주가 어느새 덤덤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승자의 번호패를 모아 다음 시합 추첨에 사용할 거다.”
“아하, 다음 시합에…… 아니, 잠깐. 첫 시합의 승자랑 두 번째 시합의 승자끼리 맞붙는 거 아니었어요?”
사무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묻자, 사도관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더냐?”
“누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상식적으로 그렇잖아요. 팔강 다음은 사강, 사강 다음은 결승전!”
“처음부터 대진이 정해져 있는 시합이라면 그렇겠지만, 사도관의 대표선발전은 사도관의 전통에 따른다.”
“아니, 대체 무슨 전통이…….”
“그만, 거기까지. 불만이 있으면 기권하면 된다.”
……거 참, 냉정도 하시네.
결국, 자신의 번호패를 목함에 넣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자리에 걸어 돌아가는 사무현.
이에 자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천마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미소를 머금는다.
“어쩐지, 네놈답지 않게 일이 잘 풀리는가 싶었다.”
“……그만해라, 안 그래도 열 받으니까.”
사무현이 천마와 티격 거리는 사이, 기절한 청사가 실려 나가고 사도관주가 다음 시합을 호명한다.
“다음 시합은 이(二) 번과 사(四)번이다. 앞으로 나오도록.”
“드디어 제 시합이군요.”
자신만만한 미소를 만연에 머금은 막휘가 시합장 쪽으로 걸어 나선다.
그리고 잠시 후, 막휘와 마주한 이는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거구의 사내였다.
“와…… 저거 진짜 크네.”
사무현의 입에서 자연스런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막휘도 분명 거구의 체형에 속하는 인물인데, 저건 그런 막휘를 도리어 평범한 체형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무현의 허벅지보다도 더 두꺼운 팔뚝, 칠 척은 되어 보이는 우뚝 솟은 키, 거기다 짐승의 그것을 연상케 만드는 부리부리한 눈매까지.
‘……저게 곰이야, 사람이야?’
저만한 체격에서 나오는 괴력은 분명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내공이라는 것도 결국 근력이 기반이 되어야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는 법이니까.
“후후, 실로 나약해 보이는 몸뚱이로구나.”
위협적이게 보이기 위함인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죽 훑어내는 거구의 사내.
이에 피식 실소를 흘린 막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다.
“네놈이야말로, 쓸데없이 잔뜩 부풀린 몸뚱이구나.”
“끌끌, 쓸데없다 했느냐?”
촤좍!
그 말과 함께, 보란 듯이 자신의 상의 무복을 맨손으로 찢어 버리는 사내.
그 순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두의 눈에 경악의 빛이 스쳐 지나간다.
“음……!”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은 거대한 근육들.
하지만 그보다도 먼저 모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피부 위를 덮고 있는 거친 상흔들이었다.
“끌끌, 놀랐느냐? 이것이 바로 숲속에서 맹수들과 어울리며 만들어진 상흔이다.”
“…….”
“자, 어디 한번 놀아 보자! 내가 바로 귀주의 흥의(興義)에서 온, 거패수(巨覇獸) 마우평(馬牛匉)이다!”
쾅!
그리고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는 막휘에게 달려드는 마우평.
위압적인 겉모습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주먹을 큰 동작으로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한 마리의 짐승과도 같…….
턱.
“……음?”
상당히 호쾌하게 휘둘러진 마우평의 주먹이, 뒤늦게 뻗은 막휘의 손에 의해 가볍게 가로막혀 버렸다.
“잔재주를!”
자신의 주먹을 움켜쥔 막휘의 손을 뿌려치기 위해 마우평이 다급히 힘을 써 보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막휘의 몸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큭! 감히 이 몸과 힘 대결을 해 보자는 것이냐?”
“…….”
“이이익!”
“…….”
“이잉이이이익!”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막휘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마우평.
하지만 도통 막휘의 팔이 움직여지지 않자, 생각을 바꾸었는지 마우평이 돌연 막휘를 향해 몸을 붙여 온다.
쿵!
“큭! 이놈, 바닥에 메다꽂아 주마!”
두꺼운 한 팔로 막휘의 허리를 휘감은 마우평이, 그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리려는……!
“이이이익!”
“…….”
“……잉이이익!”
“…….”
“으이이이……! 크헉! 허억! 허억! 허억!”
와……. 이게 안 들리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마우평을 내려다보던 막휘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연다.
“야.”
“헉! 헉! 뭐냐?”
“……너 산에서 안 살았지?”
움찔.
막휘의 한마디에 정곡이 찔렸는지, 한순간 거대한 몸을 흠칫하는 마우평.
음……. 덩치가 크니까 이런 게 또 이렇게 도드라지게 보이네.
“무, 무슨 근거로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산을 타는 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뭔지 아냐?”
“……뭐?”
“첫째.”
짧게 한 마디를 내뱉은 막휘가 움켜쥐고 있던 마우평의 주먹을 풀어주며 양팔로 그의 허리를 휘감는다.
그러고는 곧이어, 너무도 손쉽게 거구의 마우평을 거꾸로 뒤집어 들어 버린다.
“아, 아니?”
“……하체.”
무심한 한마디와 함께, 막휘가 그대로 다리를 구부리며 마우평의 머리를 맨바닥에 내리 찍어 버린다.
쾅!
“크헉!”
머리부터 단단한 맨바닥에 틀어박힌 마우평이, 짧은 단말마와 함께 부르르 몸을 떤다.
막휘의 허리 힘과 체중, 그리고 마우평 자신의 체중까지 고스란히 실린 공격이었으니 머리가 깨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할 정도다.
“이익!”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었기에, 거꾸로 들린 상태의 마우평이 다급히 막휘의 다리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퍽! 퍽! 퍽!
“둘째.”
“이이이이익!”
퍽! 퍽!
“……하체.”
쾅!
“……꺽.”
마우평의 주먹질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두 번이나 맨바닥에 박아 버린 막휘가, 주먹질도 못하고 부들거리는 마우평의 몸을 다시 한번 위쪽으로 들어 올린다.
“그리고 세 번째.”
“……아.”
“역시 하체.”
쾅!
풀썩.
거의 확인 사살이나 다름없이, 마우평의 머리를 바닥에 내려찍는 것을 끝으로 막휘가 그의 몸을 놓아주었다.
완전히 혼절해 버린 그의 상태가 확인되자, 사도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승부를 선언한다.
“거기까지. 승자는 번호패를 가지고 오도록.”
“크흠.”
사도관주의 말에, 거들먹거리는 듯한 헛기침을 한 번 흘린 막휘가 휘척휘척 발걸음을 옮기며 살암 쪽으로 슬쩍 고개를 돌린다.
마치 내가 이 정도라는 듯.
하지만 정작 번호패를 내고 자리로 돌아오자, 그를 기다린 것은 혀를 끌끌 차는 사무현의 잔소리였다.
“누가 그렇게 무식하게 싸우래?”
“예?”
“상대가 유술에 능한 녀석이어서 네 무릎을 잡고 관절기라도 시도했으면 어쩌려했어?”
“왜 그러십니까? 기껏 이기고 왔는……. 꿱!”
퍽!
막휘가 불만스레 투덜거리자, 그의 뒤통수를 한 번 후려갈긴 사무현이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연다.
“지금은 상대가 약해서 다행이었던 거야. 다음 시합에도 그런 식으로 자만하며 싸우다가 일 나는 수가 있다.”
“아니, 그렇게 저를 못 믿으십니까? 제가 약해 보이십니까?”
“뭐야, 내가 말 안 했나?”
“뭐를요?”
“약해 보이는 게 아니라 약해. 툭 치면 기절할 만큼.”
……망할.
자신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고 반박하고 싶은데, 실제로 한 방에 자신을 기절시켜 버린 장본인이라 뭐라 할 말이 없다.
그렇게 일그러진 막휘를 향해, 사무현이 새삼 냉정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조심해. 내가 너 데리고 괜히 시간 쓴 거 아니다.”
“……알고 있습니다.”
사무현의 말에 마지못한 듯 대답을 하면서도, 막휘는 흘깃 시선을 돌려 한쪽에 선 살암을 응시했다.
‘……내가 더 강해.’
저 살암이라는 녀석에게 공격을 당할 뻔했던 그날, 사무현은 번호패를 위조하자는 제안을 포기하고 그에게 새로운 제안을 해 왔다.
그것은 바로 저 살암이라는 녀석을 대비한 특별 훈련.
그다지 내키지 않는 훈련이기는 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막휘는 한 가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네 검으로는 나를 벨 수 없다.’
그렇게 막휘가 살암을 향한 묘한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사이, 어느덧 그의 다음 시합을 위해 나온 두 사람의 싸움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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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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