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62
062화
“흐음…….”
사무현의 도발에 미소를 조금 지워 낸 살암이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입을 연다.
“그 상태로 괜찮겠나? 뒤늦게 후회한들…….”
“야.”
“…….”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기어 나와. 이제 와서 후달리는 거 아니면.”
“큭, 후달려?”
사무현의 도발에 실소를 흘린 살암이, 이내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며 사도관주에게 묻는다.
“바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으음…….”
사도관주의 얼굴에 복잡한 심사가 드러난다.
마지막 순간 적사라는 아이가 사무현에게 뿜어낸 것은 분명한 독이었다.
‘아마 목숨을 빼앗을 정도의 극독은 아니겠지만…….’
그러니 망설임 없이 입안에 독단을 깨물 수 있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목숨에 치명적인 독이 아니라도 독은 독.
해독하지 않고서는 이후의 싸움에 상당한 불리함을 안고 갈 수 밖에 없다.
‘그 때문에 기껏 일 각의 시간을 만들어 주려 했건만…….’
제대로 된 결승전을 위한 그의 작은 배려를 저렇게 망설임 없이 내팽겨쳐 버리다니.
하지만, 못마땅함과는 별개로 또 한편으로는 은근한 기대감이 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파를 이끌려는 무인이라면 저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갖은 암수가 난무하고, 수족처럼 여겼던 수하에게 뒷통수를 맞는 일도 허다한 곳이 바로 사파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구도 이런 행위들을 비겁하다 말하지 않는다.
사파의 첫 번째 철칙은 다름 아닌 생존.
그런 곳을 지배할 만한 그릇이라면, 적어도 저만한 위기는 극복해 낼 수 있어야 할 터.
“……좋다, 허가하겠다.”
“큭큭, 이런, 이런.”
짤랑짤랑.
사도관주의 허가가 마음에 들었는지,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인 살암이 사무현을 향해 가벼운 걸음을 옮긴다.
그의 무복과 몸 곳곳에 치장된 장신구들이 그의 기분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요란한 소리를 만들어 냈지만, 그 누구도 그 모습을 경박하다 느끼지 않았다.
걸음을 옮기는 살암의 전신에서 풍기는 심상치 않은 살기를 느낀 까닭이리라.
스윽.
쓰러진 적사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실려 나서고, 어느새 사무현의 앞에 선 살암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연다.
“안되었구나. 하늘마저도 네 편은 아닌 듯 하니.”
“뭐? 하늘?”
살암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 사무현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얼굴에서 모든 웃음기를 지워 내고 그를 노려보았다.
“착각하지 마, 이 새끼야.”
“음?”
팟!
“……그딴 거에 의존했으면 아직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으니까.”
어느새 순식간에 살암의 앞에 나타난 사무현이 그의 안면으로 호쾌한 일 권을 내뻗는다.
쩌저정!
시작부터 권강이 머금어진 사무현의 주먹을, 대체 언제 뽑아 든 것인지 모를 살암의 검이 가로막는다.
그리고 그의 검신 역시 사무현의 권강에 지지 않는 푸른 검강이 머금어져 있었다.
“킥……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사무현의 주먹과 살암의 검이 서로를 밀어내며 우렁찬 폭음을 만들어 냈다.
쾅!
***
“허어…….”
눈앞에서 펼쳐지는 살암과 사무현의 싸움을 지켜보며 사도관주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조차도 실체를 알아보기도 힘든 기괴망측한 환검을 펼쳐 내는 살암.
장담컨대 저 녀석들의 선배라고 불리는 아이들 중에도 저 검초를 받아 낼 만한 녀석들은 한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천재라는 거겠지.’
일전에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지만, 다시 보아도 천재라는 말 외에는 저 아이를 수식할 방법이 없다.
소위 기재라고 불리는 이들 조차도 이립 전후에서야 오르는 경지가 바로 저 절정이라는 경지.
하지만 저 살암이라는 아이는, 그가 알기로 약관을 넘은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한데…….
‘……그런 저 아이 공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는 저 녀석은 대체 무어란 말이냐.’
자신을 압박하는 살벌한 살기와 현란한 검초를 앞에 두고도, 긴장감이나 당혹스러움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않는 듯하다.
그저 덤덤하게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공격들을 쳐내고 있을 뿐.
이는 분명, 지금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치열한 전투를 수도 없이 겪어 보았음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쾅! 쩌정! 쩌저정!
저벅저벅.
자신을 에워싸고 날아드는 수많은 검영을 맞받아치며 산보라도 나온 듯 평온하게 거리를 좁히는 사무현.
한편 자신의 공격이 허무하게 무력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살암의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치잇……!”
사무현과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살암이 뒤쪽으로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스팟!
쩌저정!
한순간.
살암의 검초에 실려 있던 힘이 미세하게 약해진 그 찰나.
돌연 사무현의 눈이 번뜩이더니, 그의 일 수가 살암의 검초를 수직으로 올려쳐 버렸다.
그 무력해진 틈을 비집고, 사무현의 신형이 살암의 거리 안으로 들어섰다.
“이런……!”
다급히 검을 회수해 방어해야겠지만, 감당할 수 없는 거력에 의해 치켜 올라간 살암의 검은 당장에 내려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곧이어 날아들 충격을 대비해 살암이 호신기를 끌어올리려는 그때, 그의 귓가로 이죽거리는 사무현의 음성이 들려온다.
“고작 이거냐?”
“뭐……!”
쾅!
우당탕탕.
“……크헉!”
내력이 실린 사무현의 주먹이 그의 안면에 꽂히며, 거의 다섯 장 가까이를 나뒹군 살암이 다급히 몸을 일으킨다.
다행히 검을 놓치지는 않았지만, 그의 코와 입에서는 붉은 피가 다량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후두둑.
“크윽……! 이 잡것이……!”
“시간만 끌면 이길 거라 생각했냐? 이 멍청한 새끼야.”
“……뭐라고?”
“독을 뒤집어썼으니 버티기만 하면 유리해질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척하더니, 독이면 다 해결되는 편한 곳에서 살고 계셨나 보네.”
경악 어린 두 눈을 치뜨는 살암을 향해 명백한 비웃음을 머금으며, 사무현이 신랄하게 말을 이어 간다.
“한심한 새끼, 이 정도 독이 통할 정도였으면 난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어. 알아?”
십만대산에서 보낸 지난 수년의 시간 동안, 자신만만한 천마의 호언장담에 속아 수시로 독버섯을 취식해 온 사무현이다.
어디 그뿐인가? 산골짜기 깊은 곳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이무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커다란 뱀과도 싸웠고, 등딱지에 사람 얼굴 하나 새기고 있는 곰 만한 거미랑도 싸웠다.
그때는 사흘 밤낮을 앓으며 거의 죽다 살아났지만……. 아무튼!
그렇게 언젠가부터는 독버섯과 일반 버섯의 경계선이 사라졌고 독을 제거하지 않은 뱀조차 알싸한 맛으로 즐겨 먹곤 했다.
그런 그에게 이런 얄팍한 독을 사용하다니!
“독에 내성이 있었느냐?”
자신이 여태 조롱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으르렁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물어 오는 살암.
이에 사무현이 한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실소를 흘린다.
“등신인가? 이만큼이나 말해 줬는데도 그걸 또 물어보고 있네.”
“큭……! 그래, 내가 정말로 멍청했군.”
투두둑.
냉소 섞인 짧은 웃음과 함께, 그를 장식하고 있던 장신구들을 거칠게 뜯어 버리는 살암.
귀공자처럼 치장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피로 얼룩진 얼굴을 치켜든 그의 모습은 이제 짐승의 그것을 연상케 했다.
“이제부터 죽일 각오로 상대해 주마, 이놈!”
분노와 살기가 뒤섞인 일성과 함께 살암이 사무현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든다.
하지만 그가 채 일 검을 내뻗기도 전에, 어느새 그의 코앞까지 접근한 사무현이 싸늘한 얼굴로 검을 쥔 그의 손목을 낚아챈다.
“분노에 눈깔이 돌아서, 체술을 상대로 스스로 거리를 좁혀?”
“……!”
“뒈질라고.”
쾅!
“……큭!”
검을 움켜쥔 한쪽 손을 제압 당한 채, 안면에 다시 한번 일 권을 허용하고만 살암.
하지만 분노로 눈이 뒤집힌 덕분인지, 그는 용케 쓰러지지 않고 곧장 반대편 손을 휘둘러 사무현의 안면을 후려쳤다.
쩡!
“……이것도 주먹질이냐?”
자신의 턱 끝을 겨우 움직이게 만든 살암의 주먹에, 도리어 비웃음을 머금은 사무현이 그대로 받은 것을 돌려준다.
쾅!
“……크헉!”
우당탕탕!
이번 일 권에는 상당한 내력이 실려 있었는지, 살암의 신형은 그대로 다섯 장 가까이를 날아 처참히 맨바닥에 나뒹굴었다.
“크으으……! 가암히이!”
바닥에 긴 핏자국까지 만들어 낸 살암이 고개를 치켜들자 상처 입은 맹수와 같은 그의 모습이 모두의 눈에 들어온다.
더불어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짙은 살기에, 구경을 하던 이들 중 대다수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다.
하지만…….
“꼴값 떠네.”
도리어 조소를 머금은 사무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일갈한다.
“저보다 센 놈을 앞에 두고 살기를 대놓고 흘려? 짐승보다 나을게 뭐야?”
“크윽……! 이노옴! 그 아가리를 찢어 주마!”
스팟!
쩌저정!
괴성을 내지르며 살암이 전개한 섬광 같은 검기가, 사무현의 신형과 맞부딪치며 폭발한다.
하지만 일전에 막휘를 밀어냈을 때와는 달리 사무현의 신형은 조금도 밀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이 정도로 되겠어?”
스팟!
지금까지와는 달리 섬광같이 도약한 사무현이 순식간에 살암과의 거리를 좁혔다.
다급히 검초를 휘두르며 반격하려 했지만, 이미 사무현의 주먹은 그의 복부에 틀어박히고 있었다.
쿵!
“슬슬 사람 잘못 건드렸다 싶지?”
“……!”
“그런데, 이제 시작이야.”
쾅!
푸악!
이죽거리는 미소와 함께 말을 마친 사무현이 그대로 살암의 턱을 무릎으로 쳐올렸다.
입에서 붉은 피를 뿜으며 고개를 뒤로 젖히는 살암의 텅 빈 몸에, 짧은 순간 연속적인 주먹질을 퍼붓는다.
퍼벅! 퍽퍽퍽! 쾅!
마지막 일 권에 실린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살암의 몸이 또다시 바닥에 처박혔다.
우당탕탕.
“쿨럭! 크읍……!”
입에서 검붉은 피를 뱉어내며 몸을 일으키는 살암의 안면으로, 어느새 다가온 사무현의 일각이 날아든다.
“흡!”
쩡!
촤지지직.
아슬아슬한 순간, 검면으로 사무현의 일 각을 방어해 낸 살암의 몸이 다시 한번 뒤쪽으로 밀려난다.
설마 그 공격을 받아 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는지 사무현의 입에서 짧은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와, 그걸 막아? 생각보다 근성 있네.”
“크으……. 허억……! 허억……!”
“그런데 그거 맞고 기절하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저벅.
스슥.
악귀와도 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한 걸음을 내디디는 사무현의 모습에, 살암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친다.
그 순간, 자신이 상대의 기세에 밀렸다는 것을 깨달은 살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그의 이성을 지탱하고 있던 무언가가 끊어졌다.
“……주마.”
“응?”
“……죽여 주마, 네놈.”
끈적할 정도의 살기가 느껴지는 그 한마디와 함께, 살암의 검신에서 다시 한번 푸른 검강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벅저벅.
거리를 벌리며 시간을 끌려는 것도, 분노로 눈이 뒤집혀 다급히 접근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두 눈을 크게 뜬 채 덤덤히 사무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렇게, 살암과 사무현이 서로의 거리로 접어들었다.
“……음?”
쾅!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살암의 일 검이 사무현의 수강에 가로막혔다.
지금까지와는 분명히 달라진 살암의 기세에 사무현이 두 눈을 크게 뜨자, 살암의 검이 뱀처럼 미끄러지듯 소매를 타고 내려와 섬뜩한 예기를 번뜩인다.
쩡! 쩌정! 쾅!
심장, 목젖, 하복부.
치명적인 급소만을 연달아 공격하는 살암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이미 상대를 제압하려는 비무의 목적을 넘어섰다.
이것은 상대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실전.
그런 그의 변화 덕분인지, 처음으로 방어에 임하던 사무현의 무복 소매가 찢어지며 그의 맨살이 팔꿈치까지 드러났다.
촤좌좍.
“킥…… 읍?”
쾅!
살암의 입가에 처음으로 회심의 미소가 스치려는 찰나, 사무현이 무심한 얼굴로 살암의 대퇴부를 후려 차며 그의 균형을 무너뜨렸다.
한순간 움직임이 멎은 그의 안면으로, 권강을 머금은 사무현의 주먹이 섬뜩한 파공성을 만들어내며 쇄도한다.
쾅!
휘리리리릭.
챙그랑.
“크헉……!”
아슬아슬한 순간, 사무현의 주먹을 받아 낸 살암의 검이 권강에 실린 힘을 이겨 내지 못하고 허공을 날아 바닥을 나뒹굴었다.
안면을 보호하기 위해 허리를 뒤로 젖혀 겨우 그의 주먹을 피해 내긴 했으나, 흩날리던 살암의 머리칼 일부가 권강에 스치며 흔적도 없이 바스라져 버린다.
털썩.
다리가 마비돼 균형을 잡지 못한 살암이 바닥에 쓰러지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사무현의 주먹이 재차 그의 안면을 짓이기러 날아든다.
“흐억!”
콰쾅!
가까스로 맨바닥을 굴러 사무현의 주먹을 피해 낸 살암.
하지만 바로 조금 전까지 그가 서 있던 맨바닥은, 커다란 거미줄과 같은 실금이 만들어져 있다.
그의 주먹에 직격당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여실히 보여 주는 그 장면에, 살암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다.
꿀꺽.
“야……. 너 운 좋다?”
“…….”
“그거 맞았으면 진짜 뒈졌을 텐데.”
“……하.”
자신을 향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고 있는 사무현의 모습에, 살암의 심장이 처음으로 심상치 않게 뛰어 대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기분.
그가 아주 오래도록 잊고 있던 이것은, 바로 공포라는 감정이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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