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7
007화
‘……괴물?’
여태껏 저 천마가 누군가를 괴물이라 칭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던가?
섬뜩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와중에도,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흥미로 번뜩이는 천마의 눈빛.
아무런 행동도 없이 그렇게 얼마나 침묵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윽고 잠시 후, 문밖에서 낯선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열어라.”
한마디.
상대나 자신에 대한 서두 따위는 언급되지 않은 이 한마디는, 분명한 명(命)이다.
자신의 위에 그 누구도 없음을 당연시하는 오만함.
문 건너에 있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나 분노, 두려움 따위의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함.
이 순간, 사무현은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지금 자신에게 명을 내린 저 정체불명의 인간은, 분명 극도로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그렇게 사무현이 자신도 모르게 문의 손잡이로 손을 가져가려 하자, 그의 앞에 서 있던 천마가 한쪽 팔을 펼쳐 그의 행동을 가로막았다.
“움직이지 마라.”
“……어?”
“정신 차려라. 이곳 천마신교 내에 너보다 높은 직위를 가진 이는 없다. 너는 본좌의 대행이니까.”
아…… 그렇지.
저 앞에 있는 이가 아무리 위험자라 하더라도 사무현은 저들에게 있어 천마다.
그것도, 그들이 금지된 의식까지 치러 가며 겨우 강림시킨 천마.
그렇게 사무현이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자, 천마가 흥미로운 음성으로 말을 꺼낸다.
“본좌가 문을 열면 너는 반드시 죽는다. 살고자 한다면 네가 들어와 본좌 앞에 엎드리라.”
“……본좌가 문을 열면 너는 반드시 죽는다. 살고자 한다면 네가…….”
콰과과광!
천마의 어투를 흉내 내어 사무현이 말을 이어 가던 그 순간, 난데없이 폭파된 철문이 굉음을 일으키며 사무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라……?’
비명을 지르거나, 몸을 피할 틈도 없다.
눈앞이 잠깐 어두워지는가 싶더니, 단단하고도 육중한 철문이 사무현의 몸을 후려친다.
쾅!
부웅.
쿵!
“야, 야, 인마!”
경악 어린 천마의 일성을 들으며, 사무현은 생각했다.
젠장, 그냥 문 열걸.
그렇게 짧게나마 자유를 꿈꾼 사무현의 삶이 끝나는…….
“정신 차리고 일어나라! 어서!”
“……어?”
……뭐야, 아직 안 죽었어, 나?
그렇게 반신반의한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자, 쓰러진 자신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육중한 철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 정도면 죽어야 맞는 거 같은데?’
반신불수 정도로 살아남은 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무현이 몸을 일으키려는데, 예상외로 그리 무겁지 않은 철문이 한쪽으로 밀린다.
오, 이거 생각보다 별로 무겁지 않은…….
쿵!
‘……무겁네?’
바닥에 밀려 떨어지며 울리는 진동이 철문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분명하게 전하고 있다.
저 정도 무게의 철문이 날아들었다면 십중팔구 치명상, 혹은 즉사를 당했어야 정상적인 상황.
하지만 사무현의 몸은 약간의 뻐근함만을 호소하고 있을 뿐, 어느 모로 살펴도 별다른 부상은 보이지 않는다.
‘뭐, 어찌 되었건 살긴 살았…….’
“살아 있나?”
……아, 그렇네.
살았다는 안도감에 깜빡 잊을 뻔했다.
당장의 비명횡사는 면했다고 하지만, 진짜 위기를 돌파해 낸 것은 아니었다.
“이상하군……. 느껴지는 기도는 평범하기 그지없는데. 외공을 익힌 건가?”
……침착하자.
상대는 그 천마의 예측을 뛰어넘어, 통성명도 없이 다짜고짜 공격을 펼치는 미친놈이다.
당장 저놈에게서 벗어나려면, 이쪽의 신분부터 공개해 추가적인 위협에서 몸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사무현이, 다급히 몸을 털고 일어나며 눈앞의 사내 쪽을 응시한다.
“어처구니가 없군, 감히 내가 누구인 줄…….”
황급히 말을 이어 가던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말을 멈춘 사무현이 몸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한다.
대략 이십 대 초반 즈음 되었을까?
반듯한 이목구비에 언뜻 잘생겼다고도 말할 수도 있는 얼굴이지만, 그런 것을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두 눈을 마주하기 직전까지의 짧은 순간뿐이었다.
후들후들.
풀썩.
결국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 사무현이, 자신도 모르게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 시선을 내리깐다.
살의(殺意)? 위압감?
아니, 고작 그런 단어들로는 저자를 바라본 순간 느껴진 원인 모를 공포를 표현할 수 없다.
자신을 먹잇감으로 삼으려는 굶주린 맹수와 마주했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기분은 마치…….
‘인간이…… 아니야.’
……태어나 처음으로, 장군귀라 불리던 이질적인 존재와 마주쳤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공포.
처음 보는 벌레를 관찰하듯, 미세하게 떠오른 호기심과 혐오감만이 가득 담긴 저 두 눈빛에는 인간이라면 결코 담을 수 없는 무한한 광기(狂氣)가 담겨 있었다.
그날 이후로 처음 느껴 보는 거대한 존재감에 사무현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자, 당황한 천마가 다급히 그를 향해 언성을 높인다.
“정신 차려라, 애송아!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으…… 으으…….”
“이래서는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당장 일어나라! 저들에게 너는 천마다!”
악바리라도 쓰듯 다급하게 들려오는 천마의 음성.
분명 그의 말은 이성적으로 들렸지만, 사무현은 본능적으로 그의 말을 거부했다.
그가 천마라고 정체를 밝힌들, 아니, 천마가 아니라 그 어떤 존재라고 대답을 한들 저 괴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저 괴물의 호기심만을 자극할 뿐.
그렇게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떠는 사무현을 내려다보며, 사내가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
“문 건너에서의 태도와는 썩 다르군. 어찌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냐?”
“…….”
“흐음…….”
자신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는 사무현의 모습에서 무엇을 느낀 것일까?
그런 그를 내려다보던 사내의 한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말려 올라갔다.
“단순히 겁이 많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
“……당장 죽일 이유는 없는 벌레로구나.”
저벅저벅.
그 말을 마친 후, 사무현의 앞에 서 있던 사내가 천천히 등을 돌려 멀어져 간다.
그렇게 그의 인기척이 완전히 멀어져 사라질 때까지, 사무현은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천마의 음성을 무시한 채 한참을 더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
천마신교의 천마고 앞.
그곳에는 현재 십여 명에 달하는 이들이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
“지, 지금이라도 저희가 들어가 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안쪽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만약 무슨 상황이라도 벌어진 것이라면…….”
안절부절못하는 조암장로와 화상장로의 채근에, 태상장로 고극혈이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그라고 해서 어찌 이 상황이 답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저 정도의 소란은 명을 어기고 천마고에 들어갈 명분이 될 수 없다.
“……우선은 기다려 보세. ‘그분’께서 누구도 천마고에 들이지 말라 명하셨다 하지 않았는가?”
“그…… 그래도…….”
“진정하세. 두 분이 진정 큰일을 내셨다면, 저 정도의 소란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니.”
단호한 태상장로의 대답에, 결국 마지 못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화상장로와 조암장로.
그런데 그때, 난데없이 천마고의 문이 열리며 그들이 기다리던 이들 중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벌컥.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가?”
털썩.
털썩.
“태상장로 고극혈이 천마를 뵈옵니다!”
“천마를 뵈옵니다!”
고극혈의 부복을 시작으로, 천마고의 앞을 서성이던 십여 명의 이들이 하나같이 바닥에 부복한다.
그런 그들을 흘깃 쳐다본 사내가 곧 그들을 지나쳐 무심한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
아무 말 없이 멀어져 가는 사내의 뒷모습에, 다급히 엎드린 채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세 명의 장로.
그러고는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화상장로를 제외한 두 장로가 천마라고 불린 사내의 뒤를 따른다.
저벅저벅.
“태상장로.”
“예.”
“저 안에 있는 벌레도 혹 너희의 작품 중 하나더냐?”
발걸음을 옮기며 무심한 듯 물어오는 천마의 질문에, 딱딱하게 굳어지는 태상장로의 얼굴.
그러고는 곧,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떨구며 조심스레 그의 물음에 답한다.
“제가 어리석어 벌레라 지칭하신 뜻을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
“……천마께서 들어가시기 이 전에, 천마고에 ‘칠 대’께서 들어가 계셨던 것을 뒤늦게 전해 들었습니다.”
우뚝.
“……칠 대라고?”
발걸음을 멈추고, 미간까지 찌푸리며 태상장로를 돌아보는 천마.
처음으로 보인 그의 불신 어린 모습에, 당황한 태상장로가 다급히 고개를 숙인다.
“이무기는커녕 뱀도 안 될 그따위 벌레가 칠 대라…….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 것이…….”
“고작 그런 것에게, 본 교의 자원을 낭비할 가치가 있는가?”
……꿀꺽.
언뜻 무심한 듯하지만, 말 속에 칼을 품은 듯한 질문.
이에 태상장로가 마른침을 삼키며 침묵을 지키자, 그 모습을 흘깃 바라보던 천마가 그를 부른다.
“태상장로.”
“예.”
“자리를 마련해라.”
“……!”
“더 시간 끌 것 없이…… 살려 둘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내가 직접 가려낼 것이다.”
예상치 못한 천마의 명에 태상장로가 고개를 들자, 그는 어느새 저 멀리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흠흠…… 얀마.”
“…….”
“야…… 야, 천마야.”
이 새끼…… 생각보다 많이 화난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벌레 취급할 것까지야 있나?
“헤헤, 내가 잘못했다니까. 뭘 그렇게까지 화를 내고 그러냐?”
……망할.
살다 살다 귀신한테 굽신거리는 꼴이라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결국 내가 살려면 이놈을 붙드는 수밖에 없고, 조금 전의 상황에서는 분명 내가 놈과의 약조를 어긴 것이 맞다.
놈을 믿고 그대로 행동하기로 해 놓고, 바닥에 바짝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으니…….
그리고 그 결과 이 천마라는 놈은, 나와는 상종도 하지 않겠다며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
“하…… 하하…… 야, 다 살자고 한 일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개새끼.
뼈 좀 그만 때려라.
“아니……. 네가 직접 그놈 눈을 봤어야 한다니까? 내가 장담하는데, 거기서 내가 괜한 소리를 했으면 분명히…….”
“…….”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천마의 음성.
이건 정말 좋지 않다.
이대로는 저놈의 협조를 다시 받아내기도 힘들뿐더러, 설령 싹싹 빌어 협조를 받아 낸다고 해도 더 이상 전처럼 내 의지를 내세우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하는가?
“……그래, 네 말 잘 알겠다.”
“그러니까…… 내가 뒈지건 말건, 너한테는 네 체면이 최우선이다?”
역시…… 빌어서 안 된다면, 죽기 살기로 뻔뻔하게 나가는 방법뿐이다.
반응 좋고.
“그러고 보니, 저 철문에 깔려 죽을 뻔한 건 누구 말을 들은 결과였더라? 저 철문이 조금만 무거웠어도, 누구한테 벌레 소리 안 듣고 깔끔하게 구천을 떠돌고 있었을 텐데.”
난데없이 따지고 들어오는 말에 대꾸할 말이 궁했던지, 당혹스러움이 느껴지는 천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하기야, 좀 억지스러워도 말은 바른말이지.
아까 그 상황은, 조금만 운이 나빴어도 진작 죽었을 상황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참 멍청했어. 천마인지 뭔지 하는 잡귀 놈 말에 현혹돼서, 내가 저 마두 놈들의 수장 흉내를 내려 했으니…… 대충 눈치나 살피다 탈출의 기회나 엿봤어야 했는데.”
“그래! 그래서 그 대가로 철문에 깔려 뒈질 뻔했지! 그런데 뭐? 겨우 싹싹 빌어 살아남았더니, 벌레? 내가 귀신한테 벌레 취급 받느니, 그냥 저놈들한테 사실대로 말하고 살려 달라 비는 것이 낫지.”
……이놈이 왜 이렇게까지 당황하지?
그래 봐야 남의 목숨인데, 저도 내가 죽으면 다시 저승으로 올라가야 할 게 걱정되기라도 한 건가?
아무튼 나름대로 궁여지책으로 꺼낸 방법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썩 괜찮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냉랭하고 고고한 자세로 내리깔던 놈이, 상당히 당황한 듯 말까지 더듬으며 반문하다니.
이럴 때일수록, 딴생각 못 하게 더욱 과감히 밀어붙어야 한다.
“……그래, 생각해 보니 내가 정말 벌레 같았다. 씨팔, 어차피 한 번 살고 뒈지는 거, 마지막은 인간답게 죽으련다.”
크으. 툭 하고 던지니 기다렸다는 듯 물어 온다.
전부터 쭉 느끼던 부분이지만, 이놈 이거 싸움밖에 할 줄 모르던 놈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순수하다.
순수한 나쁜 놈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아무튼 이런 상황이라면, 이용해 먹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호구나 다름없다.
그렇게 천마가 미끼를 물자, 사무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연기에 혼을 싣는다.
“이런 젠장, 무기고가 어디였지? 이 옆이었냐? 어차피 이래도저래도 뒈질 거, 조금 전 그 새끼 대가리라도 한 방 갈기고 뒈진다. 다 뒈졌어!”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저자와의 계약에 의해 ㈜알에스미디어에 있으므로 무단 복제, 수정, 배포 행위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