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73
073화
전날 방의걸이 진행했던 보법 수업과는 달리, 혜명의 체술 수련은 실로 무난하게 흘러갔다.
애초에 칠십이종절예(七十二種絶藝)를 제외한 무공을 전수함에 아낌이 없는 소림답게, 그는 소림 체술의 기본과 초식을 상세히 풀어 모두에게 설명했다.
“소림 체술이 추구하는 바는 중(重)과 유(流)라 할 수 있소. 부드러움을 통한 방어와 무거움을 통한 공격. 그리고 살(殺)보다는 제압에 중점을 둔 체술이기에, 다른 체술보다 장법과 관절기가 다양한 것이 그 특징이라 할 수 있소이다.”
소림의 체술에서 혜명이 중시한 것은 다름 아닌 부동(不動).
무거움과 부드러움을 중시하기 위해서는 강인한 하체와 무게중심이 필수 불가결이다.
해서 그들의 첫 수업은, 다름 아닌 마보를 유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끄으응…….”
“으으으…….”
“주, 죽겠다으…….”
가뜩이나 새벽부터 하체를 조지고 온 사도관원들에게 혜명의 첫 수업은 지옥과도 같았다.
그 쉬운 마보를 오래 유지조차 하지 못하고 풀썩풀썩 주저앉으니, 혜명의 얼굴에 난감함과 당혹스러움이 스쳐 갔다.
‘어쩐다? 생각보다 부상이 큰 모양인데…….’
일반인이라도 이 악물고 반각 정도는 버틸 수 있는 것이 마보다.
한데 나름대로 무공을 익혀 연무학관까지 들어온 사도관의 신입 관도들이, 고작 마보로 일각을 버티지 못한다?
이건 저들의 상태가 그만큼 심각함을 말해 주는 것이다.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마보를 버티고 있는 이들도 섞여 있기는 하다.
치렁치렁한 장신구를 달고 있는 이가 하나, 언뜻 보아도 다부진 근육질로 이루어진 산적패 같은 이가 하나, 그리고 또…….
“하아아암…….”
……마보를 유지하며 하품까지 쩍쩍 해대는, 이들 중 유일하게 멀쩡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이가 하나.
“……시주.”
“예? 저요?”
“혹시…… 마보를 유지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소?”
무림인에게 마보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각이 넘는 시간 동안 마보를 유지하는데 하품까지 쩍쩍 하고 있다는 것도 그리 상식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혜명이 지목한 사내. 사무현은 너무도 해맑은 얼굴로 그의 예상과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아, 힘들어요.”
“그렇소? 한데 어찌 하품을…….”
“지루해서 힘들어요.”
“…….”
“뭐 좀 다른 수련은 없을까요? 계속 이러고 있으니 너무 졸린데요.”
“흐음…….”
잠시 침음성을 흘리며 사무현을 응시하던 혜명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손짓을 해 보인다.
“시주는 잠시 내 앞에 서 줄 수 있겠소?”
“예, 그러죠, 뭐.”
스윽.
“잠시만 실례하겠소.”
자신의 짐작이 맞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사무현의 대퇴부로 손을 가져다 대는 혜명.
그리고 잠시 후, 그의 두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이럴 수가……. 이게 정녕 사람의 다리라는 말인가?’
인간의 근육이란 단련에 단련을 거듭할수록 단단해지고 강해지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장시간 마보 수련을 받은 소림 무술승들의 다리는 흡사 쫙쫙 갈라진 나무토막을 연상케 한다.
한데…….
‘……이건 그냥 철덩이가 아닌가?’
손에 힘을 주어 눌러 보았지만 근육은 조금의 미동도 없고, 은연중에 내력까지 실어 힘을 줘 보아도 마찬가지로 요지부동이다.
‘허어……. 놀랍구나. 마치 몸이 금강불괴와도 같으니……. 대체 어떤 단련법으로 수련을 해야 이 정도로 몸을 단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사실 사무현의 몸은 진짜로 금강불괴였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혜명의 눈에는 그저 그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노력을 거듭한 무인으로 보일 뿐이다.
“……시주의 이름이 무엇이오?”
어느새 몸을 일으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혜명의 모습에, 사무현이 의아한 얼굴로 대답한다.
“저요? 사무현인데요?”
“사무현 시주, 그대가 지금까지 보내온 시간들에 진심 어린 경외와 찬사를 보내는 바요. 앞으로 시주는 마보 훈련에 참가하지 않아도 좋소.”
예상치 못한 혜명의 말에 사무현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오? 정말이요?”
“물론이오. 시주는 조금 전에 배운 체술의 기본형을 자율적으로 수련하도록 하시오. 시주에게는 마보 수련이 의미가 없으니.”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혜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보 중에 몸을 일으킨 명운이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의 있습니다! 어찌 공명하셔야 할 교관님께서, 저 사파 놈에게만 이해할 수 없는 특혜를 베푸시는 것입니까!”
“아미타불……. 흥분을 가라앉히시오, 시주. 함께 수업에 참여하는 이에게 이 무슨 무례한 말이오?”
“무례라 하셨습니까? 사파 놈을 사파 놈이라고 한 것이 어찌……!”
“시주.”
스스스.
“……!”
“본승은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그대들의 교관이요. 내 분명 그대에게 흥분을 가라앉히라 했소이다.”
돌연 혜명의 전신에서 감당할 수 없는 기세와 위압감이 흘러나오자, 명운이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다.
다만 심적으로 완전히 굴복한 것은 아니었는지 주먹으로 움켜쥔 그의 두 손이 가늘게 떨려온다.
“……후우.”
혜명이 긴 한숨을 내쉼과 함께 그를 압박하던 무형의 위압감이 사라졌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서 있는 명운의 귓가로 혜명의 진중한 음성이 들려온다.
“그에게 마보 수련이 필요 없다 말한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요. 시주가 본승보다 소림의 체술을 더 잘 아는 것은 아니지 않소?”
“…….”
“알아들었으면 다시 마보를 시행하시오. 다시 한번 이와 같은 무례가 있을 시에는, 반드시 정도관주님께 보고토록 하겠소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억제한 얼굴로 짧게 고개를 숙여 보인 명운이 다시금 마보 자세로 돌아간다.
그동안 이 모든 상황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던 사무현이 혜명에게 보란 듯이 물었다.
“체술 연습은 공간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저쪽에 혼자 가서 하면 안 될까요?”
“좋소. 다만 본승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해 주시오.”
“그러죠, 뭐.”
그렇게 혜명을 향해 등을 돌린 사무현이 발걸음을 옮기는데, 조금 전과는 달리 독기 어린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명운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
전음을 통한 짧은 조롱을 끝으로, 명운에게서 시선을 떼어 낸 사무현이 승자의 미소와 함께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런 사무현을, 명운은 이를 악물고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
천마와 사무현이 주도한 사도관 수련의 둘째 날.
인시가 되어 사도관 뒤편으로 나간 사무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제대로 정렬조차 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는 환자들. 아니, 신입 관도들의 모습이었다.
“끄으으……. 내, 내 허벅지…….”
“으으으……. 걷지도 못하겠다.”
“자퇴……. 자퇴가 답인 것 같아…….”
“……얼씨구, 얘네 봐라?”
생각지도 못했던 저들의 모습에 사무현의 얼굴에 황당함이 맴돈다.
“아니, 고작 그거 천 번 했다고 죽으려고 그러네?”
나 때는 백 근짜리 천마도 들고 하루에 몇 만 번씩 휘두르고도 다음날 또 휘두르고 그랬는데.
‘처음 배울 때도 만 번부터 시작했지, 아마?’
처음에는 진짜 뒈질 것 같았는데,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몸에서 느껴지는 모든 통증을 무시하고 매일같이 그 짓거리를 해냈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마교 놈들한테 받았던 고문(?)이 더 아팠지.
운동하고 겪는 근육통?
에이, 그거는 아픈 것도 아니지.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해야지, 그 정도는.
“아니, 이것들이 고작 그거 천 번 했다고 엄살을……!”
“혀, 형님! 잠깐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사무현이 저들을 다그치려 하자, 대열의 앞쪽에 서 있던 막휘가 다급히 뛰쳐나와 사무현의 입을 틀어막는다.
“읍! 뭐야, 왜 이래?”
“형님. 애들 상태 안 보이십니까? 어제 그거, 오늘은 죽어도 또 못합니다.”
“죽어도 못해? 진짜로?”
“그럼요, 저거 보십시오. 절대 못합니다.”
“에이, 내기할까? 못하면 죽는다고 하면 쟤들 다할걸?”
“…….”
아니…… 그거야 그렇겠지요.
못하면 죽는다는데, 기절하기 직전까지는 어떻게든 해내려 하겠지요.
“그래도 보통 수련을 그렇게 죽을 각오로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 보통 수련은 어떤 각오로 하는데?”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한 사무현의 물음에 막휘의 말문이 턱 하고 막힌다.
‘저 인간은 정말 죽기 아니면 살기로 수련해 왔나?’
상식적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되지만, 또 저 괴물 같은 무위를 보면 어느 정도 설득력도 있는 것 같고.
긴가민가하면서 대답을 망설이는 막휘의 모습에 사무현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연다.
“안 아프고 안 다치고, 하루 네 시진 꼬박꼬박 숙면하고 삼시 세끼 기름지게 식사하며 내가 하고 싶은 수련만 골라 하면서 강해지고 싶다. 뭐 이딴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지?”
“……아니죠, 당연히.”
“그럼 뭐?”
“…….”
“숙면 시간 지켜 줘, 식사는 삼시세끼 다 챙겨 줘, 식사 마치고는 건드리지도 않고. 남들보다 고작 한 시진 빨리 일어나서 남들보다 ‘조금 더’ 수련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할 말이 없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사무현의 이론대로라면 그들에게 불가능한 수련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결국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인정하며 막휘가 고개를 숙이자, 그제야 표정을 풀고 미소를 머금은 사무현이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너무 걱정 마라. 나도 생각이 있지, 강해지게 해 준다고 해 놓고 매일 같은 수련만 시키고 있겠냐?”
“……예? 오늘은 다릅니까?”
“당연하지! 매일 같은 ‘부위’만 조져서 어떻게 제대로 된 수련이라 할 수 있겠냐?”
“아……!”
“자, 너는 시범을 보여 줘야 하니까 내 옆에 서고 다들 정렬시켜.”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그렇지.
과유불급이라고, 과한 수련은 오히려 독이 되는 법이다.
어제 그렇게 무리했으니, 오늘은 다른 방식의 수련을 고안한 것이리라.
“자! 모두 정렬!”
스슥.
막휘의 외침과 함께, 흐트러져 있던 이들이 꾸역꾸역 몸을 움직여 바른 대열을 갖춘다.
“자, 막휘 넌 엎드려뻗쳐라.”
“예?”
“시범 보여야 할 거 아냐, 엎드리라고.”
“아……. 예, 형님.”
대체 무슨 시범이길래 엎드리라고 하지?
난 아무런 언질도 받은 게 없는…….
턱.
……염병.
양손과 발로 바닥을 짚기 무섭게, 난데없이 그의 등 위로 묵직한 무게감이 그를 억누른다.
……사낭이네, 사낭이야.
“형님!”
“자, 지금부터 팔굽혀 펴기를 시작한다.”
“…….”
“왜 대답이 없냐? 팔굽혀 펴기 몰라?”
……아뇨, 압니다.
그걸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압니다.”
“그럼 됐네. 자, 구분 동작 하나.”
“……하나.”
“목소리가 작다! 둘!”
“두우우울!”
깔끔한 두 번의 구분 동작으로 팔굽혀 펴기를 해낸 막휘를 향해, 사무현이 여지없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훌륭하다, 다들 박수.”
짝짝짝짝.
잠시 후 자신들이 겪게 될 일을 어렵지 않게 짐작한 모두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박수를 보낸다.
“자, 어제 하체를 조졌으니 오늘은 상체를 조진다! 사낭의 무게를 버티기 위해, 복부와 어깨와 흉부와 팔 근육까지……. 아, 아무튼 좋은 수련법이다.”
어제는 다 외웠는데 그새 까먹었네.
뭐, 중요한 건 이론이 아니지.
“개수는 오백 개! 이건 사낭을 올려 줄 사람이 함께 있어야 하니, 이인 일조로 진행하도록 한다. 홀수 열이 팔굽혀 펴기를 할 때, 짝수 열이 뒤에서 사낭을 올려 주고 혹시나 떨어질 것 같으면 사낭을 잡아 주는 방식이다. 모두 이해됐습니까?”
“…….”
“대답이 없으면 백 개 추가다! 이해됐습니까!”
“으아아! 이해 됐습니다아아!”
“좋습니다, 오늘도 당연히 내공은 금지! 내공 쓰다 걸리면 다 같이 백 개씩 추가합니다. 오늘은 특별히 내가 구령을 붙일 테니, 구령에 맞춰 힘차게! 시작하도록 합니다. 하나!”
“하느아아아!”
“둘.”
“두우우우울!”
오늘도 어김없이, 사도관 뒤편에서는 구슬픈 이들의 괴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
“허어……. 저런 무식한 수련이 있나.”
“명색에 중원의 내가무공을 익혔다는 것들이, 남만야수족도 안 할 법한 저런 짓거리를 한다고?”
사도관 신입 관도들의 괴이한 수련을 저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두 쌍의 눈이 있었다.
사도관의 오십 기 대표인 하남혈귀 적월의 두 팔, 사상신조 나혼수와 흑혈권 만패가 바로 이들이었다.
“……딱히 신경을 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음…….”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인 이들이, 이윽고 자리에서 은밀히 몸을 일으킨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군. 저 대표 녀석이 생각보다 빨리 신입 관도들을 모조리 휘어잡았다.”
“좋은 일이지. 예정보다 일정이 앞당겨질 테니.”
그렇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고는 이내 자리를 떠 버리는 나혼수와 만패.
한편, 수련이 한창인 와중에도 그들이 떠난 빈자리를 바라보는 한쌍의 눈이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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