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74
074화
“흐음…….”
조금 전까지 나혼수와 만패가 있던 방향을 응시하며 살암이 묘한 미소를 머금는다.
‘드디어 움직임을 보이는군.’
분명 머지않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처음 그들과 마주했을 때부터 저들은 위계를 잡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했으니까.
‘이쪽의 서열 정리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나?’
현명한 판단이다.
한 집단을 휘어잡는 가장 큰 방법은, 완벽하게 통제되는 집단의 우두머리를 굴복시키는 것.
‘조만간 부딪칠 수밖에 없겠군.’
아무리 선후배의 사이라고는 하지만, 사파의 섭리상 힘의 서열을 확정 짓지 않은 평화는 있을 수 없다.
사무현이 저들에게 순순히 고개를 숙인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저들은 힘으로라도 서열을 인정받으려 할 것…….
“너 뭐 하냐?”
“……음?”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서서 삐딱하게 고개를 가로 꺾은 사무현의 모습에, 살암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어색한 미소를 머금는다.
“아, 미안하군. 잠시 생각할 것이 좀…….”
“…….”
“있어서…….”
할 말 있으면 얼마든지 해 보라는 듯한 사무현의 눈빛에, 결국 헛기침을 한 번 한 살암이 바닥에 떨어진 사낭을 집어 든다.
스윽.
“내가 어디까지 세었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을…….”
“헛소리 말고 너도 엎드려.”
“……내가? 지금?”
“어, 지금 바로.”
“하…… 하지만 사낭이 더 없지 않으냐?”
“아, 그건 염려 마.”
별걸 다 걱정한다는 듯 한쪽 손을 휘저은 사무현이, 바닥을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일단 엎드려. 사낭을 대체할 거야 뭐, 널리고 널렸지.”
“…….”
“얼른.”
빨리.
***
“소막주님, 저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침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기 무섭게, 살암의 숙소를 찾은 청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언제까지 저 사무현인지 뭔지 하는 놈의 만행을 지켜보려 하십니까!”
“만행씩이야……. 그래 봐야 좋게 말해 수련을 시켜 주는 것이 아니냐?”
“수련도 수련 나름이지요! 내공을 쌓은 무인들이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육체를 단련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
“백 번 양보해서 녀석의 수련법이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감히 소막주님의 등에 타고 앉아 기합을 주다니요! 암천막의 고수들이 이 장면을 보았더라면, 놈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이마에 푸른 핏대까지 세운 청사의 모습에, 피식 실소를 흘린 살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침소에 몸을 누인다.
“쯧쯧……. 어찌 그리 속 좁게 구느냐? 저만한 녀석의 마음을 얻는 것이 그리 쉬울 것 같았더냐?”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저놈만 보면 제 속이 뒤집힐 지경입니다!”
“네가 그놈한테 몇 번 맞아서 그런 건 아니고?”
“…….”
정곡을 찔렀는지 청사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살암이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잇는다.
“쯧쯧, 어찌 공적인 일에 사적인 감정을 끌어들이려 하느냐?”
“하면 소막주님께서는 화도 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까?”
“그럴 리가. 나도 사람인데, 어찌 몇 번이나 뒤엎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느냐?”
“하오면…….”
“배제하는 것이다.”
“…….”
“유비가 제갈량을 얻고자 삼고초려를 했을 때, 그라고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겠느냐? 오직 미래의 유익만을 바라보고 공적인 감정으로 접근했으니 자신의 신분이나 직위를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게지.”
덤덤한 살암의 대답에, 청사가 조용히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것이 그릇의 차이인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청사 자신보다도 이 상황에 자존심이 상할 것은 다름 아닌 소막주다.
연무학관이 아니었다면 손짓 한번, 명령 한 번으로 죽일 수 있는 이에게 고개를 숙이고 수치를 무릅쓴다는 것.
이는 평범한 무인이라면 결코 쉬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하오면 앞으로도 그 녀석에게 고개를 숙일 생각이십니까?”
“맞설 수 없다면 그리해야겠지.”
“그러다 영영 그가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어쩌시겠습니까?”
“하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녀석이라도 조만간 내 손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올 테니까.”
“예? 그건 또 무슨……?”
“아직은 알 것 없다. 지금부터 너는 녀석의 움직임을 은밀히 살펴 내게 보고하거라. 조만간 반드시 일이 벌어질 것이니.”
“……명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존경 어린 얼굴로 고개를 숙여 보인 청사가 밖으로 나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린 살암이 자신의 침소를 주먹으로 내려친다.
쿵!
‘……빌어먹을 녀석!’
청사에게는 덤덤히 말하긴 했지만, 그라고 어찌 속이 뒤집히지 않았겠는가?
그래도 그가 명색에 무력으로는 신입관도 중 두 번째요, 뒷배로는 누가 보아도 첫 번째인데!
심지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연중에 그를 따르는 이가 사무현을 따르는 이보다 많았다.
연무학관을 졸업하고 나면 살암 쪽에 줄을 대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모를 사파인들이 아니니까.
‘한데 그런 내 등에 걸터앉아? 그것도 하품이나 쩍쩍 해 가면서?’
과거의 그와 같았으면 공적인 일이고 나발이고 당장이라도 일어나 그의 목을 베어 넘겼을 것이다.
설령 그 녀석이 훗날 자신의 왕국을 탄탄하게 만들어 줄 대들보 같은 녀석이라고 하더라도!
어차피 음지나 사파나, 수하들에게 공포심과 두려움을 심어 주지 못한다면 자신의 권위가 약해질 뿐이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덤벼들지 않은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덤벼 봐야 기다렸다는 듯 두들겨 맞을 테지, 빌어 처먹을!’
살암은 바보가 아니다.
사무현은 지금 의도적으로 그를 깔아뭉개며 그의 본심이 튀어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괜히 참아가며 친한 척하지 말고, 차라리 본심을 드러내고 덤벼 보라고.
만약 살암이 여기서 사무현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는 연무학관을 졸업할 때까지 사무현의 눈치만 설설 보며 지내거나 스스로 이곳을 나가는 수밖에 답이 없을 것이다.
‘그딴 결과를 맞이할 바에야 대인배인 척 참고 넘기는 것이 낫지!’
그럼 적어도 큰 뜻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라도 할 테니까!
‘아무튼 조만간이다. 선배라는 것들이 움직이기만 하면…… 그때는!’
그가 저 사무현이라는 녀석의 경계를 허물고 빚을 지게 만들 기회가 생길 것이다.
위기에 빠진 자신을 구해 준 이에게는 ‘은인(恩人)’이라는 두 글자가 붙기 마련.
‘기다려라, 이놈. 네가 내 손아귀에 들어오는 그 날부터, 이 살암이 어떤 사람인지 차근차근 알게 될 것이니!’
그렇게 홀로 남은 좁은 방 안에서, 조용히 야심 찬 미소를 머금어 보이는 살암이었다.
***
“녀석이 벌써 사도관을 모두 휘어잡았다고?”
“그렇습니다, 대표.”
“흐음…….”
창가로 한 줄기 햇빛이 들어오는 방 안.
나혼수와 만패의 보고에, 침소에 누워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적월이 고개를 흔들며 상반신을 일으킨다.
“……예상외군. 녹림의 후계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살암이라는 녀석까지 그리 협조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아무리 대표 선발전에서 패했다고는 하나, 그 살암이라는 녀석은 음지의 후계자다.
일신상의 무위마저도 그 나이대 후기지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
아마 적월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진심으로 그와 승부를 논하려면 팔 하나 정도는 떼어 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놈이 순순히 결과에 승복했다라…….’
아무리 자신보다 무위가 높다고 한들, 그의 뒷배를 생각한다면 쉬이 고개를 숙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들도 대표 선발전 이전부터 녀석의 기세를 꺾어 두려 고심한 것이 아닌가?
본래라면 그와 대립될 수밖에 없는 녹림왕의 후계자를 밀어주어, 암천막의 후계자가 힘을 쓰지 못하도록 막는 것 정도가 그들이 생각했던 최선의 수단이었다.
“뭐……. 이쪽의 입장에서는 좋게 풀린 셈이니 깊게 생각할 필요 없겠지. 덕분에 우리의 계획에 속도가 붙게 되었군.”
아무래도 암천막이나 녹림의 후계자를 굴복시키는 건 여러모로 위험요인이 뒤따랐을 것이다.
어느새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은 적월이 완전히 몸을 일으키자, 만패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언제가 좋겠습니까? 녀석의 콧대가 너무 높아지기 전에 꺾어 두는 편이…….”
“오늘 밤이다.”
“너무 이른 것 아닙니까? 아직 제대로 준비된 것도…….”
나혼수가 다급히 반대의견을 제시하자 적월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고작 신입 관도 하나를 상대하는데 준비씩이나 필요한가?”
“……그저 신중을 기해 나쁠 것이 없다는 의미로 드린 말입니다.”
나혼수가 이내 고개를 숙이자, 적월의 입가에 옅은 실소가 머금어진다.
“염려 마라, 나혼수. 녀석이 제아무리 괴물 같은 후기지수라도, 그래 봐야 아직 신입 관도에 불과하지 않으냐?”
“……제가 과민했던 모양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신중한 것이 나혼수 다운 모습이지. 혹시 모를 경우의 수가 생길지 모르니, 그 부분은 자네가 신경을 써 주게.”
“예.”
나혼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그를 격려한 적월이 닫혀 있던 창문을 열어젖히며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는다.
오늘 밤 그들의 계획을 축복이라도 하듯, 구름 한 점 없는 실로 맑은 하늘이었다.
***
“다들 만나서 반갑다. 도법(刀法) 교관 팽우적(彭優適)이다.”
“…….”
“……세인들에게는 광호섬도(光虎閃刀)라는 명호로도 많이 불리지.”
짧고 간결한 소개에 별다른 반응이 없자, 팽우적이 짧게 자신의 별호를 덧붙였다.
그러자 그가 기대했던 대로 신입 관도들 사이에서 감탄사를 동반한 술렁임이 일어난다.
웅성웅성.
“세상에…… 광호섬도가 이번 연무학관의 도법 교관으로 왔다고?”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이름 모를 사파 동기의 감탄에, 사무현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뭐야? 저 사람 유명하냐?”
“예? 형님, 광호섬도를 모르십니까?”
“모르니까 물어봤겠지?”
“아니……. 어떻게 중원의 십대도객(十代刀客) 중 하나인 광호섬도를 모르십니까?”
“……십대도객? 저 사람이?”
생각보다 화려한 명성을 올리고 있는 도법교관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무현이 삐딱하게 팔짱을 끼고 선 천마를 돌아본다.
“……네 생각은 어떠냐?”
“허명(虛名)이다.”
“…….”
“애초에 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중, 도(刀)를 무기로 삼는 문파는 오직 하북팽가뿐이다. 저들 중 대부분이 검문(劍門)이며, 그 다음을 꼽아 봐야 권법(拳法)과 봉법(棒法)이지. 중원에서 도(刀)를 주력으로 삼는 이들은, 하북팽가를 제외하면 팔 할은 사파가 차지한다.”
“…….”
“어차피 사파나 중소 문파의 도법이 그리 대단하지는 못할 테니, 중원 십대도객이라는 말은 곧 하북팽가 내에서 열 손가락에 꼽힌다는 의미다. 무기에 상관없이 중원 전체적인 강함으로 꼽으라면 천 명 안쪽으로나 꼽을 수 있는 정도겠지.”
“……그 정도로 순위가 확 떨어진다고?”
“당연하지. 팽가가 명문이라고는 하지만, 중원 정파의 핵심 전력은 소림과 무당이다. 저 녀석이 일전에 보았던 십팔나한보다 강해 보인다고 생각하냐?”
“…….”
“심지어 십대도객이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드러난 전력 중에 열 손가락이라는 의미다. 오히려 각 문파의 핵심 전력은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지. 그리고 또 은퇴한 고수들이나 두각이 드러나지 않은 고수들은 얼마나 많겠느냐?”
“흐음…….”
“……하나.”
“음?”
“그럼에도 하북팽가 출신이라면 도를 다루는 방법 정도는 아는 녀석이라고 봐야한다. 어쨌거나 하북팽가를 넘어서는 도문(刀門)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니.”
저 교관은 몰라도 하북팽가는 인정하겠다는 듯한 어투다.
그 말인즉, 저 교관의 성취와는 관계없이 그가 사용하는 도법은 진짜라는 이야기겠지.
“자, 여기 모든 녀석들은 모두 도(刀)라는 병기를 다루고자 하는 이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도를 사용하고 있겠지. 해서…….”
“…….”
“너희들에게 한 가지 묻고자 한다. 도(刀)는 무엇이냐?”
팽우적의 물음에 짧은 침묵이 맴돈다.
도란 무엇인가.
어찌 보면 너무도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또 이만큼 깊이 있는 질문도 없으니까.
그때, 정파 측에서 태도를 등 뒤에 걸치고 있는 사내가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연다.
“한쪽에 날이 선 병기를 일컫습니다.”
“정답이다.”
단순한 대답에, 예상외로 명쾌한 반응이 돌아왔다.
“도는 그저 한쪽에만 날이 선 병기를 일컫는 말일 뿐이다. 하면 도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겠느냐?”
팽우적의 물음에 또다시 좌중에 침묵이 흐른다.
“조금 전에 대답한 녀석에게 다시 묻지. 도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어……. 그것은…….”
“…….”
“적을 일격에 쓰러뜨리는…… 극강(極强)입니다.”
다소 망설인 끝에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온 대답.
하지만, 이에 팽우적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도의 특징이라 볼 수 없다. 검, 권, 봉과 같은 무기들과는 다른, 오직 도가 추구하는 방향을 묻는 것이다.”
“…….”
“대답할 녀석이 아무도 없느냐?”
다소 실망스럽다는 듯 팽우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는 그때, 사파측에서 심드렁한 음성이 튀어나온다.
“베는 거죠, 뭐.”
“……누구냐? 지금 답을 한 녀석이.”
팽우적의 물음에, 질문에 답을 한 장본인. 사무현이 느긋하게 반쯤 손을 들어 올린다.
“전데요.”
“어찌 그런 답을 내렸느냐?”
“도를 드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
“아닌가요?”
사무현이 퉁명스레 반문하자, 딱딱하게 굳어있던 팽우적의 입가에 씰룩이는 미소가 일어난다.
“……정답이다.”
“오오.”
“역시 형님이십니다.”
사도관의 분위기가 잠시 술렁이다 사라진다.
“지금의 대답대로 도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다. 그저 베는 것. 시중에 파는 흔하디흔한 삼류 도법부터, 팽가의 오호단문도법(五虎斷門刀法)까지 이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심오하다면 심오한 이론.
그렇게 사무현의 얼굴을 한 번 더 스쳐본 팽우적이 슬쩍 자리를 비켜 그의 뒤에 준비된 것을 보인다.
“해서 오늘은,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지금까지 너희가 도객으로서 얼마나 의미 있는 길을 걸어왔는지를 판단할 것이다. 바로 이것을 통해서 말이다.”
팽우적이 자리를 비켜서자, 그의 뒤에 쌓여 있던 통나무들이 모두의 눈에 들어온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mail : [email protected]
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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