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75
075화
“……저게 왜 저기서 나와?”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형님?”
“아…… 아니야, 앞에 봐, 앞에.”
“예, 형님.”
이름 모를 사도관 동기가 다시 고개를 돌리자, 사무현의 얼굴에는 곧 뭐라 표현하기 힘든 애매한 미소가 맴돌았다.
“지금부터 한 명씩 앞으로 나와 통나무를 벨 것이다. 혹여나 먼저 지원해 볼 녀석이 있느냐?”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팽우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처음 그의 말에 대답했던 정도관의 사내가 앞으로 걸어 나선다.
“이름이 무엇이냐?”
“팽의(彭毅)라고 합니다.”
“팽가의 아이였구나. 부친의 성함이 어찌 되느냐?”
“부친께서는 팽명(彭命)이라는 존함을 쓰십니다.”
“명이라……. 하면 내 조카 항렬이 되겠구나.”
세가의 혈육을 만났다는 사실이 즐거웠는지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팽우적이, 이내 잡념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통나무 하나를 그의 앞에 세운다.
“시작하도록 하지.”
스윽.
팽우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팽의가 자신의 등에 메인 태도를 풀려 하자, 팽우적이 한 쪽 손을 뻗어 그의 행동을 저지한다.
“그만, 잠시 멈추어라.”
“예?”
“공정함을 기하기 위해 모두 같은 도를 사용할 것이다. 이것을 받아라.”
부웅.
턱.
팽우적이 던진 도는, 그리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아 보이는 정강으로 만든 도였다.
갑자기 손에 익지 않은 무기를 받아 든 팽의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스쳐 갔다.
“이, 이건 제 손에 익은 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불공평합니다.”
“너를 포함해 누구의 손에도 익지 않은 도를 사용할 것이다. 한데 무엇이 불공평하다는 말이냐?”
“…….”
“누구는 명도로, 누구는 시중에서 파는 싸구려 도로 같은 시험을 보는 것이 도리어 불공평하다 생각지 않느냐?”
팽우적의 합리적인 질문에 할 말을 잃은 팽의가 지그시 입술을 깨문다.
그러다 이내 마음을 다잡았는지 도전적인 두 눈을 추켜 뜨며 고개를 들었다.
“……하겠습니다.”
“음! 시작하거라.”
팽우적의 말이 호승심을 자극했는지 천천히 도를 고쳐 쥐고 통나무 앞에 서는 팽의.
잠시 후 그가 도를 내려치려는 직전의 순간, 팽의의 얼굴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스팟!
쩌적.
툭.
“……오오.”
“과연 팽가…….”
웅성웅성.
팽의가 내지른 일 도에, 한순간 좌중에 심상치 않은 술렁임이 일어난다.
섬광(閃光).
이 자리에 있던 이 중 누군가에게 그의 도가 어떠했는지를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섬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허공에서 도광이 한번 번뜩이는가 싶더니, 두껍던 통나무가 너무도 깔끔하게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오호, 저 녀석.”
사무현 또한 팽의의 일도에 짧은 감탄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제법인데?’
아닌 게 아니라 진짜로 제법이다.
통나무가 잘리는 동안 그 위치가 처음에 비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 말은, 힘으로 찍어 누른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정교하게 저 나무를 베어 냈다는 것이다.
‘저거 생각보다 힘든 건데.’
일전에 맞붙었던 백의무복 녀석도 그렇더니, 확실히 정파 놈들은 사파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명문이 괜히 명문은 아니라는 건가?
하지만, 순수하게 감탄하는 사무현과는 달리 천마의 입가에는 비릿한 조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쯧쯧……. 또 드러나지 않는 치졸한 짓거리를 하는구나. 이래서 정파라는 것들은…….”
“응?”
“모르겠느냐? 겉으로는 공평함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 사실 그 누구보다도 ‘팽가’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지 않으냐?”
“…….”
“팽가의 무인들은 모두 팽가의 도법을 펼치기에 최적화된 도를 사용한다. 즉, 저 도에 익숙한 이는 오직 팽가뿐이라는 말이지.”
그제야 천마가 하는 말의 뜻을 이해한 사무현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이런, 젠장. 그딴 치사한 짓거리를……!”
“예? 왜 그러십니까, 형님?”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앞에 봐.”
“……예, 형님.”
조금의 기분 나쁜 기색도 없이 덤덤히 고개를 돌리는 녀석에게 슬쩍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뒤틀리는 배알에 차마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다.
“뭐, 너무 흥분할 것 없다. 애초에 정파라는 것들은, 특히나 세가라는 것들은 원래가 저러니까.”
“…….”
“자신들의 세력과 명성을 키우기 위해서라면 정파답지 못한 짓이라도 서슴지 않게 저지른다. 그것이 자신이 누려온 세가의 뒷배를 계속해서 누릴 수 있는 방법이며, 후손들에게도 자신이 누린 것을 이어줄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지.”
태어난 순간부터 최고의 환경 속에서 최고의 무학을 익힌다.
재능이 있는 이들은 무인으로서 찬란하게 자신의 삶을 꽃피울 것이고, 재능이 없는 이들조차도 재능 있는 사파보다는 월등히 나은 삶을 산다.
그렇게 성장한 이들은 가문에 도움이 되는 이들과 혼약하고 자식을 낳아 더더욱 세가를 번성시킨다.
그것이 바로, 저 구파일방에 필적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오대세가의 본질이다.
‘……하는 짓 하나하나 꼴 보기가 싫네, 진짜.’
가뜩이나 많은 것을 가진 것들이 어찌 사소한 것 하나에서도 우위를 점하려 하는가?
그렇게 사무현이 혀를 차고 있는 사이, 어느새 일곱 번째 도전자가 통나무 하나를 시원스레 날려 먹고 있었다.
휘리리릭.
텅 텅.
“……아.”
“쯧……. 지금 무얼 하는 것이냐? 내가 통나무를 베라고 하였지, 후려치라고 하였느냐?”
“…….”
“멈춰있는 물체를 내려쳐서 베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니……. 쯧쯧, 한심하구나. 자리로 돌아가라!”
팽우적의 외침에, 차마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 사도관도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는 사이, 정도관 측에서는 대놓고 들으라는 듯한 조롱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하, 저것도 재주구만. 어찌 통나무를 저 정도로 날릴 수 있다는 말인가? 누가 보면 봉으로 후려친 줄 알겠군.”
“설마 칼등으로 친 것은 아니겠지? 하하하.”
“너무들 그러지 마시지요. 근본도 없이 겉핥기로만 도를 익힌 사파 놈들에게 대체 뭘 바라겠습니까?”
“이익……!”
어금니를 꽉 깨물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으나 차마 반박하기도 마땅치 않다.
개인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었지만, 통나무를 날려 먹은 것은 그를 포함한 사도관도 둘이 전부였으니까.
결국 말없이 고개를 돌린 그가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턱.
“……형님?”
“왜 말을 못 하냐?”
“……예?”
“대표가 시킨 과한 수련 때문에 하체에 힘을 줄 수 없었다. 어깨와 등, 하복부에 근육이 배겨 매끄럽게 동작을 연결시킬 수 없었다, 왜 말을 못 하냐고?”
들어오는 사도관도의 한쪽 어깨에 손을 얹고는,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정도관도들을 노려보며 묻는 사무현.
이에 잠시 동안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도관도가,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가로젓는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형님 때문이라니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부족함이 문제가 아닙니까?”
“아니, 그러니까…….”
“제 부족함입니다.”
“…….”
“형님께서 시키신 수련을 감당하지 못한 것도 제 부족함입니다. 그러니, 형님 때문이라는 말씀은 하지 마십쇼. 제가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말과 함께,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자리에 앉는 사내.
이에 할 말을 잃고 서 있는 사무현의 귓가로, 키득거리는 정도관도들의 음성이 들려온다.
“낄낄, 연극 하나? 각본이 아주 끝내주는군.”
“크으…….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군. 소위 사파의 의리라는 건가?”
“예끼, 의리는 무슨. 핑계라고 하는 걸세, 핑계.”
아…….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 같다.
진짜 수업이고 나발이고 이것들을 확 다 엎어 버려?
‘……그럴 수는 없지.’
알고 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래서는 안 된다.
사무현 혼자 저것들을 눌러 봐야, 그것은 그저 ‘사파에 괴물 같은 놈 하나가 튀어나왔다’ 정도로 끝날 뿐이다.
저것들의 오만한 콧대를 부수어 버리려면, 자신들이 발아래에 두고 있다고 믿는 사파에게 완전하게 짓밟히는 굴욕과 절망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물론 이 빌어먹을 수업을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이지만,’
훗날의 큰 그림을 위해 최소한의 선은 넘지 않겠지만, 이 분위기를 이대로 넘어갈 만큼 사무현의 성격은 유하지 못하다.
적어도 저것들이 시끄럽게 떠들지는 못하도록, 이곳이 오직 저들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시켜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느새 막 여덟 번째로 나선 정파의 무인 하나가 통나무를 멋들어지게 반으로 가르는 그 순간…….
저벅저벅.
이윽고 사무현의 발걸음이 저들을 향하기 시작했다.
“흐음……. 아직 투박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나이대를 생각해 훌륭한 성취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잘려 나간 나무의 단면적을 지켜보던 팽우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자리로 돌아가도 좋다. 그러면 이번에는 사도관 측에서…….”
“제가 할게요.”
스윽.
“……음?”
어느새 그의 뒤에 삐딱하게 서 있는 사무현의 모습에 팽우적이 두 눈을 치켜뜬다.
“너는 아까…….”
“제가 해도 되나요?”
“…….”
“괜찮죠? 사파니까.”
어차피 사도관을 지목하려 했으니, 그가 나왔어도 상관없지 않냐는 말이다.
‘……상관이야 없기는 하지만.’
어쩐지 저 도전적인 눈빛과 기세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마도 사도관이 연달아 망신을 당한 것에 기분이 상했다는 것이겠지.
그리고 이렇게 나왔다는 것은 자신의 실력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그래 봐야 사파 녀석이지.’
조금 전 도의 본질을 한 마디로 꿰뚫은 그의 대답은 분명 놀라웠다.
하지만 말로만 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태어나는 순간부터 오직 도법만을 위해 수련하는 팽가의 후기지수와는, 살아온 삶 자체가 너무도 다를 수밖에 없다.
“……실력에 자신이 있는가?”
조금은 판을 재미있게 만들어볼 요량으로 팽우적이 질문을 던졌다.
“에이, 자신은요. 그래 봐야 사파의 후기지수지요, 뭐.”
예상외로 스스로를 낮추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러면 그가 생각한 판을 만들 수가 없는……?
“하. 지. 만.”
“…….”
“지금까지 정파라고 으스대며 나온 것들 수준을 보니, 여기서는 자신을 좀 가져도 될 것 같은데요?”
“……뭐라?”
사무현의 오만한 한 마디에, 팽우적의 입가에 어처구니없는 미소가 걸린다.
그저 판을 조금 재미있게 만들어볼 요량이었는데,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판을 벌려 주다니?
“재미있구나. 그러니까 네 말은, 지금까지 나온 정도관 아이들을 포함해 처음 도전했던 팽의라는 아이의 일도(一刀)마저 수준이 낮아 보였다는 말이렷다?”
“예. 바로 그런 말이죠.”
“흐음……. 그래? 그렇다면 놀라운 일이구나. 팽의라는 아이의 실력은 내가 본 후기지수들 중에 손꼽을 정도인데……. 만일 네가 저 아이를 낮잡아 볼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면, 이거 도리어 내가 네게 한 수를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사무현을 추켜세우며 은근히 분위기를 몰아가는 팽우적.
그 순간, 사무현의 입에서 모두의 귀를 의심케 하는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아, 그러실래요, 그럼?”
“……음?”
“저 정도를 대단하다고 생각하실 정도면 차라리 저한테 배우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하! 뭐라고?”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뜻이었을 줄이야.
황당함이 도를 지나치자 화가 나기보다 어처구니없는 실소가 터져 나온다.
‘……생각보다 훨씬 시건방진 녀석이었군.
아무래도 저 시건방은 꺾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소 아픈 매가 되기는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감정대로 입을 놀리면 어찌 되는지 가르쳐 주는 것도, 무림의 선배이자 교관 된 도리일 것인데.
“……정말로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하면, 나와 한번 내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떠냐?”
“내기요?”
“그래. 만일 네가 조금 전 그 팽의라는 아이보다 나은 일 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네 실력을 인정하고 자율적으로 도법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허가해 주마. 즉, 구태여 내게 도를 배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뜻이다.”
“그리고요?”
“하지만 만일 네 말이 단순한 오기에서 비롯된 허언이라면, 그 죄를 물어 앞으로 수업 때마다 열외하여 기합을 받아야 할 것이다. 어떠냐?”
내심 상대가 미끼를 물기를 기다리며 팽우적이 회심의 미소를 머금는다.
하지만, 뒤이어진 사무현의 말에 팽우적의 그 미소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에이, 그래서는 내기의 의미가 없잖아요. 상대가 교관님이라면 모를까.”
“……뭐라?”
“저 팽의인지 뭔지 하는 코찔찔이를 이겨 봐야 의미가 없다구요. 제가 교관님 수업을 안 듣는 조건이라면, 정말로 교관님한테 배울 필요가 없다는 걸 증명해야 의미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지금…… 팽의가 아닌 나와 대결을 하자는 말이냐? 네가?”
“그럼요, 바로 그 뜻이지요.”
“…….”
“……자신 없으세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무현이 천진한 얼굴로 묻자,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고 있던 팽우적의 입꼬리가 씰룩이며 올라간다.
“아니…… 그것참…….”
“…….”
“……아주 재미있는 내기가 되겠구나.”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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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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