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76
076화
“한데…… 내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구나.”
“예? 어떤 거죠?”
“비무라면야 승패가 깔끔히 갈리겠지만, 이런 나무 자르기로는 승패를 논함에 이의가 생길 수 있지 않겠느냐?”
“아,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음……?”
“판결은 교관님께 맡길게요. 다수결이니 뭐니 해 봐야 의미 없는 말싸움밖에 더 나겠어요?”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퉁명스레 이야기하는 사무현의 모습에, 팽우적이 한쪽 눈썹을 꿈틀하더니 이내 냉소를 머금는다.
“……그래?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부정한 판결을 내린다면 어쩌겠느냐?”
“에이, 명성 높은 정파의 무인께서, 그것도 하북팽가라는 명문가의 이름을 등에 업으신 분께서 그런 짓을 하시겠어요? 이렇게 새파란 후배들이 초롱초롱한 눈을 뜨고 보고 있는 데.”
“…….”
“판단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로 애매한 승부면 제가 진 것으로 하지요, 뭐. 그럼 되시겠어요?”
“……큭.”
“…….”
“큭큭큭……. 하하하, 이거 참. 네 눈에는 내가…… 아니, 팽가의 무인이 지나다니는 동네 시정잡배처럼 보였던 모양이구나.”
“…….”
“하아……. 좋다. 까마득한 후배가 이렇게까지 후한 인심을 베푸는데 이 이상 따지는 것도 도리는 아니지. 하나…….”
팽우적의 전신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압감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나는 너처럼 세상 분간 못하고 설치는 애송이들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다. 오늘 네가 말한 것에 스스로 책임을 지지 못한다면, 내 기필코 그 대가를 아주 비싸게 치르게 해 줄 것이야.”
“크으……. 옳은 말씀입니다. 저도 세상 분간 못하고 설치는 애송이들 정말 싫어하거든요.”
뚜드득.
‘……위험하군.’
사무현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을 때마다 팽우적의 인내심이 자꾸만 바닥을 드러낸다.
여기서 조금만 더 말을 섞었다가는 통나무가 아니라 저 빌어먹을 놈의 대가리를 쪼개 버릴지도 모른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천천히 숨을 가다듬은 팽우적이, 쌓여있는 통나무 더미들 중 하나를 골라 맨바닥에 내려둔다.
턱.
“먼저 하겠느냐?”
“에이, 위아래가 있는데 교관님이 먼저 하셔야죠.”
“……그래, 그러도록 하지.”
이제 더 이상의 양보나 체면치레 따위는 없다.
최대한 빨리 저 빌어먹을 놈을 자신의 입맛대로 짓밟아 놓지 않으면, 연무학관 창립 최초로 학관생을 때려잡은 교관으로 남아 버릴지 모른다.
‘……가증스러운 놈. 필시 내 평정심을 흔들기 위해 더욱 입을 놀린 것이렷다?’
무인에게 있어, 특히나 이런 집중력을 요하는 상황에 있어 흥분은 금물이다.
냉정하게, 또 냉정하게.
도객으로서 자신이 이루어온 것을 오롯이 끄집어내야 한다.
‘괜한 뒷말조차 나오지 않도록, 확실한 격의 차를 보여 주마.’
순식간에 냉정해진 얼굴로 정신을 집중하던 팽우적의 일 도가, 이윽고 머리 위에서부터 통나무를 향해 수직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완벽한 정(正).
그렇게, 팽우적의 도신이 통나무의 몸통을 베어 내려간다.
스걱.
“아…….”
“으음…….”
찰나와 같은 순간이었지만, 그 절제된 일 도에서 팽우적의 무위를 실감한 몇몇 신입 관도들이 짧은 탄성을 흘린다.
미세한 흔들림이나 어긋남 없이 오직 수직으로.
심지어 그의 일 도가 얼마나 정교했으면, 이미 베인 통나무는 아직까지도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슥.
투둑.
달그락.
“……이, 이럴 수가!”
“나, 나무가 네 조각으로……!”
매끄러운 나무의 단면적.
단순히 이것뿐이었다면 이 장면을 본 이들도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팽우적은 오래전부터 무림에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고수.
아직 후기지수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그들과는 분명히 넘을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하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단 일 도로 통나무를 네 조각을 만들어 버렸다는 것은, 그들의 상식으로 쉬이 믿기 힘든 결과물이다.
“잘 보았느냐? 이것이 팽가의 도법이다.”
본인 스스로의 성취가 아닌 팽가의 도법을 입에 올린다.
그가 자신의 가문에 얼마나 큰 자긍심을 두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흠…….”
팽우적이 거드름을 피우자, 사무현이 한 손으로 턱 끝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다.
‘……확실히 팽의인지 뭔지 랑은 급이 다르네.’
고작 ‘베는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던 후기지수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도기(刀氣)에도 분명한 도의 이치를 담아내고 있었다.
저만하면 확실히 거드름을 피울 만하다.
물론, 그 대상이 앞에 있는 신입 관도들이라는 전제 하의 얘기겠지만.
‘천마 앞에서 저러면 대가리 박고 있어야지.’
스스로는 완벽하게 베어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무현이 보기에도 아직 투박하다.
저 정도로 거드름 피우고 있는 걸 괴물 새끼나 천마가 보았다면 어떤…….
“하아……. 못 볼 것을 보았구나. 본좌가 살아생전이었다면 다시는 도를 쥘 수 없도록 두 손목을 잘라…….”
……저기까지.
저기까지만 듣자.
정신 건강에 해롭네.
‘그래도 뭐…… 저럴 수 있지.’
생각해보면 저건 팽우적의 잘못이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보는 하늘이 전부일거라 생각할 테니까.
‘그런데 하늘 위에는 또 다른 하늘이 있지.’
천외천(天外天).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비로소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무현은 매일 밤마다 그 사실을 너무도 혹독히 깨닫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사실을 팽우적이 알게 될 것이다.
“네 차례다. 이것은 너와 나의 대결이니, 네 도를 사용해도 좋다.”
“오, 친절하시네요? 굳이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정당한 거지. 나만 손에 익은 도를 쓸 수는 없는 일 아니냐?”
“흐음……. 좋죠. 저도 제 손에 익은 걸 쓰는 편이 나으니까요. 그럼 어디…….”
피식 웃으며, 사무현이 등 뒤에 매고 있던 천마도의 가죽끈을 풀어낸다.
잠시 후 도신을 겹겹이 감싸고 있던 붕대가 풀려나와 바닥에 널브러지자, 심상치 않은 예기를 발하는 천마도의 묵색 도신이 모두의 눈에 들어온다.
“……좋은 도군. 만년한철은 아닐 테고, 묵철인가?”
설마 만년한철로 저렇게 무식하게 큰 도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팽우적의 음성에는 반쯤 확신이 담겨 있었다.
“글쎄요, 지금 그게 뭐 중요한가요?”
“그래, 중요한 게 아니지. 어디 한번 네 일 도를 보여 보거라.”
그 말과 함께 팽우적이 슬쩍 거리를 벌려주자, 어느새 표정을 굳힌 사무현이 천마도를 자신의 머리 위로 치켜든다.
육체와 하나가 된 듯한 부드러운 도의 궤적에 팽우적의 눈에 한순간 이채가 스쳐 지나간다.
‘의외로 기본은 잡혀 있군.’
단순한 준비 동작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저 사무현이라는 녀석이 입만 산 애송이는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내가 괜히 절기까지 사용한 게 아니지.’
조금 전 그가 사용한 일 도는 오호단문도법의 절기 중 하나다.
일 도를 펼치는 순간 도기를 전방의 세 갈래로 퍼뜨리는 호조참격(虎爪斬擊)의 초식.
극성으로 익힌다면 다섯 갈래의 도기가 통나무를 찢어발겨야 했겠지만, 아직 팽우적의 성취는 그 정도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 정도의 절기도 없이 통나무를 여러 토막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물론 단순히 여러 갈래로 찢는 것이라면 어려울 게 없겠지만, 도기를 균등하게 분할해 베어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도기 하나하나에 도의 이치를 싣지 못하면 나무의 단면적이 어찌 될 지는 빤하다.
그렇게 흡족한 미소를 머금으며 사무현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 팽우적.
한편 사무현은 통나무를 앞에 두고 십만대산에서 행했던 자신의 수련을 떠올리고 있었다.
‘참 오래 걸렸지.’
진정으로 ‘벤다’라는 이치를 도에 담게 되기까지.
그 이치를 완벽하게 담아 내지 못하면 나무는 결국 찢어질 뿐이다.
저 나뭇결이라는 것이, 베고자 하는 도의 의지를 계속해서 방해해 버리기 때문이다.
‘쯧쯧……. 이 거칠고 투박한 단면적을 좀 봐라. 이런 식으로 쓸 거면 도(刀)랑 부(斧)가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툭하면 잔소리를 해 대며 그것을 성장의 잣대로 삼는 녀석 때문에, 주위에 널린 나무들을 상대로 셀 수 없이 많은 연습을 해야 했다.
그렇게 상념에 잠겨 있기를 잠시.
이윽고 사무현의 천마도가 천천히, 하지만 너무나도 부드럽게 통나무를 향해 휘둘러졌다.
스걱.
“음……!”
사무현이 보여 준 일 도에, 팽우적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 섞인 침음을 흘린다.
팽가가 추구하는 도법은 패도(敗刀).
호랑이의 그것처럼, 발톱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다 결정적인 한순간에 그 힘을 폭발시킨다.
이는 도라는 무기가 가진 특성을 극한으로 활용한 것.
하지만, 지금 저 사무현이라는 아이의 도는 무언가가 달랐다.
‘……자유롭다.’
그래, 정확히는 얽매여 있지 않다.
힘을 폭발시키기 위해 참아내거나, 한순간에 극한의 속도와 힘을 집중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부드러운 궤도 속에 예기를 담아 냈고, 불필요한 동작과 군더더기가 없으니 빠르지 않음에도 빠르게 느껴진다.
심지어, 그 끝에는 팽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강맹함마저 느껴진다.
‘……놀랍군.’
아니, 솔직하게 말해 등 뒤로 오싹한 소름이 끼칠 정도다.
저건 단순히 재능이나 노력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일 도가 아니다.
여기 있는 후기지수들 중, 지금 저 아이가 보여 준 일 도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눈치챌만한 이가 과연 있을까?
‘하지만…… 그 때문에 안타깝군.’
만약 저 아이가 팽가의 도법을 익혔더라면, 어쩌면 오늘의 승부가 뒤집혔을지도 모른다.
무림강호에는 간혹 나이대에 맞지 않는 무위를 선보이는 천재라는 것들이 심심찮게 튀어나오곤 하니까.
하지만, 상대가 익힌 것은 그래 봐야 사파의 도법.
저 아이가 보여준 도에 대한 이해도와 깊이는 놀랍지만 결국 저 정도가 한계일 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사무현이 베어 낸 통나무가 반으로 갈라져 양옆으로 쓰러진다.
스르륵.
툭.
“……음!”
사무현이 잘라 낸 통나무의 단면적을 확인하는 그 순간, 팽우적의 두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진다.
매끄럽다.
나무가 아닌 철을 잘라 낸 것처럼, 나무의 단면적은 조금의 거침도 없이 매끄럽기 그지없다.
‘어, 어찌 저런 일이……!’
저 나무에만 나뭇결이 존재하지 않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팽우적이 경악하고 있던 그때,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졌던 나무토막들이 다시 한번 형태의 변화를 일으킨다.
달그락.
“뭐…… 뭐라고!”
“저, 저런……!”
이번에는 침음성이 아닌 육성으로 경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는 팽우적뿐 아니라, 이 상황을 지켜보던 후기지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무현이 잘라 냈던 두 토막의 나뭇더미들이 정확하게 각각 반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거기다 심지어……!
‘저, 저 나무의 단면적도……!’
비교할 수 없다.
흡사 도자기의 표면처럼 매끄럽기 그지없는 나뭇결.
이미 이것만으로 보아도 팽우적과 사무현 사이의 격차는 확연하다.
그리고 그 순간, 흔들리는 모두의 눈앞에서 잘려 나간 나무토막에 마지막 변화가 일어났다.
쩌적.
쩌저적.
투두둑. 툭.
“……!”
이번에는 놀라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리고 서서, 경악 어린 얼굴로 나무토막을 바라보고 있을 뿐.
분명 네 등분으로 잘렸다고 생각했던 나무토막들이, 이제는 정확히 여덟 개의 토막으로 나뉘어 정갈하게 맨바닥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매끄러운 단면적을 보란 듯이 드러내면서.
모두의 침묵 속에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던 사무현이, 이윽고 팽우적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교관님, 승부는요?”
“…….”
“……저기요?”
아니, 이 양반이 왜 말이 없어?
답답함에 사무현이 한쪽 손을 들어 팽우적의 어깨를 툭 건드리자, 소스라치게 놀란 듯 그가 불신 어린 눈으로 사무현을 돌아본다.
“왜, 왜 그러느냐!”
“……아니, 승부 선언 안 하실 거예요?”
“스, 승부?”
“예, 승부요.”
“…….”
“교관님이랑 저랑.”
“……아.”
그제야 이것이 승부이자 내기였음을 떠올린 팽우적이, 당황한 얼굴로 다급히 주위를 둘러본다.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떡 벌어진 입과 경악 어린 눈빛들.
조금 전 자신의 모습도 아마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 이…… 스, 승부는…….”
“…….”
“…….”
차마 자신의 입으로 패배를 선언하기 힘들었음일까?
몇 번이나 입술을 떼었다 열었다를 반복하던 팽우적이,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사무현에게서 고개를 돌려 버린다.
“네…… 네 승리다.”
결국,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승부의 결과를 선언하고 마는 팽우적.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정파의 후기지수들을 빙 둘러보며, 사무현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는다.
“공정한 판결 감사합니다. 여윽시, 이래서 사람들이 명문, 명문 하는가 봐요.”
“…….”
“자……. 그럼 저는 아무래도 팽가의 도법을 배우지 않아도 될 것 같으니,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들 열심히 배우시고.”
그렇게 충격을 받은 정파의 후기지수들에게 밝은 미소를 한번 머금어 보이고는, 손을 휘휘 저으며 도법 교장을 빠져나가는 사무현.
그런 그의 뒤로 평소와 다름없는 천마의 음성이 들려온다.
“쯧쯧, 고작 저런 놈 참교육 한번 해 줬다고……. 아주 광대가 하늘로 승천하겠구나.”
……저건 진짜 승천 좀 안 하나?
“뭐, 그래도…….”
난데없이 음색을 바꾼 천마가, 잠시 뜸을 들이다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번에는 제법 잘했다.”
“……뭐?”
얘가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본좌는 피곤하니 이만 들어가 보겠다. 밤에 보도록 하지.”
지가 말해 놓고 지가 쪽팔렸는지, 도망치듯 자리를 이탈해 버리는 천마.
그런 녀석이 사라진 자리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사무현이, 피식 실소를 흘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드디어 칭찬 한 번 해 주네, 새끼.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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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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