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77
077화
“지금 무어라 했는가?”
연무학관 관주, 권존 황보웅.
그는 현재 관주직을 맡은 이래 유래 없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제 실력으로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으니, 도법 교관을 그만두겠습니다.”
“허어…….”
팽우적.
팽가에서 배출한 이름 있는 고수로, 광호섬도라는 별호를 부여받아 강호에 위명을 떨치고 있는 도객이다.
직접 붙어 보지도 않고 호사가들이 정한 순위라고는 하지만, 강호 십대도객에도 그 이름을 올린 인물.
그런 그가 고작 후기지수에 불과한 신입 관도들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에 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말인가?
“……내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군. 이번 신입 관도들의 수준이 그리도 빼어나다는 말인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작년과 재작년의 실력이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평균적인 실력만 놓고 본다면 가르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면 대체 왜 그러는가?”
“…….”
어쩐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술만 질근 깨무는 팽우적.
이에 무언가 일이 있었음을 직감한 권존이 표정을 굳히며 그에게 자리를 권한다.
“우선 앉게. 앉아서 이야기하세.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이야기를 해 줘야 내가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제 입으로는 차마 상세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
“……신입 관도 중 한 아이와 공식적인 대결에서 제가 패했습니다. 제게도 면(面)이 있는데 어찌 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대, 대결에서 패하다니? 설마 신입 관도와 비무를 벌였다는 말인가?”
팽우적의 말에 권존이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교관과 신입 관도의 비무라니!
이는 연무학관에서 여지껏 일어난 적도 없던 일이지만,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심지어 신입 관도가 이겨서는 더더욱 더…….
“비무를 벌인 것은 아닙니다.”
“그, 그렇겠지. 자네가 신입 관도와의 비무에서 패했을 리는 없을 테지.”
일단은 다행이다.
그들이 심혈을 기울여 초빙한 교관이 신입 관도에게 패했다면, 이는 연무학관의 대대적인 망신이 될 테니까.
“물론…… 실전 비무였다면 제가 패했을 것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아무리 천재적인 후기지수라도, 실전 경험이나 내력은 저를 따를 수 없을 테니까요.”
“한데 대체 왜 그만둔다는 건가?”
“제가 그 아이보다 났다고 자신할 만한 것이, 고작 그것뿐이기 때문입니다.”
“……허어.”
덤덤한 팽우적의 대답에, 권존이 할 말을 잃은 듯 긴 한숨을 내쉰다.
비무는 벌이지 않았다.
하지만 팽우적의 반응은 누가 보아도 뼈저린 패배를 당한 무인의 모습이다.
무인으로서 그를 설득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자, 권존은 다른 방향으로 쟁점을 돌렸다.
“……자네의 뜻은 이해하겠네. 하지만 나와 연무학관의 입장도 생각해주어야지 않겠나? 교관으로 지원한 수많은 이들을 두고 자네와 계약을 한 것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책임감 없이 신뢰를 깨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네. 이는 팽가의 이름을 믿은 것이기도 하지.”
팽가의 이름이 거론되자 팽우적의 몸이 순간 흠칫한다.
여기서 그가 신뢰를 저버리면, 팽가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하나…….”
“자자, 아무리 천재라도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일세. 자네가 교관으로서 그런 부분들을 채워 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 아이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에게는 본래의 계획대로 가르쳐 주고 말이지.”
“…….”
“팽가가 아니라면 그 어느 문파가 연무학관의 도법교관을 맡아주겠는가? 학관의 사정도 좀 생각해 주시게.”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결국 마지못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물러나는 팽우적.
공석이 될 뻔한 도법 교관 자리를 가까스로 지켜 낸 권존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문득 떠오른 듯 그의 뒤를 향해 외친다.
“자, 잠깐! 하나만 물어보세.”
“……어떤 것입니까?”
“자네에게 그런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는 후기지수 말일세. 그 아이의 이름이 무엇인가? 팽가의 아이인가?”
호기심보다는, 반쯤 확신이 어려 있는 권존의 음성.
검존의 제자와 무상검제의 직계는 분명 검법 수업을 택했을 것이니, 도법에서 두각을 나타낼 천재라면 분명 하북팽가 출신일 것임을 의심치 않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 사실이 팽우적의 얼굴에 도리어 쓴웃음을 머금게 만들었다.
“……그랬다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스스로가 명문이라는 그늘에 취해 앞을 보지 못하고 있었음을, 평생 모르고 살 수도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게 무슨…….”
“사파의 아이였습니다.”
“……뭐라?”
“사무현이라는 이름을 쓰더군요.”
“……!”
“……이만 가 보겠습니다.”
경악하는 권존의 표정을 굳이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학관주의 집무실을 빠져나오는 팽우적.
잠시 후 홀로 남은 집무실에서 침묵을 지키던 권존이, 곧 침음성을 흘리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앞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라…….”
차마 반박 할 수는 없다.
사도관주와 단아란 고문에게 사무현이라는 아이의 이름을 들었지만, 그는 끝까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식견이 틀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떤 천재라도 그에 걸맞은 환경이 주어지지 않으면 날개를 펼칠 수 없는 법이니까.
이는 그간 길고 긴 무림의 역사가 증명해 온 사실이다.
‘아이들의 성장에 좋은 바람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군.’
바람 한 번 맞지 않고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성장하는 것보다는, 잔잔한 바람이라도 불어 주는 편이 아이들을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물론 그 바람이, 아이들을 뿌리째 꺾어 놓을 만큼 강한 바람이 아니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
“아, 생각할수록 열 받네. 정파 새끼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사무현은 부른 배를 문지르며 사도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한번 콧대를 꺾어 주었으니 된 것 아니냐?”
“그 정도로 콧대가 꺾였겠어? 고작해야 한 놈한테 꺾인 건데. 전체적인 전력으로는 아직도 지들이 우위라고 생각하고 있을걸?”
씩씩거리는 사무현의 말에, 천마가 그럴싸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그렇겠지. 그리고 그건 사실인 부분이 아니냐?”
“사실은 무슨! 서로 무기 들고, 시간제한 없이 제대로 한번 붙어 봐? 내가 그냥 확 마……!”
“학관에서 쫓겨날 각오라면 해 보거라. 다만…….”
“다만?”
“네가 정파놈들을 다 때려잡기 전에, 너를 형님이라 부르는 녀석들도 태반 이상이 당할 건 염두 해 둬야 할 거다.”
“끄으응…….”
천마의 말에 힘이 빠진다는 듯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사무현.
불과 얼마 전까지였다면 ‘사파 놈들 어찌 되든 내 알 바 아니다!’라고 떠들었겠지만, 솔직히 사무현도 사람인지라 더는 사도관의 아우(?)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볼 때마다 형님, 형님 거리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자신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떠받들고 신뢰하는 이들을 어찌 무시할 수가 있겠는가?
“하아…… 약해빠진 것들 때문에 나만 고생이네, 나만.”
“흐음……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제 네가 저것들을 이끄는 입장이 되었음을 받아들이긴 한 모양이구나?”
“뭐, 그래 봐야 육 년이니까.”
천마의 은근한 물음에 사무현이 퉁명스레 대꾸한다.
“어차피 육 년간은 여기에 머물러야 하고, 좋건 싫건 저것들하고 한솥밥 먹으며 부대끼고 살아야 하잖아. 적어도 나를 믿고 따르는 그 육 년간만이라도…….”
……어디 가서 무시 받고 기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서.
굳이 뒷말은 잇지 않았지만, 사무현의 생각을 이해한다는 듯 천마가 말을 잇는다.
“뭐, 너무 걱정 마라. 육체를 단련하는 것은 내공을 쌓는 것과 달리 단기간 내에 성과를 보일 수 있다.”
“그럼 저 정파 놈들 때려잡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글쎄? 그래도 익힌 무학의 수준 차이가 있으니, 일 년 정도는 잡아야…….”
“너무 길어, 그 반의반으로 줄여봐.”
“일 년도 본좌니까 가능한 것이다. 지금껏 쌓아온 것이 있는데 어찌 그 차이를 무시하겠느냐?”
“끄응…… 도저히 방법이 없나?”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사무현이 고심하자, 천마가 다소 은밀한 음성으로 말을 덧붙인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만.”
“……방법이 있어?”
“다만, 이게 좀 들 거다.”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아 붙이는 천마의 모습에, 사무현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돈? 돈이 왜 들어?”
“단기간에 수련의 성과를 극대화시키고 부족한 내력을 증진시키는 방법이 뭐가 있겠느냐?”
“설마…… 영단?”
“그것도 방법 중 하나라는 이야기지.”
“안 돼. 그거 겁나 비싸잖아, 나 돈 없어.”
“뭐가 문제냐? 어차피 네가 강해지려는 것도 아닌데 굳이 네 돈을 쓸 이유도 없지.”
“그럼? 설마 애들한테 걷으라고?”
“그것도 방법의 하나기는 하겠지만…… 여차하면, 돈 많고 말 잘 듣는 놈 하나가 있지 않으냐?”
“누구? 그런 놈이 어디…….”
사무현과 천마가 정신없이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는 그때, 예상치 못한 이들이 사도관으로 향하는 사무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쓰윽.
“오랜만이구나.”
“어……? 선배님들?”
“우릴 기억하는 모양이군. 하면 괜한 드잡이질을 할 필요는 없겠구나.”
일전에 적월이라는 선배와 함께 찾아왔던 이들.
그들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미간을 찌푸리며 사무현이 입을 열었다.
“만패 선배랑 나혼수 선배, 맞죠?”
한 명 한 명을 가리키며 이름을 부르는 사무현의 모습에 천마가 이채를 머금는다.
겨우 한 번, 스치듯이 본 얼굴과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니?
‘이것들이 주위를 얼씬거리고 있었던 것을 인지하고 있었나?’
사무현답지 않은 냉정한 모습에 천마가 감탄사를 흘리려는 그 순간.
“……거꾸로다.”
“……예?”
“…….”
“아…… 그럼 이쪽이 나혼수 선배?”
음…… 헷갈렸네.
뭐, 그럴 수도 있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민망함을 넘기려는 사무현을 향해, 짧게 한숨을 쉰 나혼수가 낮은 음성으로 말을 꺼낸다.
“따라와라. 하남혈귀가 너를 찾는다.”
“예? 하남 누구요?”
“……오십 기 대표, 적월이 너를 찾는다.”
나혼수의 옆에 서 있던 만패가 이해를 돕기 위해 정정하며 말하자, 사무현이 그제야 떠올랐다는 듯 손바닥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아하, 그 선배! 그 선배가 저를 왜요?”
“그거야 당연히……!”
“흥분하지 마라, 나혼수. 눈과 귀가 많다.”
“크…… 크흐음…….”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려는 나혼수의 어깨를 만패가 짚으며 말하자, 가까스로 흥분을 억누른 그가 다시금 낮은 음성으로 말을 잇는다.
“……어떤 볼일인지는 직접 가서 듣도록 하고, 지금 바로 따라오도록 해라.”
“꼭 지금 들어야 돼요? 식사 직후라 좀 피곤한데.”
“……굳이 그 질문에도 대답을 해 주어야 하나?”
나혼수가 날카롭게 두 눈을 번뜩이며 위압적으로 묻자, 사무현이 피식 웃으며 양손을 반쯤 들어 보인다.
“진정하세요, 그냥 물어본 건데.”
“……우린 너와 말장난이나 나누러 온 것이 아니다. 따라와라.”
“예. 그러죠, 뭐.”
저벅 저벅.
나혼수와 만패가 앞장서서 발걸음을 옮기자, 뒷머리를 두어 번 긁적이던 사무현이 짧게 한숨을 내쉬고 그 뒤를 따른다.
“……에이씨, 소화도 안 됐는데.”
“뭐 어떠냐? 식후 운동이나 하며 소화시킨다 생각하면 되지.”
“밥 먹고 움직이면 옆구리 결리는데.”
까드드득.
……이런, 들으셨나 보네.
앞쪽에서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소리에 슬쩍 딴청을 피우며, 저들을 따라 태연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무현이었다.
***
“저건……!”
사무현이 두 명의 선배들을 따라 어디론가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하자, 멀찍이서 그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던 청사가 두 눈을 부릅뜬다.
‘사상신조 나혼수와 흑혈권 만패!’
연무학관의 선배 기수인 저들은, 학관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파에 그 이름을 떨치고 있던 고수들이다.
‘……저것들이 왜 갑자기 저 녀석에게 접근을 한 거지?’
저 사무현이라는 녀석의 반응으로 보아도,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인 듯했다.
서로 예고되어 있던 만남이 아니라면 저것은 필시…….
‘……서열 정리인가.’
비록 한 기수 아래의 후배라고는 하지만, 사파에서 정리되지 않은 서열은 위험을 뜻한다.
오십일 기를 대표하는 저 사무현이라는 녀석을 휘어잡아, 오십일 기 전체가 자신들의 아래에 있음을 분명히 하려는 것일 터.
‘저들의 요구에 맞춰 적당히 숙이면 조용히 넘어갈 수 있겠지만…….’
문제는 저 사무현이라는 녀석이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는 부분에 있다.
‘……보고해야겠군.’
저들이 가는 방향으로 보건데, 관외에서 대화를 할 것이 아니라면 목적지는 한군데뿐이다.
생각을 마친 청사가 음영을 타고 은밀하게 모습을 감추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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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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