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80
080화
“……예? 뭐라고요?”
“영단 말이다, 영단.”
마지못한 듯 대답한 적월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말을 잇는다.
“돈을 모아 영단을 구하려 했다.”
“……먹으면 내력이 증진되는 그 영단이요?”
그럼 뭐, 다른 영단이 있냐?
“……그래.”
“싸구려도 비싸고, 효험이 좋은 건 어어엄청 비싸다는 그 영단?”
“그래, 그 영단이다.”
“그걸 왜요?”
“왜냐니? 당연히 그걸 사려고…….”
“그러니까, 사서 누굴 먹이려고 돈을 모으고 있냐고요.”
“어…… 그거야…….”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무는 적월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반쯤 고개를 꺾으며 사무현이 팔짱을 낀다.
정의로운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결국 제 잇속 채우기였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게 아니긴 개뿔…… 결국 다 지 배 속으로 들어갈 거였네.”
“내, 내 배 속이라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그럼 단전 속?”
“그렇지, 단전…… 그게 아니라!”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흥분한 적월이 씩씩 거리며 억울함을 항변했다.
“내가 나 좋자고 영단을 취하려던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요?”
“사도관! 무너져 가는 사도관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였다!”
“……사도관을 일으켜 세운다고요?”
……선배가? 영단으로?
세상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다들어 본다는 사무현의 얼굴에, 끄응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주저앉은 적월이 다 내려놓은 듯 입을 열었다.
“도월검(道越劍) 허량(許量).”
“…….”
“정도관의 오십 기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지. 정도관에는 대표라는 게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만…….”
“아, 걔들은 대표가 없어요?”
“……몰랐느냐? 대표를 만들기 시작한 건 사도관이다. 정도관은 정해진 규율 내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지.”
아하, 어쩐지.
걔들은 싸울 때 명령 내리는 놈이 따로 없더라니.
“대표는 따로 없지만, 그래도 어느 집단에나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지. 도월검 허량이 바로 그런 녀석이다……. 내 호적수이기도 하지.”
마지막 한 마디는 어쩐지 많은 감정이 담겨있는 듯했다.
하지만 사무현의 반응은 시큰둥하기 그지없었다.
“정도관 오십 기는 별거 없나 보네.”
“뭐라고?”
“아니에요? 딱 까놓고 말해서, 정도관 오십일 기 중에도 선배랑 맞붙을 만한 녀석들은 몇 있어 보이던데?”
“…….”
사무현의 말에 차마 반박을 하지 못하던 적월이, 결국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하아……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한때 도월검과의 승부에서 이겼던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 한때가 언제인데요?”
“연무학관에 들어오기 전, 도월검이 막 약관의 나이에 들어섰을 때의 일이다.”
사뭇 진지한 저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요?”
“그 덕분에 나는 학관에 입관했을 때부터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무너져 가는 사도관을 일으켜 세우고 정도관을 위협할 인재라고 말이야. 내 아버지이신 사도관주님도 마찬가지셨고…….”
“예? 사도관주님이 선배 아버지라고요? 진짜?”
놀란 사무현이 적월의 설명을 끊고 묻자, 적월이 도리어 두 눈썹을 추켜올린다.
“몰랐느냐? 오십 기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오십 기랑 오십일 기랑 대면을 해 봤어야 알지요, 이 사람아.
뭐, 아무튼.
“흠흠, 아무튼 그래서요? 계속 해 보세요.”
“……나와 녀석은, 연무학관에 입관한 지 삼 년만에 공식적인 자리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삼 년에 한 번 개최되는 연무학관 비무 대회 때의 일이었지.”
“이겼어요?”
“졌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그랬겠지.
만약 비무에서 이겼다면 영단이니 뭐니 필요하다고 나서지도 않았을 테니.
“지난 수십 년간, 비무 대회에서 사파가 두각을 나타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사파의 운명은 언제나, 정파의 유망한 후기지수들의 명성을 드높이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기 위한 제물에 불과했지.”
“…….”
“그 굴레를 내 대에는 끊어 내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사파의 천재가 무당의 후기지수에게 무릎을 꿇으며, 호사가들에게 좋은 이야깃거리 하나를 만들어 주고 말았다.”
적월의 설명을 들으며 사무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권선징악을 좋아하기 마련이니까.
자신들이 선이라 믿고 있는 정파의 후기지수가, 악이라 믿고 있는 사파의 후기지수를 무찌르는 이야기.
이럴 때는 그 악이 강하면 강할수록 좋고, 그 내용이 극적이면 극적일수록 좋다.
연무학관 입관 전에 사파의 천재에게 패했던 무당의 후기지수가, 시간이 흘러 성장해 그에게 패배를 되 값아 주었다?
영웅 이야기를 만들기에 이만한 이야깃거리가 또 있으랴.
“내가 졸업을 하기 전, 다시 한번 비무 대회가 있을 것이다. 거기서 나는 녀석과 한 번 더 맞붙게 되겠지. 만약 그때도 내가 녀석에게 맥없이 패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제물이네요. 무당의 유망한 후기지수를 빛내 주기 위한.”
“그리고 사도관은 결코 정도관을 넘을 수 없다는 굴레를 영영 벗어버릴 수 없겠지. 난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느새 어두워진 적월의 얼굴에,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사무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영단이 필요한 거였군요? 그놈한테 또 질 수는 없으니까.”
“그래, 바로 그것이다.”
“흠……. 뭐, 이유는 알았네요. 그래서, 얼마나 모았는데요?”
“……어?”
“얼마나 모았냐고요, 돈. 선배들도 나름대로 모은 돈이 있을 거 아니에요?”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사무현의 눈에, 대답을 해도 되는지 망설이던 적월이 결국 마지못한 듯 입을 열었다.
“……은자 다섯 냥이다.”
“……고작요?”
“고작이라니! 은자 다섯 냥이면 철전 오백 냥! 양민 가정의 다섯 달치 식량을 살 수 있는……!”
“나더러는 매달 은자 열 냥을 만들어 내라며?”
어느새 말끝이 짧아진 사무현의 물음에, 식은땀을 삐질 흘린 적월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다.
“……너희 기수에는 잘 사는 놈이 있지 않느냐.”
“아하, 그래서 나더러 그 놈 삥을 뜯어다 바치라고 했다?”
“…….”
“에라!”
쾅!
냅다 정수리를 내려찍는 사무현의 주먹에,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것을 느끼며 적월이 바닥에 엎어진다.
털썩.
“……!”
“어디서 기초도 덜 닦아 놓고 요령만 부리면서 영단을 찾아? 그것도 제 능력도 아닌 남의 능력을 빌어서!”
“끄으으……!”
“부족한 것 투성이인 양반이, 노력으로 부족한 걸 채울 생각은 안하고 영단부터 찾네. 그거 먹어 봐야 나아질 것 하나 없겠구만. 쯧…….”
말을 마친 사무현이 미련 없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자,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와중에도 적월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자…… 잠깐……! 그,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예요. 내공이 제 역할을 하려면 기초부터 제대로 닦으라고요, 기초부터.”
“…….”
“그나마 강해지려는 의도가 생각보다 덜 불순해서 여기까지만 하는 줄 아세요.”
사도관주라는 뒷배가 무서웠던 것은 절대로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 말을 마친 사무현이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사명관을 나서자, 필사적으로 의식을 부여잡고 있던 적월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저벅 저벅.
“웬일이냐? 널 습격한 녀석을 저쯤에서 내버려 두고.”
사명관에서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천마가 의아하다는 듯 질문을 던져 왔다.
“네놈 성격에 반신불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살려 달라는 곡소리는 나오게 할 줄 알았는데.”
“아니, 뭐…… 생각보다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아서.”
“나쁜 놈은 아니다? 널 습격했는데 말이냐?”
“선배들 모두, 진검도 아니고 목검만 들고 있었잖아. 그리고 그 적월이라는 양반도 마지막까지 살초는 쓰지 않았어.”
물론, 기습으로 배 찌른 걸 제외하면 말이다.
“뭐…… 그거야 그렇다만…….”
그래도 사무현의 식사를 한 번 방해했던 막휘가 기절할 때까지 두들겨 맞은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상당히 유했던 손속이 아닐 수 없다.
‘……더 패고 싶은 생각이 들어야 말이지.’
천마에게 둘러대듯 말하긴 했지만, 사무현이 여기까지만 한 가장 큰 이유는 저 적월의 심정이 꽤나 절실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한 집단을 이끄는 대표로서,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올라선 무대에 처참하게 패하고 말았다.
자신이 노력하며 이룬 모든 것이 숙적이나 다름없는 이를 빛나게 해 주는 역할에서 그칠 뿐이라면, 사무현 또한 그 운명을 벗어던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괜히 기분이 좀 그렇네.’
남은 찜찜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사무현은 이내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그 영단인지 뭔지가 그렇게 도움이 되나? 정파랑 사파의 차이를 메울 수 있을 만큼.”
“영단의 질에 따라 차이가 조금 있겠지만…… 너처럼 일정 수위 이상의 내공을 지닌 이들한테는 큰 효과가 없다. 연못에 물 한 바가지를 더 붓는다고 차이가 있을리 없으니까. 아마 그 적월이라는 녀석도, 어지간히 좋은 영단이 아니면 취하는 의미가 없을 거다.”
“흐음…… 그럼, 우리 애들은?”
“살암이라는 녀석을 제외하면 상당히 효과가 있겠지. 다른 녀석들의 내공은, 기껏 해 봐야 작은 물웅덩이에 불과하니까.”
……그 정도로 효과가 있다고?
‘그럼 마교에서 가져온 영단을 애들한테 한번 먹여 볼……. 에라, 그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고!’
그건 안 되지, 그건!
나중에 팔아서 내 밑천이 되어 주어야 할 물건인데!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잡념을 날려 버리며 사명관을 나서려는 그때, 문득 느껴진 인기척에 사무현이 고개를 돌린다.
“아, 깜빡 잊을 뻔했네. 너 일루 나와.”
“…….”
“뒈지기 싫으면 셋 셀 때까지 나와라. 하나, 둘.”
“나, 나간다! 여기 나가고 있다!”
빠른 속도로 사무현이 손을 접어 가자, 사명관의 입구 근처의 음영진 곳에서 한 사람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낸다.
살암이었다.
“뭔데 멀뚱멀뚱 구경만 하고 있었냐?”
“어…… 어?”
“…….”
“언제부터…… 알고 있었지?”
살암은 당황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그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청사에게 사무현을 살피라고 명을 내린 지 꼭 하루 만에 저 ‘선배’라는 놈들은 행동을 개시했다.
사명관으로 향했다는 청사의 보고에, 살암은 아무도 따르지 말라 명한 후 사명관으로 향했다.
위기에 빠진 그를 구해 준 은혜는 가급적 그 한 명에게만 집중되는 편이 좋을 테니까.
하지만, 막상 사명관에 도착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말 그대로 닭장 안에 늑대처럼 날뛰는 사무현의 모습이었다.
‘이히히, 아무도 나갈 생각 하지마! 오늘 날 잡았어! 선배고 나발이고 아주 다 뒈져 버려!’
‘귀, 귀신같은 놈……! 으아악!’
‘뭐? 귀신? 이것들이 산 사람한테 귀신이라고 하네? 귀신이 뭔지 진짜 한번 보여 줘?’
‘사, 살려…… 꿰애액!’
……도움 따위는 필요가 없을 정도로 혼자 난장판을 만들고 있는데, 그가 끼어들 틈이 있었겠는가?
결국 상황이나 조금 더 지켜보자는 생각에 기척을 감추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부터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식은땀을 흘리는 살암의 모습에 사무현이 삐딱한 미소를 머금는다.
“아하, 그러니까 일부러 몰래 숨어 있던 건 맞나 보네?”
“어……?”
“난 또, 도우러 왔다가 끼어들 틈을 못 찾아서 지켜보고 있는 줄 알았지. 애초에 도우러 온 게 아니었구만?”
“무, 무슨 말을! 도우러 온 것이 맞다!”
“그럼 왜 몰래 숨어 있었는데?”
“그, 그야…….”
“…….”
“도우러 왔다가 끼어들 틈을 못 찾아서…….”
“에라!”
뻥!
“끄억!”
발길질 한 번으로 살암을 날려 버린 사무현이 미간을 있는 대로 구기며 말을 잇는다.
“이게 누굴 호구로 보나, 미끼로 툭 하니 던진 걸 그대로 가져다 쓰네!”
“사, 사실인 것을 어쩌란 말이냐?”
“사실이면 왜 내가 나올 때까지 기척을 감췄는데? 싸움은 진작에 끝났는데.”
“그, 그야…….”
……혹시나 위험한 순간이 오면 그때 나오려 했다고 해도, 믿어 주지 않겠지?
결국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쭈뼛거리는 살암을 가만히 바라보던 사무현이, 으르렁거리듯 말을 내뱉는다.
“조심해라 너. 수작부리다 걸리면 그냥, 콱!”
“수, 수작이라니! 난 정말로 너를 돕고 싶어서 온 것이다!”
“돕기는 누가 누굴 도와? 약해 빠진 게.”
“야, 약해 빠져?”
사무현의 신랄한 평가에 입을 떡 벌리는 살암.
그 나이대에 그가 약하다면 강한 놈은 대체 얼마나 되겠느냐 싶지만, 거의 일방적으로 그를 몰아붙인 장본인의 말이니 반박하기도 마땅치 않다.
“말 나왔으니 말인데, 자꾸 부하 놈 시켜서 내 주위 알짱거리는 것도 거슬리니까 조심해라. 그러다 너나 그 새끼나 한번 제대로 날 잡는다.”
“그, 그건 도울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살펴보라 시킨 것이다!”
“도움은 무슨, 아까도 말했지만 네가 날 도울 게 뭐가 있냐?”
“어째서 없다고 단언하느냐? 물론 네가 나보다 강하다고는 해도 내가 명색에 암천막의 후계자…….”
“아, 예예. 잘 알겠으니까, 네 자랑은 너네 동네에서 하시……. 잠깐만.”
귀찮다는 듯한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하던 중,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발걸음을 멈춘 사무현이 살암을 돌아본다.
“야. 너 돈 많지?”
“……어?”
“너 있는 집 후계자라며? 그럼 돈 많을 거 아니야.”
“어…… 그야…….”
“…….”
“없지는…… 않겠지……?”
“그으래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살암의 값비싸 보이는 장신구들을 훑어보며 흡족한 미소를 머금는 사무현.
그 탐욕스러운 눈빛과 미소에 살암은 생각했다.
어쩌면…… 괜한 말을 꺼낸 건지도 모르겠다고.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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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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