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81
081화
“……영단을 구해 달라고?”
웬일로 자신의 숙소까지 찾아온 사무현의 부탁에, 살암이 두 눈썹을 추켜올리며 물었다.
“갑자기 영단은 왜…….”
“에헤이! 내가 언제 구해 달라고 했어?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아, 사 달라고 했던가?”
“그렇지, 바로 그거지.”
혹시 모를 오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듯 사무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살암의 얼굴에 황당함이 맴돈다.
다짜고짜 친한 척 하며 그의 숙소에 들어오더니 한다는 소리가, 뭐?
‘누가 보면 영단이 굴러다니는 약초인 줄 알겠네.’
영초나 내단 따위에 자연스럽게 머금어진 영기를 기반으로, 특수한 제조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게 영단이다.
물론 다소 질이 떨어지는 하급 영단과 중급 영단의 경우 돈으로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사무현이나 살암과 같이 절정에 오른 고수들이 효험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영단이라면, 이름 있는 문파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최상급 영단 정도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물건은 시중에 거의 유통되지도 않을뿐더러, 어쩌다 물건을 찾더라도 부르는게 값이다.
“……미안하지만 그건 어렵겠군. 영단이란, 그렇게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뭐야, 너도 못 구해?”
“물론이다. 물론 이곳이 암천막이라면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 스승님께 특별히 부탁드리거나 믿을 만한 수하를 시켜 알아보게 한다면…….”
“뭐야, 대단한 척하더니. 괜히 기대했잖아?”
살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련은 없다는 듯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등을 돌리는 사무현.
이에 더더욱 큰 황당함을 느낀 살암이 다급히 그의 뒤에 대고 말을 잇는다.
“잠깐! 영단은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쉽게 구할 수가…….”
“구하기 어렵기는? 돈 주고 사면 된다더만.”
“물론 하급 영단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네가 효험을 볼 만한 최상급 영단이라고 한다면…….”
“…….”
“……설마, 구하려는 게 하급 영단이냐?”
어쩐지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무현의 모습에 살암이 반신반의하며 묻자, 사무현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의리가 있다고 저것들한테 좋은 영단을 먹이겠어?”
“저것들?”
“…….”
“설마…… 지금 하급 영단을 구해서 관도들에게 돌리겠다는……?”
“아, 내가 말 안 했던가?”
뻔뻔스런 사무현의 물음에 살암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다짜고짜 실실 웃으며 ‘야, 영단 좀 사 주라.’ 라고 툭 던져 놓고는 이제 와서 무슨 모르는 척이라는 말인가?
‘……말렸군.’
자신도 모르게 하급 영단은 구할 수 있다고 말을 내뱉어 버렸으니……. 여기서 구해 주지 않으면 결국 살암 자신이 무능력한 게 되어버리고 만다.
‘물론 하급 영단 몇 개 정도라면 어려울 게 없지만…….’
살암은 암천막의 후계자다.
당장 이곳 악양에만 해도 암천막의 관리를 받고 있는 상회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살암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을 통해 영단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는 무리다.”
문제는 숫자다.
“사도관도의 수는 어림잡아 백 명이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하급영단을 백 개씩이나 유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 돈이 없어? 부족해?”
“돈은 문제가 아니다.”
자꾸만 슬슬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무현의 어투에 휘말리지 않으려 애쓰며 살암이 말을 이었다.
“물건도 결국 시중에 유통되는 것들을 구할 수 있는 거다. 영단이라는 게 한 번에 많은 양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보니, 단기간에 그만한 수의 영단을 확보하는 것은 무리다.”
“그럼 얼마나 구할 수 있는데?”
“상회에 연락을 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내 짐작컨대, 많이 구해 봐야 서른 개 안팎이다. 물론 기간이 늘어나면 더 구할 수도 있겠지만…….”
“서른 개라…….”
사무현이 이끄는 오십일 기 관도의 숫자는 대략 백 명.
서른 개로는 턱도 없이 모자르다.
“……괜히 더 구할 수 있는데도 못 구한다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 고작 하급 영단을 구하는 건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래 봬도 난 암천막의 후계자니까.”
“그 암천막인지 뭔지 하는 끝발이 여기서도 먹혀야 말이지.”
자기 동네에서 힘자랑 하는 거야 누가 못 해?
그렇게 사무현이 영 미덥지 못하다는 듯 중얼거리자, 살암이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입을 연다.
“어이가 없군. 그렇게 미덥지 못하면 네가 나와 함께 가 보면 되는 것 아니냐?”
“뭐? 너랑 같이?”
“그래. 아무래도 네가 암천막이라는 이름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직접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오호라, 꽤 쎄게 나오네?”
“말이 나왔으니 잘 되었다. 내일 석식을 마친 후에 관주님께 외출증을 부탁드리도록 하지.”
“뭐…… 그러시든가.”
살암의 대답에 퉁명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사무현과, 그런 사무현의 모습에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 젓는 살암.
하지만 이들은 겉모습과는 달리 서로 전혀 다른 계산에 빠져 있었다.
‘자존심 슬쩍 긁으니 바로 반응 오네? 쯧쯧, 저렇게 단순해 가지고 암천막인지 뭔지 이어받을 수나 있겠나?’
‘흥, 계획에 넘어갔다고 좋아하고 있겠지? 차라리 잘 되었다. 네게 암천막의 이름을 얻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보여 줄 좋은 기회가 되었으니.’
그렇게 서로를 향한 다른 생각을 머릿속에 품은 채, 그들은 남몰래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
“지나치게 신경을 써 주는 것이 아니냐?”
살암과의 만남을 마친 사무현이 숙소로 돌아오기 무섭게 천마가 입을 열었다.
“아침수련을 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영단까지 챙겨 줄 필요는…….”
“시끄럽네, 언제는 애들 키워 두면 써먹을 일이 있을 거라며?”
“연무학관을 졸업한 이후에도 네게 충성을 다할 녀석들이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그딴 건 나도 필요 없어.”
사무현의 단호한 음성에 천마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뭐라?”
“몇 번을 말하냐? 어차피 연무학관 졸업하고 나면 난 무림에 관심 끌 거라니까? 쟤들이 연무학관 졸업하고 나한테 충성을 다하건 말건 내가 알 바 아니지.”
“하면 더더욱 이해가 안가는구나. 무슨 꿍꿍이로 저것들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는 것이냐? 네게 얼마 도움도 안 되는 것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 꺾으며 물어오는 천마.
하기야, 녀석 딴에는 이해가 안갈 만도 하다.
인간이 가지는 오욕칠정을 이해하는 녀석이라면 애초에 천마가 되었을 리도 없지!
‘나보고 형님, 형님 거리는 것들이 눈앞에서 무시당하며 사는 걸 어떻게 그냥 넘겨?’
물론 녀석들은 사파다.
지금까지 사무현과는 다른 삶을 살아왔고, 학관을 졸업한 이후에도 분명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어디 가서 칼받이나 하다 뒈지게 하진 말아야지.’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저들 또한 사무현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것을.
‘나도 이 녀석을 안 만났다면…… 아마 별다를 바 없었겠지.’
아마 거지나 산적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실제로 귀신이 들려 집에서 쫓겨난 후, 사무현이 살았던 삶이 그러했으니까.
‘거지들의 텃세에도 살기 위해 동냥을 했고, 눈앞에 먹을 게 있으면 목숨을 걸고 훔쳤지.’
그와 저들의 다른 점은, 기회를 만났는가 만나지 못했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어차피 인연이 맺어진 이상, 저들에게 그 ‘기회’라는 것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게 사무현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물론…… 생각만 해도 열받는 저 정파 새끼들을 밟아 놓은 뒤의 이야기겠지만.
“……어차피 전쟁은 시작됐어.”
“……음?”
“그 빌어먹을 새끼들이 ‘나’를 건드린 이상! 나한테 ‘전쟁’을 선포한 이상! 둘 중 하나가 확실히 박살 나야 끝나는 거다!”
두 눈을 희번득이며 사무현이 광기 어린 음성으로 소리치자, 기세에서 밀린 천마가 자신도 모르게 주춤 물러선다.
“아니…… 고작 약 좀 올린 거 가지고…….”
“고작 약 조오옴?”
“그렇지 않느냐? 네가 그놈들한테 당한 것도 아닌데 너무…….”
“야, 천마야.”
“…….”
“입장을 바꿔서 한번 생각해 보자. 네가 살아생전에 제일 싫어하던 새끼들이 누구였지?”
사무현의 물음에 천마가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당연히 중원 정파 놈들이지! 특히나 소림이 가장 역겨웠다, 스스로 지키지도 못할 불살(不殺)이니 뭐니를 입에 달며 고고한 척만 다 해대는……!”
“그래, 그런데 그 놈들이 ‘마교 따위’는 한주먹 거리도 안 된다며 거들먹거리는 꼴을 본다면?”
“말이라고 하느냐? 당연히 그 빡빡이 새끼들 대가리를 박 쪼개듯이 쪼개어……!”
……어우, 이 새끼 너무 흥분했네.
조금 전까지는 내 행동을 이해 못하겠다며 설치던 놈이.
“내가 딱, 그 심정이다!”
“하면 뭐 하러 그것들을 훈련 시키며 시간을 쓰느냐? 당장 천마도를 들고 나서거라! 저 잡것들을 모조리 쓸어…….”
“……여기 연무학관이야, 이 새끼야.”
이게 창창한 나이에 누굴 무림 공적으로 만들려 하나.
“……이곳에는 이곳의 규칙이 있고,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놈들이 주장하는 게 뭔데? ‘내가 약하다’가 아니라 ‘사파’가 약하다는 거잖아. 그럼 나 혼자 백날 설쳐서 이겨 봐야 의미가 없지.”
“음…….”
“평소에 그렇게 무시하던 사파 놈들한테 콧대가 부러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앞으로 학관 생활을 하는 동안 사파의 사 자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게 만들어 준다! 그게 바로 내 목표다!”
“크으…… 훌륭하구나!”
야심 찬 포부가 느껴지는 사무현의 다짐에 만족했는지 천마가 박수까지 쳐 대며 고개를 끄덕인다.
“본좌의 유일한 전승자라면 그 정도 그릇은 되어야지! 좋다! 너의 각오를 알았으니 본좌도 머리를 굴려보도록 하지. 어떻게 하면 저것들이 정파 놈들을 찜쪄 먹을 수 있을 만큼 강해질지!”
음…… 저 놈이 저렇게까지 의욕적이니까 도리어 이쪽이 불안해진다.
너는 머리를 굴리는 거지만, 몸으로 구르는 건 우리 애들이잖아…….
‘아, 내가 구르는 건 아니니 상관없나?’
하기야, 생각해 보면 나도 십만대산에서 그렇게 굴렀으니 이 정도지…….
내 한 몸 편하게 살아왔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는가?
뒈져도 한 대는 갈겨 보고 뒈진다는 마음은 못 먹더라도, 차라리 뒈지는 게 편하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는 굴려 야지.
“아주 오랜만에…….”
천마의 말을 곰곰이 되짚던 사무현이, 이윽고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그의 얼굴을 응시한다.
“……너와 내 생각이 일치하는구나.”
그렇게, 오십일 기 사도관도들에게 실로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는 순간이었다.
***
“크으…… 이게 얼마 만에 맡아보는 바깥공기냐.”
동정호를 타고 머리칼을 간지럽히는 밤바람을 맞으며 사무현이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외출증이라니. 이렇게 좋은 게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좀 써먹을걸.”
“아무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외출증이 아니다. 신입 관도라면 더더욱 그렇지. 그러니 소막주님께 감사를…….”
“너, 전에 좀 덜 맞았냐?”
연무학관을 나서기 무섭게 성질을 긁어대는 청사를 향해, 사무현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 게 두 번인데, 슬슬 그만 봐도 꼬리를 말아야 정상이 아닌가?
“굳이 삼세번을 채우겠다면 내가 말리진 않을게. 근데, 기왕 할 거면 아주 제대로 까불어라. 그날이 네 삶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
“접수됐지?”
사무현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진심이 느껴졌는지 청사가 슬그머니 그의 시선을 회피하며 입을 다문다.
어? 뭐야, 조용해지네?
……괜히 경고했나? 그냥 행동으로 보여 줄걸.
그렇게 사무현이 아쉬운 입맛을 다시자, 쓴웃음을 머금고 있던 살암이 청사를 구하기 위해 명을 내린다.
“쓸데없는 대화는 줄이고, 앞장서거라.”
“존명.”
언제 그랬냐는 듯 절도 있는 포권을 해 보인 청사가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긴다.
그의 뒤를 따르는 사이 살암과 사무현은 수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혹시 처음부터 영단을 생각하고 그 무식한 육체 단련만 시켰던 것이냐?”
“그럴 리가. 영단은 그 적월이라는 선배 때문에 생각해 낸 거고.”
“하면, 앞으로도 계속 육체 단련만 시킬 생각이냐?”
오늘 보니, 애들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데?
그리고 사실 체면을 생각해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는 것이지, 살암 또한 요 며칠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력만 쓸 수 있으면 저까짓 수련이 대수겠냐만, 조금만 내력을 끌어 올리려 하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개수를 추가하니 더 시도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아, 그건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서.”
“뭐라고?”
“그런 게 있어. 아, 그렇지 않아도 영단 말고 부탁할 게 하나 더 있는데…….”
“또 뭐냐?”
“사낭만 가지고는 육체 단련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 조금 더 효율적인 수련 도구를 좀 만들고 싶은데.”
“수련도구? 대체 어떤 물건을 만들 셈이냐?”
“그게 말이지…….”
어젯밤 천마가 이야기한 수련 도구를 설명하며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앞장서서 걷던 청사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도착했습니다.”
“수고했다. 넌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해라.”
“존명.”
“오, 여기야? 어째 한번 와 본 것 같은…….”
이상하게 낯이 익은 건물의 모습과 풍경에 사무현이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 으리으리한 대문에 걸려 있는 현판이 사무현의 눈에 들어온다.
“……씨팔, 여기였어?”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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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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