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84
084화
“흠!”
퍼엉!
사무현의 주먹이 허공을 향해 뻗어지며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일체의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동작.
그 주먹이 부드럽게 회수됨과 동시에, 조금 전 사무현의 주먹이 놓여 있던 자리를 섬광 같은 일 각이 꿰뚫는다.
스팍!
조금 전 과는 달리, 공기가 무언가에 의해 베이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의 조화.
내뻗은 발을 원래의 자리로 되돌린 사무현이 자세를 바로 하자, 그의 옆에서 나직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허어……. 시주의 성취는 정말이지 놀랍구려. 그만한 속도의 권각을 펼치면서도 중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으니……. 한평생 육체를 단련해 온 본사의 무술승들에게도 이는 쉽지 않은 일이오.”
진심 어린 감탄이 전해지는 체술 교관 혜명의 음성에 사무현이 멋쩍은 미소를 머금으며 뒷머리를 긁적인다.
“에이, 뭘요. 다 잘 가르쳐 주셔서 그런 거지.”
“허허, 어찌 이것이 가르쳐서 되는 일이겠소? 그간 시주가 쌓아온 노력의 성과인 게지요.”
혜명의 말은 진심이었다.
다른 모든 무공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소림의 체술은 유독 꿋꿋이 쌓아 온 기초와 노력이 밑바탕 되어야만 그 진가를 펼칠 수 있다.
소림에 입문한 순간부터 가장 중시하는 가르침은 부동(不動).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수행법이 마보일 만큼, 그들이 펼치는 모든 체술에는 굳건하고 강인한 육체가 그 중심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무현의 육체는 소림의 체술을 익히기에 더없이 최적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금강불괴의 육체에, 저 무식한 천마도를 들고 십만대산을 뛰어다니며 매일 같이 수련을 해 댔으니…….
“흐음……. 그나저나, 이거 실로 난감한 일이오.”
“예? 난감하다니, 뭐가요?”
“본래 소림의 체술은 그리 많은 초식이 존재하지 않소이다. 강조하는 것은 초식의 깊이, 그것을 위한 끊임없는 단련이지요.”
“…….”
“한데 시주께서는 체술 수업을 몇 번 듣지도 않고 그만한 성취를 보이고 계시니……. 허허, 본승이 남은 시간 동안 대체 무엇을 더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에이, 무학(武學)에 끝이 어디 있겠습니까? 단순한 정권이라도 십만 번, 백만 번, 계속 쌓아 가며 단련하는 거죠.”
“허어, 지극히 정론(正論)이외다.”
사무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감탄사를 터뜨리며 혜명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시주를 볼 때면 늘 스스로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되는군요. 아미타불……. 교관으로서 앞에 서 있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합장을 해 보이며 이야기하는 혜명의 모습에 사무현이 멋쩍은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학관생들의 눈에는 상반된 감정의 빛이 어려 있었다.
‘형님이 소림 교관에게 인정 받으셨다.’
‘강호의 북두라는 소림이 형님을……? 크으……. 빛난다, 빛나.’
‘어디 계십니까? 형님. 제 눈에는 그저 스님 한 분과 빛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나같이 자랑스러움과 선망의 눈을 보내는 사도관도들과 달리, 정도관도들의 얼굴에는 껄끄러움과 복잡한 신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소림의 승려라는 분이 사파를 칭찬하시다니?’
‘말세로다, 말세야.’
‘저분 소림 아닌 거 아니야?’
합리적인 의심과 떨떠름한 저들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사무현에게 합장을 한번 해 보인 혜명이 그들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혜명과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정도관도들은 다급히 시선을 회피하며 딴청을 부렸다.
“크…… 크흠…….”
“으음…….”
“……아미타불.”
다급히 고개를 돌렸다고는 하나 어찌 저들의 얼굴에 서린 불편한 기색을 읽지 못했겠는가?
나직한 한숨과 함께 불호를 읊조리며 혜명이 눈을 감는다.
‘……너무도 골이 깊구나.’
혜명 또한 소림의 불자인 신분.
정파보다는 사파 쪽에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살생이라는 것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 것이 무림인이라지만, 대외적인 체면 때문에라도 살생을 자제하는 정파와는 달리 사파는 자신들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때로는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르곤 하니까.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곳은 연무학관이다.’
연무학관의 취지가 무엇인가?
육 년의 시간 동안 정과 사가 함께 어우러져 모두가 같은 중원의 무림인임을 기억한다.
그 때문에 교관으로서 학관생들을 가르침에 있어, 정과 사에 구분을 두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하는 혜명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노력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 주듯, 사파에도 정파 못지않은 무인들이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아 가고 있는 혜명이다.
‘기회가 없던 자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정도를 걷는 이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일 것인데…….’
하지만 사파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가 저들의 눈을 가리고 여유를 앗아갔다.
그 증거로, 정파를 칭찬할 때는 사파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그 반대가 되었을 때는 정파 쪽에서 분명한 반발이 느껴지지 않는가?
‘어렵구나…….’
인간의 본성은 비슷하다.
그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는지, 기회라는 것이 찾아왔는지 찾아오지 못했는지에 따라 현재의 모습을 결정지은 것일 뿐.
마음속에 깃든 고뇌를 지우기 위해 머리를 흔드는 혜명의 귓가로, 사무현의 음성이 찾아 들었다.
“그런데요, 교관님.”
“말씀하시오, 시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지도 비무 수업은 뭔가요?”
“아…….”
“다른 수업들은 벌써 네 번 이상씩은 들었는데, 왜 지도 비무 수업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는지 궁금해서요.”
사무현의 물음에 사도관과 정도관이 처음으로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입관하여 수행을 받기 시작한 지 벌써 스무 일이 지났다.
그동안 매일 같이 보법, 체술, 선택 수업들을 거쳤으나 아직까지도 지도 비무 수업은 받지 못했다.
빈도의 차이가 너무도 크지 않은가?
“본래 지도 비무는 석 달의 한번, 사흘에 걸쳐 진행되는 특별 수업이었소.”
“사, 사흘 씩이나요?”
아니, 대체 무슨 수업을 사흘씩이나 하지?
의아함이 깃든 사무현의 질문에 혜명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설명을 보충했다.
“사흘 내리 잠도 자지 않고 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오. 그저…… 어……. 수업이 다소 특별하여, 사흘에 걸쳐 ‘무리 없게’ 진행하는 것이라 들었소.”
“무리요?”
“하하, 머지않아 알게 될 것이오. 사실 올해 신입 관도들부터는, 지도 비무 수업을 달에 한 번씩 진행하게 되었다 들었소.”
“달에 한 번씩이요? 원래 석 달에 한 번씩 했는데?”
“지도 비무의 교관님께서 학관주님을 협박…… 아니, 적극적으로 요청하셨다 들었소. 시주들에게는 실로 좋은 기회이니, 감사할 일이지요.”
“아니…… 대체 무슨 수업이길래…….”
교관이라는 사람이 수업을 자주 하겠다고 학관주를 협박해?
그리고 학관주라고 하면 연무학관에서 제일 높은 사람 아닌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무현을 향해, 혜명이 헛기침을 한번 흘리며 그의 시선을 회피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소. 조만간 수업이 있을 것이니, 직접 겪어보는게 말로 전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겠소이까?”
더 이상의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돌려 말한 혜명이 그대로 종종걸음으로 사무현과 멀어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왠지 모를 오한이 그의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일 것이다.
……아마도.
***
“으라아! 영단 내 거! 내 거어어!”
“오늘은 기필코 얻어간다! 영다아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영단을 차지하기 위해 펼쳐진 아수라장.
그 광경을 지켜보며 천마가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하하, 훌륭하다, 훌륭해. 그 며칠 사이 움직임이 바뀌었구나.”
“…….”
전추가 새롭게 공수해 온 영단 스무 개가 얼마 전 사무현의 손에 들어왔다.
영단 백 개를 공수해 오라는 사무현의 요청에, 전추는 첫날부터 하급 영단 스무 개를 사무현에게 건넸고 열흘 뒤에 스무 개의 영단을 추가로 구해 왔다.
‘영단은 한 번에 열 개씩만 풀도록 해라. 그래야 저것들이 더욱 죽기 살기로 노력할 테니까.’
자고로 목마른 자들이 더 빠르게 우물을 판다는 천마의 지론에 의해, 처음 받았던 스무 개의 영단은 닷새 간격으로 두 번의 패싸움(?)을 벌여 배포했다.
그렇게 하급 영단을 지급받은 스무 명은 패싸움에서 제외했으니, 이번이 세 번째 기회인 저들의 가능성은 이전보다 훨씬 올라갔다고 볼 수 있었다.
“에라!”
쾅!
회창의 야차, 손익패의 일 권에 턱주가리를 얻어맞은 누군가가 짧은 경련과 함께 바닥을 나뒹군다.
소림의 체술 수업 덕분인지, 아니면 매일같이 이어진 육체 단련 덕분인지 동작에 군더더기가 줄고 주먹과 하체에 확실히 힘이 실렸다.
‘그래 봐야 아직 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수련 기간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만하다.
‘이제 저것들한테 하급 영단을 다 먹이고 나면…….’
거기까지 생각하던 사무현이 문득 천마신교에서 가지고 온 영단을 떠올렸다.
‘네 알이었지?’
어차피 사무현에게 영단은 큰 의미가 없다.
해서 예전에는 이 영단을 팔아 한몫을 단단히 잡아보려 했지만, 전추라는 든든한 돈주머니가 생긴 마당에 구태여 그런 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금자 백 냥도 얼마든지 도로 내놓겠다는 녀석인데, 앞으로 육 년간 필요한 것만 쪽쪽 빨아먹다가 두둑한 목돈을 받아 작별하면 그뿐이다.
뭐…… 어찌 보면 좀 심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럴 거면 애초에 사기를 치지 말았어야지!
‘나한테는 의미가 없는데, 그렇다고 그냥 주기는 아깝고…….’
이 영단을 줄 만한 녀석들을 실력별로 꼽으라고 하면 당장은 살암과 막휘, 청사, 적사의 순서다.
하지만 살암, 청사, 적사는 굳이 사무현이 아끼는 영단을 챙겨줘 가며 성장시킬 이유가 없다.
어차피 정 필요하면 어떻게든 구할 능력이 있는 놈들이니까.
‘그런데 또 막휘를 제외하면 먹일 만한 놈이 안 보인단 말이지.’
막휘 녀석이야 녹림의 후계자이니, 이 기회에 빚을 좀 만들어 놔도 어떻게든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돌려받을 것을 생각지도 않고 그냥 대가 없이 준다는 건?
에이……. 그건 안 되지, 이쪽이 뭐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일단 거기까진 생각하지 말자.’
당장 하급 영단도 제대로 소화 못 하는 놈들을 앞에 두고 너무 성급한 생각이었다.
우선 하급 영단부터 소화시키자.
그것만 다 소화하고 몸만 완벽하게 만들어도, 저 시건방진 정파 새끼들이랑 한번 붙어 볼 전력은 마련할 수 있다.
쩡!
털썩.
“허억! 허억! 여, 열 명이다! 열 명 안에 들었다!”
“이야아아! 영단! 영단이다!”
손익패를 포함해, 칠십 명 중 살아남은 열 명의 사도관도들이 기뻐 날뛰며 환호성을 지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무현의 입가에도 어느새 흡족한 미소가 맴돌았다.
‘나쁘지 않네.’
처음에는 괴물 새끼를 피하기 위해 들어온 연무학관이었지만 이곳의 생활은 썩 마음에 든다.
저 사파 녀석들에게 정을 느끼게 된 게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었지만, 이 또한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파 놈들만 참교육 시키고 나면, 이제 좋은 일만 있겠지.’
안 좋은 일이 벌어지려 해도 더 이상은 벌어질 수 없다.
이곳은 연무학관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사무현은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쾌청하기 그지없었다.
***
“본 교관은, 오십일 기 신입 관도 여러분과 첫 수업을 진행하게 된 점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넓은 비무대 위에 홀로 올라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신입 관도들을 내려다보며 한 여인이 인사한다.
때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백색 무복.
가녀린 체구를 무색하게 만드는 자신감 어린 눈빛과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위엄.
허리춤에 긴 장검을 메고 여유롭게 좌중을 둘러보는 그녀의 입가에는, 전신에서 흐르는 기품에 어울리지 않는 악동(惡童) 같은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그것이 연무학관의 지도 비무의 교관인, 천무신녀 단아란의 첫 모습이었다.
“입관식 때 짧게 인사하긴 했지만, 다시 한번 정식으로 소개하겠다. 연무학관의 고문이자, 너희들의 지도 비무 교관을 맡은 단아란이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등장에 신입 관도들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곧이어 우레와도 같은 함성이…….
“와……!”
“참고로!”
막 환성이 터지려는 순간, 쩌렁쩌렁한 내력이 실린 단아란의 음성이 그녀가 선 비무대를 중심으로 울려 퍼졌다.
“본 교관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한다. 수업 중에 쓸데없이 목소리를 높이거나, 수업의 진행을 방해하는 이가 있다면 내 손속을 무정하다 탓하지 마라.”
……손속을 무정하다 탓하지 말라고?
저건 보통 피를 봐야 하는 상황에서 하는 대사 아닌가?
예상치 못한 그녀의 냉랭한 기세에 모두가 얼어붙어 버리자,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단아란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을 이어간다.
“본 교관의 수업은 특별 수업으로, 사흘 동안 이어질 것이다! 수업의 방식은 이름 그대로 ‘지도 비무’로 시작해 ‘지도 비무’로 끝날 것이며, 아차 하는 사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모두 사력(死力)을 다해 수업에 임하도록 한다. 알겠습니까?”
……사력?
보통 지도 비무에 저런 말을 쓰나……?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들은 이내 쓸데없는 잡념을 지웠다.
무공 실력과는 별개로, 천무신녀의 괴팍한 성격이야 이미 무림에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알겠습니다!”
“대답 소리가 작다! 알겠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좋아. 본녀는 쓸데없는 시끄러운 소리는 싫어하지만 대답 소리가 작은 건 더더욱 싫어하니 이 목청을 기억하길 바란다.”
“예!”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자……. 그럼 모두 비무대와 다섯 장 이상의 거리를 두고 물러나라! 내가 지목한 한 명씩만 비무대로 올라오도록.”
단아란의 말에, 정·사를 통틀어 모든 관도들의 얼굴에 기대와 흥분이 가미된 미소가 맴돈다.
자타공인 무림 최강인 천무신녀와의 일대일 지도 비무! 무림의 후기지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기연이 아닌가?
그렇게 모두가 거리를 벌리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그때, 천무신녀의 검지가 막 발걸음을 떼어 내는 한 사람을 가리켰다.
“야, 거기, 너.”
“……예? 저요?”
“어, 알면서 뭘 물어?”
“…….”
“나와.”
“…….”
“네가 첫 번째다.”
단아란의 지목을 받은 사무현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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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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