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87
087화
앞서 나간 사람들의 희생(?) 덕분에, 이후의 비무에서는 천무신녀 앞에서 어설프게 입을 터는 후기지수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진행 속도가 다소 빨라지고 비무 양상이 이전보다 깔끔해졌을 뿐, 사뭇 긴장된 얼굴로 비무대에 오른 이들은 하나같이 의식을 잃고 비무대 아래로 내던져지는 결과를 맞이했다.
그렇게 정사를 막론한 대다수의 후기지수들이 일 합을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던 그때.
쾅!
사무현 이후 처음으로, 천무신녀 단아란의 공격이 한 정파의 후기지수의 앞에 가로막혔다.
비무대 위로 심상치 않게 퍼지는 기파는 지금까지 정도관을 대표하는 듯 보였던 명월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아니, 느껴지는 기세로만 보면 오히려 명월을 상회하고 있다.
콰구구구.
“……음?”
우수(右手)를 통해 전해지는 심상치 않은 검력에 단아란이 두 눈을 가늘게 뜬다.
그녀의 일 수를 가로막은 후기지수의 검신에는 반투명한 검기가 일렁이고 있다.
그리고…….
드드득.
“오호?”
청석으로 만들어진 비무대의 바닥에 미세한 균열이 이는가 싶더니, 사내의 검기가 푸른 검강으로 화(化)한다.
그 순간.
스팟!
“큽……!”
반대편 손으로 사내의 턱을 올려 치며 그의 균형을 흐트러뜨린 단아란이 무심한 얼굴로 그의 복부에 일각을 꽂아 넣는다.
쾅!
지이이익.
“……!”
가까스로 넘어지지 않고 버텨 내기는 했지만, 일 장 반 정도 뒤로 밀려난 사내의 입에 검붉은 핏물이 흐른다.
“흐음……. 절정에 오른 녀석이 검강을 쓰는 건 이상할 게 없는데, 의도적으로 공력을 억누르는 건 좀 이상하네. 왜지?”
단아란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자 사내의 얼굴이 복잡하게 일그러진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단아란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린다.
“아하, 실력을 숨기고 있던 중이었나?”
“…….”
“흐음……. 뭐,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무림에서는 본 실력의 칠 할을 숨겨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 하지만…….”
“…….”
“숨기려면 끝까지 숨길 것이지……. 쯧, 내 앞에서 어설프게 힘을 쓰니까 또 제대로 교육 해 주고 싶어지잖아.”
“……!”
단아란의 움직임에 사내가 표정을 굳히며 방어 자세를 취하자, 그의 전신으로 폭풍 같은 기세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거대하기 짝이 없는 내력을 기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전투 방식.
이에 그의 정체를 짐작한 단아란이 히죽 미소를 머금는다.
“남궁세가(南宮世家)였어? 그럼 네가 무상검제(無上劍帝)의 직계로구나?”
“……남궁천(南宮天)입니다.”
“그래, 네 얘기는 나도 많이 들었다. 남궁세가를 천하제일세가로 만들 천재라지?”
“…….”
단아란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방어 자세를 취하는 남궁천.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단아란이 흥미로운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천천히 자세를 낮춘다.
“천재라……. 나도 옛날에 그런 소리 많이 들었지. 그럼 어디, 요즘 천재는 어떤가 구경이나 해 볼까?”
그 물음과 함께, 단아란의 몸이 섬광처럼 남궁천에게 쇄도한다.
파박!
스팟!
순식간에 남궁천의 코앞까지 접근한 단아란.
하지만 남궁천 역시 이미 정면을 향해 일 검을 내지르고 있다.
화려함 없는 단순한 검로.
단아란을 막기 위해 화산의 명운이 보여 주었던 화려한 일초와는 정반대의 면모를 보여 주는 일 검이다.
쩌정!
거암(巨巖)과도 같은 무게감을 머금은 남궁천의 일 검과, 언뜻 가벼워 보이는 단아란의 일 수가 맞부딪치며 비무대 위에 거대한 기파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휘리리릭.
챙그랑.
“……아니!”
어느새 손아귀를 빠져나가 비무대를 나뒹굴고 있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며 남궁천이 경악 어린 일성을 흘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무방비한 남궁천의 턱으로 단아란의 주먹이 날아와 박힌다.
“말도……!”
쾅!
……풀썩.
“내력은 이무기 내단이라도 먹은 것처럼 짱짱한데, 몸뚱어리가 부실하기 짝이 없네.”
쓰러진 남궁천을 내려다보며, 단아란이 짐짓 근엄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무인의 근본은 강인한 육체에서 시작된다. 이 사실을 꼭 명심하도록.”
“…….”
“아, 기절해서 못 들으려나?”
비무대 위에서 간헐적 발작까지 일으키는 남궁천을 대충 발로 밀어 버린 단아란이,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며 쭉 하고 기지개를 켠다.
“아으으으, 오랜만에 움직이니 기분 좋다. 준비 운동 정도는 한 것 같네.”
……여기까지가 준비 운동이라고?
그럼, 아직도 뭐가 더 남았다는 말인가?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지는 후기지수들의 기척이 느껴졌는지, 어느새 너털웃음을 흘리며 단아란이 한쪽 손을 휘젓는다.
“에헤이, 긴장들 하지 마. 아무렴 신입관도들을 상대로 여기서 더하겠어?”
“그, 그렇지요? 하하.”
“마침 저녁 시간도 다 되었습니다.”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혹시 모를 단아란의 변심을 미연에 방지하려 하는 후기지수들.
하지만, 뒤이어진 단아란의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짓던 이들의 얼굴이 일순 딱딱하게 굳어진다.
“오늘은 수업 첫날이니, 맛보기로 여기까지만 해야지. 내일은 정말 기대해도 좋다!”
“…….”
“다들 식사 맛있게 하고, 잠도 푹 자고! 내일 무사히(?) 수업을 마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두도록.”
“…….”
“이상.”
***
“미친 여자야.”
처소에 도착하기 무섭게 침소에 몸을 누인 사무현이, 잠시 후 확신 어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괴물 새끼랑 같은 피가 흐르는 게 아니라면 사람이 그럴 수가 없지. 저런 인간이 지도 비무라는 명목으로 수업을 맡고 있다고? 이건 학관주한테 항의해서라도 어떻게든…….”
“그런데, 그 여자 고문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반쯤 이성을 잃은 듯한 사무현에게 툭 하니 핵심을 던져 주는 천마.
이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사무현이 천마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질문을 던진다.
“고문이면, 학관주보다도 높은 건가?”
“……아마도?”
“…….”
“그러니 고문 아니겠느냐?”
일반적으로 한 집단의 운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우두머리가 잘못된 선택을 할 때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고문이라는 자리다.
바꿔 말하면 그 괴물 같은 여자를 자를 수 있는 인간이 한 명도 없다는 말인데…….
“……그럼 망했네?”
어이가 없음을 넘어서서 허탈함까지 느껴지는 사무현의 음성.
괴물 새끼한테 겨우 벗어났다 싶었는데, 여기서도 그에 못지않은 미친 여자와 엮이게 될 줄이야.
“아니, 대체 왜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 거지? 나보다 이백 살은 더 먹었다는 할머니가!”
“이성적으로 관심을 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는 네 외모가 썩…….”
“뭐? 계속 말해 봐, 뭐?”
“……내가 보기엔 첫 만남부터 네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이는 네가 연무학관에 오기 전부터 너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 아니겠느냐?”
희번덕이는 사무현의 눈을 피해 천마가 화제를 돌리자, 사무현도 곧 시선을 돌리며 긴 숨을 내쉰다.
“……대체 뭐지? 막휘 녀석이랑 싸운 소식을 들었나? 그것도 아니면 아룡상회?”
“어떤 소식을 들었건, 네 어떤 부분에 관심을 두었는지는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관심을 둔 부분?”
“네 무위(武位).”
와…… 그것 참 대단한 것을 알아내셨네.
천마답네, 천마다워.
“야, 이……. 내가 호구도 아니고 설마 그걸 눈치 못 챘겠냐?”
아주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한 그 눈빛을 보면,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지!
“어허, 말을 끝까지 들어 봐라. 네게 관심을 가진 게 무위 때문이라면,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것도 쉽지 않겠느냐?”
“……뭐?”
“생각해 봐라. 네가 생각보다 별 볼 일 없고 약하다는 인식을 심어 주면, 곧 너에 대한 흥미는 사그라지고 다른 쪽으로 바뀔 것이다. 오늘만 해도 눈에 띄는 녀석들이 몇 있지 않았느냐?”
“……있긴 있었지, 몇 놈 정도.”
사도관에서 사무현을 제외하고 눈에 띈 이가 있다면 살암과 막휘 정도다.
살암의 경우 천무신녀에게도 망설임 없이 과감한 살수를 펼치던 모습이, 막휘는 외공을 활용해 버텨 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들을 제외한 전원이 한합만에 나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진 것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에 반해 정파 쪽은…….
‘우선 그 재수 없는 백의무복.’
화산파의 명운이라고 했던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절초를 펼치려는 시도는 좋았으나 의욕이 지나치게 앞섰다.
다소 허무한 패배를 당하긴 했지만, 그가 보여준 검초들은 살암에 비해 예리했으면 예리했지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나섰던 그 남궁천인지 뭔지 하던 놈.’
여태껏 일선에 나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의 검에서 느껴지던 기세는 검이라 보기에 지나칠 정도로 무거웠다.
흡사 천마도와 같은 중병기를 다루는 듯한 무게감.
그리고 마지막까지 기운을 감추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아마 그 자리에 있던 이라면 누구라도 눈치챘을 것이다.
적어도 단순한 내력만으로 놓고 보면, 후기지수들 중 그 남궁천이라는 놈을 넘어서는 녀석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 물론 나는 빼고.
‘나랑은 비교하면 안 되지, 이쪽은 처음 시작부터 일 갑자로 시작했는데.’
더군다나 십만대산에서 살려고 먹었던 사람같이 생긴 산삼이나, 이무기만큼 거대했던 뱀과의 사투 끝에 배 속에서 꺼낸 내단이나…….
아무튼 산에서(?) 구할 수 있는 좋다는 건 죄다 긁어 먹었는데, 나하고 비교하는 거는 말이 안 되지!
‘그 외에도 소림의 땡중이랑, 모용세가…… 그 하북팽가 녀석도 쓸 만했지. 아미파인지 뭔지 하는 곳에서 온 여자도 한 명 있었고…….’
아무튼 확실히 사파 보다는 정파 쪽에 인재가 넘쳐난다.
다른 정파 놈들은 사파 놈들과 비슷한 수준인데, 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는 녀석들이 확실히 그 격을 달리한다.
‘그런 놈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른 속도로 강해진다는 말이지…….’
이제야 사도관이 정도관을 이기지 못하는 이유가 이해가 간다.
가뜩이나 시작점부터가 다른데, 뒤로 갈수록 그 격차는 더 빠른 속도로 벌어지기만 한다.
간혹 천재적인 자질을 가진 이들이 그들을 앞섰다 하더라도, 결국나중에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따라잡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모로 쉽지 않겠네.’
애들(?) 키워서 저 정파놈들을 한번 밟아 줘야 하는데, 사무현 자신도 저 천무신녀인지 뭔지의 눈에 들어 꽤나 순탄치 않은 앞날이 예상된다.
“에휴…… 그래, 비는 피해가야지. 내일부터는 이쪽도 실력을 숨기고 철저히 무심하게 대응한다!”
“탁월한 선택이다.”
천마의 말이 옳다.
저쪽에서 보인 관심을 끊어 내려면 어설픈 반응을 보여 흥미를 이끌어 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최대한 전력을 숨기고 재미없는 대응으로 일관한다!
적어도 저 천무신녀라는 여자 앞에서는!
‘그래도 괴물 새끼보다는 나을테니까.’
어처구니없지만 이 생각만으로도 대다수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난 대체 삼 년을 어떻게 버틴 걸까?’
남들이 평생해도 못할 고생을 그 어린 나이에 견뎌내다니.
그렇게 과거의 자신에 안쓰러움을 느끼며, 사무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다들 잘 잤느…… 아니, 어째 숫자가 좀 줄은 것 같다?”
사도관도들과는 달리, 분명 어제보다 조금 줄어든 듯한 정도관도들의 대열을 둘러보며 단아란이 물었다.
“어제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
“크흠흠…….”
단아란의 물음에 헛기침을 한 번 해 보인 화산파의 명운이, 앞 열에서 한쪽 손을 들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어제 내상과 부상을 호소하던 이들이 있어, 의약당에 갔습니다. 듣기로는 아마 내일까지 휴식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고작 그거 맞고?”
진심으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큰 눈을 휘둥그레 뜨며 고개를 반쯤 꺾는 단아란.
그 모습에 경련 어린 미소를 지으며 명운이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예.”
“세상에, 나 때는 이만한 고수한테 얻어맞을 기회가 있으면 기어서라도 나오고 그랬는데. 다른 게 기연이냐? 이런 게 기연이야, 기연!”
“…….”
“나 정도 되는 고수가! 너희 같은 새파란 애들이랑 비무해 주는 일이 강호에 흔한 일인 줄 알아? 명문 정파에서도 이런 일은 거의 없다고! 구파일방! 너네들 장문인이 삼대 제자랑 비무해 주고 그러냐? 오대세가! 너네는 가주가 이름 없는 꼬꼬마들이랑 비무해 주고 그래?”
“……아닙니다.”
“이것들이 싹 다 빠져 가지고!”
두 눈을 희번덕이며 소리치는 단아란의 모습에, 거의 죽어가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모두가 침묵을 지킨다.
물론 말이야 바른 말이다.
천무신녀쯤 되는 고수와의 지도 비무는, 후기지수들은 물론이거니와 강호에 속한 모든 무림인들에게 그야말로 꿈과 같은 기회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비무가 아니라 그냥 패는 거잖아요.’
손을 섞어 볼 기회도 없고, 가르침을 받고 자시고 할 기회도 없다.
그냥 비무대에 서면 냅다 한 대 맞고 나가 떨어져 정신을 잃어버리는데, 이런 것은 보통 지도 비무라기 보다는 일방적 폭행이나 처벌에 가깝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이 생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크으……. 옳은 말이다. 본좌 때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목숨을 걸고라도 한 수 배우려는 이들이 넘쳐났지. 한 합에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죽는 놈들도 있었는데……. 쯧쯧, 요즘 것들이란.”
단아란의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는 듯 박수까지 쳐대는 천마.
두 꼰대의 잔소리를 함께 듣고 있었지만, 사무현의 얼굴은 오히려 남들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또 시작이네, 이 새끼.’
수백 년 전에 뒈진 전설의 꼰대, 천마 새끼의 평소 잔소리에 비하면 이 정도는 잔소리라고 할 수도 없다.
“……어? 근데 우리 애들 중에는 왜 의약당에 간 놈이 없지?”
문득 떠오른 의아함에 사무현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리자, 그의 뒤에 서 있던 막휘가 슬쩍 사무현을 향해 말을 전했다.
“어제 갈 만한 녀석들은 좀 있었는데, 한 명도 안 갔습니다.”
“뭐? 왜?”
“아침 수련이 있지 않습니까?”
“…….”
“형님께서 전에, 잠은 죽어서 자도 충분하니 아침 수련은 빼먹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애들이 내상약에 진통약까지 챙겨 먹어 가며 나오더라고요. 하하, 기특하지 않습니까?”
“……아.”
……설마 나도 꼰대냐?
에이…… 아니지?
아니겠지, 난 다 애들 잘되라고 하는 소린데.
아닐 것이다……. 아마도.
천마가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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