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90
090화
“오셨습니까? 대인.”
“아, 죄송해요. 예정보다 조금 늦었나 보네요.”
“하하, 바쁘신 분이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게의치 마시지요.”
호탕하게 웃어 보인 전추가 뒤에 서 있는 두 대의 수레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수레에는 일전에 말씀하신 ‘물건들’을 넣어 두었습니다. 영단은 함에 챙겨 따로 가지고 왔지요. 아량(兒量).”
“예, 부지부장님.”
“물건을 이리 주게.”
“예.”
전추의 말과 함께, 염소수염의 중년인이 큼지막한 함 하나를 가져온다.
“말씀하신 칠십 개의 영단을 열 개씩 소분해 놨습니다. 하급 영단이지만 재료가 나쁘지 않아,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같은 등급의 영단보다는 효능이 좋을 것입니다. 엄연히 말해 중하(中下) 등급이지요.”
“와, 좋은 것으로 구해 주셨네요? 갑자기 물량 구하기가 힘드셨을 텐데.”
“대인께 잃은 신뢰를 쌓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가 대수겠습니까?”
“흐음…… 신뢰라…….”
연신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는 전추의 모습에, 잠시 말꼬리를 흐리던 사무현이 묘한 미소를 머금는다.
“능력이 좋으신 건 알겠는데, 신뢰라는 단어를 입에 담기는 조금 이른 감이 있네요. 첫 만남을 잊기가 영 쉽지 않아서요.”
“그 부분은 뼈아프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거래를 통해 차차 신뢰를 쌓아 나가고자 하오니, 찾으시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시지요.”
대놓고 면박을 줘도 기분 나쁜 기색 하나 없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전추.
결국 그 모습에 사무현이 떨떠름한 기색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저한테 뭐 바라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이렇게까지 나오시니 제가 좀 부담스럽네요?”
“하하, 부담가지실 것 없습니다. 조금 전 말씀드린 것이 제가 바라는 것의 전부입니다.”
“…….”
“최소한의 신뢰를 위한 작은 첫걸음.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허…….”
아니, 고작 믿어 주는 정도로 원하는 건 뭐든지 말하라고?
이쪽에서 사람을 좀 잘못 본 건지 저쪽에서 잘못 본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배짱 하나는 인정해 줄만 하다.
그럼 어디, 저 배짱이 바짝 쫄아 버리도록 앞으로도 종종 뜯어먹어 보실까?
“그 정도뿐이라면 뭐…… 대체 저와의 신뢰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영단이 든 함을 받아 든 사무현이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혹시 몰라 늬들도 같이 오길 잘했다. 저기 저 수레들 끌어서 혈무관 뒤쪽에 옮겨 놔.”
사무현의 말에, 그의 뒤에 서 있던 청사와 적사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우리가 지금 수레나 끌러 나온 줄 아느냐?”
“그럼 뭣 때문에 나왔는데?”
“…….”
“얼른 옮겨, 출발.”
“……옮겨 주거라.”
결국 살암의 명령까지 떨어지자, 청사와 적사가 발걸음을 옮겨 말에 메어있던 수레를 풀어낸다.
쿠르르르 쿠르르르.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수레를 말처럼 끌며 무림맹 안으로 들어가는 이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사무현이 전추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예. 앞으로도 필요한 것이 생기시면 언제든 기탄없이 불러 주시지요.”
“그럴게요. 그럼 이만.”
인사를 마친 사무현이 미련 없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자, 살암 또한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그들의 모습이 무림맹 안으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전추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대체 어찌 그러십니까? 부지부장님.”
무림맹의 형체가 식별조차 어려워질 정도의 거리가 되자, 그의 뒤를 따라 걷던 아량이 조심스레 불만을 토로했다.
조금 전 영단을 옮긴 염소수염의 사내였다.
“무엇을 말인가?”
“이만하면 저희가 지은 죗값은 충분할 만큼 지불했습니다. 한데 대체 왜 그와 거래를 이어가려 하시는 겁니까?”
답답해하는 아량의 음성에, 잠시 발걸음을 멈춘 전추가 한심하다는 듯 그의 얼굴을 돌아본다.
“자네, 지금 그걸 진심으로 묻는 겐가?”
“…….”
“쯧쯧…….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자네만큼은 내 뜻을 알 것이라 여겼는데. 자네도 아직 멀었군.”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가로젓는 전추의 모습에, 그제야 자신이 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음을 깨달은 아량이 다급히 고개를 숙인다.
“……제 식견으로는 부지부장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대체 무엇을 보고 계신 겁니까?”
어느새 처음과는 달리 신중함이 느껴지는 아량의 음성.
그는 전추를 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과거 금명상단의 상단주였을 당시 전추는 헤아리기 힘든 그릇의 거상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확신을 가지고 저자세로 나가는 데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태도가 변한 아량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전추가 낮은 음성으로 말을 꺼낸다.
“자네는 소막주와 대인의 관계를 보고 무엇을 느꼈나?”
“글…… 쎄요?”
전추의 물음에 아량이 미간 사이를 좁힌다.
“굉장히 허물없는…… 사이처럼 보이기는 했습니다만…….”
“무엇 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소막주가 무례함을 참아가며 사 대인을 탐(貪)하고 있었네. 이것이 무얼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하는가?”
전추의 물음에 아량이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 역시 전추의 옆에서 한평생을 상인으로 살아온 몸.
잠시 후 아량이 조심스레 답을 꺼냈다.
“사 대인의 미래를 보신 것입니까?”
“음…….”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미래를 바라본 투자라면, 차라리 소막주에게 투자를 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소막주는 이미 가치가 드러난 보석일세. 훗날 그가 암천막주의 자리에 오를 것은 기정사실이니, 그와 연을 트려는 상인들은 발에 챌 정도로 많지.”
“…….”
“하지만 사 대인은 다르네.”
확신을 가진 전추의 두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아직 세상에 가치를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소막주의 행동만으로도 그 가치는 보증된 것이나 다름없네. 그런 진귀한 투자처를 찾았는데 어찌 전심을 다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아!”
전추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량은 떠올렸다.
오래전 전추가 그에게 내렸던 가르침을.
‘상인은 계산할 수 있는 이익을 좇는다. 하지만 거상은 계산할 수 없는 가치에 모든 것을 투자한다.’
전추의 말을 떠올린 아량의 입가에도 어느덧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맴돌았다.
“……머지않아 중원이 시끌벅적해지겠군요.”
전추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서두르세. 그의 접촉을 기다리는 것보다, 그에게 어떠한 것을 내어 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테니. 어떤 투자건 신뢰를 얻는 것이 첫걸음이야.”
텅 비어 버린 손 때문인지, 상회로 돌아가는 전추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볍기 그지없었다.
***
“끄으으응…….”
“아우…….”
“죽겠다아…….”
인시가 되어 가는 이른 새벽.
혈무관의 뒤편에서 심상치 않은 곡소리들이 여기저기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어났네? 어제는 못 일어날 것 같다 그러더니…….”
“끄응…….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표 형님 명령인데 어떻게 빠지냐?”
“그야…… 그렇지…….”
“후우……. 오늘도 힘내야지. 그래도 지도 비무만 끝나면 좀 낫지 않겠어?”
“하기야…… 오늘은 정도관 놈들이랑 대결도 있는데, 오기로라도 버텨야지.”
어느새 제법 친해진 관도들이 죽상인 얼굴을 하고도 서로를 북돋아 주고 있다.
하지만 그런 그들과는 달리 제법 쌩쌩한 이들도 있었으니…….
“뭐, 얼마나 맞았다고 엄살이야? 그래 봐야 목검으로 얻어맞은 건데.”
“칼 맞은 다음 날에 붕대 감고 싸우는 것보다 훨씬 낫지, 뭘.”
사무현에게 영단을 받은 이들은 체력과 회복력에서 확실히 탁월한 모습을 보였다.
아직 완전히 녹여내지 못한 영단의 내력이 몸 안을 맴돌며 치유를 도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단을 얻어 낸 서른 명 안에 들었을 만큼, 그들의 무위가 다소나마 다른 이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한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반응이 오가는 사이, 이윽고 기다리던 사무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에서 웬 커다란 함을 이고 있는 막휘까지도.
저벅저벅.
우뚝.
“하아아암……”
모두의 앞에서 늘어져라 기지개를 켠 사무현이, 여느 때처럼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모두 잘 잤냐?”
“예! 형님!”
“간밤에 생긴 환자는?”
“없습니다!”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음……. 좋아, 아주 좋아.”
뒷짐을 지고 선 채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인 사무현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려 막휘에게 눈짓을 한다.
“내 앞으로 가져다 놔.”
“예, 형님.”
사무현의 말에 어깨에 진 함을 가져와 내려놓는 막휘.
지금까지 보았던 작은 목함과는 확연히 다른 크기에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한다.
‘저건 뭐지?’
‘설마 저게 다 영단은 아닐 테고.’
‘새로운 수련 도구인가?’
‘저기 뒤쪽에는 웬 수레가 두 대나 있는데?’
기대 반 걱정 반 어린 눈빛을 교환하는 이들을 빙 둘러보던 사무현이, 거드름을 피우듯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크흠, 여기 있는 모두들, 본 대표의 말에 따라 매일 같이 수련한다고 아주 고생이 많습니다.”
“……에?”
평소처럼 곧바로 수련을 시작할 줄 알았던 사무현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격려가 흘러나오자, 잠시 당황한 이들이 멀뚱히 두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 된 목소리로 이에 답했다.
“아닙니다!”
“크으……. 좋습니다. 고생을 고생이라 생각지 않고 그저 강해지는 것에만 집중하는 여러분의 의지! 본 대표는 아주 마음에 듭니다.”
박수까지 치며 감탄사를 내뱉는 사무현의 모습에 모두가 다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대체 뭐지?
수련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저런 적이 없었는데?
“해서 본 대표는! 지금까지 열심히 따라와 준 모두들에게 작은…… 아니, 아주 큰! 선물을 줄까 합니다.”
아주 큰! 이라는 말에 힘을 팍팍 실어 넣는 것을 보니 저 함에 그 선물이 들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뭐지?
‘설마 진짜 영단은 아니겠지?’
에이…… 아니겠지.
영단이 어떤 물건인데…….
여기 있는 사람이 몇 명인데, 한 번에 칠십 개는 말도 안 되지.
‘그런데 또 지금까지 서른 개나 구한 것도 사실이잖아?’
모두의 얼굴에 서서히 떠오르는 기대감을 만끽하듯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린 사무현이, 이윽고 준비해 온 함의 뚜껑을 움켜잡는다.
“자, 너희들을 위해 어렵게…… 아주 어.렵.게 준비했다.”
……꿀꺽.
딸칵.
“……영단이다.”
씩 하고 웃어 보인 사무현의 한 마디와 함께, 혈무관 뒤편에서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진다.
“와아아아!”
“영단! 영단이다!”
“모, 목함이 몇 개야! 하나, 둘, 셋…… 일곱 개다!”
“모두가 영단을 받는구나! 모두가!”
너 나 할 것 없이 뛸 듯이 기뻐하는 모두를 흡족하게 바라보며 사무현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린다.
“모두 조용.”
“…….”
“에…… 이 영단은, 여기 있는 모두가 지금까지 해 온 것 이상의 노오력과 충성을 다할 것이라 믿기에 주는 선물이다. 내 말뜻을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말을 바꾸는 놈은 없겠지?”
“절대 없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어차피 영단을 먹으나 안 먹으나 대표가 바뀌기 전까지는 계속 해야 하는 아침 수련일 텐데, 한평생 다시 있을지 모를 기회를 발로 찰 만큼 이들은 어리석지 않았다.
강호에서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기회가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는 것이 최선이니까.
애초에 그러려고 들어온 연무학관이 아니었던가?
“크으…… 좋아, 좋아. 아주 마음에 든다. 나 역시 너희를 믿는다! 하. 지. 만.”
“…….”
“안타깝게도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른 게 사람 마음이다. 해서 나는,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안타까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런 것을 좀 준비해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뒤쪽으로 고개를 돌린 사무현이 막휘에게 말을 잇는다.
“꺼내라, 막휘야.”
“……예, 형님.”
어쩐지 상당히 어두운 얼굴로, 품속에서 돌돌 말려진 서지 한 장을 꺼내 드는 막휘.
그가 그것을 바닥에 펼치자 어지간한 벽보 못지않게 커다란 서지가 모두의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위에 깨알같이 적힌 작은 글자들도…….
“에……. 별 내용은 아닌데, 그래도 알고 서명을 하는 것이 좋을 테니 내가 직접 읽어 주마.”
“…….”
“크흠흠! 이곳에 서명한 상기 본인은, 연무학관을 졸업하는 시점까지 사도관의 대표 사무현의 지도를 따르며 그의 명에 절대 복종할 것을 서약한다. 만일 이를 어길 시에는!”
“…….”
“어. 떠. 한. 처. 벌. 도! 이의 없이 달게 받을 것임을 함께 서약한다.”
“…….”
“끝.”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전화 : 032-651-8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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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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