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91
091화
파격적인(?) 서약의 내용에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 사이, 어느새 손익패가 서지 옆에 지필묵을 가져다 놓는다.
“서명하고 영단 하나씩 받아 가면 된다, 쉽지?”
사무현의 물음에, 침묵을 지키던 이들이 흘깃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먼저 받은 서른 놈은 빠져라. 이건 못 받은 사람들한테 우선권이 있으니까.”
“우선권이요? 그러면 서명을 안 해서 남는 영단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막휘의 질문에 사무현이 턱 끝을 매만진다.
이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부분이다.
“왜, 하나 더 받고 싶냐?”
“예.”
막휘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서명해야 줄 건데?”
“까짓것 서명이 뭐 어렵겠습니까? 기회만 주신다면 서명하겠습니다.”
“뭐…… 그럼 그러든지.”
“오오!”
사무현의 시큰둥한 한 마디에 이미 영단을 먹은 서른 명의 눈에 탐욕이 스쳐 지나간다.
영단의 효과를 평생 모르고 살았으면 모를까, 한번 영단을 취한 이들은 그것이 어떤 가치를 가진 물건인지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앞 열에 서 있던 사도관도 하나가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저벅저벅.
“이곳에 서명하면 되겠습니까?”
“다른 애들도 해야 되잖아. 거기 위쪽 구석부터 조그맣게 적어, 조그맣게.”
“예!”
스스슥.
“다 썼습니다!”
“훌륭한 선택이다. 자, 받아라.”
“감사합니다, 형님!”
영단 하나를 받아든 사도관도가 허리를 직각으로 구부리며 사무현에게 포권해 보인다.
이는 그저 힘 때문에 사무현을 따랐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진심으로 사무현을 모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크흠…… 망설이다 나온 놈이 멋 부리기는……. 자리로 돌아가라.”
“예! 형님!”
다소 멋쩍은 기분에 사무현이 툴툴거리며 대꾸하자, 험상궂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인 사도관도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가 보인 그 행동이 시발점이 되어, 이후 너 나 할 것 없이 서명을 위해 앞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다음은 제가 하겠습니다!”
“그, 그다음은 접니다!”
“싸우지들 말고 줄 서라, 줄! 줄 안 서는 놈은 서명 안 받는다!”
사무현의 호통에 혼란은 금세 가라앉았다.
약 일각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함 안에 있던 영단은 꼭 세 개를 남겨 두고 말끔히 바닥을 드러냈다.
탁.
“……정말 숫자 딱 맞네.”
텅 비어 버린 함을 닫고, 남은 영단이 든 목함을 서지와 함께 품에 챙기는 사무현.
원래라면 자신들의 몫이 되었어야 할 영단을 바라보며 살암과 적사, 청사가 다소 아쉬운 눈빛으로 사무현을 응시한다.
“그…… 영단은 어디에 쓸 셈이지?”
“그건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청사의 물음에 사무현이 퉁명스레 반문하자,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살암이 쓴웃음을 머금는다.
“내 특별히 부탁하지, 대표. 이번 영단을 구하는 데는 내 공도 그리 적지 않았는데, 내 몫은 제하더라도 여기 둘에게는 영단을 나누어 줄 수 있겠나?”
“……네가 한 게 뭐가 있는데?”
“내가 한 것? 그거야…….”
……어? 뭐지?
분명 저 영단은 자신 덕분에 생긴 것과 다름없을 텐데, 막상 대답할 말이 궁색하다.
어쨌거나 저건 자신이 요청한 게 아니라 사무현이 부지부장이라는 자와 협상 끝에 얻어 낸 물건이니까.
“아룡상회에…… 너를 데려다준 일……?”
“거긴 나도 알고 있던 곳인데?”
“아…….”
“…….”
“그……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어쨌거나 내 얼굴을 보아 저쪽에서도 협상에 임한 것이 아니냐?”
“아, 그렇지. 그건 맞는 말이지. 네 이름 덕분에 일이 쉬워진 건 사실이지.”
사무현이 예상외로 깔끔히 인정하자 살암의 얼굴이 확 밝아진다.
“그럼 너도 걔들한테 영단 달라고 하든가.”
“…….”
“거기서 영단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설친 건 난데, 이게 어디 말 한마디 없이 편히 앉아만 있다가 콩고물을 얻어먹으려 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해?”
사무현의 이론에 할 말을 잃은 살암이 멍하니 서서 입만 벙긋거린다.
그러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사무현이 혀를 한번 차고는 목함을 열어 두 개의 영단을 꺼낸다.
“쯧…… 나도 마음이 약해서 탈이라니까. 자, 와서 받아 가.”
“……진짜 주는 거냐?”
“너 말고 쟤들 먹여라. 애들을 얼마나 안 챙겼으면 하급 영단 보고 침이나 흘리고 있냐?”
“……뭐?”
사무현의 말에 살암이 고개를 돌리자, 황급히 입가에서 떨어지던 침을 닦아 내는 청사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소, 소막주님. 오해십니다. 이건 그저…….”
“팔 떨어진다, 안 받아 갈래?”
“……후우.”
결국 한숨을 한 번 내쉰 살암이 사무현에게 다가가 영단을 받아든다.
“고맙군.”
“알면 됐고.”
“……기왕 줄 거면 남은 하나도…….”
“에헤이! 어디서 되도 않는 욕심을! 확 마, 줬던 것도 뺏어?”
“쩝…….”
사무현이 눈을 부라리자 목함 안쪽을 흘깃거리던 살암이 입맛을 다시며 뒤로 물러난다.
하급 영단이 그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몸에 좋다는 걸 눈앞에서 보니 아쉬움이 동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자자, 영단을 받은 이들은 즉시 이 자리에서 그것을 복용하고 운기조식에 들어간다. 저 정파 놈들과의 싸움 이전까지 지금 받은 영단의 힘을 조금이라도 녹여내는 것이 너희들의 할 일이다.”
“예! 형님!”
“이 전에 영단을 받아먹었던 놈들도, 오늘은 심법을 통해 육체를 단련하는 데 힘써라.”
“예! 형님!”
“좋아, 좋아……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너희들에게 분명히 해 둘 말이 있는데.”
막 떠올랐다는 듯, 사무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잇는다.
“오늘도 우리가 청소를 하게 되면, 먹은 영단 다 토할 때까지 뒈졌다고 생각해라.”
“…….”
영단은 섭취하는 즉시 내력의 성분으로 흡수되는 약이다.
음식물처럼 몸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데, 토할 때까지라는 말은…….
‘……그냥 뒈진다는 뜻이네.’
등골을 타고 떨어지는 식은땀을 느끼는 그들의 귓가로 사무현의 음성이 이어졌다.
“자, 시작.”
스스슥.
사무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부좌를 틀고 앉는 이들.
며칠 사이에 확연하게 강해진 몸뚱이에 영단까지 취했으니, 그 효과는 곧바로 드러날 것이다.
‘그 새끼들 놀란 얼굴이 벌써부터 기대되네.’
사무현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다.
***
“……뭐라고요?”
황당함이 짙게 밴 사무현의 음성.
이에 단아란이, 자신의 옆에 세워진 사람만 한 사루계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말한 그대로다. 사루계의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나를 상대로 많은 녀석들이 버티는 쪽이 이긴다.”
“아니…… 그러니까…….”
한 손으로 뒷머리를 부여잡은 사무현이, 확인을 위해 또박또박 뒷말을 잇는다.
“사도관과 정도관이 붙는다고 한 게, 저희끼리가 아니라 고문님하고 붙는 거라고요? 더 오래 버티는 쪽이 이기는 거고?”
“잘 알아들었구나.”
“아니, 대체 이건 어디서 나온 발상인가요? 공평하지 않잖아요, 공평하질!”
참다못한 사무현이 언성을 높이자, 단아란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가로 꺾는다.
“공평하질 않아?”
“그렇잖아요? 둘 중 어디가 센지 확인할 거면 직접 붙여 주는 게 맞지, 어느 쪽한테는 살살하고 어느 쪽한테는 세게 할지 어떻게 압니까?”
“……아하, 무슨 말인지 알겠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당장 다른 방식으로 바꿔야……”
“그러니까 네 말은!”
우렁찬 목소리로 사무현의 말을 끊은 단아란이, 서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조용히 두 주먹을 움켜쥔다.
“내가 편파적인 사람일까 걱정이 된다는 말이지? 천무신녀라는 사람한테 별 믿음이 안 가니까. 그렇지?”
“……예?”
……아니, 왜 갑자기 말이 그렇게 튀지?
물론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그런데 천무신녀라고 불리는 거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치사하게 불리할 때만 가져다 쓰기 있나?
이런저런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결국 사무현이 해야 할 답은 정해져 있었다.
“……헤헤, 설마요.”
“…….”
“그냥 좀 더 단순하게 시합을 하면 좋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에 소소한 의견을 내 본 거죠. 헤헤.”
최대한 맑은 웃음을 지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무현을 향해, 단아란도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응, 기각.”
“…….”
“안 돼, 안 해 줘, 돌아가.”
“……옙.”
본전도 못 찾은 사무현이 꼬리를 말고 물러나자,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꺾어 보인 단아란이 정파 측으로 고개를 돌리며 손가락을 까닥인다.
“사도관도들은 아직 불만이 있는 것 같으니 정도관이 먼저 시험을 치른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좋아, 사도관도들은 연무대 밖으로 물러나고 정도관도들은 바로 준비하도록.”
“예!”
챙!
“모두 포위 대형을 펼치세!”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장 선두에 선 백의무복. 화산파의 명운이 검을 뽑아 들며 모두를 독려한다.
어제의 수업 이후 나름대로 맞춰 둔 바가 있었는지, 이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호선(弧線) 대형을 갖췄다.
“오호라, 어제랑은 뭔가 다르네? 나름대로 대비책을 세우기라도 한 건가?”
“…….”
“자…… 그럼 어디, 머리로 세운 계획을 실행까지 옮길 수 있는지 한번 볼까?”
언제 그랬냐는 듯 미소를 지워낸 단아란이 허리춤에 매어진 그녀의 검을 뽑아 든다.
스릉.
“……어?”
“아니?”
단아란이 진검을 사용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자리를 잡은 정도관도들 사이에서 당혹성이 흘러나온다.
“뭘 그리 놀라? 설마 오늘도 똑같은 방식일 줄 알았어?”
“…….”
“어제의 너희는 일대 다수로 싸우는 경험을 쌓았지. 하지만 오늘 쌓아야 할 경험은 조금 다를 거다.”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지워 낸 단아란을 중심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위화감 섞인 기세가 퍼지기 시작한다.
“음……?”
“이, 이건……!”
단아란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이 무엇인지 깨달은 몇몇은 창백해진 얼굴로 경악성을 흘렸다.
공기의 밀도가 바뀐 듯 호흡이 곤란해지고 두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한 감각.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어느 순간 상대를 향한 전의마저 꺾이게 만든다.
이것은 분명…….
“……살기(殺氣)?”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명운의 중얼거림에, 정도관도들 사이에 짧은 술렁임이 일어난다.
대체 왜 천무신녀가 수업 중에 그들을 향해 살기를 흩뿌린다는 말인가?
“왜 너희 같은 애송이들이 실전에서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지 아냐?”
“……”
“실전은 비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쓰윽.
그 말과 함께 단아란이 한 걸음을 앞으로 떼어 내자, 몇몇 정도관도들이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마치 그녀와 거리가 좁혀지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처럼.
“실전에서는 동작 하나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내 손으로 상대의 목숨을 취할 각오도 필요하지.”
“…….”
“……지금부터 너희는 그 중압감이 무엇인지 배우게 될 거다.”
말을 마친 단아란이 검을 쥔 반대편 손으로 사계루를 뒤집어 비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툭.
사각사각.
“오늘 수업은, 그 어떤 수단과 방법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 그럼…… 시작.”
스륵.
평소라면 그 한마디와 함께 몸을 날려 왔을 단아란이 아무런 기척도 없이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딘다.
사냥감에게 도약하기 직전의 맹수처럼, 싸늘한 침묵 속에서 모두를 지켜본다.
그리고…….
스팟.
눈 깜짝할 사이에 도약한 단아란이 저들을 향해 광범위한 검기를 흩뿌린다.
쩌저정!
콰광!
“크읍……!”
“윽……!”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오는 단아란의 검기에, 대경실색한 이들이 다급히 방어에 집중한다.
몇몇 이들은 자리를 이탈하고 몇몇 이들은 자리를 지켜낸다.
그것만으로도 처음 그들이 준비했던 진형은 반쯤 무너져 내렸고, 그 틈 사이를 단아란이 파고들었다.
촤좌좍!
살기를 드러낸 단아란의 검격이 거칠게 정도관도들을 몰아붙인다.
몸의 중심선에 위치한 급소들이 노골적으로 노려지고, 조금이라도 어설픈 대응을 할 시엔 여지없이 빈 틈을 파고든다.
지도 비무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치명적이고 악랄한 검초들이 물 흐르듯 이어진다.
스팟!
쩌정!
“……컥!”
풀석.
단아란의 검에 목선을 허용한 정도관도 하나가 게거품을 물며 바닥에 쓰러진다.
마지막 순간 단아란이 검면으로 고쳐 쥐어 목을 베이지는 않았지만, 기절한 당사자는 정말로 죽음의 순간을 맛보았을 것이다.
“사, 살려……!”
쾅!
반사적으로 살려 달라는 말을 입에 담은 정도관도 하나가 단아란의 검에 채어 허공을 날았다.
이미 정도관도들 대부분이 공포에 질려 전의를 상실한 상태.
이 상황을 지켜보며 입술을 깨물던 명운이 검강까지 끌어 올리며 모두를 향해 소리친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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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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