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92
092화
“모두 정신 차리시오! 진형을 지키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오!”
하지만 이는 의미 없는 외침에 불과했다.
단아란이 흘려내는 압도적인 기세와 살기에 이미 이성들이 마비된 까닭이다.
“내가 잠시나마 막아 볼 테니, 모두 정신 차리……!”
쓰윽.
답답한 마음에 막 몸을 날리려는 그때, 닭장 속에 뛰어든 늑대처럼 휘젓고 다니던 단아란이 돌연 움직임을 멈추고 명운을 돌아본다.
그 섬뜩한 눈빛에, 명운은 전신에서 힘이 쑥 하고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스팟!
짧은 조소를 머금는가 싶던 단아란이, 이형환위(移形換位)의 신법을 전개해 명운의 앞에 나타났다.
쓱.
단아란이 머리 위로 크게 검을 치켜든다.
몸의 중심부가 텅 비어있는 허점투성이의 모습이었지만, 그럼에도 명운은 공격을 펼칠 수 없었다.
검을 뻗는 순간 자신의 머리가 쪼개져 버릴 것 같다는 위압감이 그의 움직임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바, 방어를…….’
다급히 검을 들어 그녀의 예상 검로를 가로막는 명운.
그 순간 단아란의 얼굴에 명백한 비웃음이 머금어진다.
“입만 살았네.”
쾅!
“……크헉!”
명운의 명치 깊숙이 들어박힌 단아란의 일각.
숨조차 쉴 수 없는 통증에 명운이 입을 벌리자, 어느새 궤도를 바꾼 단아란의 일 검이 그의 안면으로 날아든다.
쩡!
단아란의 검면이 명운의 관자놀이를 가격하자, 명운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풀썩.
“다음은…….”
명운에서 시선을 떼어 내 쓱 주위를 둘러보는 단아란.
가장 먼저 그녀와 눈이 마주친 이가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자, 단아란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너구나.”
팟!
그녀가 다시 날뛰기 시작하자,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던 진형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
“……살벌하네.”
정도관도들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단아란의 모습에 사무현이 솔직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저러면 이미 비무가 아니지.’
저 정도쯤 되는 고수가 마음먹고 살기를 뿌리는데,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녀석들이 저항이나 할 수 있겠는가?
사무현 자신도 천마 녀석의 살기에 저항하기까지 이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나도 아직 오금이 좀 저리는데.’
저게 쉽게 익숙해지는 그런 게 아니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오감으로 느끼는 상황이니, 생존 욕구가 있는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몸이 굳기 마련이다.
“흐흠…… 이거야, 저만한 사루계를 가져다 놓은 의미가 없게 되었구나.”
뒤쪽에서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보던 천마가 빙그레 조소를 머금는다.
그의 말대로, 사루계의 모래는 이제 겨우 반 정도가 떨어졌을 뿐.
하지만 연무대에 버티고 서 있는 정도관도들은 겨우 한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정도다.
쩡!
“……!”
풀썩.
결국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무상검제의 직계, 남궁천까지 정도관도들 모두가 쓰려졌다.
단아란이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사루계의 모래는 아직도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몇 명이 남고 자시고 할 것도 없군. 정도관도들과 사도관도들은 교대하도록.”
“……형님, 저희 차례입니다.”
처음과는 달리 막휘의 음성에 분명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하기야, 비록 일부일지라도 저 괴물의 진면목을 보았으니 그럴 수밖에.
“……가자.”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앞장서 발걸음을 옮기는 사무현.
저 정도관도들이 맥없이 무너지는 장면을 모두 보았을 것인데, 사무현의 발걸음은 어쩐지 태평하게만 느껴진다.
그 뒷모습에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진 막휘와 사도관도들이 조용히 뒤를 따른다.
“놀면서 한눈팔고 있던 건 아닐 테니, 굳이 설명을 다시 할 필요는 없겠지?”
사무현을 필두로 선 사도관도들을 바라보며 단아란이 입을 열었다.
“내가 사루계를 뒤집으면 시작이다.”
“예.”
단아란의 말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무현의 우수는 등 뒤에 매어진 천마도의 손잡이로 향하고 있었다.
‘결국 나한테 달렸지.’
사무현을 제외한 사도관도들의 전력은 아직 정도관에 비해 열세라고 봐야 한다.
대다수의 정파 녀석들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유독 빼어난 몇 놈이 드문드문 섞여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의 제자라는 놈들이겠지.
‘그놈들과 비벼볼 만한 놈들은…… 살암과 막휘 정도.’
막휘는 상대 운이 필요하고, 살암은 누구와도 승부를 겨뤄볼 만하다.
바꿔 말하자면, 결국 이 승부의 쟁점은 사무현이 얼마나 해내느냐에 달렸다는 의미다.
“자, 대충 준비됐지? 그럼 시작해볼까?”
이윽고 쓰러졌던 정도관도들이 모두 자리를 벗어나자 단아란이 사루계에 손을 올려놓는다.
“혀, 형님, 어떻게 할까요? 작전이라도…….”
“작전 같은 소리 하네.”
떨리는 막휘의 음성에 사무현이 실소를 흘린다.
“저런 괴물을 상대로 그런 게 먹힐 것 같냐?”
작전 같은 것도 실력 차이가 적어야 의미가 생기는 거다.
그런 게 먹혔으면 십만대산에서 진작 뭐라도 하고 탈출했겠지.
“하, 하면…… 저희가 어찌해야겠습니까? 뭐라도 명을…….”
“막휘야.”
어쩔 줄 모르는 막휘의 모습에, 사무현이 덤덤한 음성으로 그를 부른다.
“내가 앞에 있잖냐.”
“…….”
“쓰러져도 내가 제일 먼저 쓰러지니까, 그전까지는 쫄 거 없다.”
말을 마친 사무현이, 등 뒤의 천마도를 정면으로 가져온다.
천마도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도기가 도신을 동여매고 있던 붕대들을 잘라 낸다.
스르륵.
“내 뒤에서 버텨라.”
“…….”
“그게 지금의 너희들이 감당해야 할 짐이다.”
자신의 앞을 지킬 필요는 없다.
어제 저들이 단아란을 가로막았을 때처럼.
사무현이 몸 중심에 천마도를 놓고 단아란을 겨누자, 사루계를 짚고 있던 단아란의 얼굴에 기묘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시작.”
스윽.
그 말을 끝으로 단아란의 전신에서 소름 끼치는 기세와 살기가 퍼져 나온다.
중원 최강자라 불리는 이의 위압감에 사도관도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며 호흡이 가빠진다.
“흡……! 허억……!”
“이, 이 무슨……!”
조금 전 정도관도들보다도 더 큰 술렁임이 일어나는 사도관의 진형.
영단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한 사도관도들의 내력은 아직 정도관도들에 미치지 못한다.
심력이 비슷하다고 한들 내력에서 차이가 나니, 기세에 대한 저항도 다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저것도 전력을 다한 건 아니란 말이지.’
사무현은 안다.
저 괴물 같은 것들이 작정하고 기세라는 것을 풍기기 시작하면 사람이 어찌 되는지.
그냥 바닥에 엎드려 이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 천무신녀도 지금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다는 의미다.
‘……그럼 해볼 만하지.’
스릉.
저 사루계의 모래가 다 떨어질 때까지 한 명만이라도 서서 버티고 있으면 된다.
단 한 명만이라도…….
“긴장해라, 온다.”
천마의 경고와 함께 천마도를 쥔 사무현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언뜻 영겁과도 같은 찰나의 시간.
사루계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자세를 낮추던 단아란의 모습이, 돌연 소리 없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팟!
그들 사이에 있던 십여 장의 거리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 단아란의 신형이 사무현의 앞에서 나타났다.
스윽.
그런 그녀의 움직임을 예상이라도 했는지, 사무현의 도는 이미 단아란이 나타날 위치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단아란의 검이 사무현의 천마도를 가로막는다.
콰광!
포탄이라도 터진 듯한 굉음과 함께, 충격파에 밀린 사무현과 단아란의 신형이 서로 반대편으로 밀려난다.
바닥에 자국을 만들어 내며 밀려난 사무현과는 달리, 유연하게 허공을 날아 바닥을 박찬 단아란이 재차 사무현에게 달려든다.
쾅! 콰광! 쩡!
순식간에 세 번의 합이 교환됐다.
단아란의 두 번의 검격은 사무현의 도초에 가로막혔지만, 그 틈 사이를 비집고 안면으로 날아든 단아란의 일 각에 사무현의 신형이 튕겨 날아간다.
휘리리릭.
탁.
“쓰읍…… 퉷.”
입에서 검붉은 핏물을 뱉어 낸 사무현이 다시 방어 자세를 취한다.
생각보다 강한 공격이었지만, 시기적절하게 호신기를 끌어올리며 고개를 비튼 탓에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
“……생각보단 실망스럽네?”
몸을 일으키는 사무현을 향해 단아란이 평한다.
“기세에 저항할 줄 아는 것 말고는 평범해.”
누가 들어도 경악할 만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한낱 후기지수가 천무신녀의 기세에 저항하며 그의 합을 받아냈다고 하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기대받는 천재로 평가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단아란의 평가는 냉정했다.
‘오라버니가 키웠으면 저 정도는 당연히 해 줘야지.’
재능은 중요하다.
하지만 후기지수의 성취를 결정짓는 것은 재능보다 스승의 자질이 크다.
무신 단월혁의 아래에서 성장했다면 당연히 그녀가 내뿜는 기세에도 저항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재능이 아닌 그저 익숙한 수련의 결과물에 불과하다.
‘……내 움직임을 보고 반응한 건 제법이었지만.’
딱 거기까지다.
만일 넘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변칙적으로 날아드는 자신의 일 각에 그렇게 호락호락 안면을 내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저 녀석은 그저, 평범한 재능에 뛰어난 스승과 노력이 합쳐져 만들어진 결과물일 뿐이다.
그렇게 단아란이 평가를 마치는 사이, 사무현의 입가에는 어느새 진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왜 웃지?”
“아, 계속 혼자 떠드시길래.”
“……뭐?”
의아한 듯 반응을 보이던 단아란이 그제야 사무현이 사루계를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이에 단아란의 분위기가 한 번 더 일변한다.
“날 앞에 두고 고작 사루계를 신경 쓰고 있다고?”
“지금 이거 실전 수업이라면서요?”
“…….”
“그럼 버티다 살아남으면 장땡이죠.”
보란 듯이 히죽 웃어 보이는 사무현의 모습에, 단아란의 얼굴에 감정이라는 것이 완전히 사라진다.
“……아, 그래?”
“…….”
“그럼 버텨 봐, 어디.”
아……. 이거 내가 괜한 말을 한 건가?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과 함께, 단아란이 이형환위의 신법을 전개해 다시 사무현의 앞에 나타난다.
검신에는 푸른 검강을 머금고서.
쐐애액!
콰과과과광!
사무현과 단아란의 격돌이 만들어 낸 폭음이 드넓은 연무대에 울려 퍼졌다.
***
‘저 천무신녀와…… 합을 겨루고 있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에, 화산파의 명운이 딱딱하게 얼굴을 굳힌다.
‘나는 물론, 저 남궁천조차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거늘.’
비무와 실전은 다르다.
고수를 상대할 때 가장 먼저 이겨 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스스로를 옥죄는 압박감이다.
그의 스승인 검존을 통해 수도 없이 들은 말이고, 실제로 몇 번인가 겪어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실전이라는 이름 앞에 저 천무신녀와 마주하고 나자 그동안 해 왔던 노력들과 다짐들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까득.
‘……감히!’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오래전 그와 일 장을 마주했을 때부터 그의 강함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상황은 인정할 수 없다.
저 천무신녀와 저렇게 겨루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어야 했다.
그렇게 명운이 입술을 깨무는 사이, 그와는 조금 떨어져 있던 남궁세가의 남궁천도 조용히 오른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꽈악.
‘천아, 너는 천재다. 아마 같은 후기지수들 중에 너와 맞붙을 수 있는 이는 함께 입관 예정인 검존의 제자 한 명뿐일 것이다.’
그의 아버지인 남궁세가주, 천무검제 남궁우(南宮宇)의 음성이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염려는 하지 말거라. 그 검존의 제자가 얼마나 뛰어난 천재인지는 모르지만 너에게는 미치지 못할 테니까. 너는 남궁세가의 역사를 뒤져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천재다. 그러나…….’
‘…….’
‘……연무학관의 비무 대회가 있기 전까지는 네 스스로를 드러내지 말거라. 그것이 더더욱 너 스스로를 빛나게 하는 길임과 동시에, 이 험난한 강호에서 너를 지켜 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니까.’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남궁천이 두 눈을 감았다 뜬다.
‘……하나는 옳았으나, 하나는 틀렸습니다, 아버지.’
검존의 제자는 분명 뛰어나지만,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능히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저 천무신녀와 맞붙고 있는 사무현이라는 녀석은 어떤가?
만일 자신이 저 자리에 다시 선 다면, 천무신녀를 상대로 저만큼 맞설 수 있을까?
꽈악.
들끓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남궁천은 필사적으로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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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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