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93
093화
쩌정! 쩡!
촤좌좍!
“큭……!”
사무현의 입에서 참지 못한 침음이 흘러나온다.
그녀를 상대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다.
그저 버텨 낼 뿐.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몸의 중심부에 천마도를 고정하고 그가 막아 낼 수 없는 공격들은 과감히 호신기를 끌어올려 받아낸다.
오랜 시간 동안 사무현이 십만대산의 괴물과 천마를 상대로 싸우며 얻어 낸 가장 큰 결과물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었다.
‘어설프게 공격해 봐야 빈틈을 보여 주는 것밖에 안 돼!’
어금니를 악물고 오로지 방어에만 집중하는 사무현과, 그런 그를 쉴 틈 없이 몰아치며 수많은 생채기를 만들어 내는 단아란.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천마는 어쩐지 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이제쯤 감이 오려나?’
아마 모르긴 몰라도 상당히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제대로 힘을 쓴다면 강제로 사무현을 무너뜨릴 수 있겠지만, 그녀가 마음먹은 이상의 힘을 쓰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이니까.
‘저 녀석이 평범하다고?’
천마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한때는 자신도 사무현에 대해 같은 평가를 내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천마도 틀렸고 그녀도 틀렸다.
사무현은 그들이 아는 천재와 결이 다를 뿐, 절대 평범하다 부를 수 없는 녀석이다.
‘머리가 나쁜 대신, 몸으로 때우는 걸 누구보다도 잘하는 녀석이지.’
살기 위해 본능적인 두려움을 무시한다.
살기 위해 육체의 고통도 무시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머리로는 알아도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의지 하나만으로 해내고 만다.
‘그리고 설령 아무런 재능이 없다 할지라도……’
녀석은 자신의, 천마의 전승자다.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그는 결코 평범할 수 없다.
‘자, 어디 한번 온몸으로 느껴 보거라.’
천마의 두 눈이 긴 호선을 그리며 그의 입가에 사특하다 할 만한 미소가 머금어진다.
‘……소름이 오싹 끼칠 것이니.’
***
콰과쾅!
지이이익.
후두둑.
단아란의 거친 검격을 이겨 내지 못한 사무현이 또다시 뒤쪽으로 밀려난다.
몸 곳곳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사무현의 방어 자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흐.”
부상을 입고도 단아란의 검격을 한 번 더 버텨 냈다는 사실에 만족한 것인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미소를 머금는 사무현.
그런 그의 모습에 단아란은 결국 탄사를 흘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대단하네.”
무에 대한 재능은 평범하다.
하지만, 인간 자체가 평범하지 않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고통과 부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녀석은, 이 드넓은 강호에도 그리 많지 않을 테니까.
“……옛날 생각나네.”
의지력 하나만으로 저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해내는 이를 그녀도 한 명 알고 있다.
단월혁이 스스로 무림을 떠날 때까지 그의 손발이 되어 주었던 사람.
‘……막태 오라버니.’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단월혁이 저 사무현이라는 아이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를 어쩐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야, 사도관 대표.”
짧은 대치 끝에, 단아란이 사무현을 불렀다.
“……뭡니까?”
“아까 한 말 취소다.”
“예?”
“평범하지는 않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좀 놀랐다.”
“……제가 지금 감사하다고 해야 되나요?”
사람 몸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놓고 칭찬이라니.
어이가 없다는 듯한 사무현의 반응에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단아란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승부는 네가 이겼다. 하지만…… 나도 체면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야.”
그 말과 함께 단아란의 분위기가 한층 더 거칠어진다.
……젠장, 빙빙 말을 돌렸지만 결국 이제 안 봐준다는 소리네.
“거…… 굳이 까마득한 후배 붙잡고 그렇게 힘을 쓰고 싶으세요?”
불만 섞인 항의는 가볍게 묵살당했다.
그리고 곧이어, 사무현의 전신에 오싹한 소름이 끼쳐 온다.
“……옘병.”
역시 길보다 흉이 많을 팔자인가보다.
***
콰광! 쾅! 쩌저정!
전장의 분위기가 다시 한번 급변했다.
처음에는 그런대로 단아란의 공세를 버티는가 싶었던 사무현이, 잠깐의 소강상태 이후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과광!
촤좌좌좍!
가까스로 단아란의 검격을 받아 내도 그 충격파가 사무현의 무복과 몸을 찢어 낸다.
그의 육체가 얼마나 단련되어 있는지 알고 있는 몇몇 이들로서는 보고도 믿기 힘든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형님!’
빠른 속도로 넝마가 되어 가는 사무현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막휘가 두 주먹을 움켜쥔다.
저만하면 충분하다.
사무현은 그의 말대로 가장 앞서서 천무신녀를 맞았다.
두려움에 떠는 모두를 대신해, 이 거리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저 재난 같은 기세를 정면으로 받아 내며 버티고 있다.
‘어째서 저렇게까지……!’
단순히 정도관에게 지고 싶지 않은 호승심인가?
그것도 아니면 대표로서 사도관도들을 지키려 하는 의리와 책임감?
확실한 것은, 여기 있는 이들 중 누구라도 사무현과 같은 자리에 선다면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이가 없으리라는 것이다.
“……막휘 형님! 저는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습니다!”
그의 뒤에서 흘러나온 손익패의 음성에 막휘가 쓴웃음을 머금는다.
“버텨라.”
“형님!”
“형님께서도 저 천무신녀에 맞서 싸우고 계신데, 이 정도 기세를 견디지 못해서야 되겠느냐?”
“형님! 자꾸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막휘의 준엄한 음성에 손익패가 답답한 듯 말을 잇는다.
“여기서 구경만 하고 있지 못하겠다는 말입니다! 빌어먹을!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 천무신녀의 발목 정도는 붙잡아야겠습니다!”
손익패의 외침에 막휘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그라고 어찌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겠는가?
“그런다고 도움이…….”
“피해만 끼치더라도 말입니다!”
“…….”
“형님 혼자만의 피로 승리를 쟁취해 봐야, 우리가 다 같이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
“어차피 지고 사는 거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형님이 이만큼이나 해 줬는데 사람 새끼면 근성 정도는 보여야 하는 것 아닙니까!”
손익패의 힐난에, 막휘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그의 뒤에는 손익패의 뜻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듯 결연한 얼굴을 한 사도관도들이 그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익패와 같은 생각이냐?”
“예! 형님!”
“……그렇다면 좋다.”
어느새 저들의 얼굴에 망설임은 없어졌다.
처음보다 더욱 거칠어진 천무신녀의 기세에 두 다리가 떨려 왔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두 눈에는 이제까지 없던 투지가 들끓고 있다.
“책임은 내가 지겠다! 모두 앞으로 돌격해라!”
“와아아아아!”
“가자아아!”
막휘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친 손익패가 쏜살같이 앞으로 뛰쳐나간다.
사도관도들도 우렁찬 함성과 함께 그 뒤를 따른다.
***
촤좌좍!
쾅!
풀썩.
“……크헉! 허억! 허억!”
“이제야 한계가 왔냐?”
한쪽 무릎을 꿇고 기침을 토해 내는 사무현의 앞으로 단아란이 발걸음을 옮긴다.
‘젠장, 진짜 겁나게 세네.’
제압을 목적으로 힘 조절하는 것이 훤히 보일 정도인데, 그럼에도 저 여자의 그림자조차 스칠 수 없다.
그가 아직까지 쓰러지지 않은 것은, 그저 수년간 괴물들을 상대로 얻어 낸 경험과 무식할 정도로 튼튼한 몸뚱어리 덕분.
하지만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몸에는 조금의 힘도 느껴지지 않고 시야마저 흐릿해져 온다.
이 정도로 한계에 몰린 것은 십만대산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내 선에서 버텨내려 했는데.’
사루계의 모래는 이제 반 정도가 떨어져 내리고 있다.
‘남은 반을 녀석들이 버틸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나 회의적이다.
저 천무신녀가 계속해서 기세를 흩뿌리고 있는 이상, 녀석들은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것이 분명했다.
본능적인 공포란 그런 것이니까.
“그럼 이만 끝내자.”
단아란의 최후통첩에 사무현이 입술을 악무는 그때…….
“와아아아!”
“형님을 지켜라!”
“……얼씨구?”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함성과 황당함이 느껴지는 단아란의 음성에, 사무현이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단체로 겁대가리를 상실했는지, 용감무쌍하게 돌진해오는 사도관도들이 사무현의 눈에 들어온다.
‘저것들이 대체 어떻게……?’
저 녀석들이 천무신녀가 내뿜는 기세를 이겨 냈다고?
그게 의지만으로 이겨 낼 수 있는 그런 게 아닌데?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사무현의 귓가로 심기 불편한 단아란의 음성이 들려온다.
“하아…… 이거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보였나 보네.”
저런 새파란 애송이들이 그녀의 기세를 무시하고 달려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토끼 떼가 대장을 구하려고 맹수에게 달려드는 경우가 있던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단아란이 사무현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여러모로 내 체면을 구기게 만드는구나.”
아, 저도 이것까지는 예상 못 했습니다.
……진짜로요.
“잠깐 쉬어라.”
쾅!
……아, 마무리는 좀 빼 주지.
턱언저리에서 느껴진 뻐근한 충격과 함께, 의식이 끊어진 사무현의 몸이 그대로 쓰러졌다.
풀썩.
***
촤좌좌좍!
“크악!”
“크허억!”
“이…… 이런……!”
섬뜩할 정도로 거친 단아란의 공세를 지켜보며 막휘가 두 주먹을 움켜쥔다.
기세등등하게 부월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던 손익패는 한 합 만에 나가떨어졌고, 그나마 단아란의 기세에 저항하는 듯 보였던 살암도 두 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고?’
천무신녀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사무현 홀로 저만큼 시간을 버텨냈으니, 그들이 단체로 달려든다면 어떻게든 남은 시간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사무현 때와는 달리 검강조차도 끌어올리지 않는 단아란의 공세에, 그들은 말 그대로 추풍낙엽처럼 휩쓸렸다.
사무현이 심어 준 용기 덕분에 아직 도망치는 이들은 없었지만, 천무신녀의 냉혹한 검초는 그들의 투지를 단번에 꺾어 버렸다.
“무, 물러서지 마라! 형님의 의지를 우리가 이어야……!”
쩌저정!
휘리리릭.
풀썩. 털썩.
단아란의 일격에 다시 서너 명의 사도관도들이 바닥을 나뒹군다.
한번 쓰러진 이들은 치명상이 아님에도 일어나지 못하고 가늘게 몸을 떨고 있다.
찰나의 순간 죽음을 마주했던 공포.
계속해 이어지는 막휘의 독려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으득.
‘……내가 나서야 하나.’
혹여나 전투의 여파가 미칠 것을 생각해 사무현의 신변을 지키며 빠져 있던 막휘였다.
하지만 무너져 가는 진형을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막휘가 막 전장으로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꿈틀.
“……음?”
막 한 걸음을 내디디려는데, 여태껏 축 늘어져 있던 사무현의 몸이 움직였다.
“혀, 형님?”
벌써 의식을 차린 것일까?
막휘가 다급히 그의 상태를 확인하려는데, 사무현의 눈이 떠지며 막휘와 시선이 마주쳤다.
“……!”
순간 막휘의 몸이 얼어붙었다.
어째서였을까?
마치 코앞에서 맹수와 마주한 것처럼 몸이 굳어 버렸다.
‘왜…… 왜지……?’
분명 사무현이다.
한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손발이 덜덜 떨려오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이성은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의 몸은 쉴 틈 없이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그렇게 공포에 질린 막휘를 무심하게 바라보던 사무현이, 이윽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연다.
“……어디에 있느냐?”
“예…… 예?”
“본좌의 도 말이다.”
“…….”
“……어디에 있느냐?”
어쩐지 소름 끼치는 사무현의 음성에, 막휘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툭.
막휘를 바라보며 무심히 몸을 일으키던 사무현이, 그의 우수 옆에 놓인 천마도를 확인한다.
떨어진 천마도를 좌수에 고쳐 쥔 그가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쓰윽.
“흐으음…….”
천마도의 도신을 바닥에 향한 채, 실로 오랜만에 숨을 쉬는 것처럼 두 눈을 감고 긴 호흡을 내쉰다.
그 호흡 끝에 아쉬운 듯한 미소를 머금어 보인 사무현이, 이윽고 천무신녀가 휩쓸고 있는 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무시무시한 기세로 사도관도들을 몰아붙이던 단아란이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게 무슨?”
조금 전까지 전투 중이던 사도관도들은 잊어버렸는지, 그들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려 사무현을 바라보고 선 단아란.
그녀의 두 눈에는 불신과 경악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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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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