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95
095화
“이 새끼야! 오늘 너 죽고 나 살자!”
이공간에 들어오기 무섭게, 사무현이 천마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부웅.
“너무 화내지 마라.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다 좋게 끝나지 않았느냐?”
사무현의 주먹을 가볍게 회피한 천마가 침착하게 그를 진정시킨다.
“닥치고 무슨 의도로 내 몸을 뺏었는지 말해, 이 빌어먹을 놈아!”
……물론 역효과만 났지만.
부웅.
“아우……!”
악을 쓰며 덤벼 봐도 허공만 가르는 주먹에 허탈함을 느낀 사무현이 두 눈을 부릅뜨고 천마를 노려본다.
딱히 할 말이 없었는지, 천마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나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본좌는 그저…….”
“그저? 그저, 뭐? 네 방식으로 훈련받은 애들이 얻어맞고 있으니까 없던 동정심이라도 불쑥 생겨나셨냐?”
“어…….”
“…….”
“……바로 그거다.”
“에라아아아!”
부웅.
천마의 변명에 기다렸다는 듯 발길질을 해 보인 사무현이, 결국 또다시 허공만을 걷어차고 바닥에 쓰러진다.
털썩.
“으아아! 빡쳐! 저것도 변명이라고 하고 있네! 천마 새끼가!”
“아니…… 사실인데 어찌하겠느냐?”
“사실? 사시이이일?”
“끄응…….”
광기로 번득이는 사무현의 눈에 침음을 흘린 천마가 잠시 후 양손을 들어 보인다.
“아무튼 이번만큼은 본좌가 잘못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약속하지.”
“후우우…… 젠장. 그래, 계속해 봐야 뭐하냐? 내 입만 아프지.”
결국 천마를 추궁하는 것을 포기한 사무현이, 한숨을 팍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어차피 먹히지도 않는 공격을 계속하며 성질내 봐야 뭐가 바뀌겠는가?
그렇게 사무현을 진정시키는 데 성공하자, 천마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허공을 응시한다.
‘……본좌도 억울한 상황에 빠져보는구나.’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무현이 아니라 자신을 아는 그 누구라도 이런 변명에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을 것이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게지.’
그 한심한 녀석들이 처참하게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멋대로 이런 행동을 했으니, 제정신이었을 리가 없다.
‘아니……. 제정신이 아닌 것은 오히려 그때였나.’
피식 실소를 흘린 천마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비릿하기 그지없던 혈향(血香)이.
귀가 아플 정도로 울려 퍼지던 수많은 이들의 비명 소리가…….
***
“크헉……! 이…… 마귀…… 마귀 놈이……!”
두 팔이 뜯겨 나가고 입에서는 붉은 핏물을 쏟아내는 사십 대 후반의 중년인.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기력도, 검을 쥘 수 있는 두 팔도 없을진대, 그의 두 눈에는 꺼지지 않는 투지가 일렁이고 있다.
그의 앞에 선 이는, 초대 천마 이후 최악의 재앙이라 불리고 있는 존재 칠대(七代) 천마(天魔).
그런 것들을 감안해 본다면, 이 중년인의 용기는 가상함의 정도를 넘어섰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노옴! 정운문(正雲門)과 무한(武漢)연합은 더러운 마교도들 따위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다! 나 하나의 목을 벤들 아무것도……!”
촤악!
풀썩.
“……시끄럽군.”
목이 떨어져 나간 정운문주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천마가 심드렁하게 중얼거린다.
혹여나 조금은 그를 재미있게 해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다른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재미없는 녀석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문주라는 녀석의 목을 베어 내고 나니, 치열한 전방의 상황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마(魔)의 위대함을 알거라, 중원의 버러지들아!”
“응전하라! 마교도들에게 밀리지 마라!”
“흐음…….”
정운문이라.
호북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중견 문파라더니, 생각보다 저항이 거칠다.
거기다 무한 인근의 정도문파들이 연합을 했으니 수만 놓고 본다면 저 천랑대를 웃돌 정도다.
“천마이시여. 아무래도 나서주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진중한 어조로 천마의 뒤에 서서 말을 꺼내는 노인.
천마의 머리라고 불리는, 마뇌(魔腦) 사안평(史眼平)이다.
“……본좌더러 나서라고?”
“물론 내키시지는 않으시겠지만, 무림맹과의 최후 결전을 위해 가급적 전력을 아낄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전력을 아껴……?”
사안평의 설명에, 천마의 입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한 마디가 흘러나온다.
“대체 전력이라 부를 만한 것이 어디에 있다는 말이지?”
“……예?”
“일도(一刀)면 쓸어 버릴 수 있는 벌레들을 상대로, 내 앞길이나 막고 있는 저런 것들을 전력이라 불러야 하나?”
“…….”
“마뇌, 마뇌.”
답답하다는 듯 그의 이름을 힘주어 부른 천마가 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짚는다.
“내가 말했지? 전쟁 같은 건 너희들끼리 하면 되는 거라고. 나 역시 장단은 맞춰줄 수 있다고. 하지만…….”
“…….”
“너희가 내 앞에 방해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 도(刀)의 완성을 위해 나선 이 길에, 방해된다면 나는 너희 또한 베어 버릴 수 있다. 그러길 바라나?”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저 오만한 눈에서는 조금의 웃음기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눈에 차지 않는 이들은 그와 같은 ‘인간’의 선상에 놓일 수 없다.
그저 발에 채이는 수많은 벌레에 불과할 뿐…….
그것을 다시 한번 되새긴 마뇌가 고개를 숙이며 가늘게 몸을 떤다.
“……명심하겠나이다.”
“잘해, 마뇌. 한 번만 더 멍청한 소리를 하면 너마저도 쓸모없다고 생각하게 될지 몰라.”
“……예.”
“하아…… 난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 오지. 무림맹 놈들이 언제쯤 나를 잡으러 올지,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단 말이야.”
언제 그랬냐는 듯 숨 막히는 위압감을 거두어 버리고는, 피에 묻은 천마도를 털며 등을 돌리는 천마.
그런 그의 뒤로 고개를 숙이며 마뇌가 답한다.
“사천과 섬서에 이어 호북까지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다음 차례는 무림맹이 위치한 호남이라는 것을 알 테니, 저들도 최후의 결전을 준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전쟁은 길어지는데, 어째 마음에 드는 녀석들이 안 나타난다는 말이야.”
그렇게 천마가 자리를 떠나려는데, 하늘에서 낯익은 매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끼익!
날카로운 일성과 함께, 하늘에서 두어 번 원을 그리더니 마뇌를 향해 쏘아져 내려오는 붉은 전서응.
한쪽 다리에 매어진 서신을 다급히 뜯어 낸 마뇌가 서둘러 그것을 펼친다.
“……음?”
“왜, 무슨 재미난 일이라도 있나?”
딱딱하게 굳은 마뇌의 얼굴에 호기심을 드러내는 천마.
잠시 후 마뇌가 그대로 바닥에 부복하며 천마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저 간악한 중원의 불신자들이, 결사대(結死隊)를 편성해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급보이옵니다!”
“하하! 결사대? 드디어 움직인 게냐?”
환희에 찬 얼굴로 천마도를 움켜쥔 천마가 두 눈을 번뜩인다.
“어디라고 하더냐!”
“선도(仙桃)를 지난 것이 정오라 하니…… 늦어도 반 시진 이내에 무한에 도착할 것입니다.”
“반시진이라……!”
고대하고 고대하던 순간이다.
갈증이 나는 듯 마른침을 삼킨 천마가, 돌연 두 눈을 반짝이며 마뇌를 돌아본다.
“이럴 때가 아니다.”
“예……?”
“본좌가 직접 저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호법대과 천마대 정도면 충분하겠지?”
“처, 천마이시여. 잠시…… 잠시만 제 말을 들어주시옵소서.”
“뭐냐?”
“현재 저들의 전력을 파악할 수는 없으나, 분명 중원의 사활을 건 전투이니만큼 만만치 않은 전력이 투입되었을 것입니다. 그에 비해 저희의 전력은 호북 각지에 퍼져있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각 장로들이 이끄는 대대를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소집할 것이니, 잠시 물러나 정비를 한 후에…….”
스윽.
“거기까지.”
어느새 마뇌의 목선에 닿아 있는 천마도의 서늘한 도신.
실망으로 얼룩진 천마의 눈빛이 자신을 향하자, 마뇌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문다.
“기어이 날 실망시키는구나, 마뇌. 적어도 너만큼은 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처, 천마이시여.”
“지금까지 나를 보필하며 노력한 공을 인정해 목숨은 빼앗지 않으마. 하지만 이 전장을 마무리 짓는 대로 총타로 돌아가, 남은 생을 그곳에서 마치도록 해라.”
“…….”
“천마대주와 호법대주더러, 수하들을 이끌고 본좌의 뒤를 따르라 전하도록.”
그 명을 끝으로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멀어지는 천마.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마뇌의 얼굴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푸르다.
하지만 더없이 붉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이들의 피가 바닥에 핀 풀들을 뒤덮었고, 곳곳에 널브러진 시신들 중 단 한 구도 형체를 온전히 보전한 것이 없다.
몸에 대여섯 개의 구멍을 뚫리고도 저항을 했는지, 목이 베이고 우수가 날아간 시신.
강기의 폭발에 휘말린 것인지 하반신 자체가 통째로 사라져 버린 시신.
죽어 가는 와중에도 상대의 검날을 움켜쥔 시신과 마지막까지 죽음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시신.
이곳에 얼마나 치열한 혈전이 있었는지를 익히 짐작할 한 광경이다.
그리고 처참한 전장에, 아직까지도 살아 움직이는 이들이 남아 있었다.
“……흐으.”
온몸에서 붉은 피가 쉴 틈 없이 쏟아져 내린다.
전신에 난자당한 듯한 상흔을 뒤집어쓰고 악귀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사내.
세상이 천마라고 부르는 그의 얼굴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만족이라고 할 만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큭…… 큭큭…….”
그로부터 십 장의 거리에는, 호법대와 천마대를 절멸시키고 그를 노린 천 명의 무사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
오 장의 거리에는 중원 무림을 대표한다고 알려진 이성(二星) 오무제(五武帝)가 처참한 몰골이 되어 생을 마감했고, 그와 삼 장의 거리를 둔 곳에는 중원제일인이라 불리는 현천검(現天劍)이 끊어지기 직전의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찌…… 어찌 인간의 몸으로……. 그런…….”
한탄과 불신이 섞인 현천검의 중얼거림에, 천마가 흡족한 미소와 함께 말을 꺼냈다.
“고맙다……. 네놈들 덕분에, 드디어 본좌가 완벽한 일도(一刀)를 손에 넣었구나.”
“어찌…… 하늘은…… 저 악귀에게 저만한…… 힘을…….”
짙은 애통함이 느껴지는 그 짧은 한탄을 끝으로 현천검의 숨이 멎는다.
중원에서 수백 년 만에 배출된 현경의 고수가,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 순간이었다.
“……다 끝났군.”
현천검이 죽고 나자 천마의 입가에도 어느새 미소가 사라진다.
그리고…….
휘청.
풀썩.
‘……어지럽구나.’
진원진기를 과하게 끌어다 쓴 대가일까?
아니…… 그런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가 펼친 마지막 일도(一刀)는 지금의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한 단계 더 나아간 육체로 펼쳤어야 했을 일도였다.
하지만 하필이면 저 현천검과의 싸움 도중 깨달음을 얻어 버렸고, 그는 목숨을 걸고 일도를 전개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수습이 불가능할 만큼 완벽하게 파괴되어 버린 육체였다.
‘뭐…… 상관없나.’
이제 하늘 아래 그의 적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 더 살아갈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더 나아가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게 된다고 해도 결국 그 끝에는 허무만이 존재할 것이라는 의미다.
허무밖에 남지 않은 삶은 결국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고 갈 뿐이다.
그 초대 천마가 그러했듯이…….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눈을 감으려던 그때, 천마의 눈이 돌연 번쩍 뜨였다.
‘……살고 싶다.’
왜일까?
더 이상 살아 봐야 지독한 고독과 허무만이 남아 있을 뿐인데, 대체 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그가 한평생 추구했던 목표는 모두 이루었거늘.
모두…….
‘……사라진다.’
무심코 떠오른 생각에,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뜨였다.
그렇다.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곧, 평생을 바쳐 이룩한 그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도법도, 무공도!
‘그럴 수는 없다!’
마음을 바꿔 먹기 무섭게 입술을 꽉 물고 의식을 붙들었다.
그리고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생존자를 찾았다.
하지만 사방이 피로 물든 이곳에는 오직 죽음만이 가득했다.
“누구…… 없느냐……!”
크게 외쳐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의 음성은 그저 주위만을 맴돌 뿐이다.
그럴 수밖에.
그의 몸에는 더 이상 기력이나, 내력이라 할 만한 것들이 남아있지 않으니까.
“익……!”
필사적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다.
철퍽.
결국 헛손질과 함께 바닥에 엎어진 천마가 잠시 후 몸을 들썩이기 시작했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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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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