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96
096화
“……큭.”
휘이이잉.
“큭큭큭…… 큭큭……. 하하하.”
짙은 허탈함이 배인 웃음이 황량하게 터져 나왔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어째서 그 많은 무인들이 문파를 만들고 제자를 키우는 멍청한 짓을 하는지.
천마는 이를 ‘스스로 벽을 넘기를 포기한 자들의 자기만족’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틀린 것은 자신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벽을 넘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룩한 것을 남기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어째서 자신은 이것을 죽기 직전에서야 깨달았다는 말인가?
“……하.”
웃음이 끝나자 메마른 한숨만 흘러나왔다.
‘이것이 죽음이구나.’
그리고 이것이 고독이구나.
‘……춥다.’
한기와 함께 시야가 흐릿해진다.
과다 출혈?
어찌되었건 그의 명이 곧 끊어진다는 것은 명확했다.
점점 더 흐릿해져만 가는 세상을 지켜보던 천마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미소를 머금었다.
머지않아 누군가 그들의 죽음을 확인하게 된다면, 적어도 천마다운 죽음을 맞이했음을 보여 주어야 할 테니까.
‘한 번만 더…….’
하지만 마지막 허세를 부리고 싶은 그의 이성과는 달리, 그의 두 눈에서는 익숙지 않은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기회를…….”
그가 이룩한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지만 유언조차 될 수 없는 그 중얼거림을 끝으로, 천마의 숨이 끊어지고 만다.
초대 천마 이후 중원을 피로 물들인 최악의 마인, 칠대 천마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이었다.
***
“야야, 무슨 생각 하냐?”
“으음……?”
자신의 눈앞에 손을 휘휘 저어 보이는 사무현의 모습에 천마가 상념에서 벗어났다.
‘……다시 눈을 뜨니 이놈이 눈앞에 있었지.’
마지막 순간 품었던 짙은 한(恨) 때문이었을까?
결국 그는 성불하지 못하고 영으로 남아 저 사무현이라는 녀석의 육체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에게 한번 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참지 못하고 홀로 기쁨의 웃음도 흘렸었다.
‘……차라리 몸을 뺏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하지만 천마는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의 육체를 빼앗기보다, 자신의 전승자로 키워 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이었다.
물론 아직도 가끔씩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아니, 이 새끼 표정이 왜 이렇게 재수가 없지? 어이, 천마 선생님. 표정 좀 똑바로 하세요, 제가 뭐 잘못했습니까?”
……그래, 가령 지금 같은 순간이라든지 말이다.
“……그냥 깔끔하게 죽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뭐? 지금 뭐라고 했냐? 나보고 그냥 죽는 게 나았을 거라고?”
“……그럴 리가. 그냥 혼잣말이다.”
슬그머니 자신의 시선을 회피하는 천마의 모습에,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긴 사무현이 언성을 높인다.
“아니, 이게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넘어가 줬더니 이제는 혼잣말로 사람을 멕이네? 진짜 뒈진 놈 또 한 번 뒈지는 거 보여 줘?”
“……받아라.”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오는 것을 느낀 천마가 허공에서 도를 만들어내 사무현에게 던진다.
스윽.
물 흐르듯 자연스레 도를 받아 곧바로 자세를 취하는 사무현.
그 모습을 보며 애증(愛憎)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느낀 천마가 자신의 도를 사무현에게 겨눈다.
“본좌는 입만 산 애송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디 한번 덤벼 보도록.”
“오호라, 덤비라면 누가 못 덤빌 것 같냐!”
팟!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와 최단 거리로 천마의 목을 노리는 사무현.
그가 추구하던 무의 이치를 어색하게나마 따라 밟고 있는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은 천마가 일도를 휘두른다.
부웅.
쩌쩌정!
“으억!”
휘리리리릭.
쿠당탕탕.
……아, 힘이 너무 들어갔나?
잠시 후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사무현이 두 눈에 귀기(鬼氣)를 불태우며 소리친다.
“으드득……. 좋아, 오늘 날 잡았다! 뒈져, 이 새끼야!”
타다다다닷.
파밧!
“……하!”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드는 그 모습을 보며 천마는 생각했다.
‘그래, 역시 네 놈이야말로…….’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누르며 천마의 도가 사무현의 도와 맞부딪쳐 나간다.
‘본좌의 전승자로구나.’
콰광!
***
천무신녀 단아란의 지도 비무가 끝난 이튿날 새벽.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혈무관 뒤편에 집결한 이들의 얼굴에는,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자부심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어우…… 어제 천무신녀의 검을 받아 냈더니 어깨가 막 쑤시네?”
“나도 권풍을 막아내느라 무리했더니, 근육통이…….”
“넌 그냥 날아가지 않았냐?”
능청스레 주고받는 어투는 평소와 비슷했지만, 그들의 입가에 싱글벙글한 미소는 사라질 줄 몰랐다.
어제 그들이 정도관을 이겼다는 소문이 연무학관에 삽시간에 퍼졌기 때문이다.
‘허허, 이런 기특한 녀석들. 그 정도관을, 응? 너희가, 응?’
석식(夕食)때 그들을 찾아와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던 사도관주.
처음의 근엄한 모습은 어디다 버렸는지, 실실 웃으며 ‘맹활약을 했다는 우리 대표는 어디에 갔느냐?’고 묻던 그 모습은 그야말로 팔불출 아버지를 보는 듯했다.
심지어 오가다 마주치는 선배 기수들마저도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자랑스런 미소를 지어 보였으니, 흡사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고양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대대로 사도관이 정도관을 이긴 전례가 없다는데…… 이거 우리 기수가 사고 한번 치는 거 아니야?’
‘대표 형님만 있으면 가능하지, 아암. 못할 게 없지.’
‘충성을…… 앞으로도 압도적인 충성을……!’
그렇게 모두가 정렬해 사무현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던 중, 이윽고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걸어오는 익숙한 인형이 모두의 눈에 들어온다.
“와! 형님 오셨…….”
환호성과 함께 그를 맞이하려는 순간, 세상의 모든 짜증을 홀로 짊어진 듯한 사무현의 얼굴에 모두가 곧바로 입을 다문다.
“흠흠, 안녕하십니까, 형님!”
“안녕하십니까! 형님!”
막휘의 선창을 따라 우렁차게 인사하는 사도관도들.
하지만 대꾸도 없이 그들의 앞에 선 사무현의 얼굴에는 심술과 불만만 가득하다.
‘오늘은 사려야겠네.’
모든 사도관도들의 머릿속에 스친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하하, 형님. 왜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이십니까?”
막휘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묻자, 사무현이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아, 별 거 아니야. 그냥 어제 좀 많이 맞아서.”
……진짜 겁나게 얻어맞았다.
다름 아닌 천마새끼한테.
“그래도 기분 푸시지요, 형님.”
사무현의 뭣 때문에 기분이 나쁜지 알 리 없는 막휘가, 그의 기분을 살피며 은근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상황 아닙니까? 어쨌거나 저희가 정도관을 이겼…….”
“뭐?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예?”
“이겼다고 기뻐해애?”
……뭐지?
굉장한 삐딱함이 느껴지는 사무현의 얼굴에, 막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물론 저희가 아니라 형님이 다하신 것이긴 한데…….”
“뭐? 내가 다해애애?”
……아니, 대체 뭐지?
내가 뭐 말실수한 게 있나?
결국 영문을 알아내지 못한 막휘가 조용히 입을 다문다.
“얘들이 아직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네?”
갑자기 허공을 바라보며 피식피식 웃음을 흘린 사무현이, 곧 두 눈을 희번득이며 그들을 향해 언성을 높인다.
“나는 기절해서 죽다 살아났고, 늬들은 아무것도 못 하고 처맞기만 했는데! 그걸 이겼다고 좋아해? 그거어얼?”
“…….”
“실력도 아니고 순전히 운으로 결과만 좋게 나온 걸! 그걸 좋아하고 있는다고?”
“……저기!”
목에 핏대를 세운 사무현의 외침에, 사도관도 하나가 최대한 결연한 얼굴로 한쪽 손을 들어 올린다.
“그래도 결과는 좋으니 다행인 것…… 아닐…….”
너 제정신이니? 라는 뜻이 담긴 사무현의 살벌한 눈빛에, 말을 꺼낸 사도관도가 슬그머니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넌 대가리 박고 있어.”
“……옙.”
소심하게 의견을 피력해 보려던 시도를 가볍게 짓눌러 버린 사무현이, 고개를 가로 꺾으며 삐딱하게 입을 열었다.
“여기서, 나나 살암 없이도 정도관 놈들 다 때려잡을 수 있다는 놈 거수.”
“…….”
조금 전의 의기양양함은 온데간데없이 조용한 침묵만이 맴돈다.
“이것 봐. 당장 다음 달에 정도관 놈들이랑 붙어야 하는 놈들이, 이길 자신도 없으면서 고작 운으로 한번 이겼다고 좋아하고 있어?”
“…….”
“이것들이 싹 다 빠져가지고!”
이마에 핏대를 세운 사무현이 두 눈을 부릅뜨며 언성을 높인다.
“천무신녀는 그렇다고 쳐! 하지만 저 정도관 새끼들한테는 지지 말아야지! 강호에서 저것들 만나면 자신 없으니 사이좋게 지내자고 할래?”
“…….”
“긴 말 하지 않는다! 다음 달에 저 정도관 새끼들을 모조리 밟아버릴 수 있도록, 오늘부터 특별 훈련에 들어간다! 알겠냐!”
“예! 형님!”
그렇게 잠시나마 풀릴 뻔했던 기강이 다시 잡히자, 사무현이 어제 전추에게서 받아온 수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부터 새로운 방식의 수련을 시작할 거다. 줄 서서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예! 형님!”
“막휘, 네가 나눠 줘라. 한 명당 네 개씩이다.”
“예, 형님.”
스윽.
수레를 덮어 두었던 천이 걷히며, 그 안에 있던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거무튀튀한 철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언뜻 팔목에 착용하는 장신구 같기도 했고 사슬이 달리지 않은 수갑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
“이게…… 뭡니까?”
의아한 모두의 반응을 빙 둘러보며 사무현이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를 위해 거금을 들여 만든 훈련 도구다.”
“훈련 도구요……?”
“거금? 돈은 한 푼도 안 내지 않았느냐?”
한쪽에서 들려오는 천마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사무현이 말을 이었다.
“묵철로 만든 족쇄인데, 체형에 맞게 이음새를 조절해서 착용하면 된다. 너희의 사지(四肢)…… 그러니까, 양 손목과 양 발목에 채워질 물건이다.”
“……조금 전에는 훈련도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대체 어떻게 해야 족쇄가 훈련도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뒤이어진 사무현의 설명에, 막휘는 그가 이것을 족쇄라 부른 이유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 그 족쇄는, 수업 시간은 물론이고 앞으로 모든 일상에서 너희 몸에 붙어 있어야 한다.”
“모, 모든 일상에서 말입니까?”
“그럼.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아침 수련을 할 때도…….”
“……세상에.”
점점 도를 넘어가는 듯한 사무현의 훈련방식에 막휘가 자신도 모르게 한탄을 내뱉었다.
“이 족쇄의 장점은, 사낭과는 달리 너희의 손과 발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부터 잠들 때까지 실생활에서 수련할 수 있지. 특별히 족쇄를 달고 있는 일상생활에서는 내공을 사용해도 뭐라 하지 않을 테니, 생활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아니…… 그럼 내공 사용도 금지시키려 하셨어요?
내뱉고 싶은 수많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경험상 사무현의 말에 이의를 제기해서 좋았던 적이 없다.
결국 수레 앞에 서 있던 막휘가 앞쪽에 선 이들을 향해 손짓을 해 보인다.
“자, 한 명씩 이쪽으로 와라. 형님의 말씀대로 족쇄…… 아니, 훈련 도구를 받아 가도록.”
“…….”
“거기, 익패 너부터 나와.”
“아…… 예.”
막휘의 지목을 받은 손익패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앞으로 나선다.
“왔습니다, 형님.”
“그래, 여기 받……. 어?”
무심코 수레에서 족쇄를 꺼내 든 막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예? 왜 그러십니까?”
“아니…… 이게…….”
“…….”
“……조심해서 받거라.”
어쩐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그에게 네 개의 족쇄를 건네는 막휘.
이에 고개를 갸우뚱한 손익패가 무심코 족쇄를 받아 드는 순간이었다.
“으엇!”
물건을 받아 들기 무섭게 허리가 휘청하더니, 손익패가 받아든 족쇄가 우르르 바닥에 쏟아진다.
쿠구궁!
심상치 않은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먼지가 일어나자, 조금 전까지 열의를 불태우던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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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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