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years ol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98
098화
웅성웅성.
팽우적의 발언에, 좌중에 작은 술렁임이 일어난다.
“팽 교관님, 그 말씀은 대체…….”
“소승 또한.”
정도관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그때, 혜명의 나직한 음성이 그들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사도관이 정도관에 크게 밀릴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군요. 적어도, 제가 본 사도관은 그러했습니다.”
혜명의 가세로 술렁임이 한순간에 잦아든다. 그리고 그때, 지금까지 의자에 기대어 늘어져 있던 단아란이 한쪽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연다.
“나도 사도관에 한 표.”
“고, 고문님!”
“어찌 고문님까지……!”
“……고문님, 지금 고문님께서 그리 발언을 하시는 근거를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방의걸이 흥미로운 눈을 반짝이며 묻자 단아란이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뭘 뻔한 걸 물어? 내가 지도 비무 때 가르쳐 봤으니 알지.”
“하, 하오나 지도 비무와 실전은 다르지 않습니까?”
방의걸은 개방에 연무학관의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다.
혹여나 그의 입을 통해 어떤 말이 새어 나갈지 염려된다는 듯, 그의 눈치를 살피며 모용평이 다급히 말을 덧붙인다.
“양쪽을 직접 붙여보기 전에는 그리 쉽게 단언할 사안이…….”
“얼씨구? 얘가 웃기는 소리 하네?”
모용평의 말에 피식 실소를 흘린 단아란이, 삐딱하게 고개를 가로 꺾는다.
“그러면 지금까지 늬들은, 애들끼리 직접 붙여 본 것도 아니면서 정도관이 낫다, 사도관이 낫다. 뭘 근거로 떠들었는데?”
“그, 그건…….”
“아하, 아니면 내 안목이 늬들보다 못 해 보였나? 아이구, 이 나이 먹고 새파랗게 어린 놈한테 무시 받으니 서러워서 못 살겠네? 이 억울함을 누구한테 풀어야 되지? 모용세가주?”
“고, 고문님…… 제, 제 말은 그것이 아니라…….”
가주까지 단아란의 입에 오르자 모용평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화산파에서 검존을 두들겨 팼다는 천무신녀라면, 모용세가에 쳐들어가 가주의 수염을 뽑아 버린다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테니까.
그때, 새하얗게 질린 모용평을 대신한 권존의 음성이 들려왔다
“고정하시지요, 고문님. 저 또한 심히 놀랐는데, 검술 교관의 저런 반응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연은 무슨. 살다 살다 내 안목이 무시받는 날이 다 오네. 그것도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자자, 그러지 마시고…… 사실 직접 붙어 보기 전에는 결과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실전에는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아하, 너도 내 안목이 틀린 것 같다?”
“그, 그런 뜻이 아니라…….”
학관주인 권존마저 쩔쩔매게 만드는 단아란의 꼬장꼬장함에 모두가 슬그머니 시선을 회피한다.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 것만은 피하고 싶다는 듯이.
그런 그들을 못마땅하게 둘러보던 단아란이,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한쪽 입꼬리를 씰룩이며 입을 연다.
“야, 그럼 다들 내기 하나 할까?”
“……예?”
“내가 다음 수업 때 정도관이랑 사도관 애들을 한번 붙일 예정이거든? 비무가 아니라 집단전, 너희들이 좋아하는 실전으로 말이야.”
“고, 고문님, 그건 조금 위험한…….”
탁.
“사도관이 이긴다에 금자 백 냥 건다.”
품속에서 전낭을 꺼내 탁자에 내려놓는 단아란의 모습에, 집무실 내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쫄리는 놈들은 뒈지시던지.”
***
이상하다.
요 며칠 사이 연무학관 내에 무언가 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게 무엇인지 꼭 짚기는 어려웠지만, 아무튼 분명 이상했다.
하다못해 이 체술 수업마저도.
“그게 아닙니다, 시주.”
“예?”
“단순히 땅을 지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위력을 전달하기 어렵습니다. 버팀발로 땅을 밀어 찬다고 생각하며 반대편 발을 뻗어야 합니다.”
“끄응…… 그게 이론상으로는 알지만, 막상 해 보면 쉽지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시주. 징징거릴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차십시오.”
“…….”
“실전에서 패하는 것보다는 연습을 제대로 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면서도, 혜명의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그 인자하기 그지없던 스님이 며칠 사이에 왜 이렇게 변모한 것일까?
결국 혜명의 기에 눌린 막휘가 그의 시선을 회피하며 힘차게 발을 내뻗는다.
팡!
“더 힘껏 차십시오! 더 힘껏!”
펑!
“바로 그겁니다! 공기를 터뜨리는 듯한 소리! 그 소리를 기억하십시오, 시주!”
“…….”
“잠깐! 거기 시주는 회전이 부족합니다! 정권은 허리만 돌리는 게 아니라 골반부터 돌리셔야 합니다, 골반. 골바아안!”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사도관도들을 휘젓고 다니는 혜명의 모습에, 결국 참다못한 사무현이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를 내뱉고 만다.
“아니, 저 스님까지 대체 왜 저러는 건데?”
평소에도 다른 교관들에 비해 사도관을 많이 챙기는 느낌이 들었던 혜명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교관들이 정도관에 대한 편애가 심했기에 그리 느낀 것이지, 혜명이 정도관보다 사도관을 편애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봐도…….’
……편애다.
그런데, 정도관에 대한 편애가 아니라 사도관에 대한 편애다.
정파 놈들은 어떤 식으로 주먹질을 하건 자율적인 수련을 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유독 사도관 만큼은 엄격하고 진지하게 그들의 기량을 끌어 올리려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야, 천마야.”
“왜 그러느냐?”
“원래 소림이 친사파(親邪派)냐?”
“그럴 리가 있느냐? 오히려 그 반대지.”
“……그럼 대체 저건 왜 그러는 건데?”
“……낸들 알겠느냐?”
애들 싸움이 어느새 어른 싸움으로 번져있다는 사실을,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
“으라아아!”
“이야아아!”
“흥분해서 손부터 나가지 말고 하체에 신경 쓰라고 하체에! 하체가 흔들리니까 주먹에 힘이 안 실리잖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혈무관 뒤편에서는 시끌벅적한 아침 수련이 한창이었다.
다만 평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전과는 달리 두 쪽으로 나누어져 집단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
한쪽에서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는 사무현이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잔소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막휘! 뒤에 안 보냐! 너 혼자 너무 깊게 들어갔다고! 진형을 보면서 움직이란 말이야, 진형을!”
“예! 형님!”
“익패! 넌 지금 어디 보냐! 막휘가 실수로 앞서갔어도 네가 애들 사이에 끼어들어야 할 거 아냐! 막휘 혼자 고립되게 내버려 둘래!”
“죄송합니다! 형님!”
“살암! 넌 뭐 하는 거야 임마!”
“난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러는 거냐!”
“어, 잘하고 있네. 계속 잘해.”
“…….”
정파 놈들과의 싸움을 대비한 집단 전투 훈련.
양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족쇄(?)덕분에, 전투 경험과 육체 단련, 전술적인 면까지 연습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수련이 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느네.’
칭찬에 인색해야 한다는 천마의 지론에 따라 잔소리만 늘어놓고 있기는 했지만, 저들의 움직임은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달라졌다.
저대로 성장세를 이어 간다면, 다음 정도관과의 대결 즈음이면 꽤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래, 이렇게 모든 것이 만족스럽게 흘러가고 있는데…….
‘……다 좋은데 저 인간은 왜 매일 같이 여기를 찾아오는 거지?’
샐쭉한 사무현의 시선이, 그의 옆에 서서 수련 현장을 지켜보는 사도관주에게로 향했다.
얼마 전부터…… 아니, 정확하게는 혜명의 수업 방식이 바뀐 이후부터 그는 매일 아침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이것도 벌써 닷새째가 되어가니 슬슬 운을 떼지 않을 수 없었다.
“……관주님?”
“음……?”
신중하게 저들의 수련을 지켜보던 사도관주가 사무현의 음성에 고개를 돌린다.
“무슨 일이냐?”
“언제까지 여기 오실 겁니까?”
대놓고 불만스러운 기색을 보이며 사무현이 묻자, 사도관주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오른다.
“아……. 혹시 내가 방해가 되었느냐?”
“방해까지는 아니지만 신경이 많이 쓰이네요.”
“뭐, 조금 신경이 쓰이는 정도야…….”
“많이요, 아주 많이.”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사도관주에게 확고한 뜻을 전하자, 사도관주가 멋쩍은 기침과 함께 그의 눈치를 살핀다.
“한 닷새만 더 참관을 하면…….”
“……그냥 관주님이 수련시키실래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고 가마. 그러면 되겠느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도관주가 태세를 전환하자, 사무현의 미간이 있는 대로 찌푸려진다.
“아니, 대체 다들 왜 그러시는 건데요?”
“무엇이 말이냐?”
“모르는 척 마시지요? 혜명 교관님은 대놓고 사도관만 편애하며 가르치시고, 방의걸 교관님도 얼마 전부터 그러시고.”
“하하, 그분들께서 그러셨느냐?”
“그 외에 다른 교관님들은 하나같이 정파 놈들 위주로만 수업을 진행하는데…….”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정파라는 것들이 치사하게 뒤에서……!”
“……저기요, 사도관주님?”
더 숨길 마음도 없는지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에, 사무현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 꺾는다.
“무슨 일이신데요? 저도 더는 못 참겠으니 그냥 말하세요.”
“아니 뭐…… 그다지 별일까지는…….”
“아침 수련 안 하면 되죠?”
“내기가 있었다. 조만간에 있을 너희와 정도관도들의 대결을 두고.”
미련 없이 등을 돌리려는 사무현의 어깨를 잡으며 사도관주가 다급히 진실을 털어놓는다.
“……뭐라고요? 내기?”
사무현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정도관놈들이랑 저희가 붙는 걸 가지고, 교관님들끼리 내기를 하셨다고요?”
“그, 그렇지.”
“돈을 걸고?”
“그…… 우리가 면목이 없…….”
“얼마나 걸렸는데요?”
“으음……?”
사도관주가 슬쩍 시선을 돌리자,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사무현의 눈빛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대체 얼마를 거셨길래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냐고요. 설마 푼돈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실 테고?”
“어…… 그것이…….”
사무현의 물음에 시선을 회피한 사도관주가, 조용히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한다.
“……스무 냥이다.”
“스무 냥이요? 아니, 고작 철전 스무 냥 때문에 무슨……!”
“……아니, 철전 말고.”
“아, 은자였어요? 어쩐지.”
“아니.”
“예?”
“……그것도 말고.”
그것도 아니라고?
그럼 설마…….
“금자 스무 냥?”
“…….”
“이야…… 명색에 무림맹이라고 봉급이 빵빵한 모양이네요. 언제 그 큰돈을 모으셨대요?”
“……모은 거 아니다.”
“……예?”
“…….”
“……빚내셨어요?”
“…….”
어처구니없다는 듯 두 눈을 끔뻑이는 것도 잠시.
이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한쪽 입꼬리를 심상치 않게 씰룩이며 사무현이 그의 손을 맞잡는다.
덥썩.
“우리 관주님, 진작에 저한테 말씀을 하시지. 왜 그렇게 매번 여기를 찾아 오셨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네요!”
“으음……?”
“크으…… 그런 내기면 또 보나마나 대부분 정도관에 돈을 걸었을 텐데, 사도관주님으로서 정도관에 돈을 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 남들보다 적은 돈을 걸 수도 없고!”
“그렇지! 바로 그것이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주는 사무현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도관주.
이에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사무현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말을 잇는다.
“이제 염려 안하셔도 됩니다. 이 제가! 사도관주님의 돈과 체면을 확실하게 지켜드리겠습니다! 다만!”
“다만?”
“사도관주님의 돈과 체면을 지켜드리는 대신!”
“대신……?”
“개평을 좀 주시지요.”
“개평을…… 뭐, 뭐? 개평?”
“예! 개평! 도박판에서 돈 따면, 딴 돈의 일부를 나눠주는 그 개평!”
……세상에.
너무도 당당한, 설마설마 했던 사무현의 요구에 사도관주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진다.
“아니…… 개평은 왜…….”
“동기부여 차원이지요. 승리에 대한 동기부여!”
“…….”
“……싫으세요?”
사도관주가 망설이자 노골적으로 고개를 꺾으며 삐딱한 자세를 취하는 사무현.
그 모습에 사도관주는 확신했다.
만일 개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 빌어먹을 녀석이 무슨 짓을 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에휴, 높은 분은 응원하며 돈 버는데 나 같은 건 뭐 열심히 굴러봐야 남는 것도 없나 보네. 열심히 해서 뭐 해? 대충 내 한 몸이나 사리는 게…….”
“얼마면 되겠느냐?”
두 주먹을 꽉 움켜쥔 사도관주가, 애써 힘겨운 미소를 지으며 협상을 시도한다.
“에헤이, 또 이렇게 노골적으로 물으시면 부담스러운데…….”
……금방이라도 귀에 걸릴 듯한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은 채, 사무현이 두 손을 펼쳐든다.
“순이익의 구 할.”
천마가 보여
지은이 : 보용도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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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0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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