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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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0로 정벌군(2)
여포와 건평군이 단단히 붙든 상태에서 진등의 파상공세를 원희가 막지는 못했다. 원희의 진은 그대로 돌파 당했다. 적의 병력은 종이가 찢기듯 진등이 가르는 대로 갈라졌다. 중핵이 돌파된 적진은 지리멸렬했다. 여포와 건평군을 상대하던 화력도 몰락해버렸다.
“온후, 남쪽 진문 격파! 진내로 진입!”
“토역장군 손관, 북쪽 진문 격파! 진내로 진입!”
“진상(陳相) 진등, 적장 장막 참살! 휘하 부대 궤멸!”
“적장 견초 부상!”
“적장 진궁 휘하 부대 산멸(散滅)!”
무시로 전령이 내 앞을 오갔다. 그들의 보고는 시시각각 우리의 승리를 확신하게 해주었다. 원희의 군대는 깔끔하게 전멸할 터다. 그가 달아날 방도는 없다. 원소의 체면을 보아 원희의 목을 베지는 않겠지만, 저항하는 병력은 모두 쓰러뜨리고 투항한 병력은 고스란히 거두리라. 예주의 패권을 공고히 하고 원소의 턱밑에 칼을 들이대야지. 이어 조조의 연주를 석권하고 공손찬과 연대하여 기주를 압박하면 원소도 손 쓸 바가 없을 거다. 나는 이미 승리를 넘어 전후의 대략적인 구상까지 생각을 뻗쳤다.
노숙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적을 심하게 옥죄지 말고, 아군을 아끼면서 적당히 압박하도록 하십시오. 이미 적은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옳은 말씀.”
치열하던 금속성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투항을 종용했다. 멀리서 진을 바라보니 적진은 이미 심하게 일그러진 상태였다. 원희를 둘러싼 진과 국지적인 몇몇 소수 부대를 제외하고 적진은 완전히 와해되어 지휘계통이 문란해지고 병사들은 각자도생을 택해야만 했다.
“전쟁이 끝나가는군요.”
나는 무거운 숨을 토했다. 노숙은 나를 보고 안쓰럽게 웃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치중께서도 욕 많이 보셨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같잖은 공치사로 위무하고 있을 때, 전령이 달려와 우리의 앞에 부복했다.
“합비후께 보고!”
“말하라.”
나는 전령이 혹 적장 원희의 목을 베었다고 말하지 않을까 두려워졌다. 그러면 원소와는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마는데. 뭐 지금도 관계는 영 아니올시다이지만. 전령은 절도 있게 공수하며 아뢰었다.
“서주자사 유비의 병력 4만이 동쪽에서 접근 중입니다! 진군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뭐.”
나는 낯선 낱말들을 곧장 알아듣지 못했다. 서주자사, 유비. 그는 전장의 변수가 아니었다. 기주의 증원병력, 연주목 조조는 충분히 계산에 넣고 있었다. 그들은 내내 움직이지 않았다. 북쪽의 그들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만 동쪽의 유비는… 완벽하게 잊고 있었다. 서주는 조조에 의해 완벽하게 박살난 상태였다. 대병을 운용할 여력이 없다. 게다가 예주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없다. 나는 유비의 행마를 짐작해내지 못했다.
“유비……”
노숙도 신음소리에 가까운 말로 유비의 이름을 말했다.
전장의 북이 빠른 박자로 울렸다. 퇴각을 의미했다. 이미 원희의 목줄에 칼을 들이댔던 여포는 퇴각 신호가 세 번이나 울리고 나서야 미심쩍은 표정으로 퇴각했다. 여포는 돌아오자마자 흥분한 목소리로 나를 채근했다.
“어째서 전군을 불러들인 게야!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원희의 목을 땄을 것이다!
”
나는 구태여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어졌다. 어리둥절해 하는 원희의 진과 막 퇴각을 마친 우리의 진 사이, 그 공백에 흙먼지가 낮게 깔렸다. 푸른 바탕의 깃발에 웅혼한 체로 유(劉) 자가 적혀 있었다. 여포는 미간을 잔뜩 좁혔다.
“저건 대체 어느 유 가 놈의 병력인 것이냐!”
노숙이 참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주자사 유비의 부곡입니다……”
“유비!”
그때 초병이 들어와 아뢰었다.
“온후께 보고! 서주자사 유비의 사자가 뵙기를 청합니다!”
여포는 이를 으드득 갈았다.
“대령하라!”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한 문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왜소한 체구에 배가 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수염은 멋대로 길러서 그다지 귀인의 풍모는 아니었다.
“유 사군의 밑에서 종사로 일하는 간옹(簡雍)이라 하외다. 무명이 높은 온후를 뵙게 되어 영광이올시다.”
“허튼 인사치레는 관두고 어서 속내를 얘기하라! 되도 않는 말을 지껄였다가는 네놈의 혀부터 화극에 꿰어버릴 것이다!”
여포의 사자후에도 간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 사군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중립지에 회담장을 마련하고 유 사군을 뵈시지요.”
곰 같은 여포의 주먹이 탁자를 쾅 내리쳤다.
“유비 그 떨거지 같은 새끼가 나를 오라 가라 하느냐! 나와 얘기하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라고 해라! 합비후! 그대가 가서 귀 큰 잡놈을 만나보고 와라.”
와 여포, 솜씨가 제법 늘었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나한테 일을 떠넘기잖아? 나는 얼결에 그 명을 받들었다. 구르라면 굴러야지.
“그럼 소인이 가서 유서주를 뵙고 오겠습니다.”
“내 앞에서는 유서주니 유 사군이니 외지 말라! 오로지 귀 큰 잡놈이다! 알겠느냐!”
나는 땀을 삐질 흘렸다.
“네… 그럼 가서 귀 큰 잡놈을 뵙고 오겠습니다.”
“잡놈을 뵙긴 뭘 뵙는가!”
여포는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다.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조아렸다.
“귀 큰 잡놈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온후.”
여포는 그 곰 같은 손바닥으로 내 등을 팡팡 두드렸다.
“옳거니!”
추간판이 탈출되는 줄 알았다.
나는 간옹의 안내를 받아 유비의 막사로 향했다. 간옹은 껄렁거리는 말투로 내게 말을 건넸다.
“기분이 아주 뭣같으시죠?”
말이라고 하니?
“마음 같아서는 유서주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오.”
간옹은 낄낄 웃었다.
“사군께서는 의인이시니 그래도 말이 잘 통할 겁니다.”
의인이란 작자가 다 차려놓은 남의 밥상을 그대로 홀라당 꿀꺽 해 버리냐? 의인은 개뿔이 의인이야.
“자, 다 왔습니다.”
간옹은 수(帥) 자 깃발이 나부끼는 막사로 나를 인도했다.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구, 어서 오십시오. 명망 높은 합비후께서 친히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막사에 들어서자마자 정말 귀가 큰 사람이 벌떡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내 손을 붙들었다. 고개를 모로 기울이고 살살 웃는 낯빛이 절로 호감을 샀다. 나도 손을 맞잡은 채 고개를 조아렸다. 젠장, 내가 왜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거지?
“유서주를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이구, 제까짓 게 뭐라구요, 예예.”
유비의 과한 겸손에 적응을 못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벼락출세를 했다더니 신수가 과연 훤해지셨습니다!”
“조 장군!”
내가 돌아보자 조운이 쾌활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는 함부로 말을 낮추지도 못하게 되었잖습니까. 오랜만입니다, 합비후.”
나와 조운의 사이에 유비가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합비후께서는 일전에 제 하찮은 이름을 대고 조 장군으로부터 목숨을 구하셨다지요! 아이구, 영명, 영명하신 계책이었습니다! 이 쓸모없는 이름이 합비후 같은 영웅의 목숨을 구하게 됐다니 일생의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아… 저……”
유비는 내 손목을 잡아 끌었다.
“자자, 우선 복잡한 얘기는 관두고 앉아서 술이라도 몇 순배 나누시지요! 이런 귀인을 모시는 자리는 흔치 않으니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이 유 아무개가 간청 드립니다. 제발! 제발! 이렇게 간청합니다!”
유비는 허리를 직각으로 접고 나에게 거듭 청했다. 뭐라 말할 틈을 주지 않는 유비의 겸손에 나는 맥을 못 추렸다. 게다가 유비의 뒤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두 장정도 나를 압박했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코가 잘 생긴 이는 필경 장비 익덕이렷다! 그 옆의 장정은 아주 잘 아는 얼굴이었다. 1,800년 후까지 대한민국 서울 모처에 갇혀 지내게 되실 우리의 관운장! 나를 여기서 구르게 만든 장본인. 그는 제 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뻣뻣한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를 내려다봤다.
유비는 기어코 나를 앉히고 술을 권했다.
“자자, 아우들도 앉고 조 장군도 앉으시오! 자, 합비후, 부디 사양하지 마시고 제 술을 받아주십시오. 영웅의 잔에 술을 따르는 것이 이 유현덕 일생의 소원이었습니다!”
나는 그 겸양에 굴복하여 잔을 내밀었다. 그는 한참동안 전장의 얘기는 하지 않고 시장 바닥에서나 가당할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그 얘기가 꼭 지루하지도 않아서,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그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돗자리나 삼던 촌놈이 대뜸 일주의 자사가 되어 공무를 돌보자니 이것 참 수월하지가 않더군요! 어찌나 공사가 다망하던지, 어느 촌로는 방귀가 잦고 냄새가 고약하다고 제게 하소연을 하더군요! 백성의 뒷구멍까지 책임져야 하는 자리입니다.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하다하다 이제는 내 옛날 얘기까지 안주거리가 되었다.
“지금도 나이가 어리시지만은, 소싯적의 별명이 낭야구자, 낭야의 개새끼셨다구요! 아이구, 이 유 아무개의 배꼽이 빠져버리겠습니다 그려! 이렇게 번듯하신 분이 어떻게 그런 망측한 별명을 가지셨는고?”
이대로 있다가는 이 귀 큰 잡놈의 잡담으로 밤을 새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냉수를 죽 들이켜고 따따부따 이어지는 유비의 수다를 차단했다.
“유서주, 그런 얘기는 잠시 미뤄두고 우리 지금은 당면한 상황을 얘기하시지요. 우리가 조금 급하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일순 유비의 표정이 얼음처럼 굳었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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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옹
자는 헌화. 유비의 동향 친구. 유비 진영의 최고참이었다. 주로 사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유비의 입촉 이후 소덕장군에 임명되었다. 상당히 오만한 성격으로, 유비와 함께 있을 때도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몸을 기대고 있었다고. 제갈량의 앞에서도 반쯤 누워서 회의에 참가했으나 아무런 벌을 받지 않았다. 음담패설에 능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