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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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약왕 환재금
“어쩌려고 이러십니까?”
환재금의 얼굴에는 긴장하는 빛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나를 측은하게 여기는 듯했다.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저를 향해 번쩍이는 수 천 개의 날붙이를 보고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것은 만용입니다, 합비후.”
또렷한 발음이 내 귓전에 울렸다.
“부곡을 동원하여 저를 에워싸실 수는 있으십니다. 허면, 이 다음으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목이라도 치실 요량입니까? 치려면 치십시오.”
환재금은 씩 웃었다.
“제 대갈통은 마치 벌통과도 같아서, 건드리기만 해도 산월의 칼 든 자들이 벌 떼처럼 일어날 것입니다. 예장과 여강, 단양 일대에서 궐기한다면 합비후의 대업에 크나큰 지장이 되겠지요?”
나는 팔짱을 낀 채 환재금이 지껄이는 말을 잠자코 들었다.
“당장 팔략의 대열에서도 탈락하실 테고! 이 환 모의 목 하나를 떨어뜨리자고 그 많은 불행을 감내하시겠습니까?”
“그래,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
“헤헤, 이제야 좀 말씀다운 말씀을 하시는군요.”
환재금은 손바닥을 비비며 나에게로 바짝 다가왔다.
“합비후와 저, 공생할 수 있습니다. 마냥 적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가까이 오지 마라.”
나의 엄포에 환재금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합비후의 권세와 저의 권세를 더하면 누가 감히 대적하겠습니까?”
나는 웃는 둥 마는 둥 하며 그의 말을 계속 들었다.
“이 환 모는 천하 각지에 눈과 귀를 심어두었답니다. 천하의 소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널리 알고 있습니다. 또한 산월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하여 강동의 손책을 압박할 수 있고, 막대한 재물을 지원하여 합비후의 화평사를 최고의 병장기로 무장시킬 수 있습니다.”
“그 대가로 나는 그대의 벗바리가 되어주면 되는 것이고?”
에…… 환재금은 곁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을 끌었다.
“사실 그러면 수지가 조금 안 맞죠. 영명하신 합비후께서 단물만 빨아 잡수시고 이 환 모를 버릴 공산도 있고. 저에게 화평사 일만 중 이천의 지휘권을 맡기십시오.”
나는 흐흐 웃었다.
“사병을 달라?”
“그렇습니다. 또한 구강공의 영지와 유비의 서주가 맞닿은 경계의 땅 한 덩어리를 내어주십시오. 서주와의 장사길도 트려 합니다.”
“땅까지 달라?”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합비후의 힘이 미치는 지역까지 저의 독점적인 물자 공급 권한을 인정해주시고 저자에서의 거래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십시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욕심이 많군.”
“합비후께서 얻을 이익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올시다.”
“내가 만일 거부한다면?”
“그렇게 하신다면 각지의 산월이 합비후의 우군을 습격할 것입니다. 약재의 공급도 뚝 끊겨 병이 있어도 고치지 못하는 자가 부지기수겠지요. 더불어 본디 합비후를 위해 쓰였을 환 모의 정보력이 합비후의 적을 위해 쓰일 것입니다.”
“아하, 그렇군……”
“조금만 수고하시면 그보다 더 큰 이익이 합비후에게 갈 것입니다. 이래도 이 환 모를 잘 벼린 날붙이로 겁박하시고 정녕 죽이시고자 하십니까?”
환재금은 협상이 순순히 타결될 줄 알고 빙글빙글 웃는 낯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어.
“응, 죽일래.”
나는 오른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허저!”
“넷!”
“죽여!”
“넷!”
산 만한 덩지의 허저가 대도를 쥐고 환재금에게 달려들자 그의 낯빛이 파래지며 줄행랑을 쳤다. 마땅히 그를 옹위해야 할 비잔은 자신을 가로막고 선 감녕의 등등한 눈빛에 제압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허저는 등을 돌리고 도망가는 환재금을 바로 따라잡았다. 허저의 억센 악력이 실린 대도가 환재금의 연약한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윽!”
환재금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일순 두 동강 났다. 구구절절 꿀 같은 말을 늘어놓았던 그가 내지른 최후의 항변 치고는 너무나도 짧았다. 그의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뻣뻣하게 얼어버린 비잔의 발등에 피를 튀겼다. 비잔은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나는 전군에게 호령했다.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전원 포박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화평사 전원이 故 환재금의 저택으로 쏟아져 들어가 그곳의 남녀노소를 모조리 포박했다.
“환재금의 물자는 모두 적몰한다.”
상황은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환재금을 따르던 사환꾼은 합비에만 오백 여를 헤아렸다. 개중에는 비잔을 섬기는 산월의 사내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을 모두 하옥하고 새왕 비잔과 환재금이 수족처럼 부렸다는 인물을 성부로 불러들였다.
“새왕 비잔.”
내가 비잔을 부르자 비잔은 불온한 눈빛을 나에게 쏘았다.
“이러쿵저러쿵 말을 이르지 말고 속히 베시오.”
“싫다.”
웃는 낯으로 뜻밖의 대답을 내놓으니 비잔의 얼굴에는 의아한 빛이 번졌다.
“환재금이 죽었다. 너희 단양의 산월은 이제 무엇으로 살 테냐?”
비잔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대는 산월의 걱정을 하기 앞서 그대의 걱정이나 하라. 산월의 형제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대를 괴롭힐 것이다.”
“거 무서운 겁박이로구나. 그렇다면 이제 산월은 나와 손책 모두를 상대해야 하겠군. 너희가 버티겠느냐?”
“형제들은 강하다. 나를 대신할 새왕을 뽑고 그대를 향해 칼과 창을 들 것이다.”
“나와 너 모두가 죽는 계책이구나. 그러하니 하책(下策)이다.”
나를 꿰뚫을 듯하던 비잔의 눈빛이 바뀌었다.
“내가 여기서 너의 목을 치고 질풍처럼 나아가 단양, 여강, 예장의 산월을 토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네가 죽고 나도 상하는 계책이니 중책(中策)이다.”
비잔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그렇다면 상책은 무엇이오.”
목소리의 적의가 다소 누그러졌다.
“내가 환재금을 대신하는 것이다.”
“…뭐요?”
“환재금의 세력과 조직을 고스란히 내가 인수하겠다. 너희는 다만 환 가 놈한테 물자를 대던 것을 제갈 가의 애송이한테 대면 되는 것이다. 환재금이 너희를 얼마나 대단히 대우해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뒤지지 않게 너희를 아끼겠다.”
나의 말에 비잔은 고개를 숙이고 고심하는 듯했다. 비잔이 묵묵부답인 와중에 그 옆의 녀석이 난리를 피웠다. 환재금의 수족 역할을 했다는 녀석.
“닥쳐라! 네놈의 수완은 약왕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거늘! 건방지다!”
하, 네가 또 내 화평을 시험에 들게 하는구나.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분을 삭였다.
“환재금은 민생을 어지럽히고 벼슬아치와 돈놀이를 하려던 자다. 그놈에게 부역했던 너 또한 죄과가 가볍지 않다. 뉘우치지는 못할망정 망령된 소리를 지껄인단 말이냐.”
“원술의 계집을 꾀어 대작의 자리를 꿰찬 불한당에게 죄인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군.”
황조한테 갖가지 욕지거리를 들은 이후로 신선한 녀석이 등장했다. 나의 화평은 위기를 맞았다. 나는 부러 느린 말투로 침착하게 받아쳤다.
“내가 꾀어낸 것이 아니다. 구강공께서 평소 나를 미덥게 보시고 일찌감치 사윗감으로 낙점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변명을 그 망할 자식은 애초부터 들을 생각이 없었던 모양. 그는 고개를 휙 돌리고 내 변명을 일축했다.
“네, 다음 기둥서방.”
하마터면 화평 깰 뻔했다. 마음 같아서는 저 망할 혓바닥을 도려내버리고 싶었다. 나는 한숨을 팍 쉬고 허저에게 명령했다.
“감옥에 집어넣고 푹 썩히시오.”
그 망할 놈은 허저의 억센 악력에 순순히 이끌렸다. 나는 다시 비잔을 내려다봤다.
“마음 좀 정했나?”
“물론 그대가 일전과 같은 대우를 보장한다면 좋지만……”
“일전과 같은 정도가 아니지. 일개 약상과 1만 부곡을 거느린 군후를 같게 볼 수 없다. 또한 그대의 일족과 우리 사이에 화호를 도모할 수도 있음이야.”
“이는 홀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오. 수를 뵙고 그의 결정에 따라야 하오.”
“옳다. 허면 산월수 반림과 대면하겠다.”
내 말에 유엽이 우려 섞인 표정을 지었다.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반림을 합비로 소환하십시오.”
“반림이 합비로 오면 그 또한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 수 없지요. 매한가지입니다. 게다가 나를 푸대접했다가는 일족 전체를 구렁텅이에 빠지게 할 수 있으니, 허튼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색에 산월수이시니.”
비잔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와 환재금은 이익으로만 얽힌 사이, 만일 그대가 이익을 보장해준다면 수가 그대와 손잡지 않을 이유가 없소.”
“그대를 앞세우고 허저, 감녕과 청금의 병력 오십을 대동하겠다. 산월수가 이 정도 인원을 두려워하지는 않겠지.”
“물론. 화평사 일만을 동원한다 해도 수께서는 두려워하지 않소.”
나는 시시껄렁하게 웃으며 턱을 긁었다.
“그래? 그럼 화평사 전원을 동원할까.”
비잔은 헛기침을 하며 애먼 곳에 시선을 던졌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오……”
나는 유엽을 바라봤다.
“노인장과 함께 합비를 맡아주십시오. 환재금의 찌꺼기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일, 경계를 늦추지 마십시오.”
유엽은 손을 모았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나는 깍지를 낀 손을 머리 위로 쭉 폈다.
“오랜만에 바깥바람 좀 쐐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