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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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합비전
바람이 휙 불고 지나갔다. 잡초가 모로 누웠다. 한바탕의 바람은 전쟁을 예고하는 듯했다. 나는 문득 스산한 느낌이 들어 손으로 팔을 쓸었다. 잠깐 따뜻했다가 다시 스산했다.
야전에서의 지휘는 여포의 소임이었다. 나는 뒤로 물러나 그의 방종을 점잖게 제지하는 것이 전부였다. 고둥이 길게 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내달렸다. 언제나 그랬듯 창칼과 사람들이 얽혔다.
꼭짓점의 여포가 태사자의 군진으로 파고들었다. 만지와 허저가 그를 보위했다. 북방에서부터 여포를 따랐던 관록의 기병들이 태사자의 병력을 덮쳤다.
“젖내가 진동해 견딜 수가 없군! 어떤 애송이가 여봉선의 길을 막느냐!”
여포는 방천극으로 숱한 목숨을 짓이기며 포효했다. 그 포효에 패기 넘치는 목소리가 받아쳤다.
“동래(東萊, 지금의 산동반도 일대)의 태사자의(子義, 태사자의 字)다!”
“입 열지 마라! 젖비린내가 풍긴다!”
“늙은 호랑이 단내만큼 지독하겠느냐!”
“건방진 놈. 네놈의 무(武)가 그 시건방을 담보해야 할 것이다!”
여포는 이를 갈며 태사자의 머리통을 향해 방천극을 내질렀다. 태사자는 상체를 휘청거리며 간신히 피했다. 그리고 기다란 창을 여포의 목덜미를 향해 뻗었다. 여포는 여유롭게 피하며 입술을 뒤틀었다.
“어린 놈이…… 꼴에 반격을 하시겠다?”
그는 이를 악물어 기합을 넣고 양팔의 근육에 잔뜩 힘을 주었다. 숨을 짧게 한번 뱉고, 무자비하게 방천극을 휘둘렀다. 그 압도적인 속도에 태사자의 창이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다. 빠른 박자로 들리는 날붙이의 소리는 어찌나 빠른지 이따금 두 소리가 겹쳐서 들리기까지 했다. 태사자는 계속해서 여포의 맹공을 방어했지만 확실히 힘에 부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내가 돕겠다!”
황개의 철편(鐵鞭)이 여포의 공세를 차단했다.
“여기 한당도 있다!”
한당 역시 가담하여 여포를 쳤다. 손책의 밑에서 내로라하는 용장들이 일제히 여포를 향해 달라붙었다. 여포의 얼굴에는 일말의 당황도 스치지 않았다.
“조무래기들! 차라리 한꺼번에 덤벼라! 시간이 아깝던 차였다!”
여포는 그렇게 일갈하며 방천극을 크게 휘둘렀다. 황개의 목덜미를 아찔하게 비켜간 방천극이 한당의 수염 끝을 스쳤다. 터럭 몇 가닥이 느리게 낙하했다. 한당은 절로 긴장의 침을 삼켰다. 그 틈을 타 태사자가 여포의 허리를 향해 창을 찔렀지만 여포는 왼손으로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그것을 방어했다.
“지금부터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여포는 냉혹한 웃음을 흘렸다. 손가의 용장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는 고삐를 놓고 오른손으로 방천극을 짧게 잡고 왼손으로 칼을 꽉 잡았다. 오로지 허벅지의 힘으로 적토마를 제어하면서 양손의 날붙이로 태사자, 황개, 한당을 상대했다. 정신없이 난무하는 공세에 세 용장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등당(鄧當)이 여기 있다!”
태사자, 황개, 한당이 맥을 못 추리는 틈을 타 손책의 휘하에 있던 장군 등당이 나섰다. 그는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창을 여포의 목을 향해 질렀다. 여포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꼭 이렇게 죽으러 오는 놈이 하나씩 있지.”
여포는 자신을 향해 내질러지는 창의 자루를 맨손으로 잡더니 그것을 쑥 잡아당겼다. 가문 날의 잡초가 뿌리째 뽑히듯 등당은 그대로 딸려왔다.
“주제넘은 자에게 온당한 벌을 내리겠다.”
여포는 등당을 낙마시키더니, 등당에게서 그의 창을 빼앗아 그대로 그의 목에 구멍 두 개를 뚫어버렸다. 벌건 피를 쏟으면서 등당은 죽어버렸다.
“등당! 등장 3초 만에 퇴장!”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저런 쪼다 같은 생중계뿐이었다.
등당이 순식간에 주검이 돼버리자 손책군의 사기는 일거에 싸하게 가라앉았다. 손책군 제일의 용장들을 아래로 깔보며 등등한 기운을 뻗치는 여포에 손책의 전 병력이 압도되었다. 전장에서 사기가 한번 기울면 확 쏠려버린다는 것을 역전의 용장들이 모를 리 없었다. 손책은 중군에서 소리쳤다.
“여포를 쳐라! 저 삼부지자(三父之子, 세 아비의 아들. 여포가 자신의 생부, 병주자사 정원, 동탁을 차례대로 아비로 섬긴 데서 유래)의 목을 내 앞에 대령하라!”
그 호령에 손책의 밑에서 구르던 능조, 동습, 진무, 송겸 등 태사자, 황개, 한당 다음가는 장수들이 한번에 나섰다. 여포도 저들을 보고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는 너무 치사하잖아?”
이에 용기를 얻은 태사자들이 달려들자 여포도 수세로 일관하는 수밖에 없었다.
“온후! 천것이 칼을 좀 섞어도 되겠수?”
여포에게로 육박하는 송겸의 대도를 막아서며 만지가 킬킬 웃었다. 여포는 씩 웃었다.
“너는 제갈찬의 염파(廉頗, 전국시대 조나라의 노장. 노익장 고사의 주인공)가 아니더냐! 어찌 천것이라 하느냐!”
동습의 창은 허저가 막아냈다.
“지두 껴두 되겄슈?”
“오호라, 너는 제갈찬의 번쾌(樊噲, 한고조 유방의 심복. 용맹한 것으로 이름을 떨침)가 아니더냐! 좋다!”
허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번캐?”
여포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보다 무식한 놈은 처음 본다. 싸우기나 해!”
“야! 알겄슈!”
싸움에 뛰어들지 않는 입장으로서는 이보다 더 훌륭한 구경거리가 없었다. 태사자, 황개, 한당, 능조, 동습, 진무, 송겸.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결코 떨어지지 않은 무장들의 공세 속에서, 여포의 방천극과 만지의 칼, 허저의 창이 이를 모조리 소화해내는 광경은 무(武)를 뛰어넘은 예(藝)의 경지랄까. 7인의 무장들이 일제히 나섰음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3인의 모습을 보며 손책의 병사들은 오히려 더 위축되었다. 저들이 내 편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치열한 균형은 만지의 칼이 송겸의 목을 뚫어버리면서 기울게 되었다. 만지는 송겸과 진무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 고삐를 급하게 쥐어 말을 측면으로 몬 뒤에 송겸의 목을 내리쳤다. 예리한 칼날에 송겸은 비명 한번 제대로 내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두 동강이 나버리고 말았다. 능조가 아연실색했다.
“송겸!”
만지는 킬킬 웃었다.
“아, 쟤 이름이 송겸이었냐?”
동습이 송겸의 주검을 보느라 잠시 넋이 나가있던 찰나의 순간, 초승달 모양의 그림자가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너, 지금 한눈 팔았지?”
여포는 동습의 머리 위로 안광을 쪼이며 방천극을 그대로 내리쳤다.
“윽!”
동습도 머리가 반으로 쪼개져 낙마했다. 순식간에 두 명의 용장이 나가떨어지자 나머지 무장들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젠장, 이래서는……”
손책은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눈치 빠른 주유가 씁쓸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모두 불러들여라!”
퇴각을 의미하는 북소리가 적진에서 들렸다. 먹잇감이 등을 보이면 맹수는 그때부터 미친다. 일곱 명의 무장 중에서 둘이 죽고 다섯이 내빼니, 여포는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어딜 도망가냐!”
여포는 급히 기동하여 도망치는 적장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적토마의 붉은색이 진무의 앞을 가로막았다.
“싸움에 임했으면 네 손에 남의 목을 쥐든, 남의 손에 네 목을 쥐여 주든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여포는 아직 성미가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게 전장의 예의 아니냐!”
방천극이 반원을 그렸고, 한 명의 무장이 또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손책의 완벽한 패배를 선언하는 것이었다. 의연함을 잃지 않던 태사자의 얼굴에도 두려움이 번졌다. 주유는 고수(鼓手)를 더욱 재촉하여 빠른 박자로 퇴각을 알리게 했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전군에게 명했다.
“우리는 이미 이겼다! 진격하라!”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내 호위 격으로 붙여놓았던 감녕이 볼멘 소리를 냈다.
“합비후… 다음부터는 저도 앞세 서게 해주십시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미안합니다, 규규무부.”
여포와 만지, 허저의 손에 등당과 송겸, 동습, 진무의 머리가 날아갔다. 아군의 사기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끓어올랐다. 후방에서 그들을 지원하던 노구와 영자도 병력을 한꺼번에 풀어버렸다. 우리의 봉시진이 우물쭈물하는 적의 원진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손책은 전속력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전속력을 다해 쫓았다. 와중에 낙오한 적병들은 투항하거나 어줍지 않은 저항 끝에 죽고 말았다.
“설마 이것도 계책은 아니겠지?”
내가 괜한 소리를 지껄이자 량이가 건수 잡았다는 듯 비아냥거리고 나섰다.
“걱정도 팔자십니다, 형님!”
얄미워! 복수해주지 않으면 잠을 못 잘 것 같았다.
“그래, 내 팔자에는 걱정이 너무 많은데 네 팔자에는 걱정이 너무 없나보다. 너는 걱정 좀 해야겠던데.”
량이의 표정이 흔들렸다.
“왜, 왜요?”
“모란이가 나한테 푸념하던 걸! 밤이 즐겁지 않대. 걱정 좀 하고 신경 좀 써라, 나의 아우야.”
“저, 정말요!”
변성기를 맞은 것처럼 량이의 목소리가 괴상하게 뒤틀렸다. 나는 얼굴에 비아냥을 가득 담아 대답해주었다.
“아니.”
량이는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소리를 빽 질렀다.
“형님!”
“아오, 시끄러워! 그 힘 아껴뒀다가 모란이한테 쓰라고!”
“너무하십니다!”
무지막지한 적토마의 속력을 따라가느라 나의 네 필 말이 이끄는 수레도 급히 가속했다. 덜컹거리는 수레 위에서 나는 적진에 시선을 두었다. 가끔 시선을 돌려 량이를 바라봤는데, 그는 끙끙 앓는 표정이었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한껏 조롱해주었다.
“모란이가 정말 그런 말 한 거 아니죠? 진짜로?”
“아, 그렇대도! 사실은 밤이 너무 좋아서 미치겠다고 했어.”
그 한 마디에 량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의외로 단순한 녀석이잖아?
“정말요?”
나는 정색하며 받아쳤다.
“아니.”
어린 남자들의 유치한 농담 따먹기 속에서 전쟁은 끝나가고 있었다. 손책은 수춘으로 빠르게 퇴각했다. 일단 승기를 잡은 우리도 그를 끈질기게 추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