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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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합비전
전후처리가 한창인 와중에 나는 모든 벼슬아치를 불러들였다. 급한 일은 모두 끝났다. 이제 원술의 후사가 누군지 분명하게 선언해야만 했다. 분위기로 봤을 때 내가 원술의 뒤를 잇는 것이 당연했다. 나도 오래 전부터 각오하고 있던 바였다. 그러나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여포.
여포는 본디 내가 주군으로 섬기던 인물이다. 그런 그를 앞에 두고 내가 원술의 뒤를 이어 그를 다스리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그의 심사를 거스를 수 있는 일이었다. 여포는 엄연히 대병력을 거느린 거물 군벌이다. 아무리 나와 그 사이가 돈독하다 해도 그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언제든지 어긋날 수 있었다.
불감청 고소원이라고, 내가 입을 꾹 닫고 있으니 염상이 나서서 말했다.
“합비후, 이제 합비후께서 구강공의 뒤를 이었음을 만천하에 선언해야 합니다.”
노숙이 이에 동의했다.
“옳습니다. 이제 거리낄 일이 없습니다.”
“으음……”
내가 여포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빠른 만지가 모를 리 없었다. 만지는 킬킬 웃으면서 내 아픈 곳을 찔렀다.
“뭐하시우? 어서 대장군에 스스로 취임하시지 않구!”
“으음……”
나는 그들의 채근에 한동안 답하지 않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뚜벅뚜벅 여포를 향해 걸어 나갔다. 나는 그 앞에 몸을 깔았다.
“온후, 저는 본디 온후를 섬기던 몸, 제가 비록 구강공의 사위라 하나 어찌 온후를 앞에 두고 망령된 말을 주워섬기겠습니까?”
내 가증스러운 말에 여포는 나를 아래로 깔아보았다.
“오히려 대장군의 자리에 적합한 분은 온후일지도 모릅니다……”
내 말에 여포는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픽 김 샌 웃음을 토했다.
“지랄하네.”
여포는 내 멱살을 틀어 쥐었다. 나는 그의 악력에 그대로 딸려 몸을 일으켰다. 여포는 나를 못마땅한 눈으로 보다가 대뜸 나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 가죽을 때리는 소리가 합비의 성부를 뒤흔들었다.
“컥!”
오장육부를 입으로 토할 뻔했다. 아찔한 고통에 나는 나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여포는 한 대 더 때렸다. 퍽! 나는 구역질이 났다.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비틀거리는 내 멱살을 여포가 더 세게 쥐었다.
“지금 놀리냐?”
나는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오, 온후……”
“마음 같아서는 확 목을 비틀어버리고 내가 대장군이 돼버리고 싶지만……”
여포는 좌중을 죽 둘러보았다.
“이 머저리를 좋아하는 머저리들이 너무 많아서 곤란하다.”
여포는 내 멱살을 놓았다. 나는 털썩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여포는 한숨을 깊게 팍 쉬고 말했다.
“여기까지, 옛 주군과 옛 가신 사이의 대화. 끝.”
여포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내 앞에 그 곰 같은 덩치를 숙였다.
“정북장군 여 봉선! 합비후께 아뢰나니 부디 대장군에 취임하시어 가련한 백성들을 굽어 살피십시오!”
벼락같은 소리가 벼락같이 날아가 정청을 뒤흔들었다. 그 한마디에 성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앞에 몸을 깔았다. 그들은 일제히 외쳤다.
“대장군에 취임하시어 백성들을 굽어 살피십시오!”
“굽어 살피십시오!”
나는 소리들에 위압되어 몸을 비틀거렸다. 내 앞에 엎드려 등짝을 보인 사람들이 내 작은 눈동자에 가득 들어찼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빨리 대장군에 취임하라고! 아, 아니, 취임하십시오!”
여포가 머쓱한 존댓말로 나를 몰아세웠다. 나는 침을 한 번 더 삼켰다. 나는 나에게 등을 보인 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내가 섬겼던 여포.
또 내가 대장으로 대우하던 노구, 장패.
내 친구 영자, 손관.
원술에게 의탁한 나에게 맨 먼저 손을 내민 염상.
여강의 정보를 토벌하고 만난 유엽, 그가 데려와준 노숙.
북해에서부터 연을 맺은 왕수.
나의 얄궂은 아우, 량이.
여남에서 의기투합한 허저, 그가 데려와준 진도.
구세주처럼 나타난 만지.
규규무부 감녕, 그리고……
합비 성부의 대들보 뒤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여인의 얼굴과 몸. 시영. 시영도 나에게 엎드려 등을 보였다. 시영, 시영…… 그들 모두가 나에게 엎드렸다. 속에서 참을 수 없는 뜨거운 슬픔이 북받쳤다. 나는 위엄이 서려야 할 자리에서 바보처럼 울고 말았다.
“나는, 나는……”
나는 눈물을 슥 훔쳤다. 어쩌면 콧물이 나왔을지도 몰라.
“나는……”
깊은 숨을 뱉어 슬픔의 일단을 덜어냈다. 나는 한 번 더 숨을 뱉고, 선언했다.
“대장군에 오르겠습니다……”
여포가 몸을 일으키며 채근했다.
“당당하게 한 번 더 외치십시오!”
“나는, 대장군에 오르겠습니다!”
나의 선언에 모든 이들이 일어나 만세를 외쳤다. 만세는 천자에게만 가당한 찬사이지만, 나는 지금 천자보다 위대한 사람이었다. 만세, 만세, 고맙다, 만세, 만세…… 나도 만세를 누리고 당신들도 만세를 누리자. 그렇게.
나는 만세소리 속에서 시영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았다. 그녀의 몸은 차가웠다. 시영은 힘겹게 웃었다.
“축하드려요……”
“…고맙소.”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나오는 말이 고맙다 한 마디밖에 없었다. 그녀를 껴안고 한참 있었다. 한참 그렇게.
나를 대장군으로 취임시키라는 여포의 상주문이 송경으로 급히 보내졌다. 내가 나를 대장군으로 삼으라고 하는 상소를 올릴 수는 없었으니, 우리들 중 가장 고관인 여포의 이름을 빌린 것이었다. 글씨를 잘 깨치지 못한 여포가 상주문을 쓸 수는 없으니, 글 솜씨가 좋은 노숙이 대신 쓰고 여포는 도장만 찍었다.
천자는 곧장 답신을 보내왔다. 공융의 손에 칙서를 들려서. 공융은 사랑입니다.
“태부, 어서 오십시오.”
내가 합비의 남문까지 나가 그를 맞자, 공융은 푸근하게 웃었다.
“유붕자원방래면 불역락호,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즐겁지 아니한가! 그대는 즐거운가?”
공자의 그 명구는 예전에 한 번 쓰신 것 같은데요. 아무렴 어때. 나는 그의 비위를 맞춰주며 합비의 성부로 인도했다. 그를 위해 연회를 준비했는데,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기쁜 소식은 빨리 알릴수록 좋지. 그대를 먼저 대장군에 올리고 나서 술을 마시도록 합세.”
나는 그의 호의를 감사히 받았다. 공융은 성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엄숙히 천자의 칙령을 전달했다.
“정북장군 온후 여포의 상소는 받아보았다.
짐이 오후 진동장군으로 임명한 손책이 감히 망령되이 군사를 일으켰다고 들었다. 이에 양주자사 제갈찬이 의기롭게 병사를 일으켜 그를 토벌하였으니, 그 공이 드높다. 크게 상찬한다.
이 일로 손책을 모든 직위와 작위에서 파면한다. 그는 역적이다. 전력을 다해 토벌하도록 하라.
짐이 대장군으로 삼았던 원요가 손책에게 가담하여 참람하게도 짐에게 반기를 들었다. 용서할 수 없다. 원요와 정동장군 원윤을 비롯한 역도 모두의 작위, 직위를 빼앗는다.
그리고 양주자사 제갈찬에게 대장군을 더한다. 또한 합비현을 구강군에서 떼어 별도의 군으로 삼고, 합비군이라 한다. 합비현후 제갈찬을 합비군공으로 삼는다. 이로써 제갈찬을 모든 공후의 으뜸으로 삼는다. 토민교위와 호월교위를 더한다.
정북장군 온후 여포는 절세의 무공으로 적을 토평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에 그를 제국의 병마를 관장하는 태위(太尉, 승상·어사대부와 함께 삼공의 일각, 실권은 없음)로 삼는다. 태위부는 마땅히 송경에 설치함이 옳으나, 아직 합비공의 연치가 어리므로 태위 여포로 하여금 보좌하게 한다.
앞으로 합비공 제갈찬은 짐에게 일일이 상주하지 말고 사사로이 벼슬을 주는 것을 허한다. 화월지맹의 상주는 영구히 보류한다.
다시 한 번 합비공의 군공을 크게 치하한다. 앞으로도 짐을 향한 단심(丹心)을 잃지 말라.”
천자의 칙명은 파격적이었다. 현후에서 군공으로 나의 작위를 높이고 내 임의로 벼슬을 주는 것을 허락하니, 실질적으로 별도의 조정을 수립하는 것을 용인하겠다는 처사였다. 게다가 여포를 태위로 높여 내 명령을 받게 된 여포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여러모로 천자가 나에게 베풀 수 있는 아량은 모두 베푼 것이었다. 언제부터 이 인간이 내 편이 됐지? 어안이 벙벙한 와중에 나는 칙사 공융의 앞에 엎드려 천자의 칙명을 받았다.
“감축 드립니다, 합비공.”
왕수가 빙긋 웃으며 나를 축하했다. 합비공이라는 부름이 아무래도 어색했다.
나는 대장군에 취임하고 양주자사부와 대장군부를 하나로 합쳤다. 사람들은 합비공부라고 불렀다. 약칭 공부(公府). 공부에는 숱한 관리들이 내 결재를 받기 위해 수없이 오갔다. 밤에는 시영을 안고 싶었는데 나는 밤에도 시달렸다. 아니 승진을 했는데 왜 업무량이 더 늘었어? 야근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공부의 벼슬아치 중에서 가장 바쁜 쪽은 청금이었다. 환재금의 일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유엽은 열흘째 야근 중이란다. 애도를표한다. 환재금의 저택은 재건축 수준으로 파헤쳐졌다. 그 결과물이 속속 드러났다. 하루는 유엽이 바쁜 걸음으로 공부에 입시했다.
“합비공.”
서류뭉치를 뒤지며 도장을 마구 찍어대던 나는 그의 부름에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는 궤짝 서너 개가 놓여있었고, 그것에는 은빛의 물체가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인사말 대신 질문을 던졌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유엽은 말없이 그 물체들을 들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바라보니 그것은 칼의 형상이었다. 유엽은 칼의 형상의 그것들을 쥔 두 손을 벌렸다. 그러자 그것들이 다시 궤짝으로 낙하했다.
날카로운 금속성이 공부에 퍼졌다.
내 귓전에도 그 소리가 파고들었다. 나는 각성했다.
“이 소리는……”
환재금의 저택에 갔을 때 들리던 그 소리. 허저와 감녕, 무사들의 몸을 굳게 만들었던 그 소리. 그 소리가 바로 저것의 소리였다. 나는 내가 앉은 자리에서 뛰쳐나와 그 궤짝으로 튀어나갔다. 궤짝의 양 귀퉁이를 붙잡고 그것에 시선을 박았다. 선연한 은빛이 내 피부에 투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