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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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미움도 숙명이다
주태와 장흠이 날다 긴다 하는 수적이라지만 휘하의 창칼을 든 치들은 정규적인 조련을 받지 못한 사내들이다. 나의 휘하에는 주태와 장흠 못지않은 무장들이 즐비하고 병장기의 양과 질이 그들을 압도한다. 그러니 긴장은 하되 두려워할 까닭은 없었다.
“오래 일한 자는 쉬게 하고, 신참들을 동원해볼까……”
매번 영자와 허저, 만지 등이 수고했다. 이번에는 새로 얻은 무장들을 시험해볼 겸 편제를 바꿔볼 요량이었다.
“찬, 나 데려가도 괜찮은데……”
영자가 징징거렸지만 어림없었다. 술판이나 벌이면 족할 허저와 만지는 이미 멀찌감치 저자거리의 탄막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떠났다.
합비호는 넓은 호수이다. 육군으로 호수를 에둘러 가 적을 치는 동시에, 수군을 띄워 수상의 적들을 타진해야했다. 나는 합비호 수적 토벌을 개시할 인원들을 공부로 불렀다.
참군으로는 합비현령 유복과 태위부 장사 제갈근을 임명하고, 대장군부 장사 주환과 북부사마 서성을 나의 창칼로 삼았다. 그래도 그들만 믿을 수는 없기에 화평교위 감녕을 함께 불렀다. 새로운 면면들과 마주하니 기분도 조금 나아지는 듯도 하다. 다소 속되지만 남자들이 오래 교제한 예쁜 여자보다 오늘 처음 본 여자에 끌린다더니, 그 속성은 남녀의 상열지사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론에 공히 적용되는 명제인가 보다.
나의 새로운 인재들은 공훈을 세우기 위해 작전에 의욕적으로 참여했다. 아직까지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싸가지 주환을 빼고는. 그는 자세를 삐딱하게 하고 앉아서는 발을 까딱까딱 흔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정강이를 걷어차주고 싶었다.
나의 형님 제갈근이 먼저 운을 뗐다.
“적은 비록 수적이지만 지형지물에 익숙합니다. 얕보고 들어갔다가는 크게 당하고 말 것입니다.”
배불뚝이 유복도 이에 동의했다.
“자유(제갈근의 字)의 말이 옳습니다.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할 것입니다.”
이에 싸가지 주환이 틱틱 쏘아붙였다.
“수적 따위를 가지고 회의씩이나 하다니, 이래서 대장군부의 위엄이 서겠소?”
규규무부 감녕이 그에게 눈을 흘기며 으르렁거렸다.
“어느 안전이라고 막말이냐? 닥쳐라.”
주환은 그 말대로 닥쳤다. 우리 귀여운 토쟁이 서성도 입을 열었다. 난 쟤가 입을 열 때마다 무서워.
“음… 듣자하니 화평교위께서는 일찍이 장강의 상류를 주름잡던 협객이라고 들었습니다.”
예의바른 서성은 익주에서 굴러먹던 수적나부랭이를 장강의 상류를 주름잡던 협객이라고 지극히 순화해서 말했다. 감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에게는 좋지 못한 역사니까. 서성은 말을 이었다.
“허면 화평교위께서 수군을 이끌어 적선을 공파하고, 저와 주 장사(주환)를 선봉으로 삼아 적을 압박하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정석이었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가진 정보가 없기 때문에 비상한 책략을 세우기란 지난했다. 청금은 일 안 하고 뭐하는 거야? 재깍재깍 첩보를 갖다 바쳐야지. 제갈근과 유복은 머리깨나 굴리는 책략가들이었지만 요리할 재료가 없으니 훌륭한 요리사여도 내놓을 요리가 없었다. 우선 출정을 하여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기로 결정했다.
“체, 대장군부의 회의란 것도 별 거 없구만.”
주환은 끝까지 태클을 걸었다.
“닥쳐라.”
감녕의 핍박에 주환은 다시 닥쳤다.
나는 통 크게 병력 이만을 동원했다.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었다. 합비호의 수적은 본진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으니 병참에 대한 걱정도 불식시킬 수 있었다. 내가 총대장으로서 스스로 나서고, 유복과 제갈근을 중군의 참모로 삼았다. 주환과 서성은 각각 육군의 좌우 선봉장에 임명했다. 감녕에게는 이만 중 오천의 수군을 맡겨 합비호의 북쪽 부두에서 전선을 띄우도록 했다.
“주태와 장흠이라……”
주태와 장흠은 모두 손씨의 용장들로 활약했다. 특히 주태의 이름값은 상당히 높다. 숱한 상처를 입으면서도 위기에 처한 손권을 끝내 구해내 명성을 떨쳤다. 손권은 그의 몸에 난 상처 하나하나를 짚으며 그 상처에 얽힌 상황을 풀어 설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상처마다 한 잔씩 술을 마시게 했다고. 그렇기에 용맹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라고 하겠다. 장흠 역시 용장으로, 입신양명의 기준으로만 보자면 주태보다 나았다. 역시 방심은 금물이겠다.
나는 갑주를 입고 허리춤에 칼을 차고 손에 지휘채를 쥐었다. 이제 제법 군의 수장으로서 참전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나는 한껏 차려입고 시영 앞에서 우쭐거렸다가 퉁을 맞았다.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죽는 일인데 그렇게 실없이 웃어서야 되겠습니까.”
나는 받아칠 말이 없어 입맛만 다시다가 도망치듯 출정했다.
“어디 몸이 안 좋으십니까?”
유복이 딴에는 호의랍시고 내게 말을 건넸지만 달갑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 둬. 혼자 있고 싶어.
깃발이 올랐다. 이제는 내가 출정하면 중군에 큰 대 자를 쓴 깃발이 올랐다. 붉은 바탕에 금색 실로 수놓은 글자였다. 대장군의 상징이었다. 나는 들뜬 마음을 만끽하면서도 시영의 말을 되새기며 여로에 올랐다.
서성은 대놓고 바짝 얼어있는 표정이었고, 주환도 떳떳한 체는 하지만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쓰던 자들을 데려올 걸 그랬나. 나는 난감해서 관자놀이를 긁었다.
감녕은 수군을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었지만, 육군은 호수의 테두리를 에돌아가기 때문에 보조를 맞추어 천천히 진격했다. 나는 제갈근과 주환을 한 조로 삼아 좌군으로서 호수의 우측 테두리를 돌아가도록 했고, 나는 유복, 서성과 함께 우군으로서 호수의 좌측 테두리를 돌아갔다. 주환이랑 같이 다녔다가는 제 명에 못 죽을 것 같아서. 동서의 육군과 중앙의 수군이 주태와 장흠을 압박하는 형세였다. 나는 더 빨리 행군할 수 있었지만 그리하지 않았는데, 적을 천천히 압박해 내분이 일어나거나 우리에게 귀부하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합비를 떠난 첫날 막사를 치고 숙영했다. 숱한 제후들과 다퉜던 병사들은 일개 수적을 토벌하는 일에는 별로 긴장하지 않았다. 자칫 군 기강이 해이해질 수 있어, 음주를 엄히 금하고 근무를 게을리하는 자를 엄벌하도록 했다. 나도 유복, 서성과 술이나 한잔 하고 싶었지만 내 입으로 금주령을 내린 판국에 그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서성과는 별로 술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 와중에, 대장군 막사의 보초를 서던 하급 장교가 내게 아뢨다.
“합비공, 근방 고을의 촌장이 뵙기를 청합니다.”
그의 보고에 유복이 눈살을 찌푸렸다.
“일개 장수가 아니고 대장군이시다. 촌장 따위가 맘대로 뵐 수 있는 지체가 아니다.”
대장군의 체면에 할 수 없는 말을 유복이 대신해주었다. 유복도 본디 너그러운 성품이었지만, 엄연히 그것은 자신의 일에 국한된 것이었다. 상관에 대한 일에는 칼 같은 성정, 때문에 이 배불뚝이 아저씨를 미워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유복이 한번 꾸짖으니 내가 군자 행세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유복을 제지하고 장교에게 말했다.
“무슨 용무라더냐?”
“긴히 아뢸 말씀이 있다고만 하고 더 이르지 않았습니다.”
유복이 콧잔등을 씰룩거렸다.
“고얀 놈!”
서성은 순수한 눈망울을 깜빡거릴 뿐이었다. 나는 입가를 손가락으로 쓸며 선선히 응낙했다.
“데려오라.”
장교는 그 명을 받들었다. 곧장 초로의 사내가 막사 안으로 들어와 예를 갖췄다. 나는 그에게 자리를 권하고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이곳까지 걸음 하였는가?”
촌장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뢨다.
“대장군께서는 지금 합비호의 수적을 토벌하러 출정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내 긍정에 촌장은 더욱 머리를 깊이 조아렸다.
“일개 촌로의 주제로 아뢸 말씀이 아닌 줄은 압니다. 그러나 제 머리를 걸고 말씀드립니다.”
무슨 말이기에 이리도 사설이 기냐. 나는 귓불을 만지작거리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원정군을 철수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정신이 멍해진다. 사설이 길 만했다. 나는 내가 제대로 들었는지 의구심이 들어 서성을 바라봤다. 서성은 나보다 나이가 어린 몇 안 되는 무장이었다.
“문향(서성의 字)아, 너 방금 뭐라고 들었니?”
“…철수해주시면 안 되겠냐고……”
“그치? 정말 그렇게 말 한 거지? 저분이?”
유복은 더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의 반달 같이 부푼 뱃살이 내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네놈이 정녕 미쳤느냐? 머리를 걸었다니 머리를 잘라야겠다! 그것으로 부족하도록 무례하다! 사지를 뜯어내야 옳겠다!”
촌장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복지부동이었다. 웬만하면 아량을 베푸는 나도 어이가 없어 허탈한 웃음을 토했다. 나는 촌장의 뒷통수에 대고 말했다.
“이보시오 촌장, 정녕 무람한 말씀이구려.”
“…그렇습니다.”
“내가 그 말씀을 받아들여 군을 물리리라 생각하오?”
“…아닙니다.”
“허면? 자살은 하고 싶은데 혼자 목을 찌를 자신이 없어 남의 손을 빌리려고 이 사달을 벌이는 것이오?”
“…아니올시다.”
“허면? 허면 왜 그런 말도 아닌 말을 외는 것이오?”
“……”
아, 이 아저씨 때문에 화평 깨겠네. 나는 심호흡하고 관자놀이를 긁었다.
“기왕 죽기를 각오한 목숨, 할 말은 다 해보시오.”
촌장은 침을 꼴깍 삼키고 말했다. 있는 대로 긴장을 한 것을 보니 정말 일개 촌로가 맞는데, 대체 촌로 나부랭이의 주제로 이런 멍청한 말을 고할 용기를 어디서 얻은 건지.
“합비호에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유평(幼平, 주태의 字)와 공혁(公赫, 장흠의 字)은 비록 한낱 수적의 주제이나, 그 사람됨이 바르고 호걸의 기개가 있어 주변의 백성들이 그들을 따르나이다.”
나는 시큰둥하게 답변했다.
“그러하면 너희도 역적이다. 사람됨이나 기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천자께 반기를 든 수적이라는 점이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대장군께서 그들을 해친다면 일대의 백성들이 대장군을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에 유복이 길길이 날뛰었다. 워워, 뚱보.
“네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어디서 겁박을 하는 게야!”
“소인, 제 머리를 걸고 아뢰는 것입니다. 그들을 치는 것은 그들에게도, 대장군께도 해로운 일입니다!”
나는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주태와 장흠이 우리에게 군대를 바치고 귀부할 의사를 표한다면 그들을 받아줄 것이다. 그러나 대항한다면 가차 없이 토벌할 것이다. 그대가 정히 그들을 동정하거든, 주태와 장흠을 찾아 설득함이 어떠한가.”
“그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쉽게 귀부하지 않을 겁니다.”
촌장의 말은 내 인내심을 완전히 고갈시켰다. 나는 끓는 노기를 간신히 잠재우며 벌떡 일어났다.
“그럼 좀 두들겨 패주면 귀부하겠네. 전군! 날이 밝자마자 진군한다.”
내 명령을 좌중이 머리를 조아리며 받들었다. 촌장은 낭패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촌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는 우선 우리를 따라오도록 하시오. 그대가 머리를 걸면서 아뢴 일들을 상세히 들어야겠어.”
*백제 웅진시대를 그린 정통역사소설 ‘백제의 칼'(씨타델), 판매중. 각 인터넷 서점을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