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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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미움도 숙명이다
촌장2는 고통의 기억을 더듬는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여전히 백성들은 괘씸했지만 이미 망자가 된 나의 장인도 괘씸했다. 어찌 그럴 수 있는가. 촌장2는 나를 잠깐 올려다보고, 말을 이었다.
독은 쉽게 풀어졌고, 합비호의 개구리들은 울음을 그쳤다. 개구리들은 싯누런 뱃가죽을 보인 채로 수면으로 떠올랐다.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비늘이 녹은 채로 역시 떠올랐다. 개중에 생명력이 질긴 것들은 간헐적인 숨을 아가미를 뻐끔거려 뱉었다. 질긴 생명이 오히려 그들에게 저주였다. 원술은 호수에 독을 풀어놓고, 흥이 깨졌다며 다음날 새벽같이 수춘으로 떠났다. 염상은 호수에 눈길을 두어 번 주다가 한숨을 푹 쉬고 원술의 꽁무니에 붙었다. 밤새 즐겨진 미녀들은 쓰린 음부를 매만지며 집으로 돌아갔다.
몇몇 딸들이 범해진 것 말고는 별 다른 패악 없이 귀인이 돌아갔다며 고을의 사람들은 좋아했다. 게다가 귀인을 잘 대접한 덕분인지 개구리와 물고기들이 나 잡아 달라 벌러덩 뒤집어있으니, 그들은 그것들을 잡아다 푸지게 먹었다. 물을 떠다 술도 담가 먹었다. 잔치를 벌였다. 귀인이 그 많은 독약을 호수에 풀었다고는 짐작하지 못하고. 그들이 우둔한 것이 아니라 원술이 우둔했다.
“그날 잔치 이후로 마을의 어른들이 싹 다 죽었습죠.”
촌장2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였다. 술을 나눠먹은 고을의 어른들이 몰살되었다. 술을 즐기지 않는 몇몇과 그날만은 유독 몸이 고단하여 일찍 잠자리에 든 이들을 빼고.
할아비와 아비가 함께 죽었다. 할머니와 어미도 함께 죽었다. 갑자기 모든 혈육을 잃은 무남독녀 외동딸은 길 잃은 울음만 왕왕 울었다. 남은 어른 몇몇이 죽은 어른들을 한꺼번에 상례할 수 없었다. 한 여름의 때인지라, 푹 익은 주검들이 썩은 내를 풍겼다. 고을에 그 고약한 공기가 가득 찼다.
“이날로 해서 주위의 고을들이 우리를 와주동(蛙呪洞, 개구리의 저주가 서린 고을)이라 불렀습죠.”
그때까지 원술의 만행을 그들과 그들의 주변이 몰랐던 탓이다. 다만 죽은 개구리들을 숯에 구워 살을 뜯어먹은 죄로 고을의 어른들이 몰살되었다고 여겨졌다. 그러다 진실이 밝혀진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합비호의 수적 주태와 장흠이 이곳으로 무장한 부하들을 대동하고 왔습니다.”
맹수 같은 사내들의 등장에 몇 남지 않은 어른들과 다수의 천애고아들은 울지도 못하고 떨었다. 주태와 장흠은 표정 없는 얼굴로 고을 곳곳을 누볐다. 그러다가,
“그 야차 같은 수적들이 주검을 죄 수습해주었지 뭡니까.”
수적들은 구더기와 파리가 다닥다닥 붙은 주검들을 옮겨 커다란 구덩이에 안치했다. 주검들로 구덩이가 가득 차자, 그 옆에 다른 구덩이를 파고 다시 주검들을 안치했다. 구덩이에 묻히기를 대기하던 주검들에게서 추깃물(시즙, 屍汁)이 나오는 터, 구덩이의 옆에는 고약한 물웅덩이가 생겨났다. 갈증 심한 개가 와서 혓바닥을 담갔다가 발작을 일으켰다.
주태와 장흠은 커다란 두 개의 구덩이에 봉분까지 이루어놓았다. 그리고 얌전히 예를 올리고 술을 따라 올렸다. 그러다 주태가 뒤를 돌아보며 촌로에게 물었다.
“고아들은 수효가 몇이나 되느냐.”
촌로는 여전히 두려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족히 일천은 될 것입니다요……”
“그들을 거두어 기를 자가 있느냐.”
촌로는 황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 거두리라.”
주태는 고아들을 모두 거두었다. 남은 어른들과 그의 자식들을 위해서는 쌀과 어포를 베풀었다. 울 겨를도 없던 그들은 그제야 울 수 있었다. 주태는 그들에게 말을 보탰다.
“내 듣자하니 원술이 다녀갔다고 하였다.”
“그러합니다. 귀인께서 다녀가셨습니다.”
주태는 안쓰럽게 웃었다.
“네가 귀인이라 여기는 자가 호수에 독을 풀었느니.”
“예에?”
“그리하여 너희가 그 물을 마시고 죽은 것이다.”
“……”
“귀인은 귀인이 아니다.”
“…오……”
주태는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들은 엎어져 절규했다. 주태는 그들을 묵묵히 내려 보다가 고아들을 데리고 돌아갔다. 남은 사람들은 쌀과 어포를 끌어안고 울었다.
촌장2는 눈물을 훔치며 이야기를 마쳤다. 까닭이 없는 사연은 아니어서, 나도 손가락으로 콧잔등을 닦았다.
“미담은 미담이로구나.”
“만일 유평과 공혁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진즉 죽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의 목숨을 살려주었기에, 우리가 그들을 목숨을 걸고 지키는 수밖에 없습니다요.”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그들은 천자에 대적하는 자다. 어찌 불충한 자를 나의 임지에 살려두겠느냐.”
촌장2는 순한 눈을 깜빡거렸다.
“허면, 허면 이건 어떻습니까요?”
“무엇이 말이냐.”
“저 와주동의 촌장과, 시산장(屍山庄, 시체가 산을 이룬 마을)의 촌장이 유평과 공혁을 보고 오겠습니다.”
나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무엇하러 그 자들을 보느냐.”
“저희가 유평과 공혁을 설득시켜 보겠습니다요. 대장군께 엎드려 사죄하라고.”
“그들이 말을 듣겠느냐?”
촌장2는 촌부의 맑은 웃음을 보였다.
“올바른 장부들이니 듣지 않겠습니까요.”
그들이 먼저 백기투항 한다면 우리도 구태여 병사를 상하게 할 까닭이 없었다. 나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만일 귀부한다면 주태를 도위(都尉, 일개 군의 병마를 관장하는 직책)로 삼고 장흠을 별부사마(別部司馬, 장군부 산하의 간부. 관질은 비일천석)로 삼아 중용할 것이다. 그리 전하라.”
와주동의 촌장과 시산장의 촌장은 나의 약속에 확신을 얻었는지 몸을 굽실거리고 감사를 표한 후, 주태와 장흠의 본거지로 떠났다. 유복도 이를 듣고 구겼던 얼굴을 폈다.
“주태와 장흠이 귀부한다면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과연 그렇소.”
우리는 촌장이 주태, 장흠과 교섭을 하기 위해 떠났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알렸다. 그제야 무지렁이들은 길을 비켰다. 우리는 주태와 장흠의 본거지를 향해 다시 나아갔다.
그들의 본거지에 가까워질수록 거대한 규모의 산채가 눈에 들어왔다. 합비호의 근처에 있는, 야산 치고는 제법 험준한 산에 의지한 산채였다. 목책을 두르고 목각성을 뿌려놓은 것이, 방비가 여간 단단한 것이 아니었다. 산에는 물이 족히 흐르니 식수의 염려가 없으니 양곡만 넉넉하다면 한 해는 쉽게 버틸 만했다.
촌장들은 하룻밤을 산채에서 머물고 돌아왔다. 그들은 우리의 앞에 엎드려 아뢨다.
“대장군, 유평과 공혁이 귀부의 뜻을 밝혔습니다.”
희소식에 나는 입가를 벌리고 웃었다.
“역시 사세를 아는 자로다.”
“그들이 대장군을 대접하고 싶어 합니다. 누추하지만 산채에 오르시라는 청입니다.”
“좋다, 좋다! 어찌 그들의 대접을 마다하겠느냐.”
내가 쾌히 응낙하고 산채로 들어가려는데, 유복이 나를 제지했다.
“합비공! 멈추십시오.”
“왜 그러시오?”
유복은 눈을 가늘게 뜨며 촌장들을 바라봤다.
“어찌 합비공의 존체를 함부로 오가게 하느냐! 마땅히 주태와 장흠이 합비공의 앞에 엎드려 항복의 예를 갖추는 것이 옳다!”
촌장들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 그러나……”
“주태와 장흠을 대령토록 하라! 더 이상 헛소리를 지껄이지 마라! 남은 자비가 없다!”
촌장들은 진득한 침을 꿀꺽 삼켰다.
“예에… 그러하시면 다시 돌아가 그리 알리겠습니다.”
“합비공께서는 공사가 다망하시다! 오래 기다리지 못한다.”
“예에……”
촌장들은 느린 걸음으로 산채로 다시 올라갔는데,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우리는 꼬박 이틀을 기다렸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유복은 잔뜩 심사가 꼬인 얼굴로 말했다.
“주태와 장흠이 계책을 쓴 것이 분명합니다. 산채로 합비공을 불러들여 암살하려던 수작입니다.”
그의 말에 나는 목 줄기가 서늘해졌다. 유복이 만류하지 않았으면 나는 이미 몇 토막 고깃덩이로 전락했을 터.
“촌장들도 그들에게 이미 포섭됐습니다. 더 볼 것이 없습니다. 치시지요.”
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화살을 올려 주환과 형님, 그리고 감녕에게 알리시오. 동시에 적을 쳐 섬멸할 것이오.”
유복은 읍하며 명을 받들었다. 진한 붉은색의 불화살이 거푸 올랐다. 그것에 대답하는 불화살이 함께 오르고, 이어 항상 심장을 울리는 북소리가 들렸다. 나의 말을 듣고 돌아갔던 백성들은, 전장의 북소리를 듣고 다시 뛰쳐나와 귀신처럼 울었지만 이미 맹렬하게 돌진하는 우리 병력의 거친 걸음을 만류하지 못했다.
“쳐라! 도적을 토멸하라!”
나는 지휘채를 휘두르며 휘하에 명했다. 서성이 의욕적으로 치고 나갔다.
“이 서문향이 앞에서 이끌겠다! 따라라!”
산지에 위치한 적의 본거지이기에 기병은 소용이 없었다. 모두 경무장을 한 채로 산으로 올라갔다. 주환 역시 반대편의 능선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감녕은 선단을 이끌고 주태와 장흠의 선단을 쳤다.
“합비공께 보고! 적의 수괴 장흠이 선단을 이끌고 화평교위의 선단과 충돌했습니다! 주태는 본거지를 지키며 우리에 맞서고 있습니다!”
“적의 수효는 얼마 되지 않는다. 전력으로 압박하면 적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나의 채근에 병사들은 부단히 산을 올랐다. 속전속결로 무너뜨리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름길이다. 적은 산채에 갇혀 수세로 일관했다. 주태가 아무리 맹용한 무장이라지만 사방팔방에서 조여 오는 대병력을 어찌 해볼 재주는 없을 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산기슭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었고, 병사들은 그 장단에 맞춰 목책을 무너뜨리고 적병을 참륙했다.
“북부사마 서성이 목책을 돌파하고 적과 백병전을 개시했습니다!”
희소식에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물건이군.”
혈기 넘치는 서성은 막무가내로 돌진했다. 대규모 회전의 지휘관으로는 아직 덜 숙성된 재목이었지만, 이렇듯 좌충우돌 백병전의 선봉장으로는 제격이었다. 그는 완력으로 제압하기보다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적의 공격을 회피하고 역습해나갔다. 그 악다구니판을 맨 앞에 서서 뚫는 데도 그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이놈! 어린 자식이 지나치게 설치는군.”
무거운 목소리가 서성을 맞았다. 서성은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놈이 주태로구나.”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젖히다니, 버릇이 덜 되었군.”
주태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으로 서성을 압박했다. 그의 박도(朴刀)는 서성의 창을 위압했다. 서성도 열세로 밀리긴 했지만 부지런히 그의 공세를 차단하고 간혹 역습했다.
병사들끼리도 치열한 백병전에 더하여 육탄전이 전개되었다. 주태의 수적은 제법 잘 조련된 듯, 수적 열세에도 비교적 선전했다. 그래봐야 오래 가지는 않을 테지만.
싸움이 한창이었다. 저녁쯤에 시작된 전투는 밤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입맛을 쩝, 다셨다.
“하루 만에 무너뜨리기는 무리였나.”
야밤의 산길은 위험하다. 유복도 내 말에 찬성했다.
“우선 병력을 물렸다가 날 밝으면 다시 치시지요.”
“그렇게 합시다.”
군령을 발하려는데, 전장의 바깥, 우거진 수풀에서 초록빛의 안광(眼光)들이 보였다. 짐승들의 것인 듯 빛에는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것들과 시선을 마주하고 몸이 얼어버렸다.
============================ 작품 후기 ============================
코멘트들은 잘 읽었습니다. 개별적으로 리코멘트를 달기 어려울 것 같아 하나로 뭉뚱그려 올립니다. 우선 정성 어린 코멘트에 감사드립니다.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재미를 반감시킨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소설로써 설명드리는 것만이 올바른 소명 방법이겠죠. 수정을 할 수도 있지만, 그리하면 마련한 이야기의 동력을 잃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지라 수정 없이 이끌고 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