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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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미움도 숙명이다
전투는 치열했지만,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점한 우리가 금세 적의 중심부를 파고들었다. 만일 적의 화공이 성공을 거뒀다면 힘든 싸움을 각오해야 했을 터였다. 그러나 회심의 계책이 무위로 돌아가자 육중한 짐을 짊어져야 하는 것은 적이었다. 이제 우리의 병력은 상륙하여 적을 압박했다. 아군이 든 횃불이 적의 진영을 환하게 비추었다.
“기껏해야 이천 남짓이군.”
나는 갑판의 높은 곳에서 적진을 바라봤다. 우리는 삼만을 상회하는 대병력이다. 적의 진용이 낱낱이 드러난 이상 우리의 승리는 시간문제였다.
내 호위에만 급급했던 좌자도 이제 내 신변은 온전하리라 확신했는지, 벼락처럼 뛰쳐나가 어느새 일선에 섰다.
“갈 길 바쁘다! 대장 나와라, 대장!”
좌자는 죽일 가치도 없다는 듯 조무래기들은 발로 차고, 팔꿈치로 때려 마구 넘어뜨리며 적진의 한가운데로 진입했다. 그렇게 거칠 것 없던 좌자의 앞을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오호라, 네가 대장이냐?”
호리호리한 체격의 청년이 좌자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좌자는 그것을 옆으로 피하면서 감탄했다.
“이야, 이건 어디서 샀냐. 삐까뻔쩍허구먼.”
그의 말대로 적장의 창에는 오색빛깔의 술이 달려있고, 창의 날도 예사롭지 않았다. 용과 호랑이가 돋을새김 되어 있었다. 좌자는 그것을 칼로 제압하고 적장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얼씨구, 갑옷도 명품이네.”
적장의 갑옷은 붉은색이었다. 그 위에 도금된 용 두 마리가 얽혀있었다. 그 위를 푸른 비단으로 덧대었으니 그 사치스러움에 눈이 멀 지경이었다. 허리춤에는 다 쓰지도 못할 검이 세 자루나 매달려있는데, 그 검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이 다 달랐다. 투구에는 주작 한 마리가 매달려 짹짹거리고 있었다. 멀리 서있는 나도 그 화려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뭐야, 된장남인가.”
적장의 무예도 그 화려한 무구(武具)에 뒤지지 않았다. 그는 날렵한 창술로 좌자를 궁지에 몰아넣기도 했다. 그러나 좌자 또한 예사 무장이 아니기에 능숙하게 궁지에서 탈출하여 적장을 역으로 압박했다.
“잘 놀았다.”
좌자는 피식 웃고 칼등으로 적장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아찔한 고통에 적장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쓸 만한 재주였어.”
좌자는 그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윤이 나던 갑주에 흙이 묻었다.
“으악! 더러워!”
날붙이로 정강이가 가격되어도 비명 한번 지르지 않던 적장은 흙 좀 묻은 것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었다. 미친 것으로 치자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좌자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별 미친놈 다 보겠네.”
적장이 흔들리는 틈을 타 좌자는 그의 목에 칼을 겨누는 것으로 제법 뜨거웠던 비무를 끝냈다. 이천 여 남짓한 소수의 적군은 제 우두머리가 굴복한 것을 보고 투항했다. 적장은 완전한 패배에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제 가슴께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는 데 몰두했다. 좌자는 빈 웃음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종료되고 나서 나는 뭍으로 올라왔다. 강제로 무릎 꿇려진 적장을 내려다봤다.
“네놈은 누구냐?”
흙먼지를 다 털어낸 적장이 나를 올려다봤다.
“더러운 산월의 족속과 결탁한 역적에게 알려줄 이름 따윈 없다!”
“오, 그래?”
이 자식이 아직까지 내가 고매한 군자 화평자인줄 아나보네.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내가 신은 신발을 흙바닥에 문댔다. 그리고 그 더러운 발바닥을 적장의 머리를 향해 들이밀었다. 순식간에 금빛 찬란한 주작은 흙먼지를 뒤집어쓴 초라한 참새 꼴이 되고 말았다.
“그, 그만둬!”
나는 최대한 얄미운 표정을 지으며 비꼬았다.
“싫은데?”
주작을 능욕한 나는 이제 그의 몸에 꿈틀거리는 용 두 마리를 반병신 뱀 새끼로 만들었다. 적장은 몸을 움찔거리며 고통스러워했다.
“야, 다시 물을게. 이름이 뭐니?”
“하, 하제(賀齊)……”
하제?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하고.
“옳지, 착하다. 하나만 더 묻자. 왜 우리를 쳤니?”
“말하지 않았느냐! 더러운 산월과 결탁한 더러운 무리를 친 것이다!”
“왜 산월이 더러운데?”
“네놈은 똥이 더러운 까닭은 하나 둘 알려줘야 아느냐? 산월은 산월이니까 더럽다!”
오, 세상에. 너의 인종차별이 더럽다.
“산월은 천자와 맹을 맺고 우리와 화호하였다.”
“더러운 것과 맹을 맺으니 너희도 더러운 것이다!”
“말이 안 통하는 작자네.”
나는 내 옆의 허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이놈과 말을 하려면 저 더러운 투구와 갑주부터 세척해주는 것이 옳겠습니다. 옷을 갈아입히고 내 막사로 데려오도록 하십시오.”
허저는 기합이 바짝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슈.”
허저는 하제를 데리고 물러났다. 허저, 하제. 뭐 이름들을 헷갈리게 짓고 있어.
잠시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하제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깨끗한 옷을 입어서 그런지 아까보다는 많이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 서린 적개심은 가시지 않았다.
“너는 어찌하여 그토록 산월에 깊은 반감을 지니고 있느냐.”
내 물음에 하제는 불손한 투로 답했다.
“산월은 도적집단이다. 양민을 무수히 살해했으니 어찌 반감을 가지지 않겠는가?”
“물론 그러하다. 그러나 나와 산월수가 맹을 맺어 그런 놈들은 월이 아니라 민이라 칭하며 함께 토벌하기로 했다. 더 이상 네가 산월을 적으로 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흥, 눈 가리고 아웅이다. 그 개 같은 족속들이 맹 따위를 준수할 것 같으냐?”
하제는 숨을 씩씩거리며 말했다.
“나는 회계군 섬현의 현위를 지냈다. 회계는 지금 어찌 되었느냐? 산월의 수라는 놈이 제 소굴로 삼았다. 그 씹어 먹을 자식은 본격적인 패악을 부릴 것이다. 나는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다. 고작 이천의 병력으로는 그 짐승 같은 놈들을 당해낼 수 없으니까.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갔다. 내가 어떻게 살겠느냐? 그들을 버리고 어떻게 살겠느냐. 도망가는 와중에 대장군의 깃발이 보이더구나. 반림과 협잡하여 양민의 땅을 짐승의 아가리에 던져준 대장군의 깃발이.”
그는 내 눈동자를 잡아먹을 듯 응시했다.
“너를 해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순전한 적의에 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말해야할지 몰랐다. 나는 반림에게서 짐승 같은 면모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사려 깊고, 차분하며, 제 족속을 아낄 줄 아는 인물이다. 내가 그의 편린만을 본 것인가. 그 편린의 이면에는 회계를 잡아먹은 추악한 악마가 있는 것인가. 아니라면 그 반대인가. 하제는 산월을 본능적으로 꺼리고, 그를 축출한 산월이 백성들에게 몹쓸 짓을 할 것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로 추켜세우는가. 내 속에서 정답이 나오질 않으니 나는 그에게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너는 나에게 졌고, 생사여탈은 나에게 달렸다. 너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패군지장불감어용(敗軍之將不敢語勇).”
패장은 감히 제 용기를 떠벌릴 주제가 아니다. 오월춘추에 등장하는 말이다.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해라 이거지? 산월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이 자가 가지고 있다면, 죽이는 게 맞다. 곧 우리는 산월의 병력에 합류할 것이다. 이 자를 살려뒀다가 산월에 모욕적인 말을 쏟아낸다면, 우리와 산월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테니. 게다가 하제의 밑에 있는 이천 병력도 위협적이진 않아도 자칫 귀찮은 변수로 작용할 위험이 있었다.
“죽일까.”
하제를 한번 떠보려는 수작은 아무 효과도 없었다. 내가 저놈의 투구와 갑주를 빼앗아 입고 그 주변을 한 바퀴 돌면 반응을 하려나? 나는 턱을 긁다가 허저에게 말했다.
“허 공.”
“넷.”
“이 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세요.”
“재갈이유?”
나는 고개를 끄덕이자 영문을 모르는 허저는 그 말대로 했다. 하제는 재갈이 제 입 쪽으로 바짝 다가오자 발버둥을 쳤다.
“이거, 소독했느냐!”
어처구니가 없었다.
“네놈 목이 달아나는 건 괜찮으면서 재갈에 먼지 좀 묻었을까봐 그렇게 아양을 떠냐?”
“깨끗한 것으로 물려라!”
“미친놈. 오냐, 내 침으로 소독해줄까?”
내가 손가락에 침을 묻히고 그에게 들이대니 하제는 두 발을 버둥거리며 완강하게 저항했다.
“재밌는 놈일세.”
나는 낄낄 웃으며 깨끗한 재갈을 그의 입에 물려주었다.
하제가 설치한 쇠사슬을 제거하고 우리는 다시 동쪽으로 나아갔다. 그 전 진군 도중에 단양에서 노구와 전력을 합쳤다. 노구는 내 선실에서 버둥거리는 하제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입니까?”
“대장 존댓말은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되네.”
노구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그럼 말을 낮출까?”
“아, 아니……”
노구는 싱겁게 웃고 다시 눈빛을 하제에게로 향했다.
“중간에 우리를 습격했던 녀석인데, 산월에 원한이 깊은 것 같더군. 아직 죽일까 말까 결정 못했어.”
“허여멀건한 게 힘이나 제대로 쓸까?”
그 말에 좌자가 히죽 웃었다.
“이 몸으루 직접 증명했수. 실력은 괜찮더구먼.”
“그대가 그리 말한다면 쓸 만한 놈이긴 한가보군.”
노구가 합류한 이후 우리는 오군의 서쪽에 있는 거대한 호수인 태호(太湖)로 진입했다. 이는 오군에 있어 훌륭한 해자가 되는지라, 수군을 동원하지 않고 육로만 통한다면 이 거대한 호수의 둘레를 따라 빙 돌아가야만 했다. 우리는 오군의 서남쪽 호수 변에 상륙하고 감녕에게 수군을 맡겨 수륙양면으로 적을 들이칠 작정이었다. 손책은 그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화평교위, 그럼 수군을 잘 이끌어주십시오.”
감녕은 읍하며 답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나는 주환과 서성을 바라보며 당부를 남겼다.
“너희는 화평교위를 잘 보위해야 할 것이다.”
“네.”
감녕과 주환, 서성을 수상에 두고 다른 무장들을 대동한 채 마침내 오군에 상륙했다. 재갈을 물린 하제도 함께.
“오, 저기 산월이 오는군.”
멀리서 산월의 깃발을 든 무질서한 병력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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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열전
하제(賀齊)
오나라의 무장. 자타공인 토벌왕. 손책에게 등용되어 숱한 강동의 도적과 산월을 토벌했다. 산월과 친했던 호족 사종을 참수하고 그의 무리를 격파했다. 태말과 풍보의 주민이 반란을 일으키자 한 달 만에 격파했다. 장군 상승이 거병하자 이를 토벌했고, 도적 장이와 청감을 굴복시켰다. 홍명 등 각지의 산적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토벌했고, 이후 상요를 토벌했다. 이후 각지의 도적을 토벌해 7천 여 명의 적군을 참수했다. 여항의 낭치가 반란하자 그를 베었다. 예장의 팽재, 이옥, 왕해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했다. 파양의 우돌이 조조의 사주를 받아 반란을 일으키자 수 천 명의 수급을 베었다. 이렇듯 토벌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공을 세웠다. 후장군 겸 서주목까지 올랐다.
손권이 위나라의 전략거점인 합비를 공격할 때 참전했으나, 대패하는 와중에 군을 수습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223년에는 조휴가 군사를 일으키자 군을 이끌고 그를 쳤는데, 조휴는 하제의 병력이 사치스럽게 무장한 것을 보고 두려워 도망갔다. 이렇듯 하제는 평소 자신과 병사들의 무장을 사치스럽게 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