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47
0150 / 0284 ———————————————-
19. 미움도 숙명이다
나의 병력은 분전했다. 그러나 손책의 앞에 철의 장막을 두르고 거센 콧김을 내뿜는 장비는 그 이상으로 분전했다. 나의 무장들은 병사들로 하여금 진격을 주문했지만 부리부리한 고리눈의 장비를 보고 병사들은 주춤거렸다. 장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다시 땅을 울리듯 외쳤다.
“네 이놈, 제갈찬! 네가 정녕 오늘 유사군의 정병과 다투려 하느냐! 썩 물러가지 않는다면 사군의 수만 정병이 네놈을 짓밟을 것이다!”
모욕적인 도발에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가만있는데 반림이 도리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합비공! 저 돼지 같은 놈의 욕지거리를 듣고만 있을 작정이오? 차라리 잘 되었소! 이참에 우리와 힘을 합쳐 서주를 정벌합시다!”
그런 생각이 잠깐 스치긴 했다. 삼만 오천의 병력이면 적으로서도 대적하기 곤란한 수효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은 폐기되었다. 장비가 기병만을 이끌고 급파되었다면 유비는 우리의 도하를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꾀주머니인 봉추가 예견했든지, 아니면 손책이 사전에 유비와 교통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비는 이에 대한 방비를 마련해놨다. 서주를 지키는 미축 또한 녹록한 군재가 아니고 용장 장비가 저렇듯 버티고 있으니 쉽지 않았다. 또한 만일 적의 기습에 의해 함선이 파괴된다면 꼼짝없이 고립무원의 신세가 될 것인즉, 반림의 채근은 옳은 판단이 아니었다. 계획하지 않은 원정은 필패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적이 우리의 원정을 알고 있다면 더욱이.
“합비공! 어서 결단을 내리시오!”
반림은 가까이 다가와 내 손을 붙들었다. 량이는 침착한 말투로 간했다.
“아니 됩니다. 물러나야 합니다.”
“합비공! 손책의 목은 반드시 취해야 하오!”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아닌 것은 아니다. 나는 차분한 눈빛으로 반림을 바라봤다.
“손책의 목 하나 때문에 숱한 화월의 목을 잃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합비공!”
나는 반림이 쥔 손을 더 꼭 쥐었다.
“반드시 복수의 때가 올 것입니다.”
반림은 수긍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나와 형제들이 이 날을 얼마나 그렸는지 합비공도 알잖소.”
“물러날 때를 알아야 진정 영리한 자입니다.”
내 말에 반림의 뒤에서 지키던 새왕 진복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의 거대한 덩치 꼭대기에 달린 두 눈이 나를 한심하게 내려다봤다.
“합비공은 그래도 배알이 있는 화하인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보았군! 뻔한 기회를 놓치는 자야말로 천하제일의 바보천치이올시다!”
그러면서 그는 몸에 기합을 넣었다.
“산월 단독으로 손책의 목을 취하는 게 어떻습니까, 수!”
반림도 머리가 굵은 자다. 우리의 협조 없이 고작 오천의 병력으로 손책의 목을 취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 장비가 보유한 정예기병의 수효만 해도 오천이었다. 반림은 무모한 자 앞에서 평정을 되찾았다.
“그럴 수 없다. 화월이 함께 움직여야 승산이 있다.”
진복은 산월수의 판단에도 콧방귀를 뀌었다.
“흥, 수께서도 화인이 다 되셨구려.”
“경거망동하지 마라, 진복.”
울컥 성질이 돋은 진복은 반림에게 항의했다.
“경거망동이라 하였습니까! 이런 젠장, 알겠습니다. 수께서는 여기 계십시오.”
진복은 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문신한 팔에 울룩불룩 근육이 솟았다.
“내 저 장비란 놈의 목을 따올 터이니, 적의 예기가 꺾이면 그때에는 수께서도 마땅히 나서야 할 겁니다!”
오, 젠장. 나는 저 장비란 놈을 잘 안단 말이야. 내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진복을 만류하기도 전에, 진복은 휘하의 병력을 이끌고 쏜살처럼 튀어나갔다.
“이놈, 장비야! 하찮은 놈이 목소리만 커서 성가시구나! 여름의 매미처럼 시끄럽다!”
담 크기로는 이길 자가 없는 장비가 진복의 겁박에 흔들릴 리가 없었다.
“뭐라는 거냐, 이놈?”
진복은 왁왁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네놈, 목소리만 커서 시끄럽다고!”
“미친놈. 네가 더 시끄러워.”
둔중하게 날아오는 진복의 공세를 가볍게 피한 장비는 또한 그만큼 가벼운 몸놀림으로 진복의 목에 창날을 꽂아 넣었다.
“켁!”
진복의 거대한 몸뚱이가 맥없이 쓰러졌다. 장비는 진복의 목에 꽂았던 창을 거두며 주위의 수하들과 시시덕거렸다.
“켁은 무슨 켁! 어줍잖은 자식.”
반림의 새왕들 중에서 완력으로는 제일이라던 진복이 맥없이 나가떨어지자 그의 수하들은 지리멸렬하여 도망쳤다. 장비는 침을 한번 탁 뱉을 뿐, 쫓지 않았다. 이미 손책은 말을 갈아타고 저 멀리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진복!”
반림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산월 제일의 용장인 그가 단칼에 스러지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착잡하게 말했다.
“유감입니다, 산월수. 하지만 더 피를 볼 수가 없습니다.”
반림 휘하의 새왕들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진복의 주검을 저대로 놓고 가실 겁니까! 복수를 해야지요!”
“차라리 죽을지언정 형제의 장례도 치르지 않을 수는 없어요!”
“이건 너무 굴욕적입니다!”
미친 야만족들 같으니라고. 개죽음 당하고 싶으면 너희나 당하라고! 직설적인 말이 입술 끝에 매달렸지만 나는 간신히 참아냈다. 나는 새왕들에게 당부했다.
“부디 새왕들은 후일을 도모하시오. 지금 달려들었다가는 다 죽고 마오. 훗날 권토중래하여 손책과 장비의 머리를 나란히 꿰어 개선합시다. 지금은, 지금은 아니오.”
“겁쟁이는 비켜!”
새왕 김기가 거칠게 반응했다. 겁쟁이는 비켜? 야만스런 쪼다야말로 비키시지. 내가 팔짱을 끼고 옆을 바라보니, 돌아온 허저가 나 대신 김기를 압박했다. 그는 드물게 날카로운 눈매로 김기를 쏘아봤다.
“아야, 멋모르구 날뛸 거믄 나부텀 쳐보든지.”
“으으……”
김기는 위압감에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나는 반림을 서둘러 설득했다.
“산월수, 당장의 분기에 전부를 잃지 마십시오. 일단 퇴각하시지요. 적이 수군을 동원해 아군의 함선을 불태운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입니다. 화월의 맹에 걸고 약속드리지요. 이 제갈찬, 반드시 손책과 장비의 머리를 잘라 산월수께 선물하겠습니다.”
반림은 분을 삼켰다.
“…반드시 그리하셔야 할 것이오.”
그는 짧게 한숨을 토하고 말 머리를 뒤로 돌렸다.
“퇴각한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새왕은 앞으로 월이 아니라 민으로 간주할 것이다.”
위엄이 서린 선언에 새왕들도 더 날뛰지 못했다. 다시 강의 남쪽으로 돌아가는 우리들을 장비도 쫓지 않았다. 언젠가 나와 유비는 격돌할 것이지만, 그 때가 지금은 아님을 그도 알고 있었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영 별로였다.
손책이 유비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그것이 호재가 될지 악재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유비의 그릇이 손책을 능히 품을 수 있을지. 원술은 손책을 가까이 두고 아꼈지만 결국 품지 못했다. 만일 유비의 그릇이 손책의 야심을 꺾고 그를 포용할 수 있을 정도라면, 나에게는 최악이었다. 유비, 손책, 방통, 주유가 내 머리 꼭대기 위에서 깔깔거릴 테니까. 곱씹을수록 불쾌하여 이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오성으로 귀환했다. 여포가 나를 맞아주었다.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손책 그 쥐새끼 같은 놈이 기어이 빠져나갔군요.”
“아쉽습니다.”
“나중에 유비와 함께 사로잡으면 그만입니다. 어쨌든 강동의 정벌은 완수했으니 승리는 승리입니다. 감축 드립니다, 합비공.”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여포의 축하를 받았다.
오로 귀환한 이후 전후처리에 골몰했다. 비록 손책을 놓치기는 했지만 여포의 말대로 그의 본거지인 오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고, 강동에는 더 이상 나의 적수가 없었다. 나는 오의 사성을 접견하여 그들을 포섭하고자 했다. 그 전에, 산월을 돌려보냈다.
“산월수, 오늘의 분기를 잊지 마십시오. 저도 잊지 않겠습니다.”
반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새 그도 퍽 차분해졌다.
“그렇게 하겠소.”
나는 오군의 남쪽 한 개 현을 떼어 산월에게 양도했다. 비록 반림은 대가를 바라고 출병한 것이 아니라 했지만, 정치의 불문율이 있는 것이었다. 끝내 달성하지 못한 목표에 대한 위로이기도 했다. 기껏 산월수가 출병했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도 면이 안 서는 일이었다. 준다는 땅을 계속 사양할 까닭이 없는 반림은 감사를 표하며 오군 남부의 현을 취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도록 하오.”
“또 뵙겠습니다.”
반림이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가려는데, 나는 불현듯 스치는 생각이 있어 급히 그를 붙들었다.
“산월수!”
“무슨 일이오, 합비공?”
“맡아주셨으면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인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급히 아랫것을 부려 그를 데려오게 했다. 하제였다. 나는 하제의 재갈을 풀었다. 그는 산월의 문신들을 보고 경기를 일으켰다.
“저리 치워라! 저 벌레 같은 놈들과 나를 같은 곳에 두지 말라!”
나는 사근사근 웃으며 반림에게 말했다.
“입이 좀 거친 종자입니다만, 부디 산월수께서 맡아주십시오.”
반림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 시도 쉬지 않고 내 욕을 쏟아내는 저놈을 내가 굳이 맡아야 할 이유가 있소?”
“산월을 욕하는 입을 다물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저 자의 목을 베는 것, 둘은 저 자가 같은 입으로 다른 말을 지껄이게 하는 것이지요.”
“같은 입으로 다른 말이라니.”
“산월이 법도가 망가진 집단이 아니란 걸 두 눈으로 보고, 깨친 생각으로 다른 말을 하게 하는 것이죠.”
반림은 떨떠름한 반응이었다.
“귀찮게.”
“물론 귀찮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제는 회계의 명사입니다.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면 회계군 전체의 마음을 돌릴 수 있습니다. 진정한 화월일치를 도모할 수 있는 것이죠.”
이 말에 하제는 지랄발광을 했다.
“차라리 죽여라! 나는 끝까지 내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죽여라! 벌레의 소굴로 보내느니 차라리 날 죽여!”
반림은 시시하게 웃었다.
“그냥 죽이는 것이 낫겠소.”
“그 편이 간편하긴 합니다만……”
나는 하제를 죽이기 싫었다. 저 결벽증 인종차별주의자가 회계로 가서 실상을 똑똑히 보고 충격을 받기를 바랐다. 개심(改心)이라든지 개과천선이라든지 하는 건 그 뒤의 문제고. 이건 무슨 대국적인 정치적인 식견으로 바라는 바가 아니라 그냥 개인적인 악취미였다. 저런 놈들이 충격 먹는 꼴을 꼭 보고 싶다고.
“석 달만 맡아주십시오. 석 달 후에 데리러 오겠습니다.”
반림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꼭 무슨 강아지 맡겨놓는 것 같구려.”
나는 하제를 흘끗 보고 대답했다.
“뭐, 강아지나 진배없죠, 저런 놈은.”
하제가 걸쭉한 욕설로 항변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나는 깨끗한 새 재갈을 그의 주둥이에 물려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