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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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합비후 제갈량은 합비공을 대신하여 하제와 산월수 반림을 접견했다. 미친개처럼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던 하제를 제갈량은 미덥지 못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하제는 한껏 양순해진 얼굴로 그를 만났다.
“그래, 회계에서 머무는 동안 생각이 좀 바뀌었소?”
제갈량이 묻자 하제는 얼굴에 홍조를 띠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소인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부끄럽습니다.”
“호오, 그렇소?”
하제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를 잃은 슬픔이야 쉽게 가시겠습니까만… 함부로 방종하였던 생각과 행동은 참회했습니다.”
반림은 입가를 활짝 벌리고 웃으면서 하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 벌레 같은 산월족속이 어딜 만지느냐며 발광을 했을 하제는 얌전하게 그 손길을 받았다. 제갈량은 속으로 놀랐다.
“공묘(公苗)가 이제는 우리 산월과 퍽 친해졌다. 있는 대로 깔끔을 떨던 자가 손으로 밥을 먹는다니까?”
제갈량은 익살을 익살로 받았다.
“혹 땅에 떨어진 음식도 주워 먹는 거 아뇨?”
하제는 여전히 홍조 띤 얼굴로 대꾸했다.
“셋 세기 전에 주워 먹으면 괜찮습니다……”
제갈량은 속으로 경악했다. 반림은 킥킥 웃다가 화제를 돌렸다.
“헌데 합비공은 대체 용태가 얼마나 위중하기에 나를 접견하지도 못하는 것인가?”
“아, 그것이……”
제갈량은 입맛을 쩝 다시고 자초지종을 반림에게 일러주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서주의 담성으로 누군가 찾아들었다. 담성의 수문장이 그의 신원을 확인하였고, 수문장은 사안이 중하다 판단하여 즉각 방통에게 이를 알렸다. 방통은 탁자를 탕 내리치며 그를 당장 유비와 대면하게 해주었다. 유비 또한 방통의 설명을 듣고 나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당장 그를 만났다.
“진등의 밀서를 지녔다고 했느냐?”
유비가 묻자 방문자는 절을 올리며 그 물음을 긍정했다.
“그렇습니다. 소인은 진등의 식객인 설주(薛州)라고 합니다. 저의 주인께서는 사군을 뵙고 밀서를 전달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한없이 은밀해야 하는 사안이므로 예법을 따져 절차를 밟지 못하고, 낮이 아닌 밤에 뵙게 되었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유비는 몸소 설주를 일으켰다.
“무례라니, 이 유현덕은 자애로운 성정인지라 그런 허례허식 따위는 긴요치 않게 생각한다네! 자, 진등의 밀서를 줘보게.”
방문자는 그의 명을 따랐다. 짧은 칼로 옷의 솔기를 뜯고, 그곳에 숨겨놓은 밀서를 유비에게 전달했다. 철두철미한 성정의 유비는 진등이 서주의 명망가로 이름이 높을 적에 그와 교유했던 선비를 불러다 필적을 감정하게 했다.
“원룡의 필치가 분명합니다.”
유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유비는 지체 없이 그 밀서를 받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참을성이 부족한 방통이 슬그머니 끼어들어 밀서를 읽자, 유비는 그에게 짜증 섞인 눈빛을 한번 쏴주고는 글이 잘 보이도록 그의 쪽으로 밀서를 향해주었다.
소인 진등이 유사군께 아룁니다.
소인은 본시 서주의 선비였으나, 합비공과 얽히게 된 바가 있어 지금껏 그를 섬겼습니다. 처음에는 합비공이 소인을 우대하는 탓에 소인도 그를 신뢰하고 충정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합비공이 천하의 으뜸가는 제후가 되고 발밑에 무수한 재사들을 거느리게 되자, 소인은 점차로 소외되었습니다. 유사군의 기략으로 소인의 거점이었던 양국과 진국을 잃은 후에는 합비공이 저를 더욱 업신여겨, 여남에 머무르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변변한 벼슬 하나 얻지를 못했습니다. 영지를 지키지 못한 것은 어디까지나 소인의 재주가 부족한 탓으로, 불만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지금껏 울분을 삼켜 왔나이다.
헌데 이번에 합비공의 중병이 재발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소인의 병 또한 재발하였습니다. 병을 고칠 수 있는 이는 천하에 화원화와 장중경 단 둘 밖에 없사온데, 잘 아시듯 장중경은 사군을 섬기는 몸이라 합비공의 병을 고칠 이유가 없습니다. 개중 화원화는 소인과 절친한 사이로, 그는 합비로 가지 않고 여남으로 와 소인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군신의 의리를 생각한다면 응당 그를 합비로 보냈어야 했지만, 소인의 충정도 합비공의 홀대에 변질되어 합비공을 위하지 않고 오로지 소인의 안위를 생각했습니다. 그 덕택으로 소인은 완쾌하였으나 합비공의 용태는 매우 위중했습니다.
여남에는 소인 말고도 합비공의 고굉지신(股肱之臣)인 예주자사 장료와 여남태수 고순이 있습니다. 합비에서 사자가 와서 그들을 만나 말하기를, 합비공이 마침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서거하니 동요하지 말고 굳건히 여남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합비의 사자가 소인을 배제하고 장료와 고순만 접견하여 말을 전하니, 소인의 위신이 크게 위태롭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장료와 고순 또한 소인에게 그런 소식을 이르지 않으니 더욱 애간장이 탔습니다.
그러던 차에 합비에서 다시 사자가 와서 소인을 불러 꾸짖기를, 소인이 합비공에 대한 충정을 잃고 오로지 제 안위만을 걱정하여 화원화를 합비로 보내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또한 그른 말은 아니나 먼저 충정을 잃은 것은 합비공이기에 그 꾸짖음이 온당하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게다가 합비공을 대리하는 합비후 제갈량의 이름으로 소인을 합비로 소환하여 문초하겠다고 선언하니, 소인은 크게 두려웠습니다. 엄중한 문책이 따르고 여차하면 멸문지화를 당할 공산 또한 있습니다. 이는 소인이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이렇듯 상황이 오늘에 이르니, 소인은 마침내 결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합비공에 대한 충정을 잃었는데, 고된 문초를 받고 멸문지화를 감당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에 소인은 사군께 의탁하고자 합니다.
만일 사군께서 군사를 일으켜 여남을 치신다면, 소인은 즉각 장료와 고순을 포박하여 불능으로 만들고 여남의 성문을 열어 사군을 맞이하겠습니다. 소인이 비록 무능하나, 아직 소인의 휘하에 부곡이 많고 따르는 자가 많으니 소인이 결단한다면 장료와 고순은 능히 꺾을 수 있습니다.
여남이 뚫린다면 합비까지 사군의 행진을 막을 자가 없습니다. 소인은 합비까지 이르는 요로를 잘 알고 있어 사군의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합비공의 궐위가 이어진데다가 권세가 두드러지는 가신이 없으므로 합비를 떨어뜨린다면 합비공의 세력은 단번에 와해될 것입니다. 송경의 천자께서는 겉으로는 합비공을 후대하나 이번 형주 원정에서 얻은 바가 적고, 본디 야심이 충만하신 분이니 합비공의 세력이 와해된다면 천자께서 곧장 거병하실 터이고 태위 여포가 제갈씨의 권세를 탐해 또한 거병할 공산이 있으니, 이러한 혼란을 잘 이용하신다면 강남이 사군의 손에 들어오고 사군의 패업이 눈앞에 다가올 것입니다.
부디 결단을 내리시어 소인이 공신의 반열에 오르도록 해주십시오. 사군께서 강남을 평정하시면 본디 소인의 기반인 양국과 진국을 봉지로 내려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뭐 이런 의리 없는 녀석이 다 있어?”
유비는 밀서를 다 읽고 즉각적인 감상을 내놓았다. 방통은 유비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난세에 의리를 찾으시다니요. 또한 진등과 제갈찬 사이에는 이제 의리가 없다고 하질 않습니까.”
“진등이 제갈찬이 뒤졌다는 걸 확인해주고 정황이 퍽 말이 되게 돌아가고 있으니 믿을 만하지만, 이 편지 한 장만으로 거병하기에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워 진다니까.”
유비가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자 설주가 다급하게 강변했다.
“부디 제 주인의 계책을 물리치지 마십시오. 이는 제 주인과 사군이 공히 이로울 수 있는 계책입니다! 만일 병마를 일으키셨는데 제 주인이 호응하지 않는다면 그저 왔던 길을 돌아가시면 그만입니다. 손실은 적고 이득은 큰 계책이니 부디 가납하여주십시오!”
“흐음……”
유비는 고심하다가 방통에게 의견을 물었다. 방통은 가볍게 읍하며 제 의견을 피력했다.
“이것은 화급한 사안입니다. 시일을 놓친다면 물거품이 되고 말 터입니다. 밖에서 흔들지 않으면 안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포는 야심이 있는 인물입니다. 우리가 진등과 합하여 합비를 친다면, 여포가 제갈찬을 대리하는 제갈량에 반기를 들 공산이 충분합니다.”
유비는 콧수염을 팽팽히 잡아당겼다.
“그렇기는 해. 여포 그 잡놈은 멍청한 주제에 야심만만하거든. 그러나 한없이 신중해야 한다.”
유비는 설주를 바라봤다.
“더 확실한 증좌가 필요하다!”
설주는 울부짖듯이 항변했다.
“대체 이것보다 더 확실한 증좌가 어디 있습니까?”
유비는 눈빛을 날카롭게 벼리며 힘주어 말했다.
“장료와 고순의 목이 필요해.”
“사군께서 거병하여 여남을 압박해주시지 않으면 제 주인 단독으로 장료와 고순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거 참!”
나는 어둠 속에서 한없이 침잠했다. 제기랄, 뭣 좀 해보려고 하면 이 꼴이 돼버린다니까. 이제 화타도, 장중경도 없으니 이 암흑에서 날 꺼내줄 이는 없는 걸까.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 이곳, 나는 이곳에서 멸망하고 마는 걸까. 이런 청승맞은 생각도 청승맞다고 꾸짖어줄 이가 하나도 없으니, 더욱 청승맞게 되는 것이었다.
“아휴, 진짜 구질구질하시네.”
그때 한 줄기 섬광처럼 내 눈에 보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그 소리 쪽으로 몸을 틀었다.
“아주 구질구질하다구요.”
앳된 여인의 목소리. 나는 그동안 쓰지 않았던 성대를 울려 소리를 내보았다.
“누, 누구야?”
나는 드디어 소리를 낼 줄 알게 되었다. 내가 부르자 그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억 저 깊은 곳에 머물렀던 모습.
“윤랑……”
윤랑은 뾰로통하게 부은 얼굴로 나를 쏘아봤다.
“대체 그 빌어먹을 민물고기는 왜 날로 먹어서는 저까지 편히 쉬지 못하게 하는 건데요?”
“윤랑……”
“다시는 날로 먹지 마세요. 알았어요?”
“으, 으응……”
윤랑은 나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나는 비로소 눈을 뜨고 내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윤랑은 찬란한 나신이었고, 나 또한 다 벗은 몸이었다. 본래 사람은 남녀끼리 벗은 몸일 때에는 응당 부끄럽기 마련인데, 나는 이제 사람이 아니게 된 것인지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윤랑은 내게로 다가와 입술로 입술을 포개었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안온한 촉감을 느낄 수 있었다. 입술로 입술을 포개고 손으로 손을 포갰다.
“윤랑……”
“민, 물, 고, 기, 날, 로, 먹, 지, 말, 아, 요!”
“응……”
윤랑은 포개었던 손을 빼내서 내 가슴 주위를 얼씬거리다가, 그 따뜻한 감촉으로 내 배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녀의 접촉에 나는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격통을 다시 깨달았다. 마구 찌르는 고통이 그야말로 고통스러워서 나는 몸을 비틀었다.
“가만히 계세요!”
단호한 윤랑의 호통에 나는 그대로 몸을 가만히 두었다. 윤랑은 부드럽게 내 배를 문질렀다. 간질간질하고 아찔한 촉감이 나를 감쌌다. 윤랑은 한참 그렇게 했다.
“조금 낫죠?”
그녀가 묻자 곧장 그 찌르는 고통이 사라졌다.
“좋아졌어.”
윤랑은 내 배를 문지르고, 가슴을 문지르고, 어깨를 어루만졌다. 나는 한없이 편안한 감촉에 잠이 들 것만 같았다.
“편해요?”
“응, 편해. 편하고 좋아……”
“계속 해줬으면 좋겠어요?”
“응, 계속, 더, 더……”
“더요?”
“응, 더 해줘. 좋아. 더 해줘……”
“좋아, 더 해줘. 좋아, 더 해줘. 더……”
나는 입술을 우물거리면서 계속 그렇게 말했다. 너무나도 따뜻하고 너무나도 부드럽고 너무나도 편안했으니까. 더, 더, 더……
나는 눈을 떴다. 원래 눈을 뜨고 있었는데 다시 눈을 떴다. 꿈 속의 꿈에서 깨고, 다시 그 꿈에서 눈을 뜬 것이다. 눈은 꿈에서 깼는데 입은 그러지 못했다. 입술은 한없이 좋아, 더 해줘. 좋아 더 해줘… 끝없이 중얼거렸다.
새로이 눈을 뜬 내 시야에 윤랑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음, 으음…… 왜 얘가 여기 있는지 모르겠는데 산월수 반림이 내 시야에 들어있었다. 반림의 얼굴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져 있었다. 아직까지 저 너머의 세상에서 돌아오지 못한 내 입술은 연거푸 좋아, 더 해줘, 좋아, 더 해줘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입술아! 제발 닥쳐!
반림은 맨몸의 내 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반림은 조심스럽게 내 몸에서 손을 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확인했다.
“더… 해줘……?”
“응, 좋아. 더 해줘……”
아니야! 하지 마! 안 좋아! 제발 합죽이가 되어라, 내 입술아……
차라리 반림만 내 말을 들었으면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겠다. 그러나 내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반림의 좌우에는 그의 수발을 들던 나의 정실부인 원시영과 교교가 있었고, 또 그 좌우에는 여포와 량이가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빌어먹을 좌자와 그의 짝꿍 허저가 있었고 백각의 머리 큰 아저씨들이 있었고 내 군령에 벽력 같이 움직이던 무장들이 있었다. 저마다 생김생김은 다 달랐지만, 내 변태 같은 목소리를 듣고 짓는 표정은 다 똑같았다. 뭐, 경멸과 역겨움, 혐오, 한심스러움, 기가 막힘, 뭐 그런 종류의 온갖 감정들이 담긴 그런, 그런 표정들……
“아……”
나는 민물고기 회가 먹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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