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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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만두가게 아가씨
“일단 진등님의 제안을 받는 것이 좋겠어. 조맹덕의 세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으니. 그의 세가 강하면 태산도 온전히 우리 것이라고 할 수 없어.”
노구는 고개를 끄덕이고 진등에게 제안을 수락하겠다고 말했다. 진등은 만족하며 돌아갔다. 환영의 연회도 고사하고 서둘러 도겸에게 복귀하는 것으로 보아 전황이 급박한 것 같았다. 진등이 돌아가자 솔직한 목소리들이 나왔다. 영자가 팔짱을 낀 채로 말했다.
“아무리 조조라지만 사방에서 옥죄면 도리가 없지. 흑산의 수괴인 장연은 휘하에 100만이나 되는 병력을 거느리고 있다던데? 게다가 어부라 또한 사나운 흉노족속. 더군다나 원남양의 군세 자체가 조조를 압도하니까.”
노아도 공감했다.
“그간 조조는 황건 잔당을 상대로 맹위를 떨쳤지만 이번에는 상대의 질 자체가 다르다.”
결과를 아는 나는 답답했다. 물론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영자와 노아의 판단이 옳다. 이 때의 조조는 이제 겨우 기지개를 펴는 상황이고 원술은 강자로 손꼽히는 군벌이니까. 거기에 장연과 어부라, 도겸까지 가세했으니 저울추는 명백히 원술과 도겸에게 기울어 있다. 이 난국을 아무렇지도 않게 타개해버리는 조조가 인물은 인물이다 싶었다. 다들 조조의 운명을 비관하자 나는 앞으로 나서 말했다.
“조조가 이길 거야.”
영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야, 찬. 세력 차이가 극명하다구.”
“조조가 이길 걸, 영자? 내기해도 좋아.”
“대체 무슨 근거로?”
무슨 근거로? 여기에 대해 할 말은 없다. 결과가 그렇게 돼 있는데 근거는 무슨 근거. 나는 아무렇게나 둘러대버렸다.
“…전체 상황을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내심 심도 깊은 추론을 기대했던 영자는 김이 팍 샌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무슨 개떡 같은 추리야.”
“아무튼 이번 전쟁의 승자는 조맹덕이야. 대장, 우리는 이번 전쟁에서 조연주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돼. 그러면 다음 목표는 우리가 되니까.”
노구는 찝찝한 표정이었다. 그 역시 일반적인 추리를 통해 원술과 도겸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아무래도 원술 쪽을 지지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제 아무리 조연주라지만……”
“나를 믿어, 대장. 조맹덕은 그런 얼치기들과는 다른 영걸이야. 맹덕이 가뿐하게 그들을 이길 거야.”
“점이라도 봤나? 너무 확신하는 걸. 좋아, 조조가 이긴다고 치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도겸의 뒤통수라도 쳐야 하나?”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는 중립을 고수한다. 태산에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는 거야.”
“별로 맘에 드는 패는 아니군.”
“휘하의 세력이 적은 우리는 섣불리 움직여선 안 돼. 그랬다가는 금세 기반을 잃고 몰락할 거야. 지금은 움직일 때가 아니야. 조연주는 도서주의 공격을 쉽게 막을 것이고, 양측은 큰 피해 없이 전쟁을 종결하겠지. 세력 구도는 변하지 않아. 이 때에 우리가 쓸데없이 좌충우돌했다가는 군벌들의 표적이 될 수 있어.”
“음……”
“그러나 조연주가 도서주를 공격한다면 달라. 구도가 허물어지니까. 그때에는 우리도 출병을 결행해야 해.”
지금은 굳건한 구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우리가 이상징후를 보이면 전국제후들은 우리를 주목할 것이다. 아직 제대로 싹도 틔우지 않은 상태에서 주목을 받게 되면 곤란하다. 우리의 존재감을 그들에게 각인시키지 않아야 한다.
즉 구도가 급변하는 물살을 타고 흘러가야 했다. 조조는 원술을 제압하고 도겸과 맞서기 위해 대대적으로 출병할 것이다. 원소 측 군벌이 성장하는 걸 두려워하는 공손찬은 자신이 임명한 청주자사 전해(田楷)와 그의 부관 유비를 서주로 보내 지원한다. 그렇게 되면 청주 일대는 힘의 공백이 생긴다. 이 때 청주를 빈집털이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물론 적잖은 출혈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또 하나의 선택지는 유비의 길을 따르는 것. 조조는 도겸을 사지로 몰아넣는다. 탁 하고 치면 억 하고 죽을 정도의 절체절명의 상황. 그때 전해와 함께 유비가 그를 구원하러 온다. 마침 여포가 연주의 호족과 결탁하여 조조의 본거지를 급습하는데, 조조는 도겸의 멸망을 목전에 두고 급히 회군한다. 유비의 구원에 크게 감복한 도겸은 서주자사의 인을 유비에게 건네고, 유비는 서주자사가 된다. 노구로 하여금 유비의 몫이어야 할 서주자사의 인을 뺏게 하는 것이다. 청주보다 낭야가 도겸의 본진까지 가까우니 충분히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유비는 희미하나마 황족이라는 명분이 있지만 노구는 도겸의 밑에서 종군했고 또 얼마 전 태산, 낭야의 일이 있으니 서주자사의 인을 넘겨줄지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도겸의 사망 이후 서주는 주인을 잃게 되니 또 다른 기회를 엿볼 수도 있게 된다.
어떤 길을 택하든, 지금은 태산에 웅거하는 것이 가장 나았다.
노구는 나의 조언을 채택했고, 태산의 장패군은 이 전쟁에 어떤 형태로든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낭야를 자주 방문했는데, 윤랑과 애정을 싹틔우고 조숭과 술 한 잔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조숭을 만날 때는 영자를 꼭 대동했지만(조숭의 어마어마한 주량을 혼자 감당하기는 힘드니까), 윤랑을 만나러 갈 때는 몰래 산채를 빠져나왔다. 윤랑은 밤늦게까지 만두가게에서 일을 했으므로, 주로 만남은 만두가게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윤랑의 일을 도와주고 짬짬이 쉬는 시간에 사랑을 나누었다.
“윤랑아, 내가 널 위해서 노래 하나 만들었어. 어때, 들어볼래?”
중늙은이 서넛이 한참 술을 푸던 자리를 치우는 윤랑의 뒷모습을 향해 나는 그렇게 물었다. 윤랑은 땀을 흘리며 탁자를 닦고 있었다. 그녀는 짧게 숨을 토하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디 한번 해봐요. 듣고 평가해줄게요.”
나는 배시시 웃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나는 내가 살던 서울에서 유명한 노래를 차용했는데, 3세기의 중국에서까지 저작권을 운운하지 않을 터이니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노골적인 표절을 했다.
“우리 동네 만두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윤랑은 풋 웃었다. 기분이 나쁘진만은 않은 모양. 나는 계속 불렀다. 송창식님의 음률을 그대로 따르고, 가사는 제멋대로 비틀어버리면서.
-긴 머리 곱게 빗은 것이 정말로 예쁘다네
온 동네 청년들이 너도나도 기웃기웃기웃
그러나 그 아가씨는 새침데기―
낭야상인 소건 녀석은 딱지를 맞았다네
태산태수 응소 녀석도 딱지를 맞았다네―
그렇다면 동네에서 오직 하나 나만 남았는데
아! 기대 하시라 개봉 박두―
나는 눈을 감았다가 한 소절을 마치고 흘끗 떴는데, 윤랑은 얼굴에 홍조를 띠고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나는 만족스러웠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만두 하나 사러가서
가지고 간 복사꽃 한 송이를 살짝 건네어 주고
그 아가씨가 놀랄 적에 눈싸움 한 판을 벌인다
아자자자자자자자자자자
아― 그 아가씨 웃었어
윤랑은 정말 웃었다.
-하루 종일 가슴 설레며 낭야갈 일 기다렸지
오랜만에 말끔히 차려입고 그 아가씰 기다렸지
점잖게 다가서서 미소 띠며 인사를 했지
그러나 그 아가씬 흥 콧방귀
“나는 콧방귀 뀐 적 없는데?” 윤랑의 말을 나는 가뿐히 무시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나면 대장부가 아니지
그 아가씨 발걸음 소리 맞춰 뒤따라 걸아간다.
들려서는 안 되지 번호 붙여 하나 둘 셋
아― 위대할손! 나의 끈기!
-바로 그때 이것 참 야단 났네
골목길 어귀에서 아랫동네 조조 패거리에게
그 아가씨 포위됐네. 옳다구나 이 때다
백마의 화평자가 나가신다!
아자자자자자자자
으 하늘빛이 노랗다―
“우리 동네 만두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지금은 그때보다도 백 배는 예쁘다네. 나를 보며 웃어주는 아가씨.”
나는 카피 수준의 표절을 해놓고 뻔뻔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윤랑은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가락은 별로긴 하지만 가사가 좋은데요? 제 점수는요―”
윤랑은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어 내 입술에 그녀의 촉촉한 입술을 갖다 댔다. 이 얼마만의 감촉인가……
“만점이올시다, 화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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