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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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별부사마 육의는 제갈근으로부터 할당받은 병력 오천을 이끌고 급히 무진항으로 이동했다. 통나무나 제법 부피가 있는 잡동사니들을 항구에 쏟아 부어 적선이 접안(接岸)하지 못하게 하고, 쇠뇌를 든 사수들을 강변에 대거 배치하여 적의 상륙을 저지하고자 했다. 육의의 솜씨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해서, 저 멀리 물안개 속에서 비치는 적선의 음영이 시야에 들어올 때쯤에는 모든 만반의 태세를 갖춘 후였다. 육의는 첫 전투에 긴장했으나 빈틈없는 방비를 해두었으므로 자신하는 마음도 있었다.
“긴장을 늦추지 마라!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섣불리 화살을 쏘지 마라!”
육의는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잔뜩 주고 명했다. 그가 주장으로서 처음으로 사령하는 전투였다. 전장은 그의 고향인 오군이었으며, 상대는 다름 아닌 강동의 터줏대감이었던 손책과 주유다. 육의는 아랫입술을 윗니로 씹으며 적선이 쇠뇌의 사정거리에 닿기를 기다렸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물안개에 숨은 적선의 윤곽이 점점 크게 들어왔다. 한두 척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육의의 눈동자에 수많은 전선이 꽉 들어찼다. 육의는 침착하게 기다렸다.
“다섯, 넷, 셋……”
그는 침을 꼴깍 넘기며 팔을 직각으로 들어 사령할 준비를 했다.
“둘……”
뱃속의 창자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
왔다! 육의는 팔을 번쩍 들면서 좌우에 엄하게 군령을 내렸다.
“전군! 쇠뇌를 쏴라! 적의 상륙을 저지하라!”
그의 명령에 강변에 늘어선 사수들은 일제히 쇠뇌를 발사했다. 화살촉 끝에 역청을 바르고 불을 붙인 화전(火箭)이었다. 쇠뇌의 강한 탄력을 받아 뻗어나간 화살은 사정없이 적선의 선체에 박혀 타올랐다. 그럼에도 적선은 꿋꿋이 항구로 나아갔다. 육의는 금세 목이 쉴 정도로 병력을 채근했다.
“쏴라!”
항구까지 몰려온 적선은 그대로 항구를 봉쇄하기 위해 띄워놓은 잡동사니에 그대로 충돌했다. 맨 앞의 적선이 잡동사니에 저지되어 막히고, 뒤이어 오는 적선은 그 앞의 적선에 충돌하여 막혔다. 그 뒤의 적선들 역시 모두 연쇄적으로 추돌하여 무진항은 금세 정체된 적선들로 꽉 들어찼다.
불화살을 잔뜩 맞은 선두의 적선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저 지경이 되었으면 응사를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불길을 이기지 못해 강물로 뛰어드는 인원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타오르는 적선은 귀신의 배처럼 적막만 감돌았다. 맹렬한 불길이 누각을 태워 누각의 대들보가 우지끈 무너질 때까지, 적선에서는 그 어떠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가슴에 바윗덩이가 떨어져 짓누르는 듯 육의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급히 말을 몰아 항구까지 나아갔다. 타오르는 맨 앞의 적선 말고도, 그 뒤의 적선도, 그 뒤의 뒤의 적선도 모두,
“텅 비었어……”
적선은 도합 오십 여 척이었다. 선단의 후미를 기웃거리던 병사들이 육의에게 외쳤다.
“별부사마! 여기 사람이 있습니다!”
병사들은 후줄근한 차림의 사내에게 달려가 그를 거칠게 잡아 끌었다. 무장하지 않은 맨몸이었다. 그는 오들오들 떨며 육의의 앞에 머리를 처박았다.
“…너는 손책의 부곡이냐?”
사내는 머리를 더욱 바짝 조아리며 부정했다.
“아닙니다요! 그저 강가에서 고기나 잡아먹던 촌부입니다요!”
육의의 병사들은 선단의 후미에서 몇 사람을 더 잡아 상관의 앞에 대령했다. 그들은 모두 무장하지 않은 차림이었다. 육의는 허망한 표정으로 탄식했다.
주유는 별부사마 육의가 오군에 체류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그를 의식하여 전술을 짰다. 육의도 물론 새파란 신참이지만 문사 출신의 제갈근 역시 처음 겪는 전투인데다가 외지의 총독 격으로 와있는 제갈근이기에 현지의 유력 호족 출신인 육의에게 전술적인 조언을 청할 것이다. 그래야만 패배하더라도 전략적 오판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육의는 뭐라고 대꾸할까. 육의는 젊은 장군이다. 괄괄한 용맹이 아니라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를 모두 고려하여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곳에서, 가장 적절한 인원으로 필승의 확신이 있을 때 뛰어드는 장군이다. 그는 무진항으로 우리가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것이다. 침략하는 것은 우리이기에 그가 시기를 정할 수는 없다. 천시는 우리의 몫이다. 다만 그는 지리만큼은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장강은 극도의 지리를 취할 수 있는 요소이다. 육의는 그곳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수상전에 매우 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수상전에는 나서지 않을 것이다. 수상전에서는 우리의 인화가 극도로 강해지기 때문이다. 장강의 지리를 최대한 살리면서 수상전에 나서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미리 항구를 봉쇄하고 우리가 접안을 시도할 때 일제 사격하여 상륙을 저지하는 것이다.
물론 합리적인 시도다. 그러나 분명히 맹점은 발생한다. 항구를 봉쇄하는 것은 수상의 정찰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장강의 물 위에서 무슨 짓을 하든 적들은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그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맹점이다.
손책과 주유가 올라탄 선단은 무진으로 향하지 않았다. 물안개가 짙게 끼는 날을 골라, 힘없는 상인과 어부들의 상선과 어선을 징발하고 그 주인들을 태워 그대로 남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들이 섣부르게 달아나지 않도록 무장한 병사 여럿을 동승시켰다. 손책과 주유의 진짜 주사는 무진을 우회하여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상에서의 정찰을 포기한 육의는 이러한 허허실실을 알지 못했다.
물안개에 몸을 숨긴 상선과 어선은 육의를 교란시켰고, 상인과 어민을 겁박하여 봉쇄된 무진항구에 그대로 박아버린 감시병들은 멀쩡한 전선에 옮겨 타, 서둘러 다시 강의 건너편으로 복귀했다.
육의와 제갈근은 안개에 둘러싸인 선단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렇기에 장패를 채근하여 이런저런 사정을 따지지 않고 오군으로 즉각 파병하게 하고, 산월수 반림도 들볶아 오로 대거 출병하도록 했다. 그러나 무진항으로 들어오는 선단은 그야말로 눈속임이었고, 손책과 주유의 진짜 행선지는 다름 아닌,
“회계로 간다.”
회계였다. 단양태수 좌장군 장패는 병력을 오군으로 이동시켰고, 산월수 반림도 대대적으로 병력을 징발하여 오군에 전력을 집중시켰다. 다수의 예상은 육의의 거센 저항을 수적 우위를 보유한 손책과 주유가 다소간의 피해를 감수하고 그대로 돌파한 뒤, 무진에 상륙·남하하여 오군의 본성을 들이치리라 여겼다.
주유는 그들을 완벽하게 속아 넘겼다.
“구태여 괴물의 아가리로 들어갈 필요가 없지.”
오군은 손책과 주유에게 그야말로 사지(死地)였다. 육의가 항구를 봉쇄한 탓으로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가며 상륙해야 하고, 용케 상륙한다 한들 오에 주둔하는 제갈근의 직속 군단, 그것에 더하여 오의 사성이 보유한 토병(土兵)이 있었고, 장패의 단양병과 진도의 합비 기병 삼천, 산월의 원군이 들어찬 오군의 본성을 무너뜨려야만 했다. 야전이라면 모를까 공성전에서 그러한 적을 맞아 이기기란 제 아무리 주유라고 해도 수가 보이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주유가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계를 쓰는 것이 도리어 상식적이었다. 그러나 제갈근은 오로지 오군의 성을 보존하는 데만 주력했고, 육의는 무진항구를 봉쇄하는 데만 주력했다.
“젊은 신중론자의 시야는 좁은 법이지.”
주유는 쾌속으로 선단을 몰아 회계로 향했다. 회계는 오의 남쪽에 있으며 해안선을 에둘러 깊은 만으로 들어가야 했다.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만만디로 굴었다가는 동향을 포착한 제갈근이 회계의 항구를 봉쇄해버릴 터였다. 주유의 진격은 그야말로 쾌속이었다. 병력 모두를 노군(櫓軍)으로 활용하여 밤낮없이 배를 몰았다.
“시일이 중요하다……”
합비에 있던 산월수 반림이 급거 회계로 돌아가, 병력을 준비하여 오군으로 급파한다. 만일 너무 이른 때에 결행하면 막 회계로 귀환한 반림이 이끄는 산월의 주력과 맞붙어야 하고, 너무 늦은 때에 결행하면 이미 주유의 동향을 훤히 꿰뚫은 적과 대전을 벌여야 했다.
손책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적의 동선을 우선 꿰뚫어야 하고, 그 동선이 어느 때, 어느 지점에서 이뤄지는지 꿰뚫어야 했으며, 그것에 더해 물안개가 짙게 끼고 해류가 순방향으로 도는 하늘의 기이함 또한 꿰뚫어야 했으며, 아군이 전속력으로 나아가면 어느 때에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꿰뚫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이 모든 것의 아귀가 꼭 들어맞는 때에 일을 결행해야 한다니!
“공근(주유의 字)의 머리는 대체 얼마나 좋은 것인가!”
주유는 씩 웃었다.
“뭘, 이 정도 가지고.”
육의는 몸을 떨었다. 만일 제갈근의 말을 들어 오군에서 농성을 결심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전군의 신경은 무진에 쏠려있다. 무진으로 적군이 들어온다는 보고가 있었고, 육의가 그들을 요격하러 출병했기 때문이다. 만일 무진으로 적이 온다는 보고가 있었어도 오군의 성에서 버티기로 했다면 사방팔방으로 첨병을 풀어 적의 동향을 살폈을 것이다. 그러나 육의가 최전선에 나선 이상 다른 곳의 첨병은 둔하게 가동되었고, 바다 위의 정찰선도 띄우지 않았다.
“적이 우리를 속이고 어디로 향한 것인가……”
몸을 떨며 육의는 손톱을 입가로 가져가 깨물었다. 손톱을 깨물고 깨물다가 스치는 생각이 있어 손톱을 문 채로 멈췄다.
“회계인가……!”
육의는 다급하게 몸을 일으켜 전령을 급파했다.
“속히 오성으로 가라! 오군공에게 적이 회계로 향할 것이니 즉각 병력을 회계로 파견해 적을 막으시라 전하라! 이 육의, 오판을 저지른 죗값은 전쟁이 끝나면 어떤 벌이든 달게 치르겠노라고 전하라!”
“존명!”
육의는 주먹으로 말안장을 내리쳤다. 놀란 말이 앞발을 굴렀다.
제갈근은 발을 동동 굴렀다. 합비에서 파견된 진도의 기병 삼천과 장패의 단양병 일만이 이미 당도하여 병사의 수효는 충분했으나 어쩐지 불안한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산월수께서는 어째서 여태 오시지 않는 것인가!”
좌장군 장패는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하는 제갈근을 못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좀 가만히 계시면 안 되겠습니까?”
“불안해서 그럽니다, 불안해서.”
장패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대체 무엇이 불안하십니까? 이미 오군의 병력은 적을 상회합니다. 더하여 든든한 성벽에 의지하고 있는데 산월의 원군이 오지 않았다고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시는 겁니까?”
제갈근은 머리를 싸쥐며 괴성을 질렀다.
“으에에에!”
장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 참.”
장패는 탄식하고,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제갈씨는 하나같이 병신들이야……”
반림이 회계에 당도한 것은 이미 여러 날이었다. 그는 곧장 오군으로 출병할 생각이었지만, 새왕들의 보고를 받고 다소 생각이 달라졌다. 새왕 추림이 산월수 반림에게 보고했다.
“단양의 좌장군 장패가 병력 일만을, 합비의 남부교위 진도가 기병 삼천을 징발하여 오군으로 급파했다고 합니다. 또한 오의 사성 일문이 보유한 토병 이천 또한 오군공에 가담했습니다.”
추림의 보고에 반림은 관자놀이를 긁었다.
“그럼 병력이 무려 삼만에 이르지 않은가?”
추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오군공은 장강의 이점까지 안고 있다. 적보다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고, 지리까지 얻었는데 나더러 오군으로 와달라고 오군공이 그렇게 징징거린 것인가?”
추림은 제가 다 민망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말씀이야 맞는 말씀이십니다.”
반림은 제갈근의 칠칠치 못한 요구와 합비에서 제갈찬의 성추행을 떠올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제갈씨는 하나같이 병신들이야……”
추림은 머쓱하게 웃었다.
“출병 준비를 할까요?”
반림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됐다! 항시 출격준비는 하되 출병은 하지 않겠다. 굳이 우리가 돕지 않아도 장강을 끼고 삼만이나 되는 병력이 있는데 지겠느냐? 지면 정녕 동맹으로서 가치가 없는 머저리들임이 증명되는 것이다. 우선은 회계에 머물면서 동정을 살피도록 한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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