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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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한 식경동안 양양의 주인이었던 점령군은 한 식경 만에 패잔군이 되어 북방으로 바삐 달아났다. 장료는 사냥개처럼 패잔군의 꼬리를 물고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오만의 병력 중에서 오천의 병력이 장료의 추격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장비는 관우의 부장 부사인으로 하여금 관우의 기질을 잘 다스리도록 당부하고 스스로 후위를 자임하여 후미로 향했다. 부사인은 난감했다. 땅의 제왕인 호랑이를 다스리는 것은 하늘의 제왕인 용뿐이다. 한낱 하룻강아지인 부사인은 미쳐 날뛰는 호랑이를 말리다가 관우의 억센 팔꿈치에 맞아 코뼈가 부러졌다. 그러는 한편으로 생각했다. 태산처럼 무거운 성정의 관운장이 저렇듯 광포히 날뛰는 것이 이상하고, 그것보다 더 이상한 것은 소나 돼지를 잡는 도한(屠漢) 같던 장익덕이 침착한 기질을 발휘하여 병력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빠른 철수를 결단했다는 사실이었다.
장비는 수하의 정병 삼천을 거느리고 장료의 추격을 막아섰다. 때마침 병목처럼 길이 좁아지는 구간이었다. 장비는 본대를 앞서 보내고 그 좁은 목에 버티고 섰고, 휘하로 하여금 거대한 방패를 들렸다. 장비가 부리부리한 눈을 홉뜨며 추격군의 수장인 장료를 맞이하자, 합비공의 휘하 중에서도 손꼽히는 용장인 그도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다시금 맹렬히 패잔군의 진중으로 달려들었다. 그를 따라 이미 승기를 잡은 그의 병력도 용맹하게 나아갔다.
“용렬한 계책으로 소기의 염원을 이뤘다면, 이만 만족을 알고 물러가라!”
장비가 당당히 외치자 장료가 맞받아쳤다.
“아직 이루지 못하였다. 네놈 장익덕의 수급을 취하고 이어 네 의형 관운장의 수급을 취하여야만 내 염원은 완수된다.”
장비는 허리를 젖히고 하늘을 향해 폭소했다. 그 웃음소리가 산중을 울리는 맹수의 포효처럼 당당하고 엄했다. 고작 삼천의 병력으로 수만에 달하는 병력을 막아섰음에도 두려운 기색은 전혀 없었다. 장비가 그 광활한 흉부를 떡하니 드러내고 마구 웃자, 장료의 병력은 도리어 저들이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그야말로 염원이로구나! 네놈은 만족도 알아야겠지만 네놈의 주제도 알아야겠다. 이토록 어리석은 네가 이 어른의 꽁무니를 따라오니 어찌 우습지 아니한가!”
수장의 위풍 어린 모습에 장비의 정병들도 따라 웃었다. 괴월은 열 겹의 호위를 받고 있음에도 장비가 떨치는 위엄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과연 상장이로다……”
장료는 콧방귀를 가볍게 뀌고 전군에 명을 내렸다.
“더 들을 것 없다! 쳐라! 장비의 수급을 창에 꿰고 나아가 관우의 수급도 취한다!”
장료의 명령에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발사했다. 장비는 휘하에 엄히 명했다.
“막아라!”
그의 엄명에 삼천 병력은 커다란 방패를 잉어의 비늘처럼 촘촘히 엮어 날아오는 화살을 죄 튕겨냈다. 장비의 앞으로도 이중삼중의 방패가 나서 그를 보호했다. 지붕 위에 떨어지는 소나기처럼, 화살이 쇳소리만 거푸 낼 뿐 인마살상(人馬殺傷)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자 장료는 전 병력을 호령했다.
장료가 병력을 채근하며 몰려오자, 장비는 웃음기를 씻어내고 입을 꾹 닫으며 정색했다.
“건방진 소리……”
광야를 덮는 무수한 병력을 장비는 떳떳하게 선 채로 맞이했다. 정병들은 지참한 활을 일제히 발사하여 선두의 추격군을 고꾸라뜨리고, 그들이 덮쳐오자 창을 가로쥐며 응전했다. 과연 유비의 손꼽히는 막료인 장비이며, 장비의 손꼽히는 정병인 그들이었다. 단단한 방원진을 유지한 채로, 수만 명의 공습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으며 그 공격을 받아냈다. 장비는 진두에 나서 무수한 조무래기들을 참살하고, 쌓인 주검들을 참호로 삼아 스스로를 보호했다. 조무래기들 사이로 부장들이 여럿 섞여 장비에게 달려들었는데, 동시에 달려드는 적을 한 손으로는 창을 내질러 흉부를 꿰뚫고, 한 손으로는 맨손으로 적의 창 자루를 잡아 비틀어 넘어뜨렸다. 자루가 비틀리자 그것을 쥔 팔도 그대로 비틀려서 그대로 골절되었다. 불능이 된 자는 곧바로 억센 발길질로 등골을 밟아 깨트려 죽였다.
잡아 죽인 부장들은 그 투구를 벗겨 창날 밑에 걸어 전시하니, 장비가 창을 쓸 때마다 열 몇 개의 투구가 서로 부딪쳐 탁한 쇳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장료의 병력은 감히 장비에게 덤비지 못했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쏟는 폭포를 감당하는 차돌처럼, 장비를 중심으로 정병 삼천이 이룬 방원진은 추격군의 맹렬한 공습을 오는 족족 분쇄했다.
“더 와라! 얼마든지 와라! 이 장익덕은 지치지 않는다! 또한 지지 않는다!”
기세가 완전히 눌려 장료의 병사들은 꼬리를 말고 제자리에서 주춤거리기만 했다. 약이 머리끝까지 오른 여남태수 고순이 나섰다. 이에 장군 채모가 동참하였다. 고순은 여포의 직할 정예군 함진영의 수장이었으며, 채모 또한 형주의 명망가라지만 다만 가문의 작록에만 의지하는 인물이 아니라 무인의 기개를 지닌 인물이었다. 내로라하는 용장 둘이 일제히 장비에게 달려들었지만, 장비는 조금도 물러서는 기색이 없이 도리어 먼저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재미가 없었는데 이제야 팔뚝에 힘을 주겠구나!”
세 용장과 장비는 어울려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군더더기 없이 정교하게 내지르는 둘의 공격을 장비는 투박하되 날쌘 솜씨로 모조리 받아냈다. 그 와중에 창 자루로 채모가 올라탄 전마의 정강이를 후려쳐 넘어뜨리고, 제 목을 비껴가는 고순의 창을 맨손으로 잡아 확 잡아당겼다. 고순은 무지막지한 완력에 그대로 딸려가 낙마했다. 고순이 다시 말에 오르려 하자 장비는 고순 전마의 허리를 향해 발길질하니, 창자가 뒤틀리는 충격에 그의 전마는 거품을 물며 모로 쓰러졌다.
둘을 모두 낙마시킨 장비는 손날로 채모의 목을 가격하여 혼절시키고, 끈이 풀려 벗겨진 채모의 투구를 접수했다. 이어 고순의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공세를 여유롭게 받아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니 도리어 기력이 달리는 것은 고순이었다.
“정녕 사람의 몸이냐……”
거친 숨을 쌕쌕 내뱉으며 고순이 경탄하자, 장비는 크게 웃으며 받아쳤다.
“네놈들이 약골인 게지!”
그렇게 말하고 상체를 숙여 무소처럼 고순에게 달려들어 갑주가 지키지 못하는 허리를 그대로 밀치고 씨름하듯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후에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고순의 목에 꽂으려 했다. 고순은 이를 간신히 제어하고 겨우 틈을 찾아 몸을 피했다. 병력 몇몇이 달려들어 혼절한 채모를 데리고 돌아갔다. 장비는 두 용장을 향해 다시금 한바탕 웃어주었다.
“크핫핫! 그래가지고 어디 장수라 하겠느냐!”
믿었던 고순, 채모마저 장비를 이기지 못하고 추한 꼴로 물러나니 수만 명의 넋이 달아나버렸다. 장비는 후방을 흘끗 바라보고 좌우에 명했다.
“충분히 시간을 벌었다! 우리도 물러난다! 일천은 남아서 최후까지 항전하라!”
장비는 그렇게 말하고 그대로 말을 몰아 철수했다. 그 뒤를 정병들이 따랐다. 무게가 무거운 방패나 창 따위를 버리고 맨몸으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전장에 남은 나머지 일천 병력은 그대로 떳떳하게 남아 추격군과 정면으로 마주섰다. 장료는 입술을 깨물며 전군에 명령했다.
“쳐라! 남은 놈들을 모조리 토멸하고 패잔군의 뒤를 쫓아라!”
일천의 병력은 그대로 창칼의 밥이 되었으나, 그 사이에 패잔군은 전속력으로 달려 장료의 추격을 간신히 따돌렸다.
장비는 그렇게 후위의 임무를 완벽하게 이행하고 본진으로 돌아와 부사인이 끙끙거리며 다스리던 관우를 다독였다.
“형님! 이대로 계속 가십시다!”
분이 다소 가라앉은 관우는 숨을 크게 쉬며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잘하였다.”
그 짧은 치하에도 장비는 애처럼 입을 벌리고 웃었다.
“내가 잘한 게 아니라 동전 몇 닢을 내놓듯 제 목숨을 던진 일천의 용사들이 한 일이오. 형님께 칭찬을 들은 건 몇 년 만인 것 같소!”
“잘했기에 잘했다고 한 것이다.”
“우선은 여남으로 귀환하여 큰형님의 명을 받들도록 하오.”
관우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놈들의 꾀에 넘어가 진군을 잃었다. 무슨 면목으로 서주로 돌아가 형님을 뵈랴.”
장비의 굳은 머리로는 딱히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그는 입맛만 쩝쩝 다셨다. 그때 전령 하나가 급히 달려와 관우의 앞에 엎드렸다.
“연주도독께 보고!”
장비가 대신 허했다.
“말하라!”
“진등이 배신하여 장군 미방을 죽이고 여남을 점거했습니다!”
관우의 얼굴 위 주름이 가문 날의 밭처럼 쩍쩍 갈라졌다.
“뭣이!”
이 보고에는 장비도 참지 못하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대체 무슨 일이냐!”
“진등의 투항이 본래 사항계(詐降計)였습니다!”
관우의 얼굴이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 개자식이……!”
“따라서 여남으로 귀환하지 마시고 급히 요로를 택하여 유사군의 영지로 철수하는 것이 가당합니다!”
“이 개자식, 개자식, 개자식!”
간신히 잦아들었던 관우의 분노가 다시 펄펄 끓었다. 뒷목이 뻐근해지는 분노를 잠시 감당하지 못하다가 겨우 삼켰다. 관우는 고개를 아래로 향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고 목에 힘을 주어 고개를 꼿꼿이 들었다.
“예주 출신의 장교를 찾아라. 길라잡이를 삼을 것이다.”
관우는 예주 여남 출신의 장교를 불러 선두에 세웠다. 여남은 37개의 현을 거느린 거대한 군이었다. 여남의 동부는 이미 진등이 점유하고 있지만 서부는 낭릉후 이통의 관할이었다. 그곳을 경유하여 유비의 세력권인 진국으로 들어간다면 무사히 철수할 수 있을 터였다. 관우는 분을 삼키며 서둘러 여남 서부로 향했다. 과연 예주 출신의 장교는 값어치를 톡톡히 했다. 필시 진등의 눈이 심어져있을 대로를 피하여 구불구불하고 협소할지언정 우거진 수풀로 이목을 피할 수 있는 첩경을 알아냈다.
이미 병사들은 여남에서 양양까지 강행군을 소화한데다가 양양에서 제대로 유숙하지 못하고 전속력으로 철수하여 기력이 거의 다한 상태였다. 급히 철수하느라 최소한의 병량만 보유하고 나머지는 모두 버려버린 탓에 슬슬 궁기(窮氣)가 아랫배에서 끓었다. 관우는 과감히 약골은 중도에 버리고 제 기력을 챙긴 이들만 이끌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냉정한 선택을 하고 첩경을 지나는데, 길의 좌우에 우거진 수풀에서 화살이 쏟아졌다. 다리에 힘이 풀린 관우의 병사들은 서풍에 눕는 갈대처럼 차례차례 쓰러졌다.
“승냥이 같은 놈들……!”
관우는 응전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전속력으로 진군하여 적의 매복을 탈출하라 명했다. 이미 다리가 제 것이 아닌 듯 느껴지던 병사들은 가혹한 명령에 낙담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서서 화살을 맞아 죽을 수는 없어서 그야말로 죽을힘을 짜내 관우의 뒤를 따랐다.
“됐다! 그만 쏴라. 돌아가자.”
진등의 아우인 진배가 이끄는 복병은 소기의 성과를 이루고 여남으로 돌아갔다. 화살을 맞아 절명한 지친 생들은 어둠이 내리고 곧 이슬이 내릴 차디찬 땅바닥에 누워 편히 잠들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관우는 낭릉에 당도했다. 그는 부장 부사인을 보내 이통으로 하여금 지친 병사들을 쉬게 하고 주린 배를 채우도록 병량을 꿔달라 청했다. 물론 아쉬운 건 관우 쪽이었기에 두둑한 이자를 약속했다. 그러한 전언을 안고 부사인은 낭릉의 성문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성벽 위의 수문장이 백기를 들고 접근하는 부사인에게 불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냐!”
이런 젠장, 수문장 주제에 연주도독의 상장께 무슨 말본새냐…… 부사인은 속으로 궁싯거리며 당당히 받아쳤다.
“연주도독 관 공의 부장 부사인이다! 낭릉후께 관 도독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니 속히 성문을 개방하라!”
수문장은 잠깐의 여유도 두지 않고 곧장 대답했다.
“외인의 출입을 엄히 금하라는 낭릉후의 명이 있으셨다! 출입을 허하지 않겠다!”
“뭐야!”
“더 나눌 말이 없다. 돌아가라!”
병사들은 오로지 낭릉만 바라보고 그 고된 여정을 감당했다. 만일 낭릉에 입성하지 못한다면 병력의 동요가 극심할 터, 부사인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후방의 아군을 슬며시 바라본 뒤, 다시 수문장에게 외쳤다.
“낭릉후는 유사군을 돕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다른 소리를 하느냐! 속히 문을 열어!”
“거 귀찮게도 짖어대는군.”
수문장은 더 이상 말로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활시위에 살을 먹여 부사인의 발 앞에 화살을 쏘았다. 팍 박히는 화살에 부사인은 더 이상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알고 곧바로 관우에게 돌아갔다.
“도독께 보고! 낭릉후 이통이 우리를 등졌습니다!”
관우는 상체가 허청거리는 것을 간신히 다잡았다.
“그 사이에 의리를 저버렸다더냐……!”
관우는 좌우를 돌아보았다. 부사인이 전한 최악의 소식에 병사들의 눈에서는 불온한 기운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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