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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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좌자가 이끄는 합비공의 병력과 여대가 이끄는 천자의 천병이 호거아의 선공에 당당히 응전했다. 가후는 이미 쇠붙이로 무장한 병력의 한가운데로 숨어들었고, 그의 뒤를 뒤쫓는 호거아를 맞이하는 것은 등등한 합비공의 상장들이었다. 호거아는 단단한 방비를 성미에 못 이겨 해제한 것을 후회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일전을 벌였다. 좌자는 마상에서 술이나 벌컥벌컥 들이켜고, 실질적인 지휘는 황충과 가후가 맡았다. 칼과 칼이 맞붙는 싸움박질이면 모를까, 엉덩이가 간지럽게 눌러앉아 바둑돌이나 놓는 회전(會戰)은 좌자의 취미가 아니었다.
황충과 주환은 전면에 나서서 야전을 지휘했고, 가후는 진의 한가운데에서 침착하게 대국을 읽었다. 호거아는 직속의 기병을 측면으로 기동하여 진을 교란하고 보병을 밀어붙여 그 틈을 파고들었다. 합비공의 병력과 천자의 천병은 합을 맞춰본 바가 드물어서 한 몸처럼 움직이는 호거아의 공세를 둔하게 막아냈다.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니 상하는 자가 더러 있었다.
“호거아는 솜씨가 제법이란 말이야.”
가후는 주환을 바라보며 명령했다. 같은 부장의 신세라지만 가후는 교위이고 주환은 장사의 벼슬이었으며, 연치로도 그러하거니와 가후는 제갈량과 함께 합비공의 동량(棟梁)이었으니 성질이 까다로운 주환도 가후의 명령 받들기를 꺼리지 않았다.
“휴목! 측면은 태산처럼 방비하고 전방의 병력은 날카롭게 벼려 적의 공세에 맹렬하게 대응하라!”
가후의 명령이 깃발의 신호로 바뀌어 주환에게 보내질 즈음, 천병이 이미 움직여 측면을 굳게 지켰다. 가후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살짝 벌렸다.
“저쪽에 제법 기민한 인물이 있는데?”
측면의 천병은 방패를 이층으로 들어 호거아가 이끄는 돌격기병의 파괴력을 감쇄시키고, 낫처럼 생긴 갈고리를 방패의 밑으로 빼내어 낫으로 잡초를 베듯 전마(戰馬) 정강이를 동강 냈다. 방패를 열심히 두드리던 말발굽이 푸줏간의 고깃덩이가 되어 세 토막으로 나뒹굴었다. 말이 흉한 울음을 지르며 넘어지자 호거아의 기병부대는 혼란에 휩싸였다.
“방패 치워! 창 들어! 진격!”
젊은 책략가 서서는 채를 휘두르며 절도 있게 명령했다. 그의 명령에 따라 방패를 들었던 병력은 방패를 버리고 창을 들어 와, 함성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원체 겁이 많은 데다가 다리가 잘려 낑낑거리던 전마들은 갑작스러운 함성과 함께 달려드는 병사들에 혼비백산하여 날뛰었다. 말 탄 자는 자연스레 허둥거리며 낙마했고, 병사들은 그들을 찔러 죽이며 진군했다.
“핏덩이한테 질 수 없지.”
가후는 이를 악물며 군을 사령했다.
“적이 무너진다! 황충, 주환은 총진군하라!”
기세를 탄 합비공과 천자의 병마는 우레 같은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기병을 대거 잃은 호거아는 허우적거리지 않고 적과 창칼을 맞댄 이들을 제물로 삼아 남은 병력을 모아 완성으로 퇴각했다.
“무리하지 마라. 포위하여 적을 물리친다.”
가후는 병력을 불러들였는데, 오히려 서서는 거칠게 채를 휘두르며 목청껏 외쳤다.
“적을 추격하라! 마지막 한 놈까지 목숨을 거둬라!”
서서의 명을 받든 천병은 용맹하게 나아가 적을 베었다. 와중에 죽는 이가 여럿 있었다. 가후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젊은이가 제법 열심이로군.”
어차피 남양과 장안은 함락시켜봤자 천자의 직할령이 될 터였다. 그렇기에 가후로서는 무리할 까닭이 없었고, 서서는 남양과 장안을 천자에게 봉납할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움에 임했다. 완성의 수성군이 후미의 병력을 버리게 할 정도로 서서는 극성맞게 뒤를 쫓았다. 완성에서 날아온 화살 몇 대를 맞고 나서야 병력을 뒤로 물렸다.
장대에서 졸전을 관전하던 장제는 이를 갈았다.
“마등과 원소의 원병은 아직이냐!”
장제가 성화를 내자 그의 부관인 뇌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량왕께서는 양곡 삼천 섬만을 보내오고 원병은 따로 파견하지 않았습니다. 은왕께서는 상장 장합에게 정병 일만을 맡겼다고 알려왔는데, 아직 당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에잇! 그런 배포로 어디 량왕이고 은왕이냐!”
라고 남양왕이 말했다.
천자와 합비공의 연합군은 완성을 포위했다. 장안의 장수는 급한 대로 기병 오천을 모아 연합군의 진지 북쪽에 진을 쳤다. 장수는 쉽게 들이치지는 못하고 진지의 변두리만 두드렸다. 가후는 황충으로 하여금 장수를 제어하게 하고, 완성을 포위한 채로 허송세월했다. 연합군에게 병량은 충분히 공급되고 있는 탓이었고 애꿎은 병력을 상해가며 무리하게 공성할 까닭이 없는 탓이었다.
“장군, 이렇게 시간만 죽일 수는 없습니다. 속히 남양을 떨어뜨리고 장안까지 진출해야합니다.”
참군교위 서서는 총사인 여대에게 말했다. 여대 또한 서서의 말에 공감하고는 있었으나 무리하게 공성했다가는 병력을 크게 잃을 것이요, 허면 남양을 얻는다 한들 지키기 어려울 터였다. 사만의 병력은 천자의 가용병력 대부분이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여대가 입술을 꾹 다문 채 앓는 소리만 내자, 서서가 다시 말했다.
“제게 병력 일만을 주십시오. 장안을 쳐서 얻겠습니다. 장군께서는 나머지 병력과 합비공의 병력으로 계속 완성을 포위하십시오. 허면 병력을 크게 잃지 않고도 남양과 장안을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일만으로 되겠는가?”
“기병 오천을 급파한 장수가 이후 일만 오천의 병력을 동원하여 장안을 떠났다는 급보가 당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장안은 거의 빈 성이나 다름없습니다. 수월하게 얻을 것입니다.”
그 말에 괄괄한 성미의 반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좋은 패기요! 총사, 이대로 하시지요.”
여대는 수염을 쓸며 잠시 고심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여대 또한 겁보가 아니었으며 보고가 사실이라면 해봄직한 시도였다. 서서는 신참이었으나 첫 전투에서 능숙한 지휘력을 검증받았으므로 병력을 맡길 만했다. 여대는 서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만의 병력을 주겠다. 장안을 떨어뜨려라.”
“존명!”
서서는 장안에서 출병한 일만 오천의 병력의 진로를 미리 파악하고, 그 길을 피하여 장안으로 북진했다. 완성에 삼만에 달하는 병력을 주둔시키고도 장안에서 이만의 병력을 더 차출했다면 장제로서는 정말 총력을 완성에 집중한 것이었다. 서서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장안에 남은 장제의 병력은 지극히 소수였다.
백각교위 가후는 탕구장군 여대의 막사로 직접 찾아갔다. 주장인 서부교위 좌자는 어포를 씹으며 탁주를 잡수시고 계시다는 소식이 있었다. 여대는 가후를 깍듯하게 맞이했다. 그 또한 가후가 합비공이 가장 신임하는 측근이며 깊은 지혜의 소유자라는 말을 익히 들었다. 게다가 여대도 이제 사십 줄에 들어선 중년이었지만, 가후는 쉰을 훌쩍 넘긴 고령이었다. 유총이 천자노릇을 하려면 합비공의 후원이 절대적인 바, 여대는 친히 가후의 자리를 총채로 쓸어주며 자리를 권했다. 가후는 여대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고, 그에게 제의했다.
“장군, 진 전체에 울짱을 치고 참호를 파시지요.”
“지구전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완성의 군량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첩보이올시다. 우리는 합비공으로부터 충분한 치중을 보급 받고 있으니 무리할 까닭이 없소이다.”
여대는 공감했다.
“병력을 부려 그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장제의 조카인 장수는 기병을 다루는 데 능하다니 참호와 울짱이 적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울짱을 세우기로 하고 첫날부터 사흘째까지는 병력을 둘로 나누어 절반은 무장한 채로 막사에 대기시키십시오. 대신 막사에 불을 켜지는 마시고.”
여대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까닭이 있습니까? 번을 세우는 데는 십분의 일이면 족합니다. 하루걸러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면 병력의 피로가 극심할 것이외다.”
가후는 웃음을 띠었다.
“그렇게 해주시지요.”
여대는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재로 명성이 자자하시니 범재는 따를 밖에요.”
여대는 가후의 말대로 했다.
울짱을 세우니 작업이 시작되고, 첫째 날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지나갔다. 막사 안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가후는 손을 비볐다.
“내일 오겠구먼.”
여대는 날이 밝고 다시 울짱을 만들도록 했다. 제법 그럴 듯한 모양새가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
“이틀 정도 있으면 완성이 되겠군.”
부지런한 병사들을 바라보며 여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삼분의 일 정도 만들어진 울짱을 바라보고 여대는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어둠이 깔렸다. 가후는 막사에 나와 목을 꺾어 하늘을 바라봤다.
“오호라, 마침 달빛도 흐리고……”
가후는 전 병력을 무장한 채로 불을 켜지 않은 막사 안에 대기시켰다. 심야에 이르자 진지의 북쪽에서 천둥이 치는 소리가 들렸다. 언뜻 호우가 쏟는 듯도 하는 소리에 가후는 빙긋 웃었다.
“그럼 그렇지.”
장수는 기병 오천을 앞세우고 보병 일만을 뒤따르게 하여 연합군의 진지로 돌격했다. 장수 스스로 병력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그가 이끄는 선봉의 기병들은 미완성의 울짱을 가볍게 우회하여 적진의 안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그들은 불화살을 쏘고 부러 함성을 크게 지르면서 적진을 혼란에 빠뜨리고자 했다. 수면의 도중에는 사람이 더 쉽게 놀라는지라, 날아오는 불화살은 상제의 천벌과 같았으며 적병의 함성은 염왕의 꾸지람처럼 느껴지는 법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예기치 않은 야습일 때의 일이었다.
“쳐라!”
가후의 명령을 황충과 주환이 받아 복창하고, 그것을 다시 밑의 장교들이 복창하니 막사에 숨어있던 병력들이 적병보다 더 큰 함성을 지르며 적을 맞이했다. 말이란 짐승은 사람보다 겁이 더 많기에, 불의의 괴성에 눈알을 뒤집었다.
장수의 야심찬 야습은 가후의 반격으로 도리어 치명적인 독이 되었다. 막사의 안에서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던 좌자는 함성이 들려오자 주섬주섬 칼을 챙겼다.
“이제야 재미 좀 보겠네.”
좌자는 소풍 나가는 애처럼 휘파람을 불며 막사 밖으로 나가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대장, 대장, 대장, 대장이 어디 있느냐.”
늙어서 침침한 눈을 게슴츠레 뜨고 한참 살피던 좌자는 붉은 술이 풍성한 투구를 쓴 이를 발견했다.
“옳거니, 네가 대장이로구나!”
좌자는 말에도 오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탁 탁 탁 경쾌하게 나아갔다. 붉은 술의 투구를 쓴 장수는 뜻밖의 역습에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좌자는 마지막에는 전력질주를 하더니 탁 도움닫기를 하여 가벼운 발차기로 장수의 배를 걷어찼다. 장수는 그대로 낙마하여 바닥에 나뒹굴었다.
“백각교위! 죽일까, 살릴까!”
죽이든 살리든 가후는 별 관심이 없었다.
“뜻대로 하십시오.”
좌자는 킬킬 웃으며 장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늘 술맛이 좋아서 죽이진 않겠수.”
그는 풍성한 붉은 술을 움켜쥐고 막사를 나갔던 걸음 그대로 경쾌하게 다시 막사로 들어갔다. 장수의 커다란 몸뚱이가 좌자의 움켜쥔 손을 따라 질질 끌려갔다. 투구 끈이 장수의 목을 죄는지라 그는 목을 부여잡고 켁켁 소리를 내며 끌려갔다.
장수마저 사로잡히자 그의 병력은 완전히 와해되어 각자도생을 택했다. 실패한 야습은 숱한 주검만 남기고 실패로 돌아갔다. 장수의 병력 삼천이 죽고 이천이 사로잡혔으며, 나머지는 필사의 뜀박질로 도주했다. 군의 수장을 잃은 병력은 그 다음날 삼천의 병력이 추가로 탈영했다.
“이런 멍청이들은 너무 정석으로 굴어서 탈이야.”
가후가 여대에게 울짱을 세우라고 한 까닭은 여대가 짐작한 대로 지구전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했지만, 이는 장수를 불러들이려는 의도도 숨어있었다. 참호를 파고 울짱을 세우면 장수가 이끄는 기병의 전력이 무소용이 되므로 장수로서는 울짱이 세워지기 전에 적을 치는 것이 옳았다. 허나 아주 머리는 없는 자이기에 백주대낮에 칼을 들이밀지는 않을 것이요, 야습을 택할 것이 자명했다. 또한 첫날에는 경비가 삼엄할 터이요 그 이후로 점차 경계가 느슨해질 터인데, 셋째 날에는 울짱이 완성될 터이니 장수가 오려면 둘째 날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적장이 꾀주머니로 이름 난 인물이었다면 가후도 다른 방책을 도모했겠지만, 범장을 상대할 때에는 기책(奇策)은 도리어 하책이 되고 범책(凡策)이 상책으로 구실하는 바, 가후는 그대로 따랐다.
장수의 부장이 잔병을 어떻게든 모았지만 그 사기가 예전만 못하고 병력이 크게 상하여 진퇴양난에 빠졌다. 게다가 그 다음 날에는 울짱과 참호가 완성되어 더더욱 곤란해졌다.
한편 서서는 서둘러 북진하여 마침내 장안에 다다랐다. 그는 은밀히 장안에 밀사를 보냈다. 장안은 장제가 차지하기 전에 채모가 점거했던 지역이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으로 당해버린지라, 장안에는 졸지에 장수의 밑으로 들어간 채모의 심복들이 여럿 있었다. 서서는 그들을 회유하여 투항하도록 종용했다. 기실 그 이전에도 접촉이 있었던지라 서서는 싸우지 않고 장안을 얻으리라 확신했다. 장안의 남문에 주둔한 채, 서서는 성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서서가 성을 도사리고 있는데, 장대에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그는 장대 밖으로 그것을 무심하게 내던졌다.
“저것이 무어냐?”
서서의 물음에 눈치 빠른 병사가 달려 나갔다. 병사는 그것에 가까워질수록 속도를 점차 늦추더니, 그것의 앞에 다다라서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머물렀다. 그는 한동안 망설이다가 그것을 주워들고 다시 서서의 앞으로 복귀했다.
“밀사로 보냈던 이의 목입니다!”
병사의 보고에 서서는 당황했다.
“어찌 된 일이냐!”
이미 장수가 대부분의 병력을 이끌어 출성한 마당이고 남양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음을 장안의 사람들이 모르지 않을 터였다. 그들은 채모의 심복, 이미 채모가 합비공에게 귀순했는데 그들이 남양왕을 위해 의리를 지키겠답시고 결사항전을 다짐할 까닭이 없었다. 당최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땀을 흘리는 서서를 향해, 장안성의 장대에 당당히 선 장부가 소리쳤다.
“이 시각부로 장안은 은왕 전하의 땅이다! 감히 은왕 전하의 땅을 노리는 자는, 나 장준예와 대적해야 할 것이다!”
그의 외침과 동시에 장안성의 성벽에 내걸렸던 장제의 깃발이 일제히 치워지고, 원(袁) 자가 쓰인 깃발이 내걸려 바람에 나부꼈다. 서서는 눈을 크게 뜨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마구 퍼덕거리는 원(袁)이라는 글자가 서서의 눈동자에 점점 크게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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