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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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닭 쫓던 개가 지붕을 바라보듯, 서서는 허망하게 장안의 굳게 닫힌 성문과 시즙이 찔끔거리는 밀사의 목만 남은 주검을 보았다. 장합은 피식 웃고 장대에서 내려왔다. 원씨의 깃발이 돌풍에 실려 더욱 세차게 나부꼈다.
“장군, 남양을 구원하지 않으십니까!”
상황이 이럼에도 장제와 장수에게 정이 남은 이가 있었다. 그것이 절절한 충정인지 우매한 잔정인지는 보는 시선마다 다르리라. 그가 장합에게 남양을 구원하라 종용하였다. 이에 장합은 그를 돌아보며 어깨를 어루만졌다.
“남양왕 전하가 화급한 지경에 빠진 것은 참으로 유감이오. 나의 주군인 은왕 전하와 삽혈의 맹을 나눈 분이 어려운 상황이니 내 어찌 마음이 편하겠소? 그러나 일만의 병력으로는 간악한 적이 쳐놓은 포위망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오. 지금 하내에서 후속 원병이 징집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구려. 전력을 모아 한 번에 치는 것이 병법에 맞소이다.”
후속 원병은 있을 것이되 그것은 . 장합이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친절하게 해명하자 그도 더 항의할 말이 없었다. 그는 아아, 탄식만 뱉으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장합은 부장으로 대동한 중랑장 공손독(公孫犢)에게 명했다.
“오늘 밤, 자객들을 풀어 채모의 잔당을 치도록 하라. 훗날 장안을 얻는 데 방해가 될 자들이다.”
“남양왕을 따르는 자들은 치지 않습니까?”
장합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적개심은 우리가 아니라 합비를 향하고 있다. 구태여 피를 묻힐 까닭이 없거늘. 채모의 잔당만을 쳐라.”
공손독은 군례를 올렸다.
“알겠습니다!”
장안은 그 옛날 동탁이 낙양을 버리고 새로운 도읍으로 낙점한 곳이었다. 그런 만큼 성의 방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절벽처럼 높은 옹벽은 다섯 배, 열 배 되는 병력도 너끈히 이겨낼 만큼 미더웠다. 양곡도 넉넉하여 일 년은 족히 버텨낼 만했다. 병력이 일만에 불과하나 정석적인 농성으로 일관한다면 버텨내리라, 장합은 생각했다. 지속적으로 완성의 동태를 주시하면서 원소가 보낼 후속 원병과 합류한다면 승산은 도리어 이쪽에 있었다.
기다림의 전장인 완성은 전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고요했다. 여대와 좌자는 성을 진을 이루어 성을 에워싼 채로 가만히 있었다. 이미 장수가 사로잡힌 마당에 전의를 거의 상실한 성 밖의 적병은 와해 직전이었다. 참다 참다 못한 장제가 스스로 성문을 열고 요격을 시도했으나 이미 진을 짜고 지키고 있는 병력을 어찌해볼 수는 없었다. 애꿎은 병력만 버리고 다시 완성으로 기어들어갔다.
“원소의 원병은 어째서 오지 않는 것이냐!”
사정을 모르는 장제는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한탄했다. 호거아 또한 얼굴을 붉히며 불만을 토로했다.
“오왕동맹이니 허울만 좋고, 정말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장제는 부장 뇌여를 바라보며 물었다.
“병량은 얼마나 남았느냐!”
뇌여는 음울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닷새 치밖에……”
장제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아이고……”
그즈음 여대와 가후는 장안의 서서로부터 연통을 받았다. 뜻밖의 보고에 가후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었다.
“전풍, 그 여우같은 녀석이.”
여대의 얼굴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가후가 섬기는 합비공의 입장에서야 원소가 노른자위 땅을 차지하여 기분이 불편한 정도였지만, 송경의 천자로서는 이미 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던, 주먹만 쥐면 고스란히 얻을 수 있는 땅을 원소에게 넘겨준 꼴이니 다만 불편한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장안이 고스란히 원소의 아가리에……”
여대는 불편한 신음을 흘렸다. 가후는 더 빠른 속도로 이마를 긁으며 말했다.
“일단 남양을 속히 점령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가후는 황충과 주환을 통해 지령을 내렸다. 가후의 지령을 받은 두 장수는 전군에 지령을 하달했다.
연합군은 완성을 둘러싼 채로 일제히 소리쳤다.
“장제는 투항하라!”
“장제는 투항하라!”
“항자(降者)는 유생(有生)이요, 전자(戰者)는 무생(無生)이라!”
“항자(降者)는 유생(有生)이요, 전자(戰者)는 무생(無生)이라!”
육만이나 되는 병력이 성벽을 무너뜨릴 듯 일제히 아랫배에서 육중한 음성을 뱉어냈다.
투항을 종용하는 목소리가 완성의 동서남북에서 소란스럽게 울렸다. 투항하라는 말은 기실 장제를 향했으나, 장제가 스스로 항복해도 좋고 아니면 그 아랫것이라도 장제의 목을 베어 투항해도 좋다는 뜻이었다. 가후는 그렇게 말하면서 완성으로 사자를 들여보냈다. 항복을 종용하는 사자였는데, 살기보다 죽기가 쉬운 일이었으니 아까운 자는 보내지 아니하고 버려도 무방한 자를 보냈다. 아무도 죽고 싶어 하는 자가 없으니, 가후는 일을 성사시키면 합비공께 주청하여 관내후(關內侯)에 봉하고, 혹 죽는다면 그의 식솔을 친히 거두어 후하게 포상하고, 대대손손 호강을 누리게 할 터라고 공표했다. 그러하니 먹일 입은 많되 먹일 손은 어줍지 않으며 목숨 버리기를 아쉬워하지 않는 이가 자원했다. 가후는 그에게 친히 술을 내리고 장제에게 보낼 서한을 들려 완성으로 들여보냈다.
결국 사자는 덩그러니 목만 말안장에 매달린 채로 돌아왔다. 가후는 그것을 소금에 절여 궤짝에 담아 합비로 보냈다. 매정하게 그를 적진으로 보냈으되 약조한 바는 분명히 지키도록 했다.
장제는 항전을 다짐했다. 장제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합비공을 한번 배신한 그였기에, 그로서는 합비공이 자신을 다시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한때 가후의 주인이었으므로 그의 성정이 퍽 냉혹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러한 항복의 종용 역시 어떻게든 성 밖으로 꾀어내려는 방울뱀의 아름다운 연주임을 알았다.
가후 역시 장제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알았다. 사자가 죽을 것을 알았다. 다만 그러면서도 구태여 사자를 보낸 것은, 장제가 아니라 장제의 좌우를 지키고 있는 의리 없는 신하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가후의 사자가 내방하여 항복을 종용한 것에 속으로 기쁜 마음이었을 터였다. 이미 병량은 바닥나기 시작했고, 전의는 지하로 파고드는 터였다. 승리의 공산은 부스러기도 찾아볼 수 없으며 그들을 구원할 원병은 설익은 보리를 쪼아 먹는 소규모의 참새 떼들뿐이었으니, 맞서다 죽느냐 굶어죽느냐의 잔혹한 선택지만 그들에게 가당했다. 그러던 차에 적병이 은덕을 베풀어 항복을 권유하니, 드디어 구명의 길이 열렸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던 차에 장제가 길길이 날뛰며 단칼에 사자의 목을 베어 피를 묻히니, 그들의 기쁨도 덩달아 피를 뿌리고 분노의 고개가 빳빳하게 치켜들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반기를 들어 주군이란 자의 목을 베고 싶었으나 맹수 같은 호거아라는 자가 당당하게 버티고 있으므로 감히 달려들지를 못했다. 그러나 해소되지 않은 절망과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은 채 마구 아우성을 쳤다.
그러던 차에 장안으로부터의 급보가 장제에게도 도착했다.
“남양왕 전하! 장안에 원소의 깃발이 꽂혔습니다!”
절망적인 급보는 파문이 대단했다. 장제의 심복들은 저들끼리 술렁이며 동요했다. 장제는 이를 악물며 물었다.
“이 개자식 같으니! 남양으로 와 우리를 구원하지 않고 장안을 덥석 먹었다더냐!”
“위험에 노출된 장안을 남양왕 전하를 대신하여 수비하겠다는 전언입니다! 동맹을 믿고 남양에서의 분투에 주력하시라는 전언입니다!”
“누구를 바보로 아는가!”
장제는 제 앞에 놓인 탁자를 우당탕 뒤집어 엎어버렸다.
“병량이 사흘 치 남았으렷다……”
가후는 손가락을 꼽아 적의 남은 병량을 추산했다. 배급을 줄이면 이레까지는 버티겠다. 그러나 그 후로는 어렵다. 지금은 장제가 사자를 죽이고 결사항전을 다짐한 것에 좌우가 반기를 들지 못할 터지만, 하루 이틀 굶는 날이 많아지면 곧 뒤집히게 되어있다. 밥통(胃)이 비면 기질이 비는 법이다. 게다가 한번 뻗쳐진 자비심의 손을 거침없이 뿌리친 주군에게 불민한 반감까지 버무려질 테니.
시일을 끌수록 장제에게 남는 것은 배반과 그것으로 여무는 암살의 불안뿐이다. 허면, 그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병력들의 밥통이 아예 쪼그라지기 전에 겹겹의 포위망을 돌파하여 구명할 길을 찾는 것뿐이었다.
가후의 예상은 맞아떨어져서, 꼭 사흘째 되는 날 장제는 전 병력을 물고기 비늘 모양의 어린진(魚鱗陳)으로 편성하고, 선두에 돌격기병을 배치하여 성문을 박차고 사력을 다해 내달렸다. 어린진은 소수의 병력으로 두껍게 뭉쳐 적의 공습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면서 선두의 돌격기병으로 포위를 타파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여대는 가후에게 병력의 총지휘권을 일임했다. 여대 스스로도 훌륭한 야전지휘관이었지만 가후의 대국적 안목과 침착한 완급조절에는 미치지 못함을 알고 효율적인 사령을 위해 그리하였다.
육만의 대병력을 가후는 제 사지를 놀리듯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장제가 성문을 박차고 나오자, 가후는 전군에 명했다.
“적은 서문으로 나오고 있다. 서쪽의 병력은 길을 터라.”
맹렬한 돌격기병이 덮쳐오자, 가후의 말대로 서쪽의 연합군은 둘로 갈라져 그대로 그들이 지나치도록 했다. 뻥 뚫린 길을 그대로 내달린 기병들은 어리둥절하게 지나갔다. 가후는 돌격기병의 후미가 거의 진을 빠져나왔을 때, 다시 전군에 명령했다.
“닫아라.”
기병이 빠지고 보병만 남자 가후는 열었던 길을 다시 폐쇄하고, 압도적인 병력으로 그들을 포위하여 거칠게 몰아붙였다. 돌격기병을 지휘하던 호거아는 눈을 부릅뜨며 고삐를 잡아당겼다.
“주군이 포위되었다! 구원하라!”
호거아가 다시 말 머리를 돌려 장제를 구원하려고 나서자, 그 앞을 황충과 반장의 기병대가 가로막았다.
“멋대로 어딜 가느냐?”
“에잇……”
황충과 반장이 호거아를 제어하는 사이에 연합군의 본대는 장제를 일방적으로 두들겼다. 잉어의 비늘이 단단하다 한들 엄지로 짓누르면 그대로 바스라진다. 전의가 없어진 장제의 병력은 찌르면 찔리고 베면 베였다. 약삭빠른 자가 서둘러 병장기를 버리고 투항하니, 그 주변의 이들도 투항에 가담했다. 제 목숨을 귀히 여기는 장군 뇌여까지 연합군에 귀순하자 장제의 일각이 일거에 허물어지고 전황은 빠르게 악화되었다.
“황충과 반장을 뒤로 물려라. 동쪽, 북쪽, 서쪽의 방비는 굳게 하되 남쪽의 병력은 철수시켜라.”
가후의 명령에 곧장 그리되었다.
생로가 트이자, 장제는 허겁지겁 손가락을 남쪽으로 뻗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저곳, 저곳으로 가자! 가자! 가자!”
군대가 아니라 창 쥔 사내들의 집합일 뿐인 장제의 세력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음을 재촉했다. 불운한 자들은 도주하는 와중에도 죽어 고꾸라졌다. 수만에 달하던 장제의 병력은 죽어 엎어지거나, 다쳐 뒤쫓지 못하거나, 투항하거나, 대열을 이탈하여 섬처럼 돼버리거나 하는 까닭으로 오천 가량만 남아 남쪽으로 부리나케 달아났다. 호거아도 장제와 합류하여 남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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