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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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이겨부렀어!”
좌자는 승전을 자축하는 술잔을 자작하여 쭉 들이켰다. 만일 패배했다면 자위의 슬픈 잔을 들었을 터였다. 승전한 연합군은 함성을 길게 내지르고 창을 높게 받쳐 잡아 당당히 완성으로 개선했다. 병력의 손실은 거의 없었다.
완성을 점령하고 남양을 장악하자마자 전장의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총의 칙사가 왕림하여 승전을 치하하고 반장을 남양태수에 임명했다. 좌자와 가후는 유감이 없었다.
“백각교위, 질문이 있소.”
개선의 기쁨으로 흥분한 기운이 어느 정도 잦아들 때쯤, 장사 주환은 가후를 찾아왔다. 가후는 죽간을 보다가 주환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지.”
주환이 앉자 가후가 깍지를 끼고 턱에 갖다 댔다.
“무엇이 궁금한가?”
“장제를 어째서 살려주었소? 아예 죽여버리는 것이 뒤탈이 없었을 것이오.”
가후는 웃었다.
“뒤탈? 뒤탈은 적에게 있겠지.”
“설명을 해주시오.”
가후는 죽간을 탁 접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전에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이 있어서.”
시의 적절하게 좌자가 가후를 찾아왔다. 가후는 좌자에게 읍하며 그를 맞이했다.
“장수를 놔주라구? 힘들게 잡았수.”
좌자는 실실 웃으면서 농조로 가후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가후는 그를 맞이하며 웃었다.
“다 아시면서 왜 이러십니까?”
“항병(降兵)은 도합 육천이올시다.”
“음, 그 정도면 적당하군요.”
좌자에 이어 황충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빳빳한 포승줄이 들려 있었고, 포승줄에는 적개심이 가득 찬 표정의 장수가 묶여있었다. 가후는 그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패전지장 주제에 너무 표정이 건방지잖나?”
그는 허리춤에 찬 칼을 풀어 칼자루를 장수 쪽으로 향해서 그의 배를 푹 찔렀다.
“벌써 죽여버렸어야 옳은데 말이지.”
장수는 가후를 노려봤다.
“귀신이 되어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
가후는 싱겁게 픽 웃었다.
“귀신? 네놈이 귀신이 될 쯤이면 나는 네놈의 한참 귀신 선배일 것이다, 이놈.”
뜻밖의 말에 장수의 얼굴에 의구심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항복한 너희의 병력 육천이 있다. 그것을 고스란히 너에게 주고 이 남양에서 쫓아낼 것이다.”
“뭐라……?”
“내가 두 번씩이나 말하는 친절을 베풀어야 하느냐? 썩 꺼져!”
장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축출되었다. 주환의 얼굴에 더 의문의 빛이 선명해졌다. 가후의 장광설이 이어지리란 걸 직감으로 포착한 좌자와 황충, 두 무부(武夫)는 서둘러 방을 나가버렸다. 가후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주환을 바라봤다.
“장제를 남쪽으로 몰아 내쫓았다. 남쪽은 어디인가?”
“한중이오.”
“장제가 한중으로 간다. 한중에는 마등이 있다. 마등과 장제가 만난다. 남양은 이미 우리의 차지, 마등은 이미 예상했으니 그러려니 할 터. 그러나 뒤이어 장제가 말한다. 원소가 장안을 차지하였다. 그것은 마등의 예상을 벗어나는 일이지.”
장안은 그야말로 요충지이다. 든든하게 관동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아서고 반대로 서량, 한중, 형주로 뻗어나가기에 훌륭한 관문이 된다. 원소는 비록 마등의 동맹이지만 그와 맺어진 관계는 오로지 이득에 의한 것이다. 그러니 신뢰할 수 없는 동맹이요, 불편한 이웃이다. 합비공이 장안을 차지하는 것도 문제지만 원소가 장안을 차지하는 것 또한 유쾌하지 않다. 게다가 원소가 동맹인 장제를 돕지 않고 제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장안을 꿀떡 삼켜버렸다는 것은 마등에게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장안의 본래 주인은 장제이고 그곳에 장제를 따르는 자들이 많다. 장제가 마등에게 의탁하게 된 것은 기회가 된다. 동맹의 배반자를 타도하고 원래의 주인에게 장안을 돌려준다는 명분이 가능하다. 물론 이 명분으로 장안을 얻으면 마등 또한 똑같은 배반자가 될 테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이고.
“마등에게 날아든 장제는 동맹을 흔들 나의 어여쁜 파랑새 되리니.”
가후는 주환을 바라보며 입가를 벌렸다.
“어찌 가련한 파랑새를 피안의 조롱(鳥籠)에 가두리오?”
“장제의 일은 알겠습니다. 그런데 장수는 어찌하여 놓아주시는 겁니까?”
가후는 둘둘 말았던 죽간을 다시 펼치며 주환에게서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그건 숙제일세.”
장수는 항병 육천을 다시 거느리고 급히 장안으로 향했다. 연합군의 진중에 갇힌 내내 장안의 소식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양을 잃었으되 장안만은 잃을 수 없었다. 그는 올라 탄 말의 엉덩이를 채찍으로 마구 갈겼다.
급한 장수의 일행이 북으로 향하는데, 반대로 저편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남양으로 오는 무리였다. 무장한 병력 오십 여와 문사 서넛이 말을 타고 오고 있었다. 장수는 그들이 수상쩍어 막아 세웠다.
“누구냐!”
장제의 물음에 우두머리로 보이는 문사가 말에서 내려 깍듯하게 읍을 올렸다.
“합비공의 상장이십니까?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장수는 거짓으로 대답했다.
“그렇다. 누구냐고 물었다.”
문사는 꾸벅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소인, 은왕 전하의 밀명을 받들어 남양의 백각교위를 뵙고 일을 협의하고자 합니다.”
장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은왕……?”
문사는 굽실거렸다.
“예예, 이번 양동작전은 심히 성공적이어서 남양과 장안을 양분하였으니 참으로 쾌재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은밀한 친분을 유지하면서 마등과 유비를 견제하자고 하셨습니다.”
“남양과 장안을 양분하다니?”
“네에? 말씀 드린 그대로입니다. 장합 장군께서 장안을 성공적으로 점령하셨습니다. 혹시 남양까지 아직 소식이 닿지 않았습니까?”
장수의 속이 꿈틀거렸다. 원소가 원병을 남양으로 보내지 않은 까닭이 장안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는가! 장수는 가까스로 표정을 다스렸다. 그는 피를 토할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첫째로 가장 핵심적인 기반이자 유일한 기반이었던 장안이 홀라당 남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 통탄할 노릇이었고, 둘째로 원소와 제갈찬이 짬짜미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통탄할 노릇이었다. 오왕동맹이니 뭐니 실컷 지껄여놓고 시시한 늑대처럼 약자의 등을 노리는 행태가 참으로, 참으로 비열하고 역겹고 통탄스러웠다. 장수는 입술을 악물었다.
“아, 내가 둔하여 미처 소식을 듣지 못하였구먼! 먼 길에 수고가 많네.”
문사는 장수와 그가 거느린 병력을 흘끔거리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원정을 떠나시나보군요. 장군의 무운을 빕죠.”
장수는 차마 그 말에는 넉살좋은 대응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말을 몰아 앞으로 나아갔다. 육천의 병력은 피로와 절망이 짙게 깔린 얼굴로 주장의 뒤를 따랐다. 문사와 그들의 무리는 웃음을 죽이며 완성으로 향했다. 문사는 대동한 또 다른 문사를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둔하여 미처 소식을 듣지 못해? 뻣뻣하게 굳은 얼굴이나 어떻게 하면서 그런 말을 할 것이지!”
“그래도 용케 칼을 뽑지는 않았습니다그려!”
“다 내 연기가 출중한 까닭이 아니겠는가?”
문사는 그렇게 자화자찬하고는 덧붙였다.
“백각교위께서 장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호언장담을 하셨네! 과연 백각이셔. 그럼에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였으니 우리에게 금 열 냥씩을 내린다고 하셨네! 고향에 돌아가 발 뻗고 생때같은 딸내미 입에 기름칠을 하게 되었구먼.”
문사와 오십 여의 병졸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저들이 일찍이 나섰던 완성으로 다시 돌아갔다.
장수는 문사와 일행이 멀어지자 북쪽으로 가던 걸음을 멈추고 급히 말고삐를 서남쪽으로 틀었다. 원소는 겉 푸르고 속 붉은 수박 같은 배반자였으므로 그쪽으로 갈 수는 없었다. 그래도 그의 숙부 장제는 서량의 무위군 출신으로, 한수와는 동향이었으므로 마등만큼은 그를 아주 내치지는 않으리라 여겼다. 게다가 그가 거느린 육천 병력은 마등에게도 요긴할 터였다.
“장군… 원소의 사자를 어째서 죽이지 않으셨습니까?”
“당장의 분을 풀자고 대계를 망칠 수는 없다. 내가 원소의 사자를 죽였다면 가후는 내가 둘 사이의 밀약을 눈치 챘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든 손을 쓰려 할 테지. 일단은 이 일을 묻어두었다가 마등에게 알려 원소를 치도록 종용할 것이다.” 일단은 이 일을 묻어두었다가 마등에게 알려 원소를 치도록 종용할 것이다.”
“그런데 가후는 왜 우리를 놓아주었을까요……?”
“그것이 바로 가후의 사악함이다.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나를 장안으로 보내 장합의 손으로 나를 잡으려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의 계책을 쓰는 것이다. 오왕동맹의 가죽 밑으로 비밀동맹의 손을 뻗쳐놓고 또 다시 원소의 손으로 나를 해치게 함으로써 오왕동맹을 수면에서 뒤흔들려는 수작이다.”
“교활한 자입니다.”
장수가 고삐를 쥔 손에 땀이 진득하게 배어 나왔다.
“우리 쪽에 서있을 때는 더 없이 든든하지만 적으로 맞이하니 이토록 얄궂다.”
그는 서남쪽으로 향하는 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놈의 뜻대로 장안으로 가 원소의 먹잇감이 돼줄 수는 없다. 한중으로 가서 마등에게 의탁한다.”
장수와 육천의 병력은 빠르게 한중으로 향했다.
남양을 점령한 연합군은 더 나아가지 않고 머물렀다. 장안에 나가 있던 서서의 병력도 우선은 남양으로 소환했다. 조조의 상장 하후연과 오환의 답돈이 맞선 전장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유주 전역에 휘몰아친 북적(北狄)의 말발굽은 예상보다도 거칠고 억셌다. 게다가 유비는 여전히 패전의 후유증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원소는 저수에게 병력을 맡겨 우선 낙양을 점령하고 그곳에 주둔하게 했다. 또한 곽원에게는 기병 오천을 맡겨 홍농을 지나 장안의 장합을 돕도록 했다. 조조와 유비가 진창에 빠져있는 동안 원소는 삼보(三輔, 좌풍익·우부풍·경조윤을 한데 일컫는 말로, 후한의 수도권을 뜻한다)를 장악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원소는 장합을 장안태수에, 곽원을 홍농태수에, 저수를 낙양태수에 임명하고 굳건한 방비를 주문했다.
가후는 남양에 주환과 이만의 병력을 남겨두고 합비로 철수했다. 장안으로 진군하는 것은 외통수에 몰릴 염려가 있었다. 방비가 두터워 얻기도 쉽지 않거니와 얻는다 한들 마등과 원소 사이에 끼어 협공을 당하기 십상일 터였다. 더군다나 장안을 점령해도 합비공의 손바닥 위가 아니라 천자의 손바닥 위에 떨어지는 꼴이니 가후로서는 위험을 감수할 까닭이 없었다. 그것에 더해 마등에게 간 장제와 장수가 동맹을 뒤흔들 만한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야만 했다. 대군이 소모하는 병량이 적지 않은지라, 가후는 즉각 철수를 결정하고 합비로 물러났다. 이로써 장제의 세력은 공식적으로 와해되었고, 천자의 직할령은 송경, 강하군, 여남 서부, 남양군으로 확장되었다.
한중으로 퇴각한 장제는 마등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장제 하나의 가치야 하잘 것 없는 늙은 사내의 몸뚱이일 따름이었지만, 그의 패잔병이 제법 짭짤한 숫자였고 더 중요한 것은 원소의 야심을 또렷이 확인하는 동시에 장안을 원소의 품에서 빼앗을 명분을 제공해주었다는 점이었다.
마등은 장제를 객관의 경치 좋은 방에 모시고 조석으로 진수성찬에 계집을 딸려 대접했다. 호강에 젖어 허튼 야심일랑 품지 말라는 뜻이었다.
“제 가문의 명성에 똥칠을 하는 놈이로세. 간악하기 짝이 없군.”
마등의 툴툴거림을 천만이 받았다.
“이것으로 익주의 유장과 병주의 원소 모두 신뢰할 만한 자들이 아닌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거야 원……!”
마등은 원소와 유장, 그리고 합비공 사이에 완벽하게 끼어버린 신세가 되었다. 불안감에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는데, 시종이 안으로 들어 아뢨다.
“량왕 전하! 남양왕의 질자인 장수가 병력 육천을 이끌고 찾아왔습니다!”
마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장수까지 이곳으로 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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