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19
0223 / 0284 ———————————————-
23.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그 당돌한 인사를 받았다.
“말씀은 많이 들었소. 이렇게 보게 되니 반갑소.”
여춘군은 씩씩하게 웃으며 물었다.
“무슨 말씀을 많이 들으셨는지요!”
어… 그게…… 여 태위의 슬하에 사내 같은 계집이 있더라, 치근덕거리는 녀석의 불알을 한 손으로 쥐어 터트려버렸다더라, 황소의 미간을 주먹으로 쳐 절명시켰다더라, 태위 댁 앞마당의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뽑아 뒷마당에 옮겨 심었다더라, 뭐 이런…… 이런 얘기를 면전에서 지껄였다가는 합비공이라도 허리가 꺾여 죽을 것 같아서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태위의 슬하에 참으로 당차고 아리따운 여식이 있다고……”
“하하하, 듣기 좋군요!”
호호호 하면서 웃어주면 안 될까? 그녀 특유의 쇳소리가 당최 적응이 되지 않았다. 여포는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나에게 말했다.
“춘군에게 내 부곡을 맡기고자 합니다. 합비공은 이 아이를 아문장군으로 삼으시어 병력을 이끌게 해주시지요.”
아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데.
“장군으로 말입니까……?”
지금껏 여자가 관직에 올랐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남녀가 공한 신분인 때야 어불성설이지만, 오히려 이때에는 여자가 출사하는 것이 도리어 어불성설이었다. 아무리 태위의 여식이라지만 덜컥 장군 벼슬을 내리는 것은 많은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내가 주저하자 춘군이 걸걸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저도 부공의 후광에 힘입어 출사할 마음은 없습니다! 제가 장군에 오를 만한 실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지요!”
“어, 어떻게 말이오?”
“아문장군은 편장군의 상관이니, 편장군 척기와 진익을 상대하여 이기면 아문장군에 오를 만한 실력이 증명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여인의 몸으로……”
나는 그렇게 말해놓고 큰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춘군의 얼굴이 시뻘게지며 우렁찬 외침이 내당을 흔들었다.
“사람일 뿐! 여인인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포는 징징 울리는 소리에 이마를 짚었다.
“아이고, 골아……”
“아, 그, 그럼 일단……”
나는 부랴부랴 여포의 집을 나서고 가신들을 모아 말했다.
“여 태위께서 미령(靡寧)하신지라, 여식 춘군을 아문장군으로 삼아 부곡을 이끌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말씀하셨소. 제공(諸公)의 의견을 듣겠소.”
춘군의 성질머리를 익히 들어왔던 가신들은 입을 꾹 다문 채 묵묵부답이었다. 침묵이 흐르는 와중에 백각교위 가후가 입을 열었다.
“아무리 태위의 여식이라지만 여인이 관직에 오른 예는 일찍이 없습니다. 기강이 문란해질 염려가 있으니 부디 그 제안을 반려해주시기 바랍니다.”
가후의 말은 당대의 상식이었다. 가후가 먼저 입을 열자 그제야 가신 몇몇이 웅얼거리면서 역성을 들었다. 나는 상황이 재밌어서 히죽 웃으며 대꾸했다.
“무릇 여인이 관직에 오르지 못하는 것은 여인이 사내보다 천한 까닭이오?”
가후가 받아쳤다.
“여인은 길쌈하고 가내(家內)를 점잖게 다스리고 아이를 기르는 것에는 사내보다 낫지만 전장에 나서 적을 힘으로 무너뜨리고 기책으로 적을 속이는 것은 사내만 못합니다. 그렇기에 여인에게 관직을 내리는 것이 가당하지 않습니다.”
“허면 백각께서는 여인이 사내보다 힘이 강하고 책략이 기발하다면 문무 관료로 발탁하여도 이의가 없으시겠소이다?”
가후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짓고 씩 웃었다.
“그렇습니다.”
나는 좌우로 도열한 가신들의 말석에 위치한 편장군 척기와 진익을 바라봤다. 저 양반들도 원술 때부터 종사한 나름 고참 가신들이었는데 워낙 쟁쟁한 자들이 치고 올라오는지라 내내 편장군이었다.
“척기, 진익 공.”
오랜만에 불린 이름에 그들은 벌떡 일어났다.
“넷!”
“춘군과 대련을 하시구려.”
“넷……?”
척기와 진익은 뜬금없이 웃통을 벗어던지고 때 아닌 대련을 하게 되었다. 흐물흐물 늙어가는 사내이건만 오히려 이런 때에 열패감에서 비롯된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지라, 계집에게 질 수 없다며 의욕적으로 달려들었다. 춘군은 호방하게 외쳤다.
“두 분 다 한꺼번에 덤비십시오!”
“그러라면 못 할 줄 알고!”
척기와 진익은 의욕적으로 달려들었다가 춘군의 손날에 목덜미를 얻어맞고 그대로 엎어져 기절해버렸다. 그러자 이를 지켜보던 서성이 앞으로 나섰다.
“여 소저! 실례가 안 된다면 북부사마 서문향이 상대해도 되겠소이까!”
춘군은 자신보다 예닐곱 살은 더 어려보이는 서성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나도 어린 남자가 더 좋습니다.”
“아이……”
뜻밖의 대꾸에 서성이 몸이 배배꼬는 사이, 춘군은 번개처럼 튀어나가 서성의 명치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서성은 가까스로 막아내고 반격을 가하려고 했지만 맥없는 공격만 날렸다.
“지금 계집이라고 봐주시는 겁니까, 북부사마?”
“아, 아무래도……”
춘군은 흥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그녀는 다리를 놀려 서성의 정강이를 걷어차고, 서성이 주춤하는 사이에 팔꿈치로 서성의 명치를 가격했다. 부랴부랴 서성이 제대로 상대하려고 했지만 이미 승기를 잡은 춘군이 더욱 매몰차게 몰아붙여, 마침내 서성의 항복을 받아냈다.
“내가 졌습니다, 내가 졌습니다!”
춘군은 당당하게 웃으면서 가후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이래도 여인에게 관직을 내리는 것이 가당하지 않습니까! 백각 어른!”
“그, 그걸 어떻게 소저가 알고……”
가후는 당황하여 내 쪽을 바라봤다. 나는 딴청을 피우며 휘파람을 휘휘 불었다. 가후는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춘군에게는 헤실헤실 웃었다.
“이 가문화도 이의가 없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나 선포했다.
“여춘군을 아문장군에 임명하고 태위의 부곡을 이끌도록 하겠다. 모두 이의 없으리라 생각하오.”
뭇 가신들은 내 결정에 찬동했다. 나는 춘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문장군께서는 모쪼록 소임을 잘 해내주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고막을 찢을 듯한 소리에 나를 비롯한 좌중은 본능적으로 귀를 막았다.
나는 염상과 왕수를 합비에 남겨두고 양양으로 이동했다. 제법 장대한 행렬이었다. 기실 내가 합비공에 머무르고 있기는 하지만 일국의 천자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 임시 천도행렬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합비에서 양양까지는 북쪽의 가도를 따라가면 금세였지만, 나는 부러 합비와 여강을 경유하여, 양주 남부인 파양과 예장을 지나 송경에 이르러 천자를 알현하고 다시 남쪽으로 가닥을 잡아 무릉과 장사를 방문한 후에 양양에 이르는 여정을 택했다. 이는 합비공의 성대한 행렬을 과시함으로써 백성들에게 그들을 통치하는 이가 누구인지 명명백백히 인식시키기 위하는 까닭이었고, 나 또한 백성들의 삶을 가까이 바라보며 그들을 위한 정치를 구상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여강의 환성에 이르렀다. 시영은 환성의 나무를 깎아 만든 인형을 인편을 통해 교에게 선물했다. 환성이 고향인 교를 생각한 일이었다.
“석반(夕飯)을 들기 전에, 전임 여강태수 유훈의 묘역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소. 부인도 가시려오?”
내가 묻자 시영은 쌀쌀맞게 받아쳤다.
“어째서 그런 무뢰배의 묘역을 찾아가시는 겁니까?”
“내막이야 추하여도 정치를 괜찮게 하여 여강 백성들의 신망이 두텁소.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돌봐주는 것이 필요하오.”
“저까지 그런 계산적인 행보에 동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나는 짧게 숨을 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이오.”
결국 나와 대장군부의 요인들만 유훈의 묘역에 방문했고, 시영은 단독으로 교교의 언니이자 유훈의 첩실이었던 교 부인의 묘역으로 가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여강을 떠나 파양과 예장에 들렀다. 아버지가 내내 예장태수로 있던 곳이었기에, 아버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지역이었다. 그 핏줄이라는 덕택으로 인심이 나에게 우호적이었다. 거대한 호수를 끼고 있기 때문에 농업용수가 넉넉하여 대대적인 개간사업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여기에 합비 중앙에서 상당한 재물을 이 지역에 투입하고 있었기에 나는 한껏 대접받고 확고한 지지를 확인한 후에 이 지역을 뜰 수 있었다.
“인기가 대단하시네요, 합비공.”
시영은 나와 같은 마차를 타고 가면서 내 옆구리를 콕 찔렀다.
“전쟁이 없는 지역이니 그렇겠지.”
서투른 도적이나 어설프게 칼을 쥐다가 흠씬 몰매를 얻어맞고 기어들어갈 뿐인 지역이다. 이런 곳이야 합비공이 주군이든 유현덕이 주인이든 무슨 관계랴. 같은 이치로 극심한 공방전이 벌어지는 격전지의 백성이야 합비공이든 유현덕이든 처절하고 참혹한 삶을 누리는 것은 매한가지일 뿐이다.
파양과 예장을 지나고 송경의 궁중으로 나아가 천자를 알현했다. 천자는 태부 공융을 송경 남쪽 오십 리까지 보내 나를 영접하게 했다. 둘 사이의 밀월이 한창 무르익었다.
“태부, 오랜만에 뵙습니다.”
내가 먼저 알은체를 하자 공융이 껄껄 웃었다.
“이제는 어엿한 웅걸이 되셨으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낭야의 하룻강아지로 굴러먹었을 적부터 나와 인연을 맺어왔으니. 나는 부끄럽게 웃으며 화답했다.
“태부께서는 내내 건강하신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자, 천자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궁중으로 드시지요.”
천자의 대전으로 나아가 유총의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
“천추만세, 만세, 만만세.”
유총은 나를 보고 씩 웃으며 받아쳤다.
“합비공, 천세, 천세, 천천세요.”
“망극하옵니다.”
유총은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
“자, 가까이 오시오. 술 한 잔 대접하고 싶소.”
내가 따르자, 유총은 술을 한가득 따르며 웃었다.
“경이 전폭적으로 도와준 덕분에 여남의 이통을 나의 충신으로 삼고 남양을 얻을 수 있었소. 경은 참으로 짐의 홍복이구려.”
“마땅히 신하로서 해야할 일을 했을 뿐, 과찬이 듣기 부끄럽습니다.”
그는 나에게 잔을 권하고 한 번에 죽 들이켰다.
“경이 지난번에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찌나 가슴이 철렁하던지…… 참으로 가슴앓이를 하였소.”
구라 치고 있네. 왜 안 죽었어! 쩌렁쩌렁 외치며 잔을 내던졌다고 서성이 다 일러바쳤다. 내가 불온한 눈빛을 보내자 유총은 헛기침을 험험 하며 다른 곳을 바라봤다.
“자자, 오랜만에 봤는데 술이나 진탕 들도록 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