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20
0224 / 0284 ———————————————-
23.
나는 천자와 더불어 오래 술을 마시고 대취하여 그와 함께 대전에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코를 골았다. 궁중의 시비들은 대전의 찬 바닥에서 천자를 주무시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천자의 깊은 잠을 깨우지도 못하여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야근을 빙자하여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낙준이 들어와 못 살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발만 동동 구르는 시비에게 말했다.
“그냥 두어라. 천자의 침소나 비단금침을 들인 객관보다 찬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게 편하신 분들이니.”
낙준은 그렇게 말하고 혀를 끌끌 차며 퇴청했다.
날이 밝고 천자와 함께 맑게 끓인 생선쑥국으로 해정했다. 장강에서 잡히는 월척을 노란 생선기름이 오를 정도로 푹 곤 뒤에, 살코기만 건져낸 후에 뼈와 대가리만 남겨 다시 팔팔 끓인 진국이었다. 다시 뼈와 대가리는 건져내고, 살코기는 잘게 부숴 넣고 연한 해쑥을 마지막에 푸지게 넣어 내왔다. 찬 바닥에 자서 입이 비뚤어진 데다가 감기기운까지 느껴져 기분이 최악이었는데, 입술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로 진하고 뜨끈한 국물을 속으로 들여보내니 몸이 오소소 떨리며 해갈과 해장과 감기의 치유가 동시에 이뤄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짧게 숨을 토하니, 국물의 온기로 약간의 입김이 뿜어졌다.
“어어― 이제야 엇갈린 턱이 제대로 움직이는구먼.”
천자도 절로 탄성을 내지르며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절대 동감입니다, 황상.”
나는 건성으로 맞장구를 치고 고슬고슬 지어진 쌀밥을 국물에 말아 훌훌 떠먹었다. 고소한 국물에 풀어진 쌀알들이 재밌게 씹히며 내 허한 궁기를 족하게 채워주었다.
“경은 국물을 참 잘 드시는군. 쑥국을 좋아하시오?”
천자가 나를 건너다보다가 그렇게 말하자, 나는 민망하게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대꾸했다.
“좋아하는 편이긴 합니다만, 작야(昨夜)에 술을 많이 부운지라……”
“올해 해쑥이 잘 나왔으니 양양으로 가는 길에 지참하구려. 짐이 잘 말해놓겠소.”
천자가 공후에게 무슨 쑥을 선물로 줘? 나는 터무니없는 선물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비단이나 금은을 받는 것보다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의 마음이 담긴 쑥이라면 앞으로 해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천자도 비죽비죽 웃었다.
“올해 양양의 송이가 향긋하다고 하던데, 모쪼록 양양에 닿으면 좀 나눠주고.”
여기 양양도 송이가 유명한가. 나는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그러마했다.
갈 길이 바빠 쑥국을 그릇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곧장 송경을 떠났다. 정말 천자는 송경의 쑥은 죄다 뽑아 나한테 안겨주었는지, 무릉으로 향하는 행렬에 쑥의 향긋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나와 나란히 자리한 량이가 헛웃음을 지었다.
“웬 쑥입니까?”
나는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천자의 사랑.”
무릉에는 예주자사에서 형주도독으로 옮긴 장료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만일 촉군이 몰려온다면 이곳을 지나쳐야만 하기에, 단단한 방비를 주문해둔 터였다. 장료는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마중행렬을 보내지 않았다. 사전에 그가 양해를 구하길, 의전을 지나치게 생각하면 피로한 병력이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방비에 차질이 빚어질까 염려된다며 먼 곳으로 마중 나가지 못하는 불충을 양해하라고 하였다. 나는 사려 깊은 불충을 기꺼이 수용했다.
내가 무릉의 성내로 들어서서야 겨우 장료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전시가 아님에도 무장을 하고 있었다. 군의 수장부터 항시 무장한 채로 있으니 병력이 긴장을 늦출 겨를이 없을 터였다. 병력들의 눈에 결기가 서려 있으니, 이것만 봐도 군기가 엄정함을 족히 느낄 수 있었다. 참 이렇게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 좋았더라 하니까 훈련소에서 직각식사니 뭐니 지랄 똥을 싸나보다.
“합비공을 뵙습니다!”
장료와 학맹이 나를 보고 척 군례를 올렸다. 나도 그것에 답례를 올렸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합비로 불러들여 중앙의 내직을 맡기지 못하여 군을 고생시켰습니다.”
장료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밖이 편한 성정이올시다. 괘념치 마십시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코를 쓱 닦으며 물었다.
“혹시 전직하셨습니까?”
“뭐라고요?”
그는 내 뒤로 딸려 들어오는 거대한 쑥의 행렬을 바라봤다.
“쑥 장사를 하시나 해서요.”
“한 근에 닷 냥인데, 살래요?”
쑥이 너무 많아 처치곤란인지라 그날 밤 전 병력에 쑥 잔치가 벌여졌다. 나도 장료와 함께 쑥을 잔뜩 넣고 부쳐낸 향긋한 부침개에 탁주 두어 잔을 걸치면서 밤을 보내다가 원 부인과 각방 썼다.
장료가 군을 대대적으로 사열하여 한번 군기를 점검하시라 제안했지만, 병사의 고충을 아는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꽉 잡혀있는 군기를 구태여 재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무릉에서 더 볼일이 없어져 그만 장사로 떠나려는데, 장료가 나를 붙들었다.
“기실 이곳 무릉 일대에는 만족(蠻族)이 극성을 부립니다. 소장이 병부를 지니고는 있으나 그것은 다만 촉군을 막기 위함이지 무릉만에 대한 것은 아닌 터라 적극적인 토벌은 감행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을 유화책으로써 끌어들일 것인지, 아니면 대대적으로 섬멸할지 방침을 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이곳 무릉은 이민족이 들끓는 지방이었다. 본래의 역사에서 유비가 손권에게 복수전을 감행했다가 도리어 대패하고 마는 이릉대전(夷陵大戰)이 벌어지는데, 무릉만은 이민족에 유화적이었던 유비에게 가담하여 운명을 함께하고 만다.
생각보다도 이 무릉만은 연원이 깊고 중원과 악연이 등나무처럼 얽혔는데, 한나라 무제 때 숱한 원정군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끝내 패배했고 노익장으로 유명한 마원(馬援) 역시 무릉만을 끝내 토벌하지 못하고 진중에서 병사하고 마니 쉽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그토록 강인한 족속이었다.
강인하기로 따지자면 장료 역시 그들 못지않았으나, 촉이라는 적을 두고 있는 터에 구태여 그들과 아웅다웅할 까닭은 없었다.
“무릉만에 사자를 보내어 그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협의를 해봐야겠습니다.”
이미 산월과 성공적으로 맹을 체결한 전례가 있다. 무릉만은 산월보다도 규모가 작은 세력, 그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으니 내가 광포한 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 터다.
“저는 칼 쓰는 쪽을 좋아하지만, 합비공께서는……”
장료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합비공께서는 무조건 화평이시니까.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는 나의 명령대로 사자를 무릉만에게 보내 작록을 내릴 것을 약속하고, 훗날 촉군과의 전쟁에 동참한다면 넓은 땅과 재물을 하사하겠노라 뜻을 밝혔다.
사자가 떠난 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조바심이 슬슬 생기기 시작했다. 이 무지막지한 오랑캐 놈들이 답신은커녕 사자도 돌려보내지 않는 건가? 만일 그렇다면 화평이고 나발이고 바로 전쟁이다. 물경 보름이 지나도 깜깜무소식이자, 장료는 나의 지침이 없이도 알아서 칼을 갈고 군영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명령만 내리시면 즉각 출병하겠습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으음, 신음을 흘렸다. 험준한 산악지형에 의지한 그들은 저 유명한 복파장군 마원도 물을 먹은 강적이다. 아무래도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을 텐데……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꼭 스무 날 되는 때에, 저 멀리서 한 떼의 병사들이 보였다. 그들은 백기를 꽂은 채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선두에 선 사자는 잔뜩 위축된 표정이었고, 그와 나란히 오고 있는 자는 사람보다는 야수에 가까운 덩치의 소유자였다.
“성문을 개방하라.”
나의 명령에 무릉성의 성문이 열리고, 나의 사자와 무릉만의 야수가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합비공의 체면이라는 게 있으니 나는 성부에서 대기하고, 장료가 무릉만의 야수를 맞이했다. 성부로 들어가면서 흘끗 바라봤는데, 건장한 편인 장료보다도 머리가 한 개 반은 더 컸다. 어깨는 넓고 넓어서 천자가 준 쑥을 한꺼번에 올려놓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무릉만의 우두머리, 사마가(沙摩柯)가 합비공을 뵙소이다!”
춘군 하고 누가 누가 시끄럽나 대결을 붙이고 싶을 정도로 사마가의 성량도 대단했다. 우락부락한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리가 나를 압도했다. 그는 젊은 축에 속했는데, 눈이 불그스름하고 머리는 풀어헤쳤으며 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한 몸은 탄탄한 근육질이었다.
“오우.”
춘군은 저도 모르게 끈적한 눈빛을 사마가에게 보냈다. 그래, 차라리 둘이 결혼해라. 혼수는 섭섭하지 않게 해줄게. 부부싸움은 제발 성 밖으로 가서 하고. 소음공해가 어마어마할 테니까.
“합비공 제갈견조가 무릉만의 사마 공을 뵙소.”
내가 말하자 사마가가 고개를 저었다.
“성이 사! 이름이 마가!”
아, 사마의 할 때 사마씨가 아니었어?
“아, 미안하오, 사 공.”
“합비공께서 작록과 영토, 재물을 약속하여 이렇듯 뵈러 왔소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나는 천자께 주청하여 그대에게 현후의 작위를 내리고 무릉 서쪽 남북 백오십 리를 영토로 삼게 하며, 비단 일만 필과 쌀 오만 섬을 주겠소. 또한 훗날 사사로이 촉왕을 사칭하는 이를 징벌하면 그들의 땅과 재물을 그대와 나누어 가질 것이오. 대신 무릉만은 대장군부의 군령을 준수하고 나의 비호 하에 있는 백성들을 결단코 해쳐서는 아니 될 것이오.”
사마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 또한 합비공에 대적하는 일은 두려운 일이올시다.”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니 반목할 까닭이 없소.”
“이렇듯 많은 은전을 내려주시니, 합비공께서 우리의 소용이 있을 때 불러주신다면 목숨을 내던져 협조하겠소이다.”
나는 몸을 일으켜 그를 향해 읍했다.
“무릉만의 의리를 믿겠소이다.”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무릉만의 사마가와 화호를 맺고 나는 무릉을 떴다. 이후 장료의 전언에 의하면, 뒤늦게 무릉만에 사자를 보내 협조를 요구한 촉왕의 사자를 사마가가 직접 나무 방망이로 후려 죽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 참혹한 주검을 이쪽에 보내 의리를 증명했다나 뭐라나.
장사를 방문해서는 태수 장선을 만나 그의 충성을 다시 확인했다. 무릉, 계양, 영릉 등 여타 형남의 군들은 나의 친위인사가 장관으로 부임했으나 장사만큼은 토호인 장선이 태수로 있었다. 그는 제법 영리한 축에 속해서, 이런 나의 어쩔 수 없는 불안감을 잘 알고 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시시콜콜한 정보까지 모두 아뢰며 자신에게는 어떠한 야심도 없음을 알렸다. 이것에 대해 신임의 표시를 줄 필요가 있었기에 그에게 정후(亭侯, 현후의 아래 작위)의 작위를 내리고 재물을 다소간 쥐여 주어 위로했다.
그리고 마침내 강릉을 경유하여 양양에 도착했다. 이렇게만 말하면 7번국도 타고 여행이나 간 줄 알겠다. 양양에 도착하자 노숙이 나를 반겼다. 나는 그를 보고 실실 웃으며 농을 건넸다.
“얼굴이 퍽 상했구려. 좨주로 있으면서 내 뒷수쇄나 하던 시절이 좋았지요?”
노숙은 한사코 지지 않으려고 내 농을 받아쳤다.
“아뇨, 지금이 더 좋은데요.”
“흥.”
나는 그를 째려보고 말고삐를 달그닥 훅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노숙도 편한 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따라 들어갔다. 그는 나와 보조를 맞추면서 내게 귀띔했다.
“합비공께서 긴 여정을 고집하시는 덕택에 누구는 달포가 넘게 합비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를 기다린다고요?”
“환영의 연회를 열어야 옳은 도리이겠지만, 우선 먼저 그를 접견하고 연회를 즐기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