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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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탕거로 보낸 별동의 선봉은 함몰되었고, 적을 휩쓸기 위해 지었던 제방은 도리어 아군의 독이 되어 본대의 선봉 일만을 궤멸시켰다. 이만 개의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구만 개의 목숨은 절망했다. 여름날이라 낮은 덥고 습했다. 또 하나의 둑처럼 쌓인 주검들을 우선 수습하는 것이 중요했다. 주검이 썩으면서 전염병을 퍼트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물에 슬슬 불어가는 주검을 한 데 모으고 불을 놓았다. 단백질이 소각되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병사들은 칠팔천 여 구(具)의 시체가 이루는 화염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슬픔인가, 낙담인가.
“사기가 바닥입니다. 이대로 무리하게 공세를 가하는 것은 도리어 우리에게 해롭습니다.”
량이가 와서 조언했다. 그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허면 어찌한단 말인가. 고작 오천이 지키는 관문 하나를 넘지 못하고 도망을 놔야 하는가? 목숨 이만 개만 이렇게 내버려두고? 내 눈을 보고 생각을 읽은 량이는 고개를 저었다.
“물러날 수는 없죠. 지금 대개의 사졸들은 낙담하고 있습니다만, 비록 적은 수이나 나머지 사졸들은 퍽 다른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그의 눈을 응시했다.
“무슨.”
“결의입니다. 결의입니다, 형님. 그들은 진창에서 환호하는 자입니다. 별종들이지요.”
량이의 말뜻을 어느 정도 짐작했다.
“그 결의로 산을 넘자는 말이냐.”
“맞습니다.”
“험준한 산세가 숱한 제물을 원할 거다.”
“그러겠지요. 그래서 지금까지 정공법으로 일관한 것 아닙니까. 제방을 쌓은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제 이런 방법들로는 백수를 넘을 수 없습니다. 목숨이 숱하게 상할지언정 산을 넘어 백수의 후방을 쳐 적을 궤멸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수를 넘지 못합니다.”
“병력은 얼마가 온당하겠니.”
“칠천이면 되겠습니다.”
“많이 죽겠군. 작전이 성공하면 추후 전사자의 신원을 모두 확인하도록 해. 죽을 줄 알고 가는 자들에게는 그 만한 보상이 가당하다.”
“그리하겠습니다.”
“군의 수장으로는 누가 적합할까.”
그 물음에 량이는 뒤를 돌아봤다. 나도 자연히 그쪽을 봤다. 떳떳한 덩치가 막사의 그림자로 비치더니, 막사를 젖히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내게 군례를 올렸다.
“소장 문빙에게 앙갚음의 기회를.”
“적의 수공으로 인한 상처가 아직……”
내가 우려스러운 표정을 짓자 문빙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상처는 도리어 전의의 동력입니다.”
나는 문빙의 생채기가 주름처럼 덮인 그의 손을 붙잡았다.
“한 번만 더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문빙은 고개를 끄덕였다.
“존명.”
문빙의 지휘를 받아 험산을 넘을 병력을 사열시켰다. 여전히 퀭한 눈의 사졸들은 진지의 중앙에 사열한 자들을 퀭한 눈으로 봤다. 나는 높지 않은, 그들과 시선이 닿는 곳에 서서 말했다.
“그대들은 참으로 별종들이다.”
듣는 별종들 몇몇이 시시하게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좌절하지 않고 도리어 꿋꿋하니, 참으로 별종들이다.”
화장한 사졸들의 뼛가루가 공중에서 날렸다. 콧속을 파고드는 미세한 입자에 나는 가벼운 기침을 했다.
“그대들은 별종인 까닭으로 위험한 임무를 떠안게 되었다. 속으로 나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이미 발을 들였다. 들어올 때는 그대들의 자원으로 발을 들였지만 나갈 때는 그대들 마음이 아닌 것이다. 그토록 나는 급하다.”
시시한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개중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나가라고 하셔도 나가지 않겠습니다!”
호기로운 외침에 웃음은 더 이상 시시하지 않고 쾌활했다. 나 또한 저절로 웃었다.
“고맙다. 그대들은 산을 넘어 적의 뒤를 칠 것이다. 그대들의 손으로 백수관의 문을 딸 것이다.”
나는 뼛가루를 들이마시며 말했다.
“그대들은 부디 죽지 말았으면 좋겠다. 목숨을 아끼면서 싸워라.”
“물론입니다! 북해국 탕녀 이야기의 결말을 못 듣고는 못 죽습니다!”
좌중이 폭소했다.
“좋아, 다녀오면 꼭 이야기의 끝까지 들려줄 터다.”
금은과 비단이 아니라 이야기의 끝을 보상으로 내걸어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나는 줄 맞춰 선 그들 칠천 명 하나하나에게 다가가 손을 건네고 잡고 흔들었다. 악수가 보편적인 예법이 아닌 시절이기도 하였고 비천한 주제로 존귀한 자와 접촉하는 것이 면구스러운 듯 그들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용맹히 산을 넘고 적을 베겠다는 그들이 정녕 존귀하였고 나는 정녕 비천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감히 악수를 청했다. 그들은 어깨를 움츠리면서 손가락 끝으로 내 손을 스치듯 악수했는데, 나는 그들의 손을 꽉 붙들었다.
“이름은?”
“동순입니다.”
“동순 공, 무운을 빌겠소.”
일렬의 일오에 있던 동순은 주군의 호명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게다가 아무개 공(公)이라니. 그들은 진정으로 벅찬 표정이었다. 이름과 존칭만으로 감동하는 자들에게 씩씩함과 무운이 따를진저. 이렬 일오의 병졸은 눈치껏 먼저 이름을 밝혔다.
“하창입니다!”
나는 씩 웃으면서 잡은 손을 흔들었다.
“하창 공, 무운을.”
칠천 인과 일일이 악수하는 것은 생각보다 고되었지만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저들보다 고되지는 않을 터였다. 나는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모두에게 악수를 건네고 무운을 빌었다.
“고승입니다!”
“고승 공, 무운을 비오.”
“고덕입니다! 고승의 아우입니다!”
“고승, 고덕 형제에게 무운을.”
“사칠입니다!”
“사칠 공, 잘 싸우시오.”
“정분입니다!”
“정분 공, 성히 돌아오시오.”
“무택입니다!”
“무택 공, 무운을 비오.”
그렇게 중간쯤 가니 손이 저릿저릿하고 쑤셨는데, 나는 누구처럼 등 뒤로 손을 숨기지 않고 끝까지 갔다. 사열한 용사들의 마지막 줄에 이르러 얼굴을 살피는데, 나는 당혹한 표정으로 멈칫했다.
“…나서기에는 너의 나이가 너무나도 적지 않느냐.”
내가 단도를 건네주었던 소년병이었다. 두렵다고 말하던 소년병이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일전의 두려움은 사그라지고 씩씩한 눈빛이 맑게 빛났다.
“합비공께서 보여주신 은혜에 티끌만큼이라도 보답하고자 합니다! 싸움은 몸이 아니라 용맹으로 하는 것이니, 나이가 많고 적음은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그에게 단도를 내렸던 것은 진정 잘한 일이던가. 전국시대의 장군 오기(吳起)는 병사의 고름을 자신의 입으로 빨아주었다. 그 병사는 감복하여 앞장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아들 또한 전장에 자원하였으니 오기의 자애로움은 얼마나 교활한가. 나는 이 오기의 자애로운 교활함을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를 전장에서 배제할 수는 없었다. 나는 입술을 악물며 손을 내밀었다. 소년병은 떳떳하게 내 손을 잡았다.
“이름은?”
“등애(鄧艾)입니다!”
“…그래 등애, 꼭, 꼭 살아돌아올지니……”
나는 그 옆으로 이동하면서도 내내 등애라고 자신을 일컬은 소년병을 마음에 두었다. 이 시점에서도 한참 훗날의 일이 되는 역사를 생각했다. 종회와 등애라는 장군이 공동으로 사령관이 되어 위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끝내 촉을 멸망시키는데, 설마 이 소년병이 그 등애이려나…… 등씨는 제법 흔한 성이었고 애도 아주 드문 이름은 아니니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나는 곁눈질로 소년의 얼굴을 두 번, 세 번 살폈다.
“호책입니다!”
쩌렁쩌렁한 병사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어, 어… 호책 공, 무운을……”
나는 내내 알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마음으로 그들을 전송했다. 문빙을 비롯한 칠천의 병력은 가볍게 무장한 채로 안개를 허리에 걸친 험산을 등반했다.
문빙은 선두에 서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못을 박고, 튼튼하게 엮은 밧줄을 내려서 하나 둘 양 팔에 온몸을 맡긴 채로 산을 올랐다. 힘 좋은 문빙의 수염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등반은 고되었다. 팔이 약하고 몸이 무거운 서넛이 벌써 떨어져 머리가 으깨졌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죽으려면 혼자 죽어! 애꿎은 네 친구들까지 떨어뜨리지 말고!”
“악!”
별동이 산을 오르자마자 합비공의 본진은 일제히 출격명령을 내렸다. 적의 주의를 끌어 무사히 별동을 백수의 뒤쪽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포석이었다. 황충이 이끄는 공성군은 진지를 가로막은 강물 위에 널빤지를 깔고 나아갔다. 성벽에 사다리를 걸고 맹렬히 덤벼들었다. 한 번의 승전으로 기세가 오른 백수관은 용기백배하여 적극적으로 응전했다. 등애 역시 얇은 팔뚝으로 필사의 힘을 다해 대열의 꽁무니에서 산을 올랐다.
“놈들이 너무 심하게 달려드는데.”
성루에서 전황을 관망하던 사마의는 입술을 비틀었다. 한번 기세가 꺾인 적병들이 이렇듯 사나울 수가 없었다. 멧돼지 같은 무장이라면 모르겠지만 전략의 일단을 깨친 장수라면 전열을 가다듬고 차근차근 싸움을 걸어오는 것이 상식, 적장 제갈찬은 숱한 전장에서 승리한 인물이며 적어도 섣부르지는 않았다. 이렇듯 죽자 살자 덤비는 것은 분명히 시선을 이끌려는 수작이었다. 사마의는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사방을 살폈다. 사마의에게는 특이한 신체적 특징이 있었는데, 그것은 몸을 틀지 않고도 바로 뒤에까지 목만 돌려 바라볼 수 있는 것이었다. 개와 늑대와 같은 목이라 하여 이른바 낭고(狼顧)의 상(相)이라고 했다. 그는 유연한 목으로 주위를 죽 둘러보았다. 그러다 동쪽의 산지에 눈이 머물렀다.
“…에이, 설마.”
에이, 설마였지만 사마의는 불편을 느꼈다. 그는 도호 부금을 찾아갔다.
“도호, 혹시 산 좀 타십니까?”
“음? 요즘 살이 쪄서 등산을 해보려고 하긴 하는데…… 내가 지금은 이렇게 살이 쪄서 그렇지 약관 무렵에는 아주 날렵해서 동네 처녀들이 나만 보면 막 안기려고 하고 어떻게든 한번 얽혀보려……”
장광설로 이어지려는 부금의 입을 사마의가 막았다.
“아, 네, 그렇군요.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듣도록 하고요, 병사들 일천 정도만 이끌고 산기슭까지 올라가주셨으면 합니다.”
“으응? 그렇지 않아도 적을 막기에 태부족인데 뭐 하러 산기슭에……”
“적습이 우려됩니다.”
부금은 눈을 깜빡이다가 말도 안 되는 높이의 바위산을 바라보고 사마의의 어깨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자네, 이제 보니 농담도 잘하는구먼? 귀여운 구석이 있어! 다시 봤네.”
사마의는 정색했다.
“농담 아닙니다.”
머쓱해진 부금은 뒤통수를 긁으며 웃었다.
“아, 농담 아니야……? 그래, 내 다녀옴세……”
부금은 계속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산기슭으로 나아갔다.
문빙은 맨 먼저 정상에 올랐다. 그는 힘에 부친 휘하들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정상까지 오르는 와중에 병력 일천이 죽었다. 그들은 일부러 그들의 죽음을 얘기하지 않았다. 문빙은 더욱 그들을 윽박질렀다.
“일각(一刻, 15분)만 쉬고 간다.”
가혹하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악에 받친 병사들은 소리를 질렀다.
“넷!”
“놈들이 눈치 채기 전에 산을 내려가 적을 격멸한다!”
“넷!”
험한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더욱 어려웠다. 진을 이뤄 하산하면 한 사람의 실족으로 여럿이 상할 수 있었고, 진을 이룰 여력도 없었기에 어지러운 대형으로 하산을 개시했다. 대열의 가장자리에 있던 이들은 이따금 저 아래로 굴러떨어졌으며, 발을 잘못 디뎌 발목이 박살난 치들은 그 산에 낙오시켰다. 승전 후에 반드시 다시 거두러 오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들이 험한 산지에서 살아남은 뒤의 이야기였다.
“따라올 만한가!”
문빙은 헉헉거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대열을 이탈하지 않으려 하는 등애의 어깨를 잡았다. 등애는 절규하듯 외쳤다.
“따라올 만합니다!”
문빙은 씩 웃었다.
“훌륭하다.”
등애는 그를 올려다보며 헤헤 웃었다.
“장군님도 훌륭하십니다!”
문빙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젖히며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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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애(?~264)
자는 사재, 형주 남양 출신. 귀한 신분은 아니로, 농부로 있다가 마부의 일도 했다. 말을 심하게 더듬어 겨우 하급관리가 되었다. 후에 사마의의 눈에 띄어 중앙에 등용되었다. 등애는 사마의에게 진언하여 대오전선에 대운하를 건설하여 수해를 방지하고 물자와 식량을 확보하도록 했다. 이후 대촉전선에 배치되어 강유의 일곱 차례에 걸친 북벌을 제어해냈다. 위를 정벌하는 원정군에 종회와 함께 주역을 맡아 남진했다. 그는 험준한 검각을 등반하여 적의 허를 찔렀고, 마침내 촉을 멸망시키는 데 가장 커다란 공을 세웠다. 그러나 종회의 모함을 받아 압송되었는데, 그러던 중 누명을 벗었으나 원한을 가진 위관에 의해 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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