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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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전풍이 악전고투했으나 손가락으로 해일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천하가 하내를 주목했다. 합비공에게 한 방 크게 얻어맞고 제 고향에 찌그러져있던 마등도 다시 장안을 기웃거리기 시작했고, 송경의 천자 역시 절치부심하며 권토중래를 꾀했다. 오환과의 화의를 성공적으로 체결한 조조 역시 슬슬 병주를 두드릴 준비를 했다. 은과 손을 잡고 한중을 압박하려던 촉은 결국은 자강불식(自强不息)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은을 천하 제후의 먹이로 전락시킬 것이냐, 아니면 전통명문의 자존심을 지켜낼 것이냐. 전풍의 머리와 손발에 달렸다.
이렇게 천하가 은나라에 저마다 숟가락을 올리고 있는데 명실 공히 천하의 패업에 근접한 나라고 발을 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유비가 손건을 하내에 파견해서 공작을 시도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후, 오군으로 가서 형님 제갈근과 만나려던 일정을 취소했다. 곧장 합비로 돌아와 백각을 소집하여 향후 대응을 의논했으며, 청금의 전력 대부분을 은나라에게로 향했다. 청금교위 유엽은 무한 야근에 돌입했다. 딱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원씨를 중심으로 일대 격변이 벌어질 가능성이 점차로 농후해졌다.
유비는 손건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입맛을 쩝 다셨다. 손건은 면목이 없어 머리를 조아렸다.
“참으로 송구하옵니다, 전하. 신이 전하의 기대를 끝내 저버렸나이다……”
손건의 뒤통수를 멀거니 바라보던 유비는 픽 웃음의 시동을 걸다가 하늘을 보고 으하하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왕좌에서 내려와 손건의 어깨를 붙들고 친히 일으켰다.
“아이구, 참으로 못나셨소, 참으로 못나셨소, 공우(公祐, 손건의 字)!”
손건은 고개를 숙였다. 유비는 웃겨 죽겠다는 듯 폭소하며 손건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기대를 저버리긴 뭘 저버려! 참으로 못난 소리를 하시는군. 세작의 보고에 따르면 그대의 혀끝이 하내의 은왕부를 제대로 휘저어놨다던데? 이 사람, 다 잘해놓고 여기 와서는 왜 못난 소리를 주절거리는 건지, 원.”
유비는 쿡쿡 남은 웃음을 마저 웃으면서 시종에게 손짓을 했다. 시종이 쪼르르 다가가 머리를 숙이자 유비가 손건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명령했다.
“공우가 참으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냈으니 어찌 상찬하지 않겠는가? 손공우에게 금 백 냥을 하사하도록 하라! 그럴 가치가 있어!”
“명을 받잡겠습니다, 전하.”
유비는 손건의 등을 몇 번 더 토닥이곤 다시 왕좌로 돌아갔다. 그는 손건이 전한 광록대부 종요의 말을 천천히 곱씹다가 픽 웃었다.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으면 뭐가 어쩌고 어째? 주면 그냥 받을 것이지.”
유비 역시 원상과 전풍이 원담을 곱게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팔략의 하나라는 전풍이 넙죽 제 입으로 들어오는 칼을 삼킬 리가 없잖은가. 오히려 대장군 고간이 전폭적으로 호응해준 것이 유비는 만족스러웠다. 고씨의 권욕이 상상 이상이로구먼. 유비는 방통에게 눈짓을 했다. 방통은 그 뜻을 짐작하고 원담을 찾아가 면담했다. 말이야 뻔했다. 은왕 원상이 원자를 송환해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특히 전풍의 일파는 거품을 물었다더이다. 대장군 고간만이 눈물을 흘리며 원자의 송환을 주장하였는데 은왕과 전풍의 매정함에 공허해졌다더이다. 인간으로서, 혈육으로서 어찌 이럴 수가 있답니까? 원담은 분개하고, 술을 찾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대취하여 소리를 꽥꽥 지르더이다. 방통의 보고에 유비도 꽥꽥 웃었다.
원상은 울적한 마음으로 왕궁의 후원을 거닐었다. 한여름의 더위가 그의 속을 갑갑하도록 했다. 습기 찬 공기는 원상으로 하여금 시원하게 한숨 한번 뿜어보지도 못하게 했다. 나는 이토록 못났단 말인가. 나를 도사리는 정적의 눈빛에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벽력같은 꾸지람에 더욱 벽력같은 꾸지람으로 대응하지 못하는가.
전풍은 팔짱을 낀 채 원상의 못난 걸음을 관조하다가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전하, 하내공(河內公)을 전하의 쪽으로 끌어들이셔야 합니다.”
하내공은 원소의 차남이자 원담의 아우이자 원상의 형인 원희의 봉작이었다. 그는 과거 항장 장막과 진궁을 거느리고 예주를 도모하려 당시 원술의 장수였던 제갈찬과 맞붙었다가 급작스레 개입한 유비의 병마로 인해 아무런 전공도 올리지 못하고 퇴각했던 전력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총애를 받지 못하는, 원소의 유일하게 ‘안 아픈’ 손가락이었던 원희는 그 처참한 전과로 아예 버려지다시피 했다. 그도 자신의 주제를 잘 알기에 스스로 찌그러져 숨도 크게 쉬지 않아왔다. 원소가 죽고 원상이 즉위한 후, 원상은 혈육인 원희를 군공에 봉하고 그래도 마음을 써주었다. 원희의 세력이 비록 보잘 것 없다지만 초촉(焦触)과 장남(張南)이라는 숙장이 있었고, 한형(韓珩)이라는 강직한 선비도 원희의 좌하에 있었다. 이들은 모조리 유주 출신이었는데, 원씨가 유주를 얻었던 것이 오래 전의 일이고 벌써 조조를 거쳐 오환의 땅이 된 터라 땅에 근거한 세력은 한미하였다. 그럼에도 그간 쌓아온 연공으로 조정에 출사해있어 가볍게 넘길 만한 자들은 아니었다. 또한 원담의 일에 있어 원희의 존재는 퍽 중요했다. 같은 원씨의 피를 나눈 원희가 고간에게 가담하여 원상을 힐난한다면 은왕의 권위가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반면에 원희가 원상을 지지한다면 원씨 일문에서 내친 모양새가 되므로 도리어 죽일 놈이 되는 건 원담 쪽이었다.
원상은 전풍의 진언에 동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승상의 뜻대로 하오.”
“감사합니다.”
전풍은 원상의 말을 듣기 전에 이미 상서 종요를 하내공 원희에게 보내 포섭에 나선 상태였다.
“한 가지 더……”
“말씀하시오.”
“오환에 사자를 보내어 화의를 다지도록 하십시오. 오환은 조조와 강화를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드러내놓고 우리와 연을 맺지는 않겠지만, 지금부터 관계를 다져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만 훗날 조조가 주제를 잊고 은의 강토를 침노하면 오환과 연계하여 역습을 가할 수 있습니다.”
원상은 멍한 표정으로 전풍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전풍이 겸연쩍게 웃으며 물었다.
“어찌 신의 못난 얼굴을 그리 보십니까?”
원상은 쓸쓸하게 답했다.
“과인은 이미 큰형님의 일로도 버티지 못할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 승상은 큰형님은 물론 저 멀리 오환까지 챙기고 있질 않소. 참으로 대단한 식견이구려……”
“황송합니다. 넓고 멀게 봐야 신이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전하를 모실 수 있습니다.”
원상은 음울한 미소를 지었다.
“날이 참 덥구려.”
봉기와 곽도도 전풍과 같은 의견이었다. 오환이야 어떻게 되든 그들의 관심 밖이었고, 원희를 써먹어야 한다는 것에서 같은 의견이었다. 원희가 대뜸 정국의 중심에 섰다. 구석에 버려져있던 쓰레기에서 꽃이 피었다. 병주파에서도 곽도가 직접 나서 원희를 만났다. 물에 물 탄 듯한 원희는 종요도 만나고 곽도도 만났다. 그는 양쪽의 말을 듣기만 하고 돌려보냈다. 원희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는 아둔한 인물이었으나 이런 관심은 원담의 일이 해결되면 애초에 없었던 듯 꺼질 것쯤은 알았고, 사태가 비상하게 돌아가면 목숨마저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왕형(王兄)으로서 좌우의 우러름을 받다가 제 명을 다 살면 그만인 원희는 불안한 눈빛으로 떨었다.
한단자의 병법 강설은 칠일에 한 번씩 이뤄졌다. 지금까지 구태여 언급하지 않았지만, 원정이나 와병 따위의 이유가 아니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얗게 늙은 한단자가 만과백각에 납시어서 오자나 육도삼략을 읊는 소리가 청아하게 퍼졌다. 나이깨나 먹고 지략으로는 백각의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한다는 가후마저 별 다른 불만 없이 한단자의 강론에 개근하니 까마득한 후배인 육의나 제갈량은 좀이 쑤셔도 출석하여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심지어 제 이름도 겨우 깨친 허저와 글하고는 별로 인연이 없는 영자도 의무적으로 한단자의 수업을 들어야만 했다. 모름지기 군을 이끄는 장수야말로 병법을 해박하게 깨쳐야한다는 것이 한단자의 뜻이었고, 나도 공감했다. 이런 한단자의 마수에서 자유로운 것은 동류배인 좌자가 유일했다. 좌자가 실실 웃으면서 백각으로 끌려가는 허저의 곁을 스치며 꺼억 술 냄새 나는 트림을 하면 허저는 부러움과 얄미움에 몸서리를 쳤다. 한단자의 ‘사마법(司馬法, 춘추시대 사마양저가 저술한 병법서)’ 강론이 끝나고 진이 빠진 표정으로 제갈량과 육의는 부리나케 백각에서 달아났다.
“사형, 오늘은 유난히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눈 아래가 거무스름하게 변한 육의가 퀭한 눈으로 제갈량을 올려다봤다. 육의는 제갈량을 사형이라고 곧잘 불렀다. 제갈량은 흐느적흐느적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 한단자께서는 날이 갈수록 정정해지신단 말이야……”
육의는 주변을 경계하며 제갈량의 귀에다 속닥거렸다.
“들리는 말로는 우리 같은 젊은이들을 앉혀놓고 그 기를 빨아먹는 술법을 깨쳤다고도 합니다.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사형.”
제갈량도 맞장구를 쳤다.
“아미산에서 삼십 년 도를 닦았다는 서부교위(좌자)가 전수해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기력도 보충할 겸, 취루(翠樓)에서 요리라도 좀 드시렵니까.”
제갈량은 육의를 내려다보며 싱겁게 웃었다.
“기생집에서 먹을 것만 밝히는 그대도 참 별종이다.”
“그 집이 가지를 튀겨서 달짝지근한 양념에 잘 볶아내거든요. 맛이 썩 좋습니다.”
“나도 먹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육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오늘은 휴무일이라 돌볼 업무도 없지 않습니까.”
제갈량은 기분이 나빠진 표정으로 대꾸했다.
“내 상관이 아주 못돼 처먹었거든.”
“네?”
제갈량이 말하자마자 합비공부에서 나온 사환꾼이 급히 제갈량을 찾았다. 그는 읍을 하고 다급한 말로 아뢨다.
“좨주께 아룁니다. 합비공께서 한단자의 강론이 끝났으니 합비공부로 와서 오찬을 겸하여 정략을 의논하자고 하십니다.”
제갈량은 육의에게 거봐란 듯 눈짓했다. 육의는 위로의 의미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보십시오. 그러면 저 혼자라도 가지튀김을 먹으러……”
육의의 소망은 바로 곧이어 산산조각 났다. 사환이 육의를 향해 공수하며 아뢨다.
“합비공께서 남부교위도 배석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육의의 표정이 일순 제갈량의 것으로 바뀌었다. 둘은 터덜터덜 무력한 발걸음으로 백각과 바로 이웃한 합비공부를 향했다. 제갈량은 육의의 귀에다 대고 속닥거렸다.
“말만 오찬이지 해 떨어질 때까지 안 놔줄 걸.”
그의 말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확신에 차있었다. 육의의 표정이 더욱 흙빛이 되었다.
“내 부인 모란이 예전에는 합비공을 열렬히 좋아했는데 요즘은 합비공 보고 뭐라고 하는 줄 아나?”
“뭐라고 합니까.”
“만나면 얼굴 껍데기를 뜯어버리겠대. 나는 지금 한 이불 덮고 잔 지 보름이 넘어간다고.”
“저도 같이 해도 됩니까?”
제갈량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 이불 덮고 자고 싶다고?”
육의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뇨! 얼굴 껍데기 얘기였는데요.”
기껏 합비공부의 밖까지 마중을 나갔더니 저 량이와 육의는 서로 농지거리나 궁싯거리면서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꽥 소리를 질렀다.
“빨리 빨리 안 와!”
량이와 육의는 더욱 질질 끄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들을 합비공부로 이끌어 앉혀놓고 오찬을 베풀었다. 음식을 헤집는 그들의 젓가락질에 힘이 없었다.
“뭐야, 왜들 안 먹어?”
량이가 툴툴거렸다.
“뭘 먹을 걸 올려놓고 먹으라고 하셔야지요… 푸성귀도 듬성듬성 들어있는 멀건 장국에다 짠지라니. 요즘은 일개 양민도 이렇게는 안 먹어요. 오찬이라고 이름은 걸게 붙여놓고서.”
육의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가지튀김……”
나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이가 몇 갠데 반찬투정이냐. 상어지느러미나 무슨 버섯이라도 올려야 그 튀어나온 아래턱을 집어넣을 거냐? 밥 주면 넙죽 감사합니다 하고 맛있게 먹어야지.”
“됐어요. 말을 말지.”
“하도 먹을 반찬이 없어서 버릇을 밥 말아먹었니? 좋은 말로 할 때 턱 집어넣도록.”
나는 장국을 후루룩 마시고 일어났다. 량이와 육의는 밥을 반도 못 먹고 남겼다. 나는 그것을 흘끗 보고 그들을 훈계했다.
“성 밖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나무껍질을 벗겨먹는데 너희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밥을 남기고……”
량이는 진즉에 귀를 틀어막았고 육의는 벌써부터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나는 혀를 쯧쯧 걷어차고 그들을 합비공부의 내당으로 이끌었다.
“알다시피 하내의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청금의 보고에 따르면 전풍과 고간 모두 원희에게 접근해서 원담의 일에 대해 자파(自派)에게 유리한 정당성을 얻으려고 하는 모양이지.”
량이는 좀 전의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우고 퍽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형님은 선택의 기로에 서셨습니다. 유비는 은을 먹이로 전락하여 젓가락을 들이대려고 할 테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우리와의 전선에 소홀해지게 됩니다. 이때, 형님의 젓가락을 유비와 같이 은으로 뻗을지, 아니면 유비의 뒤통수에 뻗을지 결정하셔야 합니다.”
“둘 다 맛보고 싶은 음식이라 결정하기 쉽지 않군.”
“욕심은 금물이지요.”
육의가 끼어들었다.
“헌데 어째서 전풍은 칼을 쥐지 않는 겁니까. 지지부진하게 고간과 진흙탕 싸움을 하느니 예전의 십상시가 대장군 하진을 불러들여 참살했듯 고간의 목을 취하면 그만이 아닙니까.”
량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은은 그대로 끝장이다.”
“지지부진 싸움을 끄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량이는 방금 전보다 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배가 고프다며 주전부리를 청해다 우물거리며 부연설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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