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51
0255 / 0284 ———————————————-
23.
하내까지 와서 전풍에게 내내 위압되는 것은 주환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주환도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합비에서 하내까지 온 수고를 생각해서라도 말을 좀 듣는 척이라도 해주시죠, 승상.”
주환의 눈에서 반항심이 빛났다.
“이럴 거면 아예 만나주지를 마시든가.”
제법 쳐줄 만한 패기에 전풍은 피식 웃었다.
“네 악질의 버르장머리를 생각해서 베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제갈찬의 도움 따위는 받을 생각이 없다.”
주환은 전풍을 비꼬았다.
“자력으로 고간을 구축(驅逐)해낼 수 있다고 믿으시는군요.”
“건방지군. 당연한 것 아닌가? 고간의 세는 쇠잔해졌다. 병주의 인심도 빠르게 삼보로 쏠리고 있다.”
주환이 무어라 쏘아대려는 것을 전풍은 손을 들어 막았다.
“승상의 앞에서 멋대로 조잘거리지 마라, 애송이. 제갈찬에게 전해라. 은은 아무나 숟가락을 들이대도 좋을 솥이 아니라고 말이다.”
전풍의 눈빛은 주환을 짓눌렀다.
“우리를 정녕 돕고 싶거든 유비의 꽁무니나 물고 늘어지라고 해. 은왕부의 정사에 간예하려는 외세는……”
주환은 전풍의 눈빛을 똑바로 마주봤으나 눈빛이 다소 흔들리는 것만큼은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 전풍은 주환의 동요를 읽어내고 웃었다.
“모두 적으로 간주한다.”
“…사방의 환란을 마주한 주제에 단호하시군요.”
전풍은 논의를 일방적으로 끝냈다. 그는 몸을 일으켜서 승상부의 내당으로 걸어 들어갔다.
“네 녀석은 고작 벼슬이 장사에 그치는 주제에 말이 지나치게 거칠구나.”
그것으로 전풍은 주환과 더 상대하지 않았다. 주환은 승상부에 잠깐 머물다 가기에는 들인 품이 아까워 차를 한 잔 더 청해 마셨다. 전풍은 단호하게 합비공의 손을 뿌리쳤다. 전풍 역시 정치의 생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외세를 구축하기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만큼 어리석은 판단은 없다. 일단 외세를 방안으로 들이면 잃은 것 이상을 얻기 전까지는 결코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어르고 달래든, 위협하고 겁박하든 받은 도움 이상의 품을 들여야 비로소 쫓아낼 수 있다. 합비공이 승상 전풍을 은근히 도우려는 것은 일말의 콩고물을 고대하기 때문이요, 그 역시 콩고물을 받아먹기 전까지는 당당한 채권자로서 전풍을 짓누르려 들 것이기에, 전풍은 결코 합비공의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쨌든 합비공은 담왕 유비와 철천지원수이니 후방에서 유비를 견제할 것이었다. 그러니까 전략·전술적 동반자이다. 구태여 합비공의 병마를 하내에 들이지 않아도 합비공은 유비를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자연한 순리로 풀어질 일을 구태여 은왕부를 돕겠다며 생색을 내는 합비공이 전풍은 참으로 가증스러웠다.
“대장군부의 동향은 별 것 없었나?”
전풍이 승상부의 안으로 들어오면서 승상부 장사 한범에게 물었다. 한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잡인들이 드나들기는 했지만 승상께 따로 보고를 드릴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잡인이라면?”
“저자에서 떠들썩하게 젓갈을 팔던 젓갈장수를 상서 두기가 대장군부로 데려갔습죠.”
한범은 팔자 좋게 입맛을 쩝쩝 다셨다.
“토하알젓이란 값도 비싸지만 물량이 하도 없어 천금을 주고도 구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한데, 고것 맛이나 한번 봤으면.”
천연덕스럽게 지껄이는 한범과는 달리 전풍의 얼굴에는 석연치 않은 빛이 떴다.
“그 젓갈장수가 어디서 왔다더냐.”
한범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것은 시생도 알지 못합니다.”
“제길.”
전풍은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한범은 고개를 기웃기웃하며 물정 모르는 소리만 늘어놓았다.
“승상께서도 토하알젓을 드시고 싶으셔서 그러십니까? 대장군부에 가서 염치불고하고 얻어올까요?”
멍청한 소리에 전풍은 소리를 질렀다.
“당장 그 젓갈장수를 추적하여 붙잡아라!”
“젓갈 좀 얻겠다고 그런 소동을 벌일 것까지는……”
“서주의 간자이니라!”
한범은 펄쩍 뛰었다.
“예, 예에?”
전풍은 답답한 속을 간신히 다스렸다.
“머리가 미련하면 몸이라도 기민해야지! 속히 마군을 풀어 놈들을 생포하라!”
상서 두기는 젓갈 맛이 좋다고 대장군부에 젓갈장수를 들일 만큼 가벼운 인물이 아니었다. 아부 떨기 좋아하는 선비라면 알랑방귀를 뀌며 고간에게 토하알젓을 진상하였겠지만, 두기는 제 집에 들였으면 들였지 대장군부에 그런 잡인을 출입시킬 성격이 전혀, 전혀 아니었다. 전풍의 불호령에 한범은 바짝 몸이 얼어붙었다.
“조, 존명!”
한범은 부리나케 달려 나가 젓갈장수의 행방을 추적하여 승상부 직할의 기병 오십 기를 풀었다. 그러나 이미 젓갈장수는 노새를 버리고 대장군부에서 제공한 마필을 얻어 유유히 동쪽 서주로 떠나버린 뒤였다. 한범이 이끄는 기병이 그들의 꽁무니를 잡았지만 젓갈장수 일행은 국경을 통과하고 있었다. 한범은 노기 띤 목소리로 외쳤다.
“이놈! 당장 서라!”
관평은 헹 비웃었다.
“서슬 퍼런 칼이나 집어넣고 서라고 해라!”
관평은 방통을 보호하며 담의 초병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 서주의 경계 안쪽으로 진입했다. 한범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고삐를 잡아당겼다. 월경을 하면 그때부터는 침략이 되는 것이며, 그리하면 유비가 쓸데없는 트집을 잡아 은으로 병마를 움직일 터였다. 한범은 국경에 가래침을 뱉고 말 머리를 돌려 승상부로 귀환했다.
전풍은 한범이 젓갈장수를 쫓는 사이 광록대부 종요로 하여금 고간의 동향을 더욱 면밀하게 살피도록 주문했다. 돌아온 종요의 보고는 전풍에게 잔인한 것이었다. 종요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승상께 아룁니다……”
종요의 표정에서 전풍은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했다.
“무슨 일인가.”
“초병의 보고에 의하면 대장군 고간을 비롯하여 상서 두기, 좌장군 장연 일당 등이 모두 하내를 빠져나가 병주로 향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구름처럼 유유하던 전풍의 눈빛이 요동쳤다.
“거병을 예비하는 듯합니다……”
“기어코 젓갈장수가……!”
전풍은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이제부터는 살얼음 위를 걷는 듯 위태로운 싸움이 될 것이었다. 신중하되 신속해야 한다. 남들보다 한 수, 두 수 앞을 둬야만 이 은왕부를 지켜낼 수 있다. 전풍은 당장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역시나 대장군부의 요인들은 모두 등청하지 않았다. 대강의 소식을 들은 은왕부의 제신은 당혹스러운 분위기였다. 전풍 역시 급작스런 변화에 골이 지끈지끈 아파오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나 승상마저 흔들리면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어지므로 전풍은 부러 잔잔한 목소리를 유지했다.
“고간의 반란은 명약관화해졌습니다. 지금부터는 신속한 대응이 중요합니다. 은왕 전하, 신에게 전권을 일임해주시면 각고의 노력으로 이 환란을 잠재우겠나이다.”
원상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시오, 그리 하시오.”
평소 같았으면 형형한 눈빛을 흘리며 반대했을 사례교위 최염도 상황의 급박함을 인식하고 별 다른 반대를 표하지 않았다. 전풍은 안량을 바라봤다.
“장군, 죽으라면 죽을 수 있소?”
도발적인 물음에 안량은 여유롭게 웃었다.
“값없는 죽음이라면 따르지 않습니다. 다만, 값있는 죽음이라면 기꺼이 따릅니다.”
“값있는 일이오. 꼭 죽으란 법도 없는 일이오. 안량, 그대를 정북대장군 겸 병주목에 임명하겠소. 대장군 고간과 좌장군 장연 이하 전원을 파직시키니, 그 자들이 병주에서 동병하면 반역으로 간주할 것이오.”
안량은 절도 있게 읍을 올렸다.
“존명!”
“병력은 오천 가량 밖에 차출할 수가 없소. 그러니까 저놈들이 단결하여 아예 역적질을 천명하고 나선다면 장군은 살 수가 없을 것이오. 장군은 은왕부의 권위로 그들을 굴종시키고, 고간에 부역하는 자들 중 일부가 개과천선하여 장군의 쪽에 붙도록 해야 할 것이오.”
안량과 오천 병력을 병주로 보내봤자 안량도 잃고 병력도 잃을 공산이 크다는 점을 전풍도 알고 있었다. 병력이야 그렇다고 쳐도 안량은 은왕부에서 비길 바가 없는 맹장인데, 그를 잃는 것은 그야말로 치명타였다. 그럼에도 전풍은 그를 보냈다. 만일 이대로 하내의 성문을 걸어 잠그고 항전을 결정하면 병주는 정말 고간에게로 넘어가고 만다. 고간은 저가 살기 위해 하내로 역량을 집중할 것이고, 병주는 텅텅 비게 된다. 승냥이 같은 조조가 바로 뒤통수를 치고 들 것이다. 고간을 선동하는 데 성공한 유비도 병력을 이끌고 하내로 들어올 터, 고간을 제거한다 해도 살점이 이리저리 뜯겨 숨만 간신히 붙은 꼴이리라. 병주는 반드시 지켜내야만 했다. 은왕부의 권위와 고간의 불의함을 위엄 서린 목소리로 외쳐야만 했다. 그리하여 병주의 벼슬아치들이 고간을 버리고 원상을 붙들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어중이떠중이로는 어려웠다. 병주는 고간이 오랫동안 다져온 땅이었다. 아무리 은왕부의 권위를 등에 업었다 한들 당당한 인물이 아니라면 소용이 없었다. 죽을 자리를 스스로 찾아들어가 칼자루를 쥔 자들을 꾸짖어 이 쪽으로 돌려놓을 만한 배짱을 지닌 이는 오로지 안량뿐이었다. 안량의 명성은 하북을 흔들고 용맹은 황하를 덮는다고 했다. 그에게 은왕부의 권위를 실어 역적토멸의 기치를 들라 외치도록 하면, 그러면 병주의 뜻 있는 자들이 동조하지 않을까. 전풍은 생각했다.
안량은 입을 굳게 다물고 병주로 떠났다. 전풍은 몸소 그를 전송했다. 안량은 전풍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승상!”
“장군을 믿소……”
전풍은 멀어지는 안량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주환은 합비로 돌아와 경과를 보고했다. 전풍이 우리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보고가 주된 것이어야 했지만, 고간이 예상보다도 이르게 거병을 결심하면서 전풍의 반응은 최우선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전투구의 서막이 엉겁결에 열리고야 말았다. 천하의 제후들이 일제히 하내를 주시하면서 주판알을 퉁길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자는 우둔한 죄로 멸망의 길을 걸을 것이다. 나는 다른 죄목은 다 수용할 수 있어도 우둔하여 멸망으로 단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대담(對郯) 전선의 군단장들에게 철저한 경계태세를 주문하라. 유비가 적극적으로 하내에 개입하면 그 공백을 노려 즉시 타격하도록 하겠다.”
내가 방침을 밝히자 제신이 고개를 숙였다.
“존명.”
다시, 또 다시 전쟁이다. 남의 지리멸렬에 군침을 흘리며 나는 또 다시 달려들어 전쟁을 벌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태되고 마는 비정과 잔혹함을 제후의 숙명으로 여기고. 비정과 잔혹을 자전거의 두 바퀴로 삼고 난세를 바퀴가 구를 단 하나의 오솔길로 삼아, 내내 비정하고 내내 잔혹하지 않으면 넘어지고 마는 이리와 승냥이의 안장에 앉아… 무수한 인명을 죽이고 피를 짜내 그 피로써 난세의 오솔길 위에 바퀴자국을 그리고……
——————
삼국지 인물열전
고간(?~206)
자는 원재. 원소의 족척. 원소에 의해 병주자사에 임명되었고, 제법 야심만만한 인물로 보인다. 원소 사후 조조가 원소의 땅을 얻기 위해 북진하자, 이에 정면으로 맞선다. 흉노 선우 호주천과 하동태수 곽원에게 명하여 조조의 측면을 습격, 한때 조조를 위기에 몰아넣지만 조조가 마등을 회유하여 이를 분쇄하였다. 원담이 조조와 손을 잡고 다시 북진하자 원상을 후원하였으며, 원상이 조조에 의해 크게 당하자 관망세로 전환했다. 원가의 내분을 보면서 원소의 무능한 아들들보다 차라리 자신이 전면에 나서 권력을 쥐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듯. 업을 점령한 조조는 고간에게 병주를 넘기면서 회유에 들어갔다. 조조가 오환으로 망명한 원상을 치기 위해 다시 북벌에 나서자, 고간은 반란을 일으켜 그의 뒤통수를 친다. 한때 조조를 위협할 정도로 주변이 크게 호응하였으나 점차 허물어졌고, 흉노로 망명하던 중 주살 당했다. 끝내 실패하였으나 아주 무능하지는 않았으며, 여러 번 조조에 반기를 들 정도로 야심이 충만했던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