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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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고간의 선봉 장연은 조가, 공, 급을 경유하여 마침내 은왕부의 최전방인 획가에 당도했다. 살육과 약탈을 유희로 즐기던 장연도 획가에 다다라서는 마음가짐을 새로이 했다. 고람은 안량, 장합과 더불어 원씨의 숙장이었다. 멋모르고 덤볐다가는 흠씬 두들겨 맞고 예기가 풀썩 꺾이고 말 터. 장연은 행군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획가를 에워쌌다.
고간의 본대는 획가를 서쪽에서 지탱하는 수무로 향했다. 견초의 패잔병 삼천이 주둔하는 곳이었다. 고람의 획가는 방비가 단단하니, 패잔병이 지키는 수무를 삽시에 무너뜨려 고립무원의 구렁텅이에 몰아 섬멸하겠다는 계책이었다.
그즈음 태원의 소식이 고간의 귀에 들어갔다.
“태원이 안량의 손에 넘어갔다고?”
당최 납득이 가지 않는 말에 고간은 제가 제대로 들었는지 한참 곱씹어야만 했다.
“왕당에게 병마를 들려 보내지 않았는가. 왕당은 뭘 했는가?”
돌아오는 대답은 헛웃음을 유발했다.
“이미 안량이 태원을 장악하여 왕당 장군이 공성에 들어갔는데, 도리어 야습에 당하여 목이 베어지고 군사는 흩어졌습니다.”
고간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병신이 따로 없군.”
고간은 불필요한 말을 덧붙였다.
“이래서 도적질이나 하던 천것들은 못 쓴다니까.”
고간은 두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량이 태원을 장악했다 하나 그것은 태수의 치소가 있는 진양일 뿐이다. 태원의 다른 현은 안량의 겁박에 넘어가지 않을 터. 기현(祁縣)을 중심으로 하여 진양을 에워싸고 안량을 붙들라고 하라.”
두기는 명령을 확인했다.
“공파가 아니라 다만 저지일 뿐이지요?”
“그렇다. 안량에게 섣불리 덤볐다가는 도리어 당하고 말 터, 그 망아지 같은 놈은 하내를 복속시킨 후 따로 손을 봐주겠다. 지금은 다만 붙들어두라고만 해.”
두기는 읍했다.
“존명……”
견초가 지키는 수무는 금세 고간의 손에 떨어졌다. 견초는 겨우 제 몸만 건사하여 전풍이 있는 무덕으로 철수했다. 고람은 장연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었는데, 획가를 지탱하던 수무가 꺾이니 점차 장연의 군세에 밀리기 시작했다. 전풍은 획가를 잃으면 적의 사기가 들끓어 패색이 짙어질 것을 염려했다. 전풍은 장군 장의거에게 병력 이천오백을 맡겨 장연이 획가를 포위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산양의 전예에게 명하여 은밀히 기동해 획가 북쪽의 급현을 치도록 했다.
“조조는 반드시 고간의 뒤통수를 노릴 것이다. 조조가 병주를 급습하면 고간은 동요한다. 병주에서 획가로 이어지는 보급선은 급현을 지난다. 전예가 급현을 물고 놓지 않으면, 고간의 진영은 안에서부터 흔들린다.”
전풍이 조가와 공, 급을 내준 것은 고간을 하내의 깊숙이 끌어들여 보급선을 쉽게 차단하기 위한 계책의 일환이었다.
“이미 고간의 휘하들은 숱하게 그에게 낙망했고 조가, 공, 급을 초토화하는 장연을 방관하면서 더욱 낙망했다. 고간이 한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것이다. 고간은 내분을 다스릴 배포와 능력이 없다. 반드시 누군가 고간의 목을 베어 내 앞에 바치리라.”
전풍은 셈을 이어갔다.
“시간만 끌면 고간은 스스로 무너진다. 고간의 병력은 고스란히 우리 손 안에 들어온다. 진양을 둘러싼 놈들도 마찬가지다. 고간이 죽고 그 당여가 나에게 투항했으며, 조조가 병주를 침략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면 자비로운 말로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전풍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은은 다시 하나가 되어 내란이 아닌 외침을 방어해낸다……”
이 구상의 시작은 전예에게 달려 있었다. 전예가 성공적으로 수무를 우회하여 고간의 목덜미인 급을 꽉 물어줘야만 했다.
“전예는 번뜩이는 기지가 있어 반드시 급을 깨물 수 있을 것이다……”
전풍의 사람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 고간은 우매하고 전예는 총명했다.
담성에서 오천의 병력으로 출정한 유비는 연주의 최서단인 봉구(封丘)에 주둔했다. 그는 전혀 전쟁을 염두에 두지 않는 듯 태연자약했다. 여유로운 눈매를 하는 한편 귀는 서쪽의 전장을 향해 쫑긋 세우고 있었다.
“수무가 고간에게 떨어지고 고람이 지키는 획가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벽에게서 전해들은 소식을 유비는 곱씹었다. 그는 히죽 웃었다.
“전풍은 죽을 맛이겠군, 그래?”
유벽은 이어서 보고했다.
“급히 장군 장의거에게 이천오백의 병력을 획가에 증원군으로 보냈다고 하나……”
유비는 그의 말을 대신 맺어주었다.
“결코 쉽지 않겠지.”
“그렇습니다.”
방통이 덧붙여 말했다.
“전풍은 획가에서 결착을 내려고 할 것입니다. 아마 산양의 전예 역시 출정하게 하여 고간의 뒤를 치게 할 것입니다. 전력을 분산하여 각개격파 당하는 것보다는 획가에서 명운을 걸고 결착을 내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유비는 짧게 대답하고 방통을 바라보며 물었다.
“헌데 전풍은 우리더러 도와달라는 말 한 마디가 없던가?”
방통의 대답은 간단했다.
“네.”
유비의 눈꼬리가 처졌다.
“그래도 명색이 사돈지간에다가 교분 깊은 동맹인데 우리더러 도와달란 말을 안 한단 말인가?”
방통은 곧장 대답했다.
“그럴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입니다. 감감무소식입니다.”
“이거, 섭섭한데……”
그는 입맛을 다시며 검지로 뺨을 긁고는 방통에게 다시 물었다.
“제갈찬의 동향은 어떠한가.”
“우리의 뒤통수를 치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습니다. 결코 틈을 보여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쥐새끼 같은 놈. 치사하게 남의 뒤통수나 치려고 하다니.”
전하께서 하실 말씀은 아닙니다. 방통은 하나마나한 소리를 뱉지 않고 삼켰다. 유비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오래 쉬었다. 이제 우리도 슬슬 작전 개시다.”
동쪽 전선인 권현을 맡은 종요는 굳은 방비를 유지했다. 전풍은 환란 중에 유비가 어떤 사악한 꾀를 부릴지 모른다고 하며 종요에게 철저한 대비를 당부했다. 종요는 승상의 기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는 유비가 권현의 동쪽인 봉구에 주둔했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긴장의 끈을 조였다. 그러던 차에 유비의 사자로서 손건이 그를 방문했다. 유비를 극도로 경계하는 종요였으나 겉으로는 동맹이 유지되고 있었기에 종요는 손건을 극진히 대접했다. 대접에 소홀함이 있다면 그것이 또 어떤 함정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는 까닭이었다. 손건은 속이 다 비치는 웃음을 보이며 종요에게 말했다.
“광록대부(종요), 담왕께서는 동쪽 전선인 권이 위태로우니 이곳에 담국의 병력을 파견하여 방비를 두텁게 하는 것이 어떻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종요는 속으로 상욕을 주절거렸다. 원병을 보내주는 체 하면서 은왕부와 지척인 이곳을 피 한 방울도 지불하지 않고 얻겠다는 심산이지. 종요는 가소로움을 감추며 겸손하게 사양했다.
“아닙니다. 권은 아국의 병력만으로도 족합니다. 획가의 상황이 급하니 획가를 도와주시는 건 어떠실는지요?”
손건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뭣하지만 획가는 너무 치열한 전장이기에 본국의 병력을 지나치게 소모할 것만 같아서…… 본국은 비교적 후방인 권현을 지키고, 광록대부의 병력을 어느 정도 차출하여 획가로 보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저희가 대신 권현을 지켜주겠습니다.”
나를 얼마나 바보천치로 알기에 이토록 속이 뻔히 보이는 책략을 쓴단 말인가? 종요는 모욕감마저 느꼈다.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기고 도둑에게 안방을 맡기고 말지. 유비한테 은왕부와 이웃한 요충지를 맡기라고? 개울물의 깊이도 되지 않는 얕은 책략을 구사하다니, 방통이 봉황새끼라더니 이 무슨 실망스러운 수작이란 말인가. 종요는 속에서 화병이 도질 지경이었다. 손건의 개수작을 종요는 차분한 말씨로 다시 사양했다. 손건은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때 종요의 부관이 안으로 들어왔다.
“광록대부, 급보입니다.”
종요는 손건을 흘끗 바라보았다. 종요가 두어 번 헛기침을 하니 그도 눈치를 살피고 객관에 물러나있겠다고 했다. 손건이 물러나고 부관이 보고했다.
“봉구의 남쪽, 제갈찬의 영천과 이웃한 유비의 진영에서 한 떼의 병마가 출정했다는 소식입니다.”
“…뭐라?”
“옛 손씨의 숙장이었던 황개가 이끄는 병력 일만이라고 합니다.”
종요는 펄쩍 뛰었다. 황개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맹장이기도 하거니와 그에게 일만이나 되는 병력을 딸려 보냈다는 소식은 경악스러웠다. 유비가 영천의 진등과 대치하기를 포기하고 은왕부를 노리는 것인가?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계책인가? 종요는 혼란스러웠다.
“황개는 양무(陽武)를 지나쳐 남서진 하고 있습니다.”
“양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종요가 눈치 챈 대로라면 유비는 권현을 노리고 있다. 그러자면 남쪽의 양무가 아니라 권과 가까운 원무(原武)로 들어와야 옳았다. 헌데 황개의 병력이 양무로 진입하여 남서진하고 있다……? 이치에 닿지 않았다. 양무는 은의 땅이었으나 고간을 막는 데 주력하느라 병력을 주둔시키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최소한 외세의 동향을 탐망하기 위한 눈과 귀는 심어놓은 상태였다.
황개가 권에서 떨어진 양무로 들어와 남서쪽으로 들어온다? 종요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허면 일부러 권현을 노리는 체 하면서 다른 곳을 치는 것인가……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계책인가! 종요의 동공이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마침내 흰자위의 한가운데에 딱 멈춰섰다. 종요는 탁자를 쾅 치며 일어섰다.
“형양(滎陽)이다!”
형양은 권의 서남쪽에 위치한 도시였고, 은왕부가 있는 회의 남쪽에 위치해있었다. 형양은 권만큼 은왕부와 가까웠다. 그러나 형양은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있으므로 주둔시킨 병력이 아예 없었다. 황개가 이끄는 일만의 병력이 그대로 형양을 접수하고 북쪽으로 밀고 들어가면,
“은왕부는 끝장이다……”
부관은 종요에게 덧붙였다.
“황개의 병사들은 흰 분을 바르고 눈 주위에는 붉게 칠하여 그 모습이 참으로 괴이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본디 남방의 만이(蠻夷)들은 야만스러운 치장을 좋아하는 법이다. 남방의 촌것이라 아직 그 습속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종요는 그렇게 대꾸하고 손건이 머물러있는 객관 쪽을 쏘아보았다.
“이렇게 내 눈을 속이고 형양을 석권할 작정이었구나. 참으로 야비하도다.”
종요의 말에 부관도 그 뜻을 깨닫고 분개했다.
“당장 저놈의 목을 베겠습니다!”
종요는 손을 들어 막았다.
“아니다. 놈의 책략을 역이용한다.”
유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보고는 합비에도 당도했다. 놈은 최대한 틈을 보이지 않으려 하겠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약점은 생기기 마련이었다. 황개가 일만의 병력을 내보냈다는 것은 영천 전선에 큰 공백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가후를 바라봤다.
“진등이 준재이기는 하나 백각을 따르지는 못하오. 백각에게 사지절을 내리니, 지금 당장 영천으로 가서 전선을 직접 지휘하도록 하시오.”
내 명에 가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진원룡(진등)은 일대의 명망가인데 제가 상관으로 부임하면 아무래도 껄끄러워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빙긋 웃으며 그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원룡은 그렇게 소인이 아니오. 내가 그에게 별 다른 관직을 내리지 않고 여남에 오랫동안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버려두어도 조금의 불만도 토로하지 않았던 인물이오.”
“합비공께서 보증하신다니, 그럼 걱정하지 않고 영천으로 떠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합비에 일일이 보고하지 말고 알아서 처리하시오. 백각의 뜻이 곧 나의 뜻이오.”
가후는 넙죽 읍을 올렸다.
“그 파격이 합비공을 여기까지 이끌었지요. 따르겠습니다.”
나는 가후를 보내놓고 천하전도를 내려다봤다. 나도 이제 쇠 비린내를 풍기는 전장에 다시 발을 걸치게 되었다. 쇠 비린내에 이어서는 피비린내이리라.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게 되면 비린내에 익숙해진 후각은 어떠한 냄새도 맡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다시 쇠와 피에 둔감해지는 야수가 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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