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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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부관 역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담왕 유비가 스스로 찾아왔습니다.”
이제 반장의 시선은 유비에게로 향했다. 유비는 이미 자포자기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대체 왜 이곳으로 왔느냐?”
반장의 물음에 유비는 입을 다물었고, 방통이 나서서 말했다.
“제갈찬의 발톱이 우리를 쫓는지라, 향할 곳이 여기밖에 없었소이다.”
반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손관은 무섭고 나 반장은 물렁해 보이더냐?”
반장은 콧잔등을 들썩거리며 잠시 분을 삭이더니, 한쪽 입가를 치켜 올렸다.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할까봐 하늘이 나를 동정하는구나. 좋아, 너를 당장 손관의 진영으로 보내버리겠다.”
거봐, 이 미친놈! 결국 제갈찬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돼버렸잖나! 유비는 속으로 봉황새끼를 마구 욕했다. 그러나 방통은 다 셈속이 있다는 듯 반장에게 말했다.
“우리를 손관에게 보내면 장군은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게 되오만.”
“뭐야?”
“감사인사는 받겠지. 그뿐이지 뭐가 더 있겠소? 참으로 장군의 머리도 어지간히 안 돌아가는구먼.”
다 죽게 된 놈이 뚫린 입이라고…… 반장은 방통의 뺨을 시원하게 갈겼으면 했지만, 잠시 화를 누르고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손관에게 이들을 보내버린다면 손관이 꾸벅 예를 갖춰 감사를 표하긴 하겠으나 그것이 당최 무슨 소용인가. 그것은 공이라고 할 수 없다. 반장은 타오르는 눈빛으로 방통을 노려봤다. 무슨 뒷배가 있는 것인지 방통의 표정은 아무런 걱정이 없어보였다.
방통은 반장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를 송경으로 보내시오.”
“뭐라.”
방통은 순리를 얘기했다.
“그래야 옳지 않겠소? 담왕 전하를 송경으로 보내야 송경 천자에게 공로를 인정받지 않겠냔 말이오.”
말이야 옳은 말이었다. 제갈찬에게 송환을 한다고 해도 송경 천자가 직접 인도하는 것이 옳지 반장이 임의대로 처분했다가는 천자는 물론 상서령 낙준의 분노를 사고야 말 것이었다. 역도 처단의 미명으로 천자가 직접 유비를 처리하겠다고 할 수도 있는 일, 반장은 방통의 말에 속으로 공감했다. 유비는 슬쩍 방통을 째려봤다. 이 자식, 누구 편이야?
잠시 고심하던 반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무슨 꿍꿍이속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내 알 바가 아니지. 천자께 너희를 보내겠다.”
방통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첨언했다.
“이 일대를 이 잡듯 뒤지고 다녀도 소득을 얻지 못한 손관이 조만간 장군의 막사를 찾아올 것이오. 장군께 한 가지 조언을 드리고 싶소.”
이 비루먹은 당나귀 같은 놈이 제 목숨을 구해줬더니 이제 훈계까지 하려 들어? 반장은 죽여 놓았던 성질이 다시 고개를 들려는 것을 억지로 눌렀다. 말을 들어 나쁠 것은 없었다.
“뭐냐.”
“손관이 담왕 전하의 행방을 묻거든, 모른다고 하시구려.”
“뭐야?”
방통의 말은 제 목숨을 구차하게 구해보고자 하는 시도로 밖에 읽히지 않았다. 반장은 그 구차함을 속으로 비웃었다. 방통은 반장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변설을 이어갔다.
“그 편이 좋소이다. 송경의 천자가 우리를 합비로 압송한다 해도 그 편이 좋소. 생각을 해보시오. 이웃이 말 한 필을 잃어버려 찾느라 혈안이 돼 있소. 그것을 여기저기 뒤져도 찾지 못해 장군 댁의 대문까지 두들기게 되었소. 여기 혹시 내 말이 있소? 이웃이 물으니 장군이, 아아, 여기 있소이다. 데려가시구려, 해보시오. 그 이웃이 진정으로 감사하겠소? 아니면 혹시 의뭉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의심하겠소?”
반장은 방통의 뜻대로 대답을 내놓았다.
“굳이 고르자면 의심을 할 공산이 더 많지.”
“그렇소이다. 그러하니 손관의 물음에 우선은 잡아떼시고, 우리를 은밀하게 송경으로 압송하시오. 만일 우리를 합비로 압송하는 것 외에 천자가 다른 처분을 내린다면 제갈찬 모르게 할 수 있는 것이고, 만일 압송한다 하여도 제갈찬의 요구에 천자가 응하는 것이 아니라 천자가 먼저 시혜하는 것이니 모양새가 아무래도 더 좋지 않겠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잠시 고심하는 반장에게 방통이 말을 덧붙였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격언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성정인 것처럼 방통의 변설은 부단했다.
“장군은 천자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멋대로 줄일 까닭이 없소이다. 장군은 우리를 천자에게 넘기면 그것으로 모든 공을 이룬 것이오. 듣자하니 천자의 기질이 퍽 괄괄하다던데 장군이 임의대로 처분하면 경을 칠 수도 있소이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참으로 어투며 음성이며 얄미웠다. 반장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유비에게 말했다.
“좋다. 놔주지. 송경으로 보내주겠다. 너희가 대체 무슨 꿍꿍이속인지는 모르겠으나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네 알 바는 아니고. 방통은 속으로 이죽거렸다. 유비는 우선 가슴을 쓸어내리고 반장의 막사를 떠나려고 했다. 그런데 반장의 목소리가 유비를 붙잡았다.
“그 전에 잠깐만.”
반장은 진중을 떠나려는 유비들을 세우더니 대뜸 차돌 같은 주먹을 유비의 턱주가리에 제대로 먹였다. 유비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골을 뒤흔드는 완력에 유비는 정신을 못 차렸다. 반장은 킬킬거리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너 같은 개자식은 한번 제대로 때려주고 싶었다.”
유비는 눈물이 핑 돌았지만 입술을 악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이 버러지 같은 자식, 너는 내가 천하를 먹으면 오체분시를 할 줄 알아라. 유비는 제 가슴 속 살생부에 반장의 이름을 적었다.
반장은 이만의 병력 중 삼천을 동원하여 유비와 서황, 방통을 송경으로 호송했다. 일개 죄인을 수도로 호송하는 병력 치고는 지나치게 많았다. 유비가 일개 죄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담왕의 권위를 상징하던 보검은 반장의 수집품으로 빼앗겼다. 본디 죄인은 달구지에 실어 보내는 것이 상례였으나 이는 합비공의 눈을 가려 은밀하게 이뤄지는 것이기에 유비와 방통, 서황 역시 군졸의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렇게 송경으로 끌려가는 길에서, 유비는 서황에게 물었다.
“후회하지?”
서황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짧게 대답했다.
“조금.”
유비는 고개를 홱 돌려 방통을 쏘아봤다.
“팔자에 없던 사이비 천자까지 알현하게 생겼다. 일이 잘못되기만 해봐라.”
“어이, 조용히 해!”
유비와 나란히 걷던 병사가 유비를 윽박질렀다. 유비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를 쏘아봤다.
“아이구우! 이제는 하다하다 저런 잡놈한테 반말을 다 듣고!”
유비는 가슴을 쾅쾅 두들겼다. 방통은 유비를 흘끔 바라봤다.
“조용히 하라고 하질 않습니까.”
“망할!”
유비를 꾸짖은 사졸은 싱글벙글 웃으며 제 동료에게 자랑스레 떠들었다. 천하를 떠들썩하게 한 제후의 입을 제가 다물게 했다며. 그가 언제 죽을지는 몰라도 죽을 때까지 족히 기 천 번은 주절대리라.
서쪽으로 새 몰이에 나섰던 손관은 마침내 반장의 진영까지 닿았다. 그는 부랴부랴 반장의 막사 앞에 말을 세우고 그를 예방했다. 기실 손관은 합비공의 막역지우이자 대장군부의 으뜸가는 장수로서 실질적인 힘의 크기를 따지자면 손관이 반장을 압도했지만, 반장은 천자로부터 친히 인끈을 받은 조정의 근신이었고 손관은 대장군부에 딸린 벼슬이었으니 지체는 반장이 높았다. 손관은 반장에게 예를 갖추고 황급히 용건을 말했다.
“담왕 유비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반장은 고개를 모로 기울인 채로 대꾸했다.
“유비? 유비를 왜 애먼 낙양에서 찾으시오? 듣자하니 은왕부로 출정했다던데.”
반장의 연기는 제법 발군이었다. 손관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정말이십니까? 이 일대로 도주하는 까닭에 샅샅이 뒤졌습니다만 여태 찾지 못했습니다. 분명 이곳을 통과했을 터.”
반장은 귀를 후비적거리며 나태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글쎄올시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소.”
손관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허면 대체 어디로 갔다는 것이냐. 신경질적으로 표정을 구기는 손관을 반장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봤다. 그러면서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지껄였다.
“중부교위의 무명은 익히 들었소이다. 오신 김에 무용담이나 청해 듣고자 하는데, 어떻소?”
팔자 늘어진 소리를 손관은 정중하게 일축했다.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만, 유비를 추포하는 일이 워낙에 화급하여 그럴 수 없습니다. 양해해주십시오.”
“아아, 물론, 이해하고말고. 훗날 여유가 생기시거든 무용담과 더불어 정담을 나누도록 합시다.”
손관은 반장에게 읍을 올렸다.
“그날을 고대하죠.”
손관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막사를 나섰다. 막사를 나오면서 쭉 뻗은 아름드리나무에 주먹을 먹였다. 마치 그 아름드리가 얄미운 유비의 상판인 것처럼 강하게 주먹을 먹였다.
“젠장!”
송경으로 향하는 압송행렬은 걸음을 서둘렀다. 반장의 특명이 있는 탓이었다. 애꿎은 군량을 소모하기 전에 천자의 철병 허락을 받고 군을 물리고 싶다는 것이 반장의 의중이었다. 일생을 말 위에서나 달려봤지 맨발로 이 장도를 쉼 없이 걸어가는 것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훗날 다시 일어난다면 행군은 좀 살살해야겠다.
“아이구, 나 죽는다, 나 죽어! 좀 천천히 가자!”
유비가 고통을 호소했지만 유비를 한 번 꾸짖었던 사졸이 다시 그를 윽박질렀다.
“닥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유비는 서러웠다.
“네놈은 나중에 내가 직접 죽여버리겠어.”
“죄인 주제에 뭐라는 거야.”
“이 자식!”
유비가 일개 사졸과 주먹다짐을 하려는 것을 방통이 점잖게 만류했다.
“군왕의 체면을 생각하십시오.”
“으으……!”
낙양에서 송경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는데, 압송행렬은 비상한 속도로 나아가 송경에 도달했다. 그것은 그들의 상관 반장의 성질머리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더러운 까닭이기도 했다. 어기적거렸다가는 얼굴이 시뻘게진 반장이 칼춤을 출 터.
유비의 압송소식은 행렬보다 먼저 송경의 천자에게 당도했다. 유총은 먹던 밥을 잊을 정도로 놀라워했다.
“그 머저리가 왜 여기로 온데?”
유총에게 소식을 전한 낙준이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그것도 스스로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제갈찬은 저를 죽일 것 같고 짐은 자애롭게 살려줄 줄 알고?”
낙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상과 자애는 다소 거리가 좀 있는데요. 제갈찬과 위엄의 거리만큼이나.”
유총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낙준은 쓸데없는 논의를 일축했다.
“유비 곁에 붙은 방통이란 작자가 머리를 좀 쓴 모양이군요.”
유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조만간에 손님이 올 것 같으니 맞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유비는 죄인의 주제인데 무슨 손님씩이나.”
낙준은 꿇은 무릎을 천천히 일으키며 대꾸했다.
“왕귀 말고요. 다른 손님이 올 것 같군요.”
“그게 누군데?”
낙준은 천자의 하문을 못 들은 척 하며 대전을 빠져나갔다. 유총은 입술을 씰룩이며 불쾌감을 표했다.
유비의 압송소식이 들려온 지 닷새 후에 행렬이 송경에 당도했다.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군왕이 일개 사졸로 분하여 끌려오는 꼴은 참으로 볼 만 하겠다마는 그것이 극비리에 진행되는 터라 구경꾼들은 유비를 주목하지 않았다. 개중 눈썰미 좋은 몇몇이 저 병졸이 관상은 참으로 좋다고 할 뿐이었다.
유총은 유비를 송경의 방방곡곡 조리돌림을 시켜줬으면 속이 후련하련만 낙준이 그를 누구도 모르게 궁성으로 들이라 조언하자 그 조언을 채택했다. 그는 구중궁궐의 가장 심처(深處)인 밀실로 유비와 방통, 서황을 불러들였다. 유비는 포승에 묶여 천자의 앞에 끌려왔다. 유총은 빙글빙글 웃으며 희롱하듯 말했다.
“여어, 우리는 아마 먼 친척이지? 반갑군.”
유비는 묵묵부답이었다. 천자는 유비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가락으로 유비의 귓불을 건드려보았다. 그러면서 가벼운 탄성을 질렀다.
“오, 과연 듣던 대로 대단한 귀야.”
천자는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 불쾌한 표정으로 시종이 들고 있는 비단에 손을 닦고 대야에 한 번 더 씻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쫙 폈다.
“귓불이 귀의 불알이라서 그렇다는데 틀린 말이 아니었군! 유현덕의 불알은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 가운데에 둘 해서 넷이나 되는구먼!”
유비는 치욕으로 인한 가벼운 홍조를 띤 채로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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